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찾아가는 길-과거로의 ...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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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30대 초반의 여자입니다.”
폴리스 라인을 위로 들어 올려주며 김형사가 사체의 주인을 말해 준다.
“신원은”
“아직 파악 안되고 있습니다. 소지품이 전무합니다.”
“타살인가?”
“불분명합니다. 보시고 판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15평 가량되는 오피스텔의 현관을 통과해서 들어가자 반듯이 누워있는 여자의 나신이 보인다. 십 년이 넘도록 수 많은 주검을 보아온 서반장이지만 시체가 벗은 상태로 있는 여자라고 해서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여자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문을 향해 다리를 벌린 채 누워 있다. 깨끗하게 화장이 지워진 얼굴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몸인 걸 봐서는 살아온 세월이 험한 여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입과 눈을 가볍게 닫은 채, 여자는 가랑이를 벌리고 죽어 있을 뿐이다. 아름답게 죽고 싶었던 것일까.
“오늘은 재수가 좋네. 젊은 여자 몸도 구경하고 흐흐흐”
과학수사라고 쓰인 모자를 쓴 감식계 직원 둘이 알루미늄 가방을 들고 들어오며 말을 건넨다.
“아직 신원 미파악 상태니까 사체 지문도 확보해줘”
“오케이~”
감식계는 육중한 가방을 열어 놓기 바쁘게 부산하게 사체의 온도를 재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죽어 있는 여자의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 지문을 찍기도 한다.
“건물 소유주와 주변 탐문은 시작했고?”
문밖에 있던 김형사에게 나머지 사항을 확인한다.
“아닙니다. 반장님 확인 후에 실시하려고 사진만 확보해둔 상태입니다. 소유주는 이 건물 오피스텔을 10채 가량 분양 받아 세를 주는 임대업체입니다. 3년 전, 이영화라는 이름의 여자와 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관리사무소 말로는 한 달에 두 세 번 정도만 사용이 된 것 같습니다. 주차장사용을 위한 차량 등록도 안돼있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 출입자를 체크하지 않나? 오다 보니 건물 출입구에 사무소가 있던데”
“복도 반대쪽으로 다른 출입구가 있습니다. 그 쪽을 이용하면 1층 상가를 통해서 바로 올라올 수가 있더라고요.”
“계약자 확인해봐. 가능하면 임의동행해서 서에 데려다 놓고, 그리고 사진 빼서 인근 지역 탐문 시켜”
“네”
이제 막 신입 티를 벗은 김형사는 신이 난 듯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다시 뒤로 돌아 방안을 살펴보지만 마치 금방 입주한 오피스텔처럼 너무도 깨끗하다. 아니 깨끗하다 못해 썰렁하다. 뿐만 아니다. 여자가 입었을 옷도 하나 없다. 욕실을 열어 보지만 수건도, 칫솔도 없다. 아니 비누조차도 없다.
“뭐 이리 깨끗하지? 반지 낀 자국은 있는데 반지는 없고, 매니큐어도 자국 조차 없고, 이거 뭐 하다 못해 머리 핀이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냐? ”
쪼그리고 앉아 죽은 여자를 살펴 보던 감식계 직원이 하소연하듯이 말을 해온다.
“입고 온 옷도 안보이고, 욕실에도 아무 것도 없어”
“아무래도 서반장 머리 아프게 생겼구만 흐흐흐”
감식계 직원들은 사체를 보면 그 사건의 정도를 대략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다. 젠장. 가뜩이나 일이 많은 연말인데 머리 아픈 살인사건까지 생기다니.
서반장은 보이스 레코더를 꺼내 녹음 버튼을 누르고 현재의 상황을 녹음한다.
“30대 초반. 여자. 문을 향해 나체인 상태로 다리를 벌린 채 사망. 신원미상의 남자가 112로 사망한 사실을 신고. 현관문 잠기지 않은 상태로 발견. 어깨를 덮는 생머리. 수술자국 없음. 왼손 약지 반지를 꼈던 흔적. 반지 없음. 화장, 매니큐어 일체 흔적 없음.
오피스텔 내부 어디에도 의류, 타올 등도 발견 되지 않음. 더블 침대. 침구 한 세트 베개 2개. 대형 쿠션 1개. 오피스텔 기본 제공품으로 지급된 TV 스탠드. 29인치 TV외에 전화를 비롯해서 아무것도 없음.
욕실 역시 증거품 일체 발견 불가. 바닥 배수구에 머리카락 하나조차 없음. 세면대와 변기는 계속 사용했던 듯 함. 물때 자국 발견되지 않음.
주방 싱크대와 선반에도 수저 하나 없음. 배수구도 아무런 음식물이나 찌꺼기 없음. 새로 끼운 것처럼 매우 깨끗함.”
서반장이 녹음을 마칠 때쯤, 감식계 직원 하나가 다급한 듯이 불러 제낀다.
“반장님”
두 세 걸음을 걸어 사체 쪽으로 다가가자 엎드려서 여자의 아랫도리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감식계 직원이 여자의 구멍 안에서 무엇 인가를 핀셋으로 끄집어 내고 있다. 콘돔이다. 머리위로 들어 불빛에 비추어 보니 콘돔 안에 정액으로 보이는 무엇인가 들어 있다. 비닐 봉투를 꺼내 조심스럽게 담아 두고는 격자를 꺼내 여자의 구멍에 밀어 넣고 강제로 구멍을 벌려 플래시를 비춰 살펴 본다. 그리고는 다시 핀셋을 넣어 무엇인가를 끄집어 내려 애를 쓴다. 잠시 후 또 하나의 콘돔이 핀셋에 매달려 나온다.
“뭐지”
“하다가 벗겨져 밀려 들어 간 건가?”
“돌아가는 머리하고는, 넌 니 마누라랑 하다가 콘돔 벗겨지면 그거 안으로 쑤셔 넣고 새 거 또 끼냐?”
둘 중에 그래도 고참인 직원이 나를 올려다 보며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을 한다.
“이거요. 이 여자 아랫도리 상태를 봐서는 섹스를 한 흔적이 없어요. 섹스를 한지 얼마 않되 죽은 여자는 대음순이나 소음순 쪽에 흔적이 남는 게 일반적인데 이 여자는 너무 깨끗해요. 또 관계 후에 아무리 잘 씻는다고 해도 깊은 곳에는 자신이 질액이 마른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아요. 쳐지지도 않았고, 봐요 가슴이나 다른 어떤 곳도 손을 댄 흔적이 없거든요.”
“저 콘돔은 뭐야 그럼”
“따먹지는 않고 쑤셔 넣은 거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니 말대로면 이 여자를 앞에 둔 채, 콘돔끼고 자위를 해서, 그것도 두 번이나, 이 여자 보지 속으로 집어 넣었다는 거냐? 장난 하냐?”
멀쓱해진 감식계 직원이 고개를 돌리자 여자의 구멍을 헤집던 다른 직원이 심봤다는 듯이 외친다.
“또 있어요 저 안에”
“반장님 아무래도 나머지는 부검을 해서 열어 보는 것이 낫겠는데요. 사체도 굳어가기 시작하는데”
“그러자고 그럼”
잠시 후, 운반용 카트가 들어 오고 흰 시트에 덮인 여자의 시체가 자신의 몸 굴곡을 그대로 드러낸 채 실려 나갔다. 몇 번이나 방안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지문도, 머리카락도 하나 나오지 않았다. 오피스텔의 창문 밖을 바라 보는 서반장의 입에도 한숨이 절로 흐를 뿐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지문감식을 통해 알려진 여자의 신원은 32세의 평범한 주부 이영선으로 밝혀졌다. 서반장은 필체를 대조하여 3년 전 이영화라는 가명으로 계약한 여자가 이영선이라는 피해자와 동일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건의 반은 풀린 것처럼 느껴졌다. 의외로 여자의 살인 동기는 단순한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치정아니면 돈이겠지 뭐.’
가족을 불러 사체를 대조하여 신원을 확인한 후 부검동의서를 받아 부검의뢰를 하고는 본격적으로 여자의 주변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씩 조사 결과 보고가 들어 올 때 마다 서반장은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도대체 이 여자가 죽을 이유가, 이 여자를 죽일 이유가 나타나질 않고 있었다.
38세의 남편인 석진은 작지만 매우 탄탄한 중소기업 사장이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명의 자녀를 둔 여자였다. 확인된 여자의 통장에 현금만 4억이 넘게 남아 있었다. 남편의 말로는 자신은 돈을 벌 줄은 알아도 관리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버는 대로 여자의 통장에 입금을 했고, 돈의 지출과 관리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 말대로 입금자는 대부분 석진이었고, 그 돈을 쓰는 것은 여자의 권리이자 권한이었다. 다달이 인출해서 사용한 금액도 그저 평범한 한 가정의 생활비정도로 파악되었다. 몇 백만원 단위의 큰 돈이 들고 난 흔적은 아예 없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도 전혀 문제시 할만한 내역이 없었다. 오히려 잘 나가는 회사 사장 부인이 쓴 돈으로 보기에는 너무 덩치가 작아 보일 정도였다. 살인 사건의 첫 번째 동기인 금전문제는 이래서 일찌감치 제외되었다.
죽은 이영선은 22살에 대기업 사원이었던 남편을 만나 25에 결혼을 한 이후로, 단 한번도 문제를 일으켰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지금까지 좋은 엄마, 좋은 아내로서 가족과 주변 인물로부터 전형적인 현모양처라는 평가를 받아오고 있었다. 두 번째 동기인 치정문제도 제외된 다면 이 여자의 죽음을 설명할 이유를 찾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녀를 알고 있는 친구, 이웃들 모두 말도 않되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렸다. 기본적으로 이영선은 그런 자극적인 문화를 멸시하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완벽하게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의아해 하면서 알 수 없는 범인에 대해서 그칠 줄 모르는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아무리 주변을 들 쑤시고 냄새를 맡아봐도 치정은 고사하고 남자의 발 냄새도 나지 않았다.
“보험 쪽은 어때?”
“남편 명의의 종신보험, 부부 명의로 가입한 암 보험, 자신의 생명보험 등 모두 세 가지를 가입했습니다만 보험금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왜?”
“종신보험은 말 그대로 남편 명의니까 여자의 사망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암 보험은 사망 위자료가 3 천만원이고 , 생명보험은 1억원짜리긴 하지만, 보험금을 수령해간 남편이 전액을 바로 여자가 다니던 교회에 기부해 버렸습니다.”
조용한 회의실에 한숨과 담배 연기만이 흐른다.
“씨팔. 대체 왜 죽은 거래?”
가슴이 답답해져서일까. 서반장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 1부 - 동전의 뒷면으로 이어집니다.
* 즐겁게 읽으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글을 쓰는 저에게는 한 줄의 리플과 추천이 큰 힘이 됩니다.
“30대 초반의 여자입니다.”
폴리스 라인을 위로 들어 올려주며 김형사가 사체의 주인을 말해 준다.
“신원은”
“아직 파악 안되고 있습니다. 소지품이 전무합니다.”
“타살인가?”
“불분명합니다. 보시고 판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15평 가량되는 오피스텔의 현관을 통과해서 들어가자 반듯이 누워있는 여자의 나신이 보인다. 십 년이 넘도록 수 많은 주검을 보아온 서반장이지만 시체가 벗은 상태로 있는 여자라고 해서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여자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문을 향해 다리를 벌린 채 누워 있다. 깨끗하게 화장이 지워진 얼굴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몸인 걸 봐서는 살아온 세월이 험한 여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입과 눈을 가볍게 닫은 채, 여자는 가랑이를 벌리고 죽어 있을 뿐이다. 아름답게 죽고 싶었던 것일까.
“오늘은 재수가 좋네. 젊은 여자 몸도 구경하고 흐흐흐”
과학수사라고 쓰인 모자를 쓴 감식계 직원 둘이 알루미늄 가방을 들고 들어오며 말을 건넨다.
“아직 신원 미파악 상태니까 사체 지문도 확보해줘”
“오케이~”
감식계는 육중한 가방을 열어 놓기 바쁘게 부산하게 사체의 온도를 재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죽어 있는 여자의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 지문을 찍기도 한다.
“건물 소유주와 주변 탐문은 시작했고?”
문밖에 있던 김형사에게 나머지 사항을 확인한다.
“아닙니다. 반장님 확인 후에 실시하려고 사진만 확보해둔 상태입니다. 소유주는 이 건물 오피스텔을 10채 가량 분양 받아 세를 주는 임대업체입니다. 3년 전, 이영화라는 이름의 여자와 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관리사무소 말로는 한 달에 두 세 번 정도만 사용이 된 것 같습니다. 주차장사용을 위한 차량 등록도 안돼있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 출입자를 체크하지 않나? 오다 보니 건물 출입구에 사무소가 있던데”
“복도 반대쪽으로 다른 출입구가 있습니다. 그 쪽을 이용하면 1층 상가를 통해서 바로 올라올 수가 있더라고요.”
“계약자 확인해봐. 가능하면 임의동행해서 서에 데려다 놓고, 그리고 사진 빼서 인근 지역 탐문 시켜”
“네”
이제 막 신입 티를 벗은 김형사는 신이 난 듯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다시 뒤로 돌아 방안을 살펴보지만 마치 금방 입주한 오피스텔처럼 너무도 깨끗하다. 아니 깨끗하다 못해 썰렁하다. 뿐만 아니다. 여자가 입었을 옷도 하나 없다. 욕실을 열어 보지만 수건도, 칫솔도 없다. 아니 비누조차도 없다.
“뭐 이리 깨끗하지? 반지 낀 자국은 있는데 반지는 없고, 매니큐어도 자국 조차 없고, 이거 뭐 하다 못해 머리 핀이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냐? ”
쪼그리고 앉아 죽은 여자를 살펴 보던 감식계 직원이 하소연하듯이 말을 해온다.
“입고 온 옷도 안보이고, 욕실에도 아무 것도 없어”
“아무래도 서반장 머리 아프게 생겼구만 흐흐흐”
감식계 직원들은 사체를 보면 그 사건의 정도를 대략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다. 젠장. 가뜩이나 일이 많은 연말인데 머리 아픈 살인사건까지 생기다니.
서반장은 보이스 레코더를 꺼내 녹음 버튼을 누르고 현재의 상황을 녹음한다.
“30대 초반. 여자. 문을 향해 나체인 상태로 다리를 벌린 채 사망. 신원미상의 남자가 112로 사망한 사실을 신고. 현관문 잠기지 않은 상태로 발견. 어깨를 덮는 생머리. 수술자국 없음. 왼손 약지 반지를 꼈던 흔적. 반지 없음. 화장, 매니큐어 일체 흔적 없음.
오피스텔 내부 어디에도 의류, 타올 등도 발견 되지 않음. 더블 침대. 침구 한 세트 베개 2개. 대형 쿠션 1개. 오피스텔 기본 제공품으로 지급된 TV 스탠드. 29인치 TV외에 전화를 비롯해서 아무것도 없음.
욕실 역시 증거품 일체 발견 불가. 바닥 배수구에 머리카락 하나조차 없음. 세면대와 변기는 계속 사용했던 듯 함. 물때 자국 발견되지 않음.
주방 싱크대와 선반에도 수저 하나 없음. 배수구도 아무런 음식물이나 찌꺼기 없음. 새로 끼운 것처럼 매우 깨끗함.”
서반장이 녹음을 마칠 때쯤, 감식계 직원 하나가 다급한 듯이 불러 제낀다.
“반장님”
두 세 걸음을 걸어 사체 쪽으로 다가가자 엎드려서 여자의 아랫도리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감식계 직원이 여자의 구멍 안에서 무엇 인가를 핀셋으로 끄집어 내고 있다. 콘돔이다. 머리위로 들어 불빛에 비추어 보니 콘돔 안에 정액으로 보이는 무엇인가 들어 있다. 비닐 봉투를 꺼내 조심스럽게 담아 두고는 격자를 꺼내 여자의 구멍에 밀어 넣고 강제로 구멍을 벌려 플래시를 비춰 살펴 본다. 그리고는 다시 핀셋을 넣어 무엇인가를 끄집어 내려 애를 쓴다. 잠시 후 또 하나의 콘돔이 핀셋에 매달려 나온다.
“뭐지”
“하다가 벗겨져 밀려 들어 간 건가?”
“돌아가는 머리하고는, 넌 니 마누라랑 하다가 콘돔 벗겨지면 그거 안으로 쑤셔 넣고 새 거 또 끼냐?”
둘 중에 그래도 고참인 직원이 나를 올려다 보며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을 한다.
“이거요. 이 여자 아랫도리 상태를 봐서는 섹스를 한 흔적이 없어요. 섹스를 한지 얼마 않되 죽은 여자는 대음순이나 소음순 쪽에 흔적이 남는 게 일반적인데 이 여자는 너무 깨끗해요. 또 관계 후에 아무리 잘 씻는다고 해도 깊은 곳에는 자신이 질액이 마른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아요. 쳐지지도 않았고, 봐요 가슴이나 다른 어떤 곳도 손을 댄 흔적이 없거든요.”
“저 콘돔은 뭐야 그럼”
“따먹지는 않고 쑤셔 넣은 거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니 말대로면 이 여자를 앞에 둔 채, 콘돔끼고 자위를 해서, 그것도 두 번이나, 이 여자 보지 속으로 집어 넣었다는 거냐? 장난 하냐?”
멀쓱해진 감식계 직원이 고개를 돌리자 여자의 구멍을 헤집던 다른 직원이 심봤다는 듯이 외친다.
“또 있어요 저 안에”
“반장님 아무래도 나머지는 부검을 해서 열어 보는 것이 낫겠는데요. 사체도 굳어가기 시작하는데”
“그러자고 그럼”
잠시 후, 운반용 카트가 들어 오고 흰 시트에 덮인 여자의 시체가 자신의 몸 굴곡을 그대로 드러낸 채 실려 나갔다. 몇 번이나 방안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지문도, 머리카락도 하나 나오지 않았다. 오피스텔의 창문 밖을 바라 보는 서반장의 입에도 한숨이 절로 흐를 뿐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지문감식을 통해 알려진 여자의 신원은 32세의 평범한 주부 이영선으로 밝혀졌다. 서반장은 필체를 대조하여 3년 전 이영화라는 가명으로 계약한 여자가 이영선이라는 피해자와 동일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건의 반은 풀린 것처럼 느껴졌다. 의외로 여자의 살인 동기는 단순한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치정아니면 돈이겠지 뭐.’
가족을 불러 사체를 대조하여 신원을 확인한 후 부검동의서를 받아 부검의뢰를 하고는 본격적으로 여자의 주변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하나씩 조사 결과 보고가 들어 올 때 마다 서반장은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도대체 이 여자가 죽을 이유가, 이 여자를 죽일 이유가 나타나질 않고 있었다.
38세의 남편인 석진은 작지만 매우 탄탄한 중소기업 사장이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명의 자녀를 둔 여자였다. 확인된 여자의 통장에 현금만 4억이 넘게 남아 있었다. 남편의 말로는 자신은 돈을 벌 줄은 알아도 관리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버는 대로 여자의 통장에 입금을 했고, 돈의 지출과 관리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 말대로 입금자는 대부분 석진이었고, 그 돈을 쓰는 것은 여자의 권리이자 권한이었다. 다달이 인출해서 사용한 금액도 그저 평범한 한 가정의 생활비정도로 파악되었다. 몇 백만원 단위의 큰 돈이 들고 난 흔적은 아예 없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도 전혀 문제시 할만한 내역이 없었다. 오히려 잘 나가는 회사 사장 부인이 쓴 돈으로 보기에는 너무 덩치가 작아 보일 정도였다. 살인 사건의 첫 번째 동기인 금전문제는 이래서 일찌감치 제외되었다.
죽은 이영선은 22살에 대기업 사원이었던 남편을 만나 25에 결혼을 한 이후로, 단 한번도 문제를 일으켰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지금까지 좋은 엄마, 좋은 아내로서 가족과 주변 인물로부터 전형적인 현모양처라는 평가를 받아오고 있었다. 두 번째 동기인 치정문제도 제외된 다면 이 여자의 죽음을 설명할 이유를 찾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녀를 알고 있는 친구, 이웃들 모두 말도 않되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렸다. 기본적으로 이영선은 그런 자극적인 문화를 멸시하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완벽하게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의아해 하면서 알 수 없는 범인에 대해서 그칠 줄 모르는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아무리 주변을 들 쑤시고 냄새를 맡아봐도 치정은 고사하고 남자의 발 냄새도 나지 않았다.
“보험 쪽은 어때?”
“남편 명의의 종신보험, 부부 명의로 가입한 암 보험, 자신의 생명보험 등 모두 세 가지를 가입했습니다만 보험금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왜?”
“종신보험은 말 그대로 남편 명의니까 여자의 사망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암 보험은 사망 위자료가 3 천만원이고 , 생명보험은 1억원짜리긴 하지만, 보험금을 수령해간 남편이 전액을 바로 여자가 다니던 교회에 기부해 버렸습니다.”
조용한 회의실에 한숨과 담배 연기만이 흐른다.
“씨팔. 대체 왜 죽은 거래?”
가슴이 답답해져서일까. 서반장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 1부 - 동전의 뒷면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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