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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마음-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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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94 회 작성일 23-12-10 08:55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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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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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달려있을 건 다 있다. 얼굴에 입이며 코, 눈, 귀까지 달여있을 만한 것은 제대로 달려있다. 하지만 신체에 달려있는 모든 것이 보통 사람의 사이즈를 가볍게 오버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아니,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사실이었다.

스펙으로 따지면 신장은 백팔십은 간단히 넘어버리고 체중도 백킬로가 오버되는 거대한 산과 같은 몸집이다. 그러나 그 남자의 신체에는 지방질 따위는 없었기에 온 몸을 뒤덮는 근육덩어리가 대단하리라는 것은 그 남자를 처음이라도 보았던 사람이라면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인상은 둥글기보다는 차라리 사각에 가까웠다.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제일가까운 생물에 무엇을 비교하는게 어울릴지 생각하는게 사람에 비교하는 것보다는 편했다.
불가사의한 얼굴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안면에 미소를 띄우고 있는 호쾌한 웃음은 일종의 애교가 느껴진다.
한창 더워지는 날씨라서 그런 체격이 버텨낼 수 있을까 하지만 다행히 냉방이 잘되는 카페의자에 묵직하게 몸을 파묻고 있는 중이다. 보통 의자라면 체중을 지탱하는 게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남자는 연두색의 셔츠 상의에 등산용 조끼모양의 티를 걸치고 아래쪽은 색이 바랜 청바리를 입고있다. 검소해 보이는 편으로 보이면 좋은 것이고 다른 편으로 말하자면 멋부리는 것과는 상관없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리고 그 남자는 조금 전부터 부지런히 손과 입을 움직이고 있다. 일사불한하게 초코렛 레이트 파르페를 들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치더라도, 아저씨!”
소녀가 말한다.
정확히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남자의 정면에 앉아 있는 소녀이다. 그 소녀는 남자와는 대조적으로 상당히 작은 몸집을 하고 있다. 신장은 백육십센티에 조금 모자른 정도… 체중은 40여킬로가 되지 않을듯한 몸매일까…
언뜻 보기에는 호리호리한 체형과 마치 초등학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갸름하면서도 윤기있는 눈동자가 선명하게 얼굴에 담겨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성숙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충분한 매력과 박력이 비쳐보인다. 어깨보다 조금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은 요염한 느낌이 드는 검은색 스트레이트, 그리고 피부가 맑아 보인다. 거기에 순백의 서머스웨트, 붉은 바탕의 미니스커트까지……

하지만 소녀는 조금전부터 묘하게 얼어붙은 얼굴을 하고는 눈 앞의 남자를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심장이 나쁜 남자라면 벌써 기절할 수도 있을만한 눈빛이다.
그 시선을 본 남자라면 약간의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느낄만도 하지만 그 남자는 오로지 손에 가지고 있는 글래스의 그릇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백합모양을 하고 있는 용기속에 긴 은스푼으로 휘프와 초컬릿과 크림을 휘저어서 입안으로 연신 담아 넣으면서 혀끝을 열심히 놀리고 있다.
여하튼 두 사람사이에는 몇가지 안되는 이 카페의 모든 음식이 전부 놓여져있고 당연히 모두 비어있다. 이탈리안 치즈 햄버거, 치킨 철판구이 갈릭소스 세트, 해선정과, 믹스피자, 일본식 버섯스파게티, 두부샐러드, 토마토샐러드, 홍차와 스폰지케이크……
소녀의 얼굴표정이 점차 도마뱀처럼 변하면서 손톱으로 테이블을 긁기 시작한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깨닫기를 기대하면서…
그제서야 힐끔 소녀의 눈을 한번 쳐다본 남자가 이윽고 입을 연다.
“왜 그러지?”
예상대로 지극히 차분하면서도 냉냉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그 어조에는 ‘자꾸 방해하지 말아라’라는 식의 엄한 명령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소녀는 남자의 대답에 대꾸를 안고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그 남자가 파르페의 남은 것까지 모두 입안에 부어넣을때까지… 평상시 그 소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인내력이다.
결국 남은 파르페를 정성껏 스푼으로 긁어서 입에 넣은 남자가 글래스를 내려놓자 소녀가 테이블을 살짝 손으로 차며 외친다.
“아저씨, 내가 말하는게 안들려욧!”
소녀를 무시하는 듯하던 남자가 눈을 들어 쳐다본다.
“왜 그러는데?”
조금전과 같은 대사이지만 입안에 가득 들어있는 크림 때문에 발음이 부자연스럽다. 그리고는 작은 사고를 일으키고 만다. 번개태의 입안에 들어있던 크림이 튀어나와 테이블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해하며 소녀가 몸을 비틀어 날아오는 크림을 피한다.
“의앗! 조심해요, 더럽잖아욧, 어멋, 묻어버렸네… 이를 어째… 이런 바보같으니라구, 근육덩어리…!!”
기관총처럼 말을 쏟아부어도 번개태는 아직도 빈둥거리는 어조로 말을 잇고 있다.
“으흠, 재미있구먼…”
또다시 크림이 춤을 춘다. 남자의 의도적인 장난을 눈치챈 소녀가 눈을 한층 가늘게 뜨면서 노려보자 그제서야 약간의 위협을 느낀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내…내가 좀 심했나…사요코?”
이제야 소녀의 이름이 사요코라는 것이 밝혀진다.
“자꾸 그러면 죽음이예요…”
소녀가 자그마한 주먹을 들어서 불끈 쥐어보이며 위협을 가해본다. 하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소녀는 크게 화가 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런 것을 알아차린 번개태가 싱긋 웃으며 말을 해온다.
“헌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능청을 떨면서 다시 쟁반에 남아있는 음식에 손을 가져가 댄다. 사요코는 조금전 번개태가 말한 이야기를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면서 쳐다보고 있음을 번개태는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정말 내가 왜 화를 내는지 몰라요?”
사요코가 일순한 험악한 인상을 짓는다.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입술에 힘까지 주어보지만 그정도의 수준으로 번개태를 제압하기는 부족하다.
“몰라…”
짤막하게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사오코의 어깨로부터 힘을 뺏어간다.

“자꾸 그러면……”
사요코가 옆에 놓여진 가방을 쥐어드는 시늉을 하면서 최후통첩을 한다.
“가버릴 거예요…”
단호한 어조로 말하면서 일어서는 듯이 행동을 취하다가 잠깐 머뭇거린다. 혹시나 번개태가 제지한다면 못이기는 척하면서 자리에 다시 앉을 생각이었지만 흘깃 쳐다본 맞은 편에는 여전히 거구의 사나이가 남은 요리들과의 전쟁으로 바쁠뿐 소녀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표정이다.
“정말 못말려…”
긴 한숨과 함께 풀석거리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맞은편을 외면한체 밝게 햇살이 들어오는 대형유리를 통해 거리를 내다본다.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는지 한동안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있다.

두사람의 대화가 다시 이어진 것은 5분여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흐르고 난 뒤였다. 짖궂은 웃음으로 얼버무리면서 번개태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정말 화가난 사요코가 의자를 박차고 나가버리기 직전이었다.
“결코 장난이 아니라구…”
“난 그런 건 인정못해요…”
“하지만 상부의 지시이기도 하고 내게는 관할 구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란 말이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여자를 만난다는 게 용서되지 않아요…”
상황이 역전되어 번개태가 사요코에게 뭔가를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간청을 하고있다.
“자꾸 그런 식으로 화를 내면 내가 먼저 짜증이 나는 수도 있어…”
번개태의 목소리에 약간의 힘이 실려있다.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어린 소녀에게 비굴해지는 듯한 느낌에 자존심이 상처를 받았는지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마치 먹이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번개태가 건네주는 스포츠신문을 받아서는 가리키는 곳에 나있는 짧은 기사를 읽어본다.
“수도역 인근 러브호텔에서 잇단 절도 사건발생… 용의자는 원조교제를 미끼로 남성들을 유혹, 관계를 가진 후 수면제에 의해 정신을 잃은 후 지갑등을 탈취당해……”
기사를 읽은 동안 오렌지쥬스를 한모금 들이켠 번개태가 뒷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어 몇장 넘겨보고는 몇가지를 읽어준다.
“15세에서 18세 사이의 여자아이, 키는 155정도에 날씬하고 귀여운 체형, 단발머리에 검은 머리카락… 이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야…”
“핏, 경찰도 별로 아는건 없군요…설마 인상착의 정도는 있겠죠…”
“아냐… 피해자들도 대부분 전화로만 신고를 해왔어… 자신들이 벌을 청소년보호법에 걸린다는 죄의식때문이지…”
청소년보호법이라는 단어에 사요코가 쓴 웃음을 지어보인다.

번개태는 시경찰국에 소속되어있는 형사이다. 지난주 과장의 부름을 받고 간 자리에서 최근 역근처에서 벌어지는 러브호텔 절도사건을 해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원조교제를 가장한 남자들의 지갑을 노리는 단순한 사건이지만 그동안 강력사건에 휘말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이에 벌써 다섯건이나 발생했기에 급기야 신문에도 기사가 나가버려서 경찰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대부분의 신문에서는 소녀하나를 잡지도 못하는 무능한 경찰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써버리는 바람에 상관에게 혼이 났던 과장은 입에 거품을 물고서 어떻게 해서든지간에 삼일내에 처리하라고 강조했다. 지난 이틀간 소득도 없이 인근 전화방만을 기웃거리다가 시간을 허비하고는 골똘히 방법을 찾던 와중에 조금전 카페에서 만난 사요코에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사요코가 화를 내었던 것은 지나버린 일이지만 사건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봐도 고집스러운 저 소녀는 막무가내로 안된다고 소리치고만 있다.

“어떻게 내 앞에서 다른 여자아이들하고 원조할 생각을 해요?”
“관계를 가진다는 말은 아니잖아, 오직 사건해결을 위해서 접근하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 아이가 지갑을 훔치는 건 관계를 가지고 남자를 수면제로 잠재운 뒤라면서욧!”
꽤나 큰 목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두사람은 동시에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을 의식했다.
“쉿! 조용히 해야지…”
손가락을 슬며시 입가에 가져다 대면서 번개태가 면박을 준다. 그제서야 사요코도 흥분을 잠시 가라앉으려는 듯이 손을 가슴에 가져가대고 호흡을 조절한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있다.

사요코가 번개태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겨울무렵 학교에서 경찰서를 단체 관람했을때이다. 당시 안내를 맡고 있던 늘씬하고 미남형인 경관보다는 구석에서 열심히 도시락 식사를 하고있던 거대한 체구의 번개태에게 이상하리만큼 관심이 쏠렸고 간신히 알아낸 이름과 연락처를 이용해서 만나는데 성공했다. 물론 번개태로 귀여운 여고생의 노골적인 접근이 싫지는 않았는지 데이트에 응해주었고 결국은 지금과 같은 뜨거운 사이까지 발전해왔다. 사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이 미성년인 여고생과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다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이 서로에게 있었지만 사요코로서는 도저히 포기하고 싶지 않은 멋진 테크니션이었고 번개태에게는 소중한 애인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거죠?”
점차 열을 내고있는 소녀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이 더욱 짖궂은 말투로 번개태가 입을 연다.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지? 혹시 내가 다른 여자아이와 관계라도 가질까봐 셈이 나서 그러는게 아닌가?”
번개태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듯이 사요코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일갈한다.
“난 정말 화났어욧!!!”
톡 쏘아붙이면서 번개태의 지갑을 낚아채고는 뽑아든 카드를 들고 카운터로 향한다. 뒷모습을 보아도 가히 화가나있는 듯한 얼굴표정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계산을 하는 동안 슬쩍 번개태를 돌아보더니 이내 빠른 걸음으로 나가버린다.
(내가 좀 심했나보군…카드까지 뺐어가네…)
자리를 박차고 나간 여자를 황급히 따라가는 보통남자들과는 달리 번개태는 사요코가 사라진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향한다. 갑자기 카운터의 아가씨가 불러세운다.
“저, 손님… 방금 일행께서 이 카드를 돌려드리라고 하셨는데요…”
점원이 건네주는 카드를 받아들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카페를 나섰다.
“그래두 가지말라는 건 아니었군…”
거리로 나온 번개태는 잠시 경찰서에 연락을 해서 위치와 경과를 보고한뒤 전철역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었을 무렵일까… 번개태는 봉환정 2번지에 도착했다. 좌우를 휘휘 둘러보다가 약간은 낡은 복합빌딩앞에 섰다. 위를 올려다보니 어지러운 간판들이 더덕거리며 붙어있고 입구의 간판에는 전구들이 반짝거리며 대낮부터 행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물론 번개태가 도착한 곳은 텔레폰 클럽들이 밀집해있는 테레크라 앞이었다. 게다가 이 근방은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이어서 평일에도 상당한 매출이 있다는 정보를 동료경관으로 귀뜸을 받았기에 자신이 평소에 이용하던 교외의 사철터미널역 근처의 테레크라들 보다는 내심 속으로 상당한 기대가 되었다.
 
몇 개의 계단과 승강기를 통해 5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마자 맞은편 벽에 달려있는 화려한 색상의 표지판에는 서너개의 클럽이름들이 붙어있고 그중에서 제일 이름이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비교적 한산해 보이는 실내분위기와는 달리 종업원은 신속하게 요금을 받아들고는 자리를 안내한다.
안내받아 들어간 세평정도 넓이의 독실에는 한벌의 테이블과 소파가 있고 테이블위에는 전화기와 티슈가 있고 비디오데크와 텔레비전전이 놓여있다. 환락가에있는 일반 테레크라보다는 좀더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있는 실내장식이다.
성인비디오가 상영되고 있는 텔레비전을 잠시 쳐다보다가 소파에 주저앉아 포켓을 뒤져 수첩을 꺼내 놓는다. 강력사건이 아니기에 권총따위는 가지고 있지않다.
(겨우 여고생하나를 잡는 일인데…)
수첩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각종 메모들을 읽어보고 몇가지 상념에 잠기면서 전화가 울리기를 기다린다. 소리와 함께 조명이 반짝거리는 일루미네이션기능의 전화기이다.

수분이 지나도록 전화기가 반응이 없자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어 어깨사이에 두고 후크에 손가락을 대어 정확하게 작동하는지 위치를 확인을 해본다.
그 순간.
전화기의 녹색등이 점등한다. 후크를 누르고 있던 번개태의 손가락이 떨어진 것은 그와 동시였다. 번개태는 수화기를 주의깊게 귀에 가져가면서 가볍게 숨을 정돈해서 전화의 상대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난 스물여섯살 회사원이예요… 그쪽은?”
목소리를 일부러 밝고 명랑하게 조절해본다.
“……”
그러나 수화기 저편은 먹통이다. 긴장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경계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희미하게 들리는 숨소리는 상대가 수화기를 얼굴에 붙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고있다. 아마 번개태의 숨소리도 듣고 있겠지만……
다시한번 목소리를 고치면서 말을 있는다.
“들려요… 여보세요… 혹시 처음 거는거예요? 나도 이용한지는 몇번 안되요… 나는 무서운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하지말아요…”
“……”
아직도 말이 없다.
자랑은 아니지만 번개태의 목소리는 여성이 듣기에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몸집과는 달리 적당히 묵직하면서도 경쾌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전화상으로 상대방의 경계심을 없애면서 친근하게 들릴 수 있는 그런 목소리이다.
“내 이름은 번개태인데 그쪽 이름이 뭐죠? 말하기 싫으면 닉네임이라도…”
“……”
여전히 반응이 없다.
“여보세요? 왜 말이 없죠? 부담느끼지 말고 대화하죠… 별로 말이 없는 편인가봐요?”
“……”
그래도 말이 없다.
(뭐 이런 경우가 다있지?)
꽤나 여러 번 테레크라를 이용해보았지만 이런 경우를 겪는 것은 처음이기에 약간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적당히 상대에게 부담없이 대해왔기에 비교적 성공률도 높았고 목소리만큼은 자신있었기에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럽기 시작했다.
(혹시 장난전화는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을 무렵.
“꽤나 능숙하군요… 아저씨”
느닷없이 수화기에서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불안한 기운까지 느껴진다.
“그 목소리, 혹시 사요코?”
“혹시나 해서 걸어봤는데 역시나 능숙하게 전화를 받는 군요”
귀에 익은 사요코의 깐깐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번개태의 귀청을 때린다. 만화에서 천둥이 수화기를 타고 나오는 식의 표현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 같았다. 사요코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직격탄을 맞은 고막이 얼얼해지면서 반대로 정신을 바싹 긴장하게 만든다.
“아저씨가 언제부터 월급쟁이가 되었죠? 게다가 스물여섯살?”
사요코의 비꼬는 듯한 말투가 하나도 남김없이 번개태를 공격하고 있다.
“아… 그건 일부러 지어낸 말이었어…”
식은 땀이 조금씩 흘려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번개태가 변명을 한다.
“아뇨, 그런 말은 해줄 필요없어요… 아저씨가 뻔뻔하다는 건 알아차렸으니까요…”
“그,그런게 아니라니까… 화내지 말아, 사요코”
흥분을 가라앉히라는 말이 오히려 역효과를 주었는지 사요코의 체온이 급상승하는 것이 전화선을 타고 번개태에게 전해진다.
“화내는게 아니예요!!!”
“미안해… 실은 테레크라를 이용한 적은 몇번 있었어… 하지만 대단한 건 아니었어… 믿어줘…”
“내가 기분나빠하는 건 그게 아니예요… 아직도 내 말뜻을 이해 못하나요?”
사실 사요코가 기분상한 것은 번개태가 몇차례 핑계를 대고 몰래 동료들과 어울려 테레크라를 이용한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사귀는 동안은 다른 이성과의 섹스는 피하자고 서로 맹세한 것이 거짓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사요코의 불만이다.
“하지만 전화통화만 했지 결코 여자를 직접 만난 적은 없어…”
변명을 늘어놓으면서도 번개태는 자신이 스스로 한심해 보였다. 적어도 나이도 많고 경찰이라는 신분을 가진 남자가 – 게다가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는 – 한참 어린 여자아이에게 쩔쩔맨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내가 전적으로 나빴다… 사과할께…”
“……”
저편에서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지 별 반응이 없다. 아마도 지나치게 남자를 몰아붙여서는 좋을 것이 없다는 책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요… 오늘 만큼은 이해할께요…”
“아, 고마워… 역시 너는 공사를 구분할 줄 아는 현명한 아이야…”
한껏 추켜세우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온다.
“하지만 오늘뿐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무,물론이지… 걱정하지마”
수화기 저편에서 소녀의 한숨짓는 소리가 살짝 들려온다. 아마도 경찰임무라는 것을 이해하는 눈치이다.
“그러면 여자와 만날껀가요?”
“응… 만나야지 그쪽이 절도범인지 알 수 있잖아…”
“그러면 같이 모텔에도 갈껀가요?”
“물론 가기는 하겠지만 절대로 관계는 가지지 않겠어…”
“약속해줘요”
문득 사요코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지면서 서글프게 들려온다.
“그래… 약속할께…”


 
한참동안 번개태는 미동없이 텔레비전에서 계속되는 성인 비디오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몇번의 전화가 울렸지만 왠지 기분이 내키지 않아서 받지 않고 지나쳐보냈다. 그렇게해서 삼십여분 가까이 흘렸을 무렵… 화면상의 여자배우가 격렬한 남자의 피스톤운동에 의해 세번째 절정을 지르고 있던 그때 – 전화기의 녹색등이 환하게 실내를 밝히며 반짝거린다. 번개태는 찡그린 얼굴을 한채 화면을 응시하면서 수화기를 집어들고 입을연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
이번 상대도 역시 침묵이다.
번개태는 속으로 설마 사요코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을 계속해나갔다.
“나는 스물여섯살 회사원이고 이름은 번개태라고 해요. 그쪽은?”

“……저……”
번개태의 왼쪽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수화기에서 희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사요코와는 다른 음성이 들려온 것이다. 하지만 반가움을 감추면서 상대의 응답을 기다린다.
“예, 말하세요…”
슬쩍 상대의 대답을 유도하면서 매너를 발휘한다. 이런 절묘한 타이밍은 그동안 상당히 많은 상대에게 적절히 먹혀들어갔다. 전화를 걸어온 쪽이 아무래도 부끄러워하는 감이 있기에 슬쩍 끼어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상대가 응해온다.
“아, 고등학생이예요. 이학년…”


“아, 고등학생이예요. 이학년…”
이번에야말로 전화의 목소리가 사요코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평가하자면 조금은 가늘은 어린아이의 목소리이다. 언뜻 상상하기에는 클래스에서 앞으로부터 몇번째 되지 않는 작은 체구의 조용한 소녀인 것 같았다.
어느샌가 번개태는 혀를 내밀어 가볍게 입술을 핥아버린다. 동시에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늑대처럼……
어쨌든 번개태는 시미치를 뚝 뗀 얼굴표정으로 바꾸면서 교묘한 화술로 여자아이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아, 고등학생… 오늘은 쉬는 날인가? 아차, 토요일이구만…”
“오늘은 오전 수업만 있어서 이런 시간에 전화한 거예요…”
“아하, 그렇구나… 지금 집에서 전화를?”
“그래요, 지금은 집에 나 한사람밖에 없어요…”
여자아이는 무슨 의미인지 모를 듯한 웃음을 짓는다. 꽤나 이런 대화에 능숙한 모양이다. 회화의 흐름이 예상보다는 부드러웠다.

처음 들었던 음성은 밝고 가볍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이 아이의 본성인지, 그렇지 않으면 가성인지는 몰랐자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이것이 텔레크라의 장점이다.
“이런 곳에 전화하다니… 나쁜 학생인걸…”
일부러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해본다.
“그러면 아저씨도 그런 이상한 곳에 있는거네요…”
상대편도 번개태의 장난을 맞받아친다. 하지만 그 말투에는 기분나쁘다는 것은 섞여있지 않다.
그 여자아이의 반응의 민첩함을 들으면서 번개태는 생각지도 않는 쓴 웃음을 짓는다.
“여긴 전화기하고 비디오만 있는 좁은 방이야… 조금은 이상한 곳처럼 보이기도 하구… 이런 곳에 와 본적 있니?”
“아뇨, 텔레크라를 직접 가본 적은 없어요…”
“그래두 뭘하는 곳인지는 잘 알고 있지?”
슬쩍 상대를 찔러본다.
“알고 있으니까 전화하고 있잖아요…”
동요하는 모습도 없이 여자아이는 선뜻 번개태의 공격을 받아낸다.
(이 정도라면 꽤나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
사실 조금전부터 번개태는 절도사건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랜만에 텔레크라를 통해 귀여운 여자아이를 만나게 될 수 있다는 것에 오히려 생각이 집중되기 시작한다.

번개태는 여자아이의 경계심이 풀릴 수 있도록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총동원하면서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계속해 갔다.
그렇게 십오분정도 이야기를 했을 무렵이다.
여자아이가 번개태의 우스개소리에 한껏 웃어버리고는 일순간 침묵이 흐르더니 중얼거리는 듯이 한마디 한다.
“아저씨는 꽤나 재밌내요… 아저씨 정도라면 괜찮을까?”
“무얼?”
번개태가 입술에 다시 한번 침을 묻히며 되묻는다. 최대한 자제하는 목소리로…
“저, 그……”
지금까지의 템포와는 달리 조금 더듬으면서 우물거린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해도 망설이면서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번개태는 참을성이 많고 여자아이의 말을 기다린다. 그리고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저… 사실은 , 그… 아저씨… 아니 원조해줄 사람을 찾으려고 전화했어요.. 이왕이면 이야기가 맞고 재밌는 사람이라면 좋을까 생각했는데……”
여자아이가 더듬더듬 계속 말을 해댄다.
“……”
번개태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여자아이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듣고 있는데 그 침묵을 거절의 뜻으로 알아들었는지 문득, 여자아이가 말을 자른다.
“왜요, 경멸하는 거예요?”
여자아이의 말에 번개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나도 그럴 생각으로 여길 왔는데 경멸할리가 있겠어… 만나자는 말은 대찬성이야…”
“이만엔 정도 가지고 싶은데……”
여자아이가 약간의 미안함을 동반한 어투로 말한다. 사실 비싼 편일 수도 있지만 상대가 어린 여고생이라면 보통 시세이다. 번개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자아이에게 답한다.

“좋아… 그정도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 한가지만 부탁해도 될까? 이왕이면 수도역까지 와주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
“그정도면 삼십분이면 되요”
“그러면 역전 광장에서 만나지, 나는 체구가 크니까 굳이 인상을 말하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분수대옆에 서있는 사람이니까…”
여자아이는 교섭이 성립된 안도감인지 약간은 밝은 목소리로 번개태에게 말한다.
“그곳에서 봐요”
“그래… 나두 기대하고 있을게…”
속으로 쾌재를 올림과 동시에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다가 다시 묻는다.
“아, 잠깐만… 난 아직 이름을 알지 못하는데…”
“엔도오 사월이예요…”

번개태는 테레크라를 나와서 조금전에 왔던 길을 되짚어 수도역전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도중에 햄버거가게에서 치즈햄버거 서너개를 사들고는 왼손에 움켜 쥐고 오른손으로 포장을 벗겨 입안에 밀어넣으며 길을 걷는다.
(오늘은 정말 확실할 것 같아…)
조금전 통화를 끝내기 전에 이름을 물어본 것은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방법이다. 만일 상대가 이름을 알려준다면 그것은 확실하게 만날 의사가 있다는 의미이다. 최소한 바람맞는 일은 없을 테니 이제 남은 걱정은 오직 상대의 외모정도일 뿐이다. 아무래도 번개태가 지금 사귀는 사요코의 스타일을 보자면 당연히 어리고 귀여운 미소녀스타일이 그의 취향이다.

과연 토요일답게 거리에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가득하고 심심치 않게 여학생들의 웃음소리나 왁자지껄한 수다를 들을 수 있다.
십여분을 걸어서 역의 서쪽 출구에 도착한다. 계단 벽에 등을 기대고 인근을 둘러봤지만 사요코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토요일 오후로 접어드는 역전은 더욱 혼잡해지고 있다.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약속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분수대쪽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마지막 남은 햄버거를 꺼내어 포장지를 벗기고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저…… 번개태 아저씨?”
등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딘지 모르게 낮익은 목소리이다.

고개를 돌려보자 그곳에는 신장이 백오십오센티 정도의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던 그 아이는 검은 색의 윤기나는 머리카락과 학생스타일의 쇼트컷을 하고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피부색과 동글동글한 얼굴을 하고 있다. 반면 몸매만은 가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씬했다. 옷은 밝은 색의 티셔츠와 짙은 감색의 스커트를 입고 있다. 거기에다가 작고 귀여운 디자인의 가방을 매고 있는 꽤나 사랑스러운 부류에 들어가는 아이이다.
“아, 네가 사월양?”
“예, 맞아요… 아저씨를 한눈에 알아봤어요…”
긴장감이 풀리는 지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한다. 평상시 성격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지금 번개태의 앞에 있는 아이는 얌전하면서도 밝은 표정을 하고 있는 매력적인 여고생으로 보였다.
번개태가 기쁨을 표시하듯 사월에게 윙크를 하면서 말한다.
“한눈에 알아봤어?”
“예, 그래요…”
솔직한 표정으로 사월이 웃는 얼굴로 답한다. 마치 오늘 처음만난 남녀가 같지 않고 궁합이 잘 맞는 커플처럼 보이는 두사람이다. 특별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도 어색함이 보이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은 가까운 벤치에 앉는다. 마지막 남은 햄버거를 억지로 입안에 쑤셔 넣고난 뒤에야 번개태의 발음이 자연스럽게 돌아온다.
“자아, 가볍게 커피나 식사라도 할까?”
“으응, 점심은 집에서 먹었어요…”
가볍게 번개태의 제안을 끊어버린다.
“그렇다면……”
번개태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어눌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에 들고 있는 빈봉투를 가까운 쓰레기통을 향해 던진다. 가까운 곳에 있기도 했지만 봉투는 멋지게 골인한다.
“식사보다는…”
느닷없이 사월이 팔에 매달려온다. 부드러운 소녀의 느낌이 전해오고 소녀는 거리낌없이 얼굴을 기대온다. 십대아이의 뺨이 가져다주는 감촉이 뜻밖에도 좋았다. 그리고는 번개태의 체온을 상승시킬만큼 조금은 물기를 머금은 요염한 눈동자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저씨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고 싶어요…”
물론 번개태로서는 싫다는 대답이 나올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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