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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검은 립스틱* - 2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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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4 회 작성일 23-12-12 23: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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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우는 다시 수화기를 집어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절친했던 친구, 서울시경의 강력반 반장 조병문 경감이 떠오른 것이다. 벨소리가 한참 울린 뒤에 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났다.



“예 강력반 김 형사입니다.”

“석관동인데, 조병문 경감님 부탁합니다.”

“아!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강력반 사무실에서 취조를 하고 있는 형사들의 목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왔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조금은 피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조 반장입니다.”

“아! 나 민우야.”

“오~! 웬일이야? 일본 가서 수고 했더군.”

“그 정보를 알고 있어?”



강민우는 비트 작전에 관해서 조병문이 알고 있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언론에도 기사화되는 것을 통제하고 안기부 내에서도 직접 참여한 요원들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 경감은 그런 정보는 쉽게 알 수 있다는 어투로 말했다.



“그 정도는 우리도 알지. 그러나 안국동사건의 배후 인물이 밝혀진 것은 아냐.”

“아직도 조사 중인가?”

“어쨌든 이 직업 때려 칠 때까지는 포기할 수 없지. 그런데 웬일인데?”

“좋은 정보 하나 주려고.”



“뭔데!?”

“혹시 군산에 이노마라고 알아?”

“이 놈아 라니!?”

“아니 이, 노, 마라고.”



강민우는 최중혁처럼 또박또박 끊어서 다시 말했다.



“아! 이 노마. 모르겠는데.”

“요즘 마약범 소탕작전 중 아닌가?”

“응, 그런데.......!?”

“군산에 마약 공급자가 있는 걸 모르나?”



“알다마다. 마약 밀수조직을 찾고 있는데, 점 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골치 썩는 중이지. 밀수 조직 보스가 이노마 인가? 어떻게, 뭘 알고 있는데?”

“이노마가 망치라고도 불리지. 증거 인멸할 염려가 있으니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내일 군산 현장으로 같이 갈 수 있어?”



“열일 젖혀놓고 가야지! 현지 경찰에도 연락하고 형사대를 동원할게.”

“그럼, 내가 정보원과 연락시켜 줄께.”

“음! 틀림없는 정보지?”

“염려 말라니까! 우리 팀을 출동시키기 곤란해서 그래. 그 대신 정보가 필요하니 보스를 취조할 기회를 줘.”

“알았어.”



수화기를 내려놓은 강민우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놈들에게서 곽춘호의 행방을 알아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곽춘호를 통해서만이 나머지 흑사회 조직원들을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강민우는 텅 빈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아보고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간다.



군산시에서 인파가 많은 번화가는 중앙로 일대이다. 군산역 근처의 시장에 인접한 유흥가에는 각양각색의 업종이름의 간판이 걸려있으나 주로 여자들이 접대하는 술집들이다. 거리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골목길 안으로 커튼이 드리워진 대형 관광버스와 지프차가 들이 닥쳤다.



코팅이 된 지프차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지프차 안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시경의 강력반장 조병문 경감과 들곰 최중혁, 그리고 사복형사가 앉아 있다. 차량 앞의 건너편에는 광진산업이라는 간판이 달린 이층 건물이 있었다. 건물 앞에는 여러 대의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건물 입구에는 사내 두 명이 마주서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조 경감이 앞 유리창을 내다보며 최중혁의 어깨를 툭 쳤다.



“여기가 분명해?”

“네, 반장님! 어제도 마약 중개상들이 이곳에서 물건을 구입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체격이 우람한 최중혁은 순한 양처럼 꾸벅이며 대답을 했다. 최중혁의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였다. 상납을 하던 조직을 없애고 구역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떴기 때문이다. 조 경감이 무전기를 들고 빠르게 말했다.



“김 형사! 김 형사!?”

“네. 반장님!”



“김 형사는 2조를 지휘하여 건물 뒤로 들어가라. 나는 1조와 함께 입구로 들어 갈 것이다. 건물 안에 있는 놈들이 모르게 지금 즉시 실시한다.”

“넵!”



조 경감이 무전기의 버튼을 눌러 지지직거리는 무선 전파 음을 끄면서 고개를 돌렸다. 뒤에 주차된 관광버스 문이 열리고 사복형사들이 재빠르게 내려섰다. 형사들은 골목의 건물 벽에 은신하면서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네 명의 형사가 천천히 앞 건물의 두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잡담을 하고 있던 사내들의 시선이 형사들을 향했다.



“당신들 누구야?”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사들이 두 사내를 덮쳤다. 형사들이 두 사내를 덮치는 모습을 보고 조 경감이 권총을 뽑아들고 지프차에서 내려섰다. 입구에 있던 두 사내는 반항하려다가 형사들에 의해 수갑이 채워졌다. 관광버스에서 경찰과 형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2조를 맡은 김 형사와 형사들이 건물 뒤 문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갑자기 건물 일층으로 들이 닥친 형사대와 경찰들을 보고 폭력배들이 저항을 하였다. 우당탕 하고 소란스러웠으나 형사대와 경찰들은 민첩한 움직임으로 폭력배들을 제압해 나갔다. 조 경감은 권총을 뽑아들고 일부 형사들을 대동하여 이층으로 향한 층계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층 사무실에는 조직의 보스인 망치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망치는 갑작스럽게 들리는 소란한 소리에 들고 있던 신문을 던지고 일어섰다. 이맛살을 찌푸린 그는 일층으로 전화를 하려고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문이 덜컥 열리고 그의 부하 한 명이 숨 가쁘게 뛰어 들었다.



“보스! 큰일 났습니다. 짭새들이........”



부하 조직원이 말을 끝내기도전에 입구로 조 경감과 형사들이 들어왔다. 망치에게 보고를 하던 조직원이 형사에게 걷어채여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총성이 울렸다. 급하게 뒷문으로 도주하려던 망치는 흠칫하여 멈추어 섰다. 이층 까지 경찰이 올라 온 것을 보아 일층에 있던 부하들이 모두 제압당했다는 것을 느꼈다. 권총까지 소지하고 있어서 도주할 수도 없었다.



“시경의 강력반 형사반장이다. 이 노마! 마약 밀수 용의자로 체포 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도 있다. 양손 머리위로 올려.”

“X같이! 씨 팔........”



투덜거리면서 돌아선 망치는 순순히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형사들이 달려들어 망치에게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형사들은 사무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캐비닛과 책상 서랍들이 열어 젖혀졌다. 조 경감은 한동안 소파에 앉아 형사들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약을 밀수했다는 증거물이 보이지 않았다.



소파에서 일어서려던 조 경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소파의 스프링이 튀는 소리가 이상했다. 다시 일어나서 구둣발로 마룻바닥을 두드려 보았다. 어딘가 공간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조 경감이 수색하고 있는 형사들을 불렀다.



“소파 들어내 봐.”



형사 두 명이 다가와 소파를 들어 옮겼다. 소파가 놓였던 자리에 못이 빠진 마룻바닥이 보였다. 마룻바닥을 들어냈다. 관처럼 생긴 공간에 흰 가루가 담긴 투명한 비닐봉지들이 나타났다. 비닐봉지를 뜯어내서 흰 가루를 손가락으로 찍어 혀끝으로 핥아보고 조 경감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울 시경의 강력반의 범죄자 취조실은 두 평 남짓한 공간 중앙에 탁자와 의자만이 있었다. 수갑이 채워진 망치 이노마가 탁자 앞의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항상 경찰의 수사망을 경계하였고, 군산 경찰서 내에도 정보원이 있었다. 그런데 손쓸 사이도 없이 체포 된 것이 분하고 원통했다.



서울 시경에서 직접 출동한 것으로 봐서는 분명히 조직 내의 누군가 배신하여 정보를 제공 한 것이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몇 년은 철창신세를 감수할 수밖에 없기에 입맛을 다시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취조실의 문이 덜컹 열리고 수사관 한명이 들어왔다. 수사관이라고 하기에는 훤칠한 인물의 남자였다.



취조실로 들어선 남자는 강민우였다. 무표정하게 들어선 강민우는 이노마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그리고 겨드랑이에서 권총을 뽑아 탁자위에 올려놓으며 대뜸 이노마에게 물었다.



“난 석관동의 강민우다. 석관동으로 갈래, 아니면 여기서 묻는 말에 대답할래?”

“석관동요.......!? 여기서 모든 걸 말하겠습니다.”



이노마는 석관동이라는 말에 상대가 안기부 요원이라는 것을 알고 겁이 났다. 석관동이나 안기부 분실에 끌려가면 없는 사실도 인정하고 말아야 하는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밀수를 한 사실을 거짓 없이 밝힌다고 해도 장기 징역살이만은 모면할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강민우가 이노마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다리 내려!”

“왜 이러십니까! 다리가 저려서 그런데.”



오랜 폭력배 생활로 잔뼈가 굵은 이노마는 역시 달랐다. 강민우의 강압적인 말에도 주눅이 들지 않고 느긋한 표정으로 여전히 다리를 꼬고 있었다. 상대의 마음을 제압하려던 강민우는 뜻대로 되지 않으니 탁자 위에 놓인 권총을 집어 들고 노리쇠를 후퇴시켰다.



“이곳에서도 네놈 없애는 것은 문제도 아냐.”

“반장님에게 모두 자백했는데,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습니까.”



노리쇠가 당겨진 총구가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고 이노마는 그때서야 꼬고 있던 다리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수갑 채워진 손으로 박자를 맞추듯이 허벅지를 툭툭 쳤다. 강민우는 이노마가 그렇게 여유를 부릴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곽춘호라고 알지?”

“곽춘호.......!? 그런 이름 처음 듣는데요.”



곽춘호의 이름을 들은 이노마는 허벅지를 치던 손을 멈칫하였다. 그에게 곽춘호는 경찰보다 더 두려운 이름이었다. 그는 다른 조직을 손아귀에 넣을 때 곽춘호의 도움을 받았었다. 곽춘호는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는 사내들을 동원해서 이노마를 도와주었었다. 그런데 곽춘호가 동원한 사내들은 잔인하고도 대단한 무술 실력을 지녔었다.



곽춘호의 배경이 어떤 것인지 안개 속에 가려져 있고, 배반을 했던 폭력배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했었다. 곽춘호에 대한 정보를 누설하면 형을 집행 받고 나와서도 목숨을 보장 받을 수는 없었다.

강민우는 이노마의 표정 변화를 예민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네가 곽춘호와 가깝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말해.”

“정말 모릅니다. 군산 바닥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강민우가 안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이노마 앞에 놓았다. 안개작전 파일에 있던 곽춘호의 사진을 인화한 것이다.



“이놈과 네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을 대질시켜 줄까?”

“왜 이러십니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얼굴에 깊은 흉터가 있는 곽춘호의 사진을 바라본 이노마는 흠칫하였다. 그러나 정색을 하고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앉았다. 강민우가 시선을 피하는 이노마를 노려보았다.



“넌 어차피 사형감이야.”

“사형은 뭐!? 몇 년 살다가 나오면 될 걸.”

“정말 그럴까?”

“많은 사람을 대하다 보니 생각이 안날 수도 잇지만, 안다고 해도 무슨 죄가 되나요.”



“그러니까, 말해.”

“생각도 나지 않고, 모릅니다.”

“정말 몰라?”

“네.”



“살해범은 어떤 판결을 받을까?”

“난 사람을 살해한 적이 없으니까, 더 이상 말할 게 없습니다.”



이노마는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을 듯이 시선을 외면하고 돌아앉았다.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강민우가 그를 바라봤다.



“네 놈의 오른 팔이었던 광수는 어디 있지?”

“광수........!?”



이노마가 흠칫 놀랐다. 강민우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마치 이노마의 입에서 실토하는 시간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노마는 그렇다고 광수에 대한 얘기를 털어 놓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감정을 참지 못해 일으킨 실수였기 때문이다.



“모릅니다. 나를 배반하고 사라졌으니까.”

“입만 열면 모른다고 하는군. 네놈이 좋아하던 조은숙도 모른다고 할 거지?”

“그런 년! 모릅니다.”



이노마는 한동안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었던 조은숙의 나긋한 몸매와 미모를 떠올렸다. 강제로 범할 수 있었지만 그녀만은 미음까지도 소유하고 싶었었다. 광수에 대해서 모른다고 했으니 살해한 조은 숙도 끝까지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강민우가 탁자를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그런 년이라니? 무슨 뜻이지?”

“그냥.......! 내가 아는 여자들이 모두 직업여성이기에.”



무심코 흘린 이노마의 그런 년이라는 말은 조은숙을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자신도 모르게 말을 흘린 이노마는 엉뚱한 핑계를 했다.



“넌 알고 있어. 광수가 살해되어 매장된 장소도 아는데 모른다고?”

“광수가 살해 됐다고요? 하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럴까! 조은숙이 살아 있어도?”

“그 여자가 살아있던 죽었던 나와는 상관없습니다.”

“정말 모른다면 할 수 없지. 광수가 매장된 현장에 수사관을 보내고 광수를 살해했던 현장을 목격한 조은숙을 대질시킬 수밖에.”



강민우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치고 일어섰다. 이노마는 머리를 굴렸다. 부하를 시켜 살해하라고 지시했던 조은숙이 만약 살아있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광수를 따르던 부하들이 조은숙을 살려 두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가 정말 살아 있습니까?”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조은숙은 살아서 광수 아이를 낳고 지금 부산에서 다방을 하고 있어. 내가 경찰에 알리면 너는 아마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면치 못 할 걸.”



“정말 그 여자가 살아 있습니까?”

“너하고 농담할 시간 없는데.”

“마. 말하겠습니다. 대신 경찰에는 알리지 않을 거지요?”

“네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제가 정보를 흘렸다는 것을 알면 곽춘호도 저를 살려 두지 않을 것 입니다.”

“그것도 보장해줄 수 있어. 곽춘호를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디 있어?”

“경찰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인데, 필로폰을 밀수하도록 루트를 가르쳐 준 사람이 곽춘호입니다. 군산 옥산면에 가면 용두목장이라고 있습니다. 사슴하고 송아지만한 개들을 키웁니다.”

“그럼 곽춘호도 필로폰을 밀수하나?”



“그건 나도 잘 모르지만,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알았어. 허위정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다른 곽춘호 일당에 대해서 말해봐.”

“같이 술자리를 하면서 몇 사람을 보기는 했지만 정말 모릅니다. 내가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을 알면 나는 죽은 목숨입니다.”

“넌 이곳에 갇혀 있으니 염려 마.”



곽춘호를 두려워하는 이노마였기에 다시 강조해서 말했다. 강민우는 긴장하는 이노마의 등을 토닥거리며 취조실을 나섰다. 혼자 남은 이노마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혼란스러워했다. 어떤 방향이던 자신의 목숨을 맡겨 버린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오직 강민우를 믿고 기다릴 방법 밖에 없었다.



NTIS 국장실 소파에 송나희가 앉아 있었다. 근무 중에 오 국장의 호출을 받고 온 것이다. 등을 돌리고 있는 오 국장은 직접 셀프 커피를 타고 있었다. 오 국장이 커피를 탄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소파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커피가 든 종이컵 하나를 송나희 앞에 내려놓았다.



“자! 한잔 들어.”

“고맙습니다.”



송나희가 두 손으로 종이컵을 받쳐 들었다. 커피 한 모급을 후후 불어서 마신 오 국장이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어때, 하고 있는 일이 힘들지는 않나?”

“열심히 하고 있어요.”



“송 실장의 아버님이 육군 방첩대에서 근무하다가 순직하신 송유성 소령이시지?”

“아버님을 아세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지.”

“그러시군요.”



“강민우 실장과 친근한 사이인가?”

“.........네.”



송나희는 아니라고 부정 할 수 없어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오 국장의 주름진 눈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음! 그렇군. 유능하고 좋은 친구지.”

“........!”

“강 실장의 어머님과 여동생이 광주사태로 사망한 것도 알고 있나?”

“네.”



“그 때문에 강 실장이 정신적인 타격을 받고 있을 거야.”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난 그 친구를 믿고 싶어. 그러기에 개인적인 감정으로 또 다른 아픔을 겪는 것은 원치 않아.”

“.........”



“내가 송 실장을 부른 것은 강 실장의 동태를 잘 살펴 봐달라는 뜻이야.”

“제가 무슨 힘으로.......”

“개인적인 부탁이라기보다는 우리 조직에도 누가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명령일 수도 있어.”

“네.”



어쩌면 송나희에게 부담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좋은 일이면 몰라도 강민우에게 타격을 주는 것도 보고해야만 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송나희의 대답을 들은 오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국장실 문이 열리고 전희재 과장이 결재서류철을 들고 들어섰다. 오 국장과 송나희 실장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전 과장이 다시 돌아서 나가려고 했다. 오 국장이 전 과장에게 손짓을 했다.



“아! 괜찮아, 들어와.”



문을 나서려던 전 과장이 돌아섰다. 오 국장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송나희에게 말했다.



“그럼, 송 실장은 가서 일 보도록 해.”



소파에서 일어선 송나희가 오 국장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국장실을 나갔다. 오 국장이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 앞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전희재 과장이 오 국장 앞에 서류철을 올려놓았다. 서류들을 검토한 오 국장은 미리 파악한 사항인 듯 주저하지 않고 서류에 싸인을 했다. 결재한 서류철을 들고 전 과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왕릉에서 유지길에 대한 사건을 우리 NTIS가 처리하기를 요구합니다.”

“그건 안 돼.”



전 과장을 올려다보던 오민국 국장이 단호한 말투로 거절하였다.



“아직 부장님 오더는 떨어지지 않았으나, 왕릉에서 수사 A급으로 판정하였답니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유지길은 음모에 의한 공작이야.”



“유지길이 민단에 침투하여 산하조직의 와해를 기도했고, 과거에 입북한 경력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이미 체포했답니다.”

“유지길이 지금 어디 있지?”

“남산 분실에 구금되었다고 합니다.”

“석관동에는 우리 NTIS에서 맡을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내가 분명히 말할게.”



“네.”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생사람 잡겠구먼.......”



돌아선 전 과장은 국장실을 나오며 등 뒤에서 혼잣말처럼 흘리는 오 국장의 말을 들었다. 오 국장은 모든 일을 처리하는 판단기준이 냉철하고 냉정하였다. 냉정하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정부의 정책에 어느 정도 협조하고 타협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허위 음모나 공작에 관련된 작전에는 엄격하게 경계선을 긋는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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