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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고해성사 -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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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72 회 작성일 23-12-11 21:4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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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



- 칼릴 지브란 -







"오빠? 나 상미!"



하숙집 아줌마가 전화를 받으라고 해서 받았더니 상미였다.



"상미? 그래, 웬일이야?"

"오빠, 지금 시험기간이지?"

"그래, 너네는?"

"오빠 나, 응?

목요일에 시험 끝나고 오빠한테 갈 건데?"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녀석에게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오빠? 뭐야~~

전화 받다 뭐 하는데? 아이 씽~"

...



그렇다.

녀석이 내려온다는데 왜 내가 죄 지은 사람처럼 이럴까.



"오빠는 금요일까지 시험이야~"

"... 그래?

그럼 나 금요일에 내려가야겠네?

오빠, 고속터미널로 나와 응?"



..



상미.



상미는 고향의 후배다.

아니 여동생, 친여동생 같은 아이다.

고향의 미술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고 2 였고 상미는 겨우 중학교 1 학년이었다.

키가 너무 커서 고등학생으로 보일 정도로 조숙했다.

정말로 조숙했다.

중학 1 학년밖에 안된 녀석이 못하는 말이 없었다.



얼굴도 예쁘고,

이국적이라고 할까.(탤런트 김정화가 녀석이랑 비슷한 얼굴이다.)

성격도 밝고, 그야말로 통통 튀는 건강한 아이였다.



그러나 한가지, 상미는 아버지가 안 계셨다.

그래서 나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랑 둘이서 사는 아이치고

너무나 밝고 명랑하고 예의도 바르고 해서,

그래서 늘, 상미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왔다.



그 어린 여자아이가

아무런 구김살 없이 웃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속으로는....

얼마나 아픈 그늘이 깊고 깊었을까.

그것을 내색 않고 밝을 수 있다는 것은...



나는 상미를 많이 아껴줬다.

상미가 읽어야할 교양서적들... 시집이나 소설책 등등을 사줬고,

학원에서는 거의 내가 도맡아 지도했다.



그러다가 상미가 2학년이 되면서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틈나는 대로 상미를 챙겨 주었다.

상미 엄마도 집으로 전화를 하면

상미에게 잘 해줘서 좋다고 말씀하셨다.

....



그런 상미가 어느 덧 훌쩍 커서 여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식에 가서 상미네 엄마, 친척들이랑 같이 친오빠처럼 사진도 찍고 그랬다.



그때 나는 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한달 후인 4월초에 입대를 해야했다.

그리고 나는 군인이 되었다.





상미는 두세 달에 한 통 정도 내게 위문 편지를 보내곤 했다.

그러다가 나는 고참사병이 되면서부터

다니던 대학을 버리고 다른 대학에 가려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서 상미에게 그 얘길 편지로 했더니

각종 자습서와 <아이템풀> 모의고사 문제지를 보내 주었다.

자기네 학교에서 모의고사 볼 때마다 문제지를 보내 주었다.

상미도 그렇게 벌써 고 3 이었다.

...



그 해 11월.

나는 휴가를 얻어서 학력고사를 봤고

제대한지 4일 만에 본고사 실기시험을 보았다.

나는 상미 덕분으로...운 좋게 합격을 했고

상미는 서울의 Y대 **교육학과에 합격했다.



그리고 상미 여고 졸업식에 가서 축하를 해줬다.

재미있게도 상미가 여고에 다니는 3년 동안 나는 군복무 3년을 채운 것이다.

내가 제대하자마자 상미는 여고를 졸업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젠 나란히 같은 학번의 대학생이 된 것이다.





그 3월.



우리학교 입학식을 마친 그 주말에 나는

서울로 올라가서 상미를 만났다.



상미는 기숙사에 들어가는 추첨을 잘 해서 학교기숙사에 들어가 있었다.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나서 시내로 나와서는,

남산으로, 중곡동 어린이 대공원으로...

손을 꼭 잡고 연인처럼 그렇게 돌아다녔다.



내가 군 생활을 서울에서 했던 까닭에,

오히려 내가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는 셈이었다.



밤이 되어서 상미는 기숙사로 돌아가고

나는 신길동 친척집으로 갔다.

다음 날 일요일에도 명동으로, 충무로로 돌아다니다가

오후에 고속터미널에서 상미의 배웅을 받고 대구로 내려왔다.



그 뒤로 2주일에 한 통 꼴로 상미는 내게 편지를 보냈다.

상미는 대학생활 시작하는 여러 가지 일상들을 재미있게,

앙증맞게 재잘재잘 써서 보냈다.



나도 꼬박꼬박 답장을 보냈고 오빠답게 온갖 잔소리를 했다.

그러면 상미는 겨우 엄마 잔소리 벗어났더니

늙은 오빠가 잔소리한다면서 난리였다.





그래도 상미는 그게 싫지 않은 잔소리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 엄마랑 살아온 녀석이

어쩌면 나를 삼촌, 아니면 큰오빠처럼 그렇게 여기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



그렇게 상미에게 있어서 나는 친오빠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 또한 한 번도 상미를,

오누이를 떠나서 이성의 대상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그저,

중학교 1학년 짜리 여자아이로만 내 가슴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물어물 스무 살 숙녀로 커버렸다는 것에... 뭐랄까,

글쎄, 경외감 같은 것을 느겼다고 할까.



그런 녀석이 내려온다는 것인데,

....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이유는 뭘까.

...



금요일.



상미가 서울서 오후 1시 발 고속버스로 온다고 해서

나는 시간을 맞춰 고속터미널로 나갔다.



"오~~빠!!"



상미가 버스에서 내리면서 나를 발견하고 난리가 났다.

하여간 덩치는 말만 해 가지고...

키가 170 이나 되는 녀석이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큰소리로 야단이었다.



화사했다.

봄꽃 같았다.

쎄먼핑크 바탕에 피스타치오 그린 줄무늬가 세로로 나있는 헐렁한 치마에다,

흰 블라우스 위에는 반다이크브라운의 조끼를 걸친 녀석...



그렇게 눈부시게 화사했다.

...



"우와~ 우리 오빠 말랐네?

하숙집에서 굶기나봐?"

"이 짜식이..."





그랬다.

정말 생기발랄한 천사였다.

그 화사함이 사랑스러웠다.

눈이 시리도록.



그제야,

이 녀석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던 이유를 알아챘다.

..



얘는,

친여동생인데...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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