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계약 #5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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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민은 이틀간 자기 방에 박혀 조사에 매진했다.
온갖 루트로 검색해서 세양그룹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회사 홈페이지와 각종 기사들을 탐색해 본 결과 자신의 후임 자리로 간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외부에서 스카우트해 온 모양인데…….”
희민은 화면에 뜬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자신이 있던 자리는 성공한 여성 인재로서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여자로 뽑은 모양이었다.
회사 내에 있는 사람이 발탁됐다면 자신도 아는 사람일 거고, 그렇다면 그 일과 뭔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젊고 해사한 여자 얼굴 앞에서 희민은 답답해졌다.
이미지 타격을 줄이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막았는지 그 사건에 대한 기사는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수시로 나오던 그녀의 기사들도 그 일 이후로 사라졌다.
“…….”
검색을 하다 찾은 과거의 자신 얼굴을 희민이 조용히 응시했다.
『 “편견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이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 줬죠” ― 이십 대의 나이에 대기업 차장 자리에 오른 한희민 씨 인터뷰.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오로지 성적만으로 최고의 명문고 명문대를 거쳐 세양이라는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성공한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유리천장을 깨고도 아직 이루고 싶은 것이 많다는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기사는 구속되기 고작 한 달 전에 나온 인터뷰였다.
기사 첫머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한 여자에게 한 달 뒤에 무슨 일이 생길지 말해 준다면 그녀는 뭐라고 할까.
넌 곧 모함을 받고 모든 걸 잃어.
넌 네가 한 말처럼 아직 이루고 싶은 것들 중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해.
그다음은 낭떠러지야.
다신 기어오르지 못할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는 거야. 한희민.
아무것도 모르고 헛된 꿈을 꾸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던 희민이 화면을 닫아 버렸다.
입 안이 썼다.
사진 속 과거의 자신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마치 수십 년 전의 사진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그리고 겨우 묻어 뒀던 억울함이 가슴을 쳤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차라리 뭔가 되돌릴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질러서 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면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자신이 한 짓의 대가일 테니.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모함으로 지금껏 노력했던 그 모든 일들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 미치도록 화가 나고 억울했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입술을 짓씹은 희민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서정혁의 저택 안에서 계약을 이행하는 동안에는 이런 식으로밖에 조사하지 못하지만 교도소에서 보낸 그 답답한 시간들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상황이다.
최근 세양의 동향이나 그녀가 맡았던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들을 찾다 보면 뭔가 힌트를 얻을 만한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
달칵.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희민이 멈칫거렸다.
‘뭐지?’
유리라면 노크를 할 텐데 급작스럽게 문부터 열린 게 이상해 그녀가 문 쪽을 쳐다봤다.
서정혁?
문 앞에는 일주일 뒤에 온다던 정혁이 서 있었다.
짙은 그레이 컬러의 슈트를 모델처럼 차려입은 그는 나갈 때처럼 머리칼까지 완벽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놀랐잖아요. 갑자기 들어오면.”
희민이 의자에서 얼른 몸을 일으켰다.
“놀랐습니까?”
정혁은 무감한 얼굴로 천천히 걸어왔다.
“일주일쯤 걸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희민은 그가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한 손으로 노트북 화면을 덮었다. 그 모습을 힐긋 본 정혁이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럴 계획이었습니다. 스케줄상으로는.”
정혁이 생각보다 거리를 좁혀서 다가오자 희민은 조용히 긴장을 숨기고 마주 봤다.
“갑자기 변동된 건가요?”
그저 앞에 서 있을 뿐인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 남자가 지니고 있는 분위기와 누가 봐도 매혹적인 마스크와 체형 때문일까?
아니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희민은 태연을 가장한 얼굴로 정혁을 쳐다봤다.
그는 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잠시 그녀가 덮은 노트북에 시선을 준 것 외에는 오로지 희민에게만 똑바로 시선을 박고 있었다.
다시 봐도 신비로운 색의 눈동자.
검은색과 짙은 올리브 색감과 푸른빛이 섞인 듯한 오묘한 눈은 뭔가 강렬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내가 변동시킨 게 맞겠죠.”
감정이 들어 있지 않은 목소리로 말한 정혁이 그의 슈트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희민을 내려다봤다.
무감한 목소리와 전혀 강압적이지 않은 자세임에도 희민은 이상하게 숨이 가빠 왔다.
희민의 얼굴을 관찰하듯 응시하며 정혁이 말했다.
“두 번으로는 역시 전혀 만족이 되질 않아서.”
“아…….”
순간 그의 눈동자에 번지는 선명한 욕망의 빛깔에 희민이 숨을 들이켰다.
그는 여유로운 자세로 선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만 있는데도 그 눈동자가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바짝 긴장시켰다.
그때 정혁이 희민의 손을 가만히 잡아 아래쪽으로 가져갔다.
“!”
그의 바지 위에서 느껴지는 빳빳하게 솟은 묵직한 감촉에 희민의 얼굴에서 평정이 깨졌다.
작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정혁이 입을 열었다.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손바닥에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굵은 페니스의 감촉에 희민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럼 일정 중에 그냥 온 거예요?”
뭐든 말해야 할 거 같아 그녀가 빠르게 입을 열자 정혁이 희민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더 가까이 기울였다.
“머릿속에는 내가 당신 다리를 벌리고 들어가서 박아 대는 것만 떠오르고 있는데.”
뭐…….
건조한 음성으로 흘러나오는 음란한 말에 희민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놀란 듯 커진 희민의 눈을 가까이에서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어둡게 일렁였다.
“어떻게 일 처리를 하냐고, 내가.”
낮게 말한 정혁이 희민을 뒤의 소파로 밀었다.
“앗!”
거대한 소파 위에 희민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정혁이 양팔을 뻗어 희민을 가두듯 소파를 짚었다.
마주 본 두 사람의 시선이 깊이 얽혀 들었다.
슈트 차림의 커다란 남자의 몸에 시야가 막힌 희민의 속눈썹이 긴장으로 가늘게 떨렸다.
“이번엔 당신 몸 안에 세 번 사정할 겁니다.”
……흡.
희민이 숨을 들이켰다. 그의 거칠어진 숨결이 가까이에서 얽혀 드는 시선만큼이나 달아올라 있는 게 느껴졌다.
“그사이 당신이 몇 번 가는지 세어 봐요. 내가 세 번 할 때까진 안 멈출 거니까.”
남자의 눈이 타오를 듯 이글거렸다.
늘 건조하게 느껴지는 서정혁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을 희민은 이미 이틀 전 뚜렷이 봤다.
지금처럼 그가 그녀를 탐할 욕정으로 가득 찬 순간들이었다.
희민의 심장 박동이 더 빨라졌다. 그녀에겐 이 남자를 거부할 선택지는 없었다.
이 관계를 위해 이곳에 온 거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한…….
정체 모를 누군가의 음모에 빠진 채 나락으로 추락한 자신의 인생을 구하기 위해선 이 남자의 막대한 재력이 필요했다.
다만 그 육체적 관계가…… 이틀 만에 몸을 이렇게 반응하게 만들 줄은 몰랐을 뿐.
“흣. 갑자기……!”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를 불쑥 헤집고 들어온 손에 희민의 눈이 당혹으로 흔들렸다.
남자의 손은 말랑한 허벅지 안쪽을 순식간에 훑어 올라 도톰한 속살을 팬티 위에서 꽉 쥐었다.
“아……!”
순간 정혁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언제부터 젖었습니까?”
“흐, 읏. 자, 잠깐만요.”
그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몸의 반응을 정혁의 느른한 목소리로 듣게 되자 그녀의 얼굴에 훅 열기가 끼쳤다.
“날 보고 흘린 겁니까? 보자마자?”
정혁이 더운 숨결을 흘리며 그녀의 허벅지를 더 벌렸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조갯살처럼 보풀아 오른 속살 모양을 따라 느릿하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아, 아…… 으응.”
젖은 팬티가 찰싹 달라붙어 있는 은밀한 살을 위아래로 쓰다듬듯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희민은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바로 앞에서 제 얼굴에 시선을 박고는 마치 모양을 외우기라도 하려는 듯 느릿하게 쓸어내렸다가 올라오는 손길에 희민은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으흣…….”
노골적인 시선이 민망해 눈을 내리깔자 소파 위에 다리를 벌리고 있는 제 모습과 그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 팬티 위를 만지고 있는 정혁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 자세가 너무 자극적이라 희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좋은 생각인데요.”
감은 눈 위로 정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다리 사이에서 손을 빼내는 그의 움직임이 느껴져 희민이 가늘게 눈을 떴다. 정혁이 그녀를 똑바로 보며 제 타이를 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