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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짓는 아내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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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30 회 작성일 23-12-10 10:5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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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하루는 길다. 길다 못해 피곤에 절여질 만큼 긴 근무시간 뒤에는 달콤한 휴식대신 회식이 기다리고 있다. 여러 가지 명분으로 오늘도 회식자리에 불려가는 이들도 있고, 자진해서 즐기는 직장인들이 바글바글한 길거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오가는 술잔과 구워지는 안주거리의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한 가게에 의외의 조합이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고 있다.

‘아~정말이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안정수는 눈앞에 앉아 술을 붓고 있는 자신의 상사, 김우영 부장을 보며 지금 상황을 한탄하며 왜 이렇게 된 건지 스스로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술잔을 들이킨다. 영업팀 내 회식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만나 술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시 괜히 왔나. 집에 들어가서 쉴걸.’

안정수는 근래 회사가 일찍 끝나도 집에 들어가기가 껄끄럽다. 아니 정확하게는 무섭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 원인은 바로 자신의 아내 정나은 때문이다.

‘대체 이놈의 한 달은 언제 가려나.’

아내가 한 달 동안 만나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그 진상 고객 때문인지, 하루가 다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히스테릭까지 부리는 아내의 모습에 자신은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아내의 입에서 툭하면 죽일 놈, 씹어 먹을 놈같이 험한 욕은 물론이거니와 가만히 앉아 진정된 것 같아도 금세 아내의 주위에 피어오르는 차가운 기운이 집안을 휘감고도 폭풍처럼 쓸고 다니니 그 심정을 이해 못할 리 없는 자신은 그저 눈에 안 띄게끔 찌그러져 있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슬슬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퇴근 준비를 하며 주위에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들어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의외의 인물이 자신에게 다가와 저녁 한 끼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아침이면 외근 나간다는 말을 끝으로 퇴근 시간까지 코빼기도 안 보이던 김우영 부장이 오늘따라 일찍 회사에 돌아온 것도 놀라웠지만 자신의 이런 처지를 아는지 먼저 건네 온 저녁 제안에 청승맞게 혼자 먹는 것보단 나을 거란 생각에 이 자리까지 나와 버렸다.

“어휴~그래서 이놈의 마누라는 집 나간 지 오래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 내미는…….”

평소 입만 열었다하면 음담패설이 줄줄이 튀어나와야 할 터인 그의 입에서 가족 이야기나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 등 평범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나저나 안 사원은 결혼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좋은 소식 없나?”

김우영 부장은 자연스레 자신의 가족 이야기에서 안정수네 가족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젊은 부부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해봐야 아이밖에 더 있겠는가?

“그야……저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바쁘다보니 힘드네요. 안 그래도 슬슬 아이를 가지고 싶은데 아내가 근래 굉장히 바쁘기도 하고 이런 건 서로 시기나 상의를 잘 조절해야 해서.”

아이를 갖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아이를 키우려면 시간과 노력, 돈 그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세상이 되어버리다 보니 30대의 안정수, 정나은 부부는 슬슬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자고로 젊어서 아이를 가져야 해.”

김우영 부장은 눈치도 없이 이래야 한다는 둥, 저래야 한다는 둥 남의 가정사까지 오지랖 넓게 참견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 간단하게 때우고 얼른 들어가 아내와 차가운 캔 맥주라도 마시며 분위기나 잡을 걸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흐흐흐~안 사원은 별 재미가 없나보군. 그러면 이건 어떤가?”

안정수는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살짝 뜨끔 한다. 김우영 부장은 자신의 태도도 개의치 않고 능구렁이처럼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품에서 예전에 본적 있는 핸드폰을 꺼내든다.

“자고로 여자 이야기라면 마다할 남자는 없지.”

김우영은 자랑스럽게 핸드폰에 찍혀있는 여러 여성의 알몸 사진을 보여준다. 안정수는 아닌 척 해도 자고로 남자라는 생물은 본능적으로 여자 이야기에 끌릴 수밖에 없는 슬픈 생물이다. 자꾸만 자신의 눈동자가 김우영 부장의 핸드폰으로 향하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

“헤에~더 늘어나셨네요?”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늘어난 사진 수하며 여성의 얼굴 형태조차 알 수 없게끔 몸매만 드러난 사진이 태반이었던 지난번과는 달리 아예 작정하고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인지 여성의 얼굴에는 검은 모자이크가 들어가 있다.

‘이거야 원……여자 밝히는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김우영 부장의 핸드폰 속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침대 위에 질펀하게 늘어진 모습이거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진 속 여성과 관계를 나눴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양이 방대했다. 그 중에 최근에 찍은 걸로 보이는 사진 속 여인은 어쩐지 눈에 익은 자태를 가지고 있다.

‘……하긴 일하는 여성들이 다 비슷비슷하지.’

사진 속 흐트러진 정장을 입고 김우영 부장의 것으로 보이는 육봉을 머금고 있는 여성의 사진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가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보니 주차장 차 안에서 한 뒤로는 못 했네.’

서로 사회생활이 바쁜 탓도 있지만 최근 아내의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면 사랑을 나눌 맘도 싹 사라진다. 그렇다고 쌓이는 성욕을 스스로 풀자니 멀쩡한 아내 놔두고 풀기엔 어쩐지 처량 맞다. 안정수가 무언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이키자 김우영 부장은 씩 웃으며 그 시커먼 속셈을 입 밖으로 꺼낸다.

“안 사원 어쩐지 아내와 잠자리가 시원찮은 가봐?”
“……예?”

안정수는 자신이 잘못들은 건가 싶어 순간 얼이 빠진다. 평소 덜렁거리는 면이 많은 자신과 달리 깐깐하고, 자존심 강한 아내 엉덩이 밑에 깔려 살다보니 절로 순해지긴 했어도 남에게 그런 말 들을 처지는 아니라는 생각에 기분이 상하려는 데 김우영 부장은 화내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떤가? 아내 말고 다른 여성을 한 번 안아보고 싶은 생각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별거 아닐세. 이래보여도 이 김우영 여성들에겐 상당히 인기가 많은 편일세. 우리 회사에선 날 상대해주는 건 그나마 안 사원정도 뿐이지 않나? 다~안 사원이 고마워서 그런 거야.”

김우영 부장의 말에 안정수는 살짝 코웃음 치며 고개를 살살 젓는다. 집에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뭐 하러 불화의 불씨를 만들겠는가?

‘뭐……가끔은 그 콧대 높은 아내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걸 상상하지만.’

얼마 전 아내가 만취해 대리기사에게 희롱 당했을 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술기운을 빌린 치기어린 행동이었다. 안정수가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살살 젓자 김우영 부장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재차 제안을 한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쩝. 아쉽구먼. 그래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하게나.”

안정수는 직장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김우영 부장이 얼마나 자신에게 고마웠으면 저런 제안까지 하는 걸까란 생각에 안타까우면서도 어쩐지 더욱 친밀해진 기분을 느끼며 서로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달아오른 분위기 덕인지 한 번 물꼬가 터진 여자 이야기는 줄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안정수 역시 평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아내의 대한 음담패설까지 하며 서로 술잔을 기울였다.
김우영과 안정수가 하는 음담패설의 대상이 같은 여자인 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내였을 줄은 안정수는 끝까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밤이 깊어갈수록 길거리에 넘쳐나는 사람들도 하나씩 귀가할 그 무렵 평소와 달리 진즉 귀가한 정나은은 가볍게 씻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TV앞에 앉아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개그 프로그램을 정나은은 보는 둥 마는 둥 곁눈질 하며 시큰둥한 모습이다. 그저 집안에 흐르는 정적이 짜증나서 틀어둔 것 뿐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즐길 여유도 남아있지 않다.

“꿀꺽, 꿀꺽, 푸하~”

시원한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곤 구운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는 모습에서 많은 감정이 묻어난다.

“이놈의 남편은 아내가 오랜만에 일찍 들어왔는데 오지도 않고 말이지~”

하루 종일 김우영에게 시달리곤 오랜만에 일찍 귀가했더니 이놈의 남편은 연락조차도 없다. 애환이 묻어나는 한숨을 내쉬곤 다시금 캔 맥주를 마시는 그녀의 취한 모습은 평소와 달리 상당히 요염하다.
아직 채 마르지 않아 물기를 살짝 머금은 긴 생머리는 향기로운 샴푸 냄새가 솔솔 피어나고, 콧잔등 위에 대충 걸쳐진 반무테 안경은 반쯤 흘러내려 어쩐지 귀엽게 보인다. 무엇보다 취기가 잔뜩 올라왔는지 붉게 달아오른 양 뺨과 붉은 립스틱을 지워 선홍빛이 맴도는 입술은 평소 도도한 캐리어 우먼의 모습과는 정 반대로 싱그러운 매력을 발산하게 해준다. 가느다란 목선을 따라 내려가면 끈으로 된 하얀 민소매 티가 채 가리지 못한 풍만한 곡선을 그리는 젖가슴 윗부분이 무방비하게 보이고 있지만 그 누가 신경쓰랴? 소중한 두 부부의 보금자리인데.

“흐음~조금만 더 먹을까?”

캔 맥주 한 캔을 다 비워버리자 정나은은 눈앞에서 빈 캔을 흔들며 고민에 빠진다. 평소 9시 이후에는 회식이 아닌 한 절대 먹을 것을 먹지 않는 그녀로썬 이렇게 늦은 밤 맥주와 오징어를 뜯고 있는 건 어지간히 스트레스가 쌓였다는 반증이다.

“모르겠다. 먹을래.”

방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그녀는 취기가 잔뜩 올라 초점 맞지 않는 눈동자와 불안한 걸음걸이로 일어서서 냉장고로 걸어간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짧으면서도 편안한 면소재의 귀여운 핫팬츠는 불안한 걸음걸이를 옮길 때마다 실룩이는 엉덩이 라인을 살짝살짝 보여준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속이 꽉 차 건강미가 돋보이는 그녀의 다리는 걸어 다니는 일이 많은 그녀의 직업이 무색할 정도로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기어코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하나 더 꺼내 TV앞으로 돌아온 그녀는 칙-하는 캔 맥주의 시원한 소리를 들으며 입가로 옮기며 상념에 잠긴다.

‘큰일이네……가임 기간을 생각 못했어.’

취기 때문에 풀렸던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며 정나은은 고민에 빠진다. 예전에 남편과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 주차장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눈 게 생각난다. 남편과 사랑을 나눈 게 문제될 건 없다. 어차피 두 사람은 슬슬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문제는 같은 주에 그 일이 있었단 말이지.’

바로 남편 직장에서 부부 동반으로 펜션으로 놀러간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부 동반으로 놀러간 펜션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은 김우영에게 차 안에서 실컷 농락당했다.
그렇다. 남편과 사랑을 나눴을 때도, 김우영에게 실컷 범해졌을 때도 가임 기간이었다는 것. 처음 김우영에게 집에서 억지로 범해졌을 때는 피임약을 챙겨먹었지만 차에서 굴욕적으로 농락당했을 당시에는 피임약을 챙겨먹지 못했다.

“남편이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는데 어떻게 먹어…….”

일요일이라는 시간 내내 잔뜩 취한 남편을 간호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자신 스스로도 외출하기 힘들 정도로 힘겨웠다.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에 사먹으려고 마음먹었지만 김우영이 불러내 내기를 제안하고 제안한 그 당일 날부터 자신을 끌고 다니는 바람에 깜빡해 버렸다는 게 화근이다.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하려면 시일이 좀 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임신을 해도 문제다.

“누구 아이일지 어떻게 알아…….”

배속의 아이가 누구 아이일지 아는 건 무리다. 일주일도 아니고 2~3일의 기간 사이에 남편과 김우영의 씨가 자신의 안에 흘러들어온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임신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문제는 하나가 더 남는다.
내기의 기간은 한 달.
이대로만 간다면 내기가 끝나가는 마지막 주에는 분명 가임기간이 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그 빌어먹을 놈은 만약 내가 마지막 주까지 버틴다면 발정난 개새끼마냥 달려들 거란거지.”

정나은은 그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 쳐지는지 마시던 맥주 캔이 손아귀 힘으로 으직하고 찌그러진다. 채 마시지 못한 맥주가 방바닥에 흐르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할 때마다 피임약을 먹어? 피임약이라는 게 그렇게 막 먹어도 되는 건가?”

가장 확실한 건 콘돔을 사용하는 거지만 그놈이 절대 자신의 편의를 봐줄 리 없다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아아악! 정말이지! 왜 이렇게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거야!”

쾅!
정나은은 씩씩 거리며 다리로 애꿎은 방바닥을 쾅쾅 내려쳐 보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인다.
그로부터 벌써 며칠.
실컷 김우영의 손에 성욕 처리 장난감처럼 다뤄져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도 짜증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아랫배에서 소용돌이치는 이 질척질척한 욕구를 참아내느라 신경이 날카롭다.
성욕이라는 건 참 신기한 욕구다. 3대 욕구 중 식욕과 수면욕과 괴를 달리하는 성욕. 식욕과 수면욕이라는 녀석은 일정 이상을 채우면 끝이다. 배불러서 더 이상 먹질 못하고 자라고 해도 잘 수가 없다. 더 먹거나 수면을 취해봤자 몸을 망칠 뿐이다.
하지만 성욕은 다르다. 성욕이란 건 너무나 강한 쾌락으로 인해 사람이 실신하는 그 순간까지도 탐욕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성인이라는 건 성욕이라는 욕구를 배출하는 법을 알고 있으며 얼마든지 스스로 풀 수 있다.
그 달콤한 과실을 맛본 뒤 강제로 달콤한 과실을 빼앗겨 버린 현재의 정나은은 미칠 노릇이다. 물론 성인이라는 건 그런 욕구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걸 뜻하지만 정나은의 경우는 다르다.
김우영이라는 촉매가 끊임없이 그녀를 자극하고, 또 자극하면서 하루 종일 그녀의 몸을 달아오르게 하고 욕구를 잔뜩 쌓이게 해놓고는 절대 풀어주질 않으니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 그녀는 그 달콤한 과실을 먹고 싶어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후~정말이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는데…….”

그 증거로 정나은이라는 여성의 매력이 한층 물 오른 게 그 증거다. 자신의 성적욕구를 풀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수컷을 유혹하는 페로몬 같은 달콤하면서도 성숙한 체취가 물씬 풍겨 나오고, 그녀를 휘감고 있는 나른한 분위기하며 자태 하나에서도 어쩐지 묘한 요염함이나 색기가 평소에도 묻어난다.
그녀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매력적이고 나른한 분위기와는 반대로 속마음은 점점 우울해져 갈 무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다녀왔어~”

해맑으면서도 취기가 잔뜩 묻어나는 남편의 목소리가 정나은의 복잡한 심정과 맞물리며 부딪혀 깨진다.

‘아주 아내는 심란해 죽겠는데 신나셨어?! 응?!’

정나은은 그런 남편의 모습이 아니꼬워 인사도 안 받아주고 TV에 시선을 고정한다. 안정수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실실 웃으며 아내에게 다가가 곁에 털썩 앉는다.

“우리 아내는 뭐가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을까? 오늘도 그 고객 때문에 힘들었어?”
“한 잔 제대로 걸쳤나봐? 전화 한 통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냐?”
“하하, 미안. 저녁만 간단히 먹고 오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술도 마시게 되고 술 들어가니 저녁 자리가 길어졌어.”

술이 들어가게 되면 저녁자리는 자연스레 길어지기도 한다. 그걸 이해 못 할 정나은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근래 스트레스가 최고조이고, 술까지 들어가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버려 남편의 걱정 하나 없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버렸다.

“아, 그러셔? 아내는 집에서 혼자 캔 맥주나 홀짝이며 궁상떨고 있을 때 남편은 소식 하나 없고!”
“……미안해. 전화 한 통 못한 건 잘못했어.”
“됐어!”

안정수는 아내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며 달래주려하자 정나은은 쌀쌀맞게 남편의 팔을 쳐낸다. TV에서 흘러나오는 개그프로그램의 깔깔 거리는 즐거운 웃음소리와는 반대로 두 부부가 앉아있는 거실에는 무거운 정막이 가라앉는다.

“요새 힘든 건 아는데, 이렇게 화 낼 것까진 없잖아. 대체 왜 그래?”

평소의 안정수라면 자신이 한 수 접고 들어가며 자존심 강한 정나은의 기분을 살살 맞춰줬겠지만 술만 들어가면 대담해지는 그의 성격 때문인지 아내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났다. 정나은은 그런 남편의 태도에 자신은 더 할 말 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주장하며 시선조차 맞추질 않는다.

“후우~먼저 들어갈게.”

안정수는 그런 차가운 아내의 태도에 더 이상 따지고 들었다간 정말로 싸움 날 것 같아 씁쓸함을 느끼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정나은은 한참을 그렇게 고개 숙이고 주저앉아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도 사그라지고, 개그프로그램이 끝을 알리기 시작할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정나은은 숙였던 고개를 든다. 그녀의 눈동자는 살짝 물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자신의 눈동자에 맺힌 물방울보단 그녀의 가슴속에 소용돌이 치고 있는 감정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실수했다…….’

정나은은 남편에 대한 미안함에 가슴이 미어진다. 날카로워진 기분 때문에 평**면 그저 웃고 넘어갈 일을 키워버렸다. 안 그래도 사랑하는 남편 얼굴을 보고 위안을 얻고 싶은 밤이었는데, 도리어 싸우기까지 했으니 더욱 가라앉는 기분을 더 이상 주체할 수가 없다.
동시에 이런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다.
괜히 그 드높은 자존심을 세워, 엮이지 않아도 될 일에 목을 들이민 것은 자신인데 그 분풀이를 남편에게 해버렸으니 그저 슬플 뿐이다.

“……하아. 한 잔 더 할까?”

정나은은 손에 든 찌그러진 맥주 캔을 내려놓고 냉장고에서 한 캔을 더 꺼내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들여 마신다. 남편이 잠들기 전에는 도저히 들어갈 자신이 없어 그렇게 밤이 깊어가길 바라고 또 바라며 맥주를 털어 넣는다.

‘내일은 사과해야지.’

사과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사과하는 것도 너무 자존심 상하니깐 저녁 먹으며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정나은이 그녀답다면 그녀다웠다. 어떻게 사과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정나은은 짙은 밤의 장막이 걷히기 몇 시간 전에 겨우 안방으로 들어가 잠든 남편 곁에 조심스레 그 지친 몸을 뉘었다.

짙게 내려앉은 밤의 장막이 올라가고, 상쾌하고 따스한 아침햇살이 깨끗하게 빛나는 창문 너머로 스며든다. 안정수와 정나은의 두 부부의 보금자리에 스며든 아침햇살은 거실에 어색하게 내려앉은 정막을 밀어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평**면 두런두런 이야기가 오갈 아침식사 시간도 식기가 내는 소음만이 들리고, 먼저 출근하는 안정수의 간단한 인사에 정나은은 평생 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어색한 몸짓과 목소리로 배웅한다.

‘미안하긴 한가보네. 오늘은 일찍 들어와야지.’

아침 내내 숨 막히게 들어찬 어색한 공기 때문에 골머리를 썩을 뻔했던 안정수는 아내의 어색한 몸짓과 목소리에 그래도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닫고 오늘은 일찍 귀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으으……얼른 사과해야지.”

정나은은 아침을 먹으면서도 힐끔힐끔 남편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남편의 기분을 살폈다. 살아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겨우 참아냈다.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사과의 말이 튀어나가려는 자신의 입을 단속하느라 진을 뺐다. 아무리 그래도 싸운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바로 고개 숙이고 들어가는 건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 못한다.
최소한 저녁!
정나은은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론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출근길에 올랐다.
하지만 고민을 거듭한 정나은의 사과의 말은 애석하게도 그 날 저녁 건네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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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왔네요. 죄송합니다. 여러가지 일이 겹치는 바람에...
주말까지는 한 편 더 올릴 수 있게끔 해보겠습니다.

ps.김수진의 대한 인기가 상당히 높군요. 김수진 같은 경우는 그 동안의 이야기는 나올 예정이 없고 스토리를 전개해 감에 따라 한 번 정도 더 나올 예정입니다.
추천117 비추천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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