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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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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306 회 작성일 24-12-29 05: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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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못하여 무더운 날이면 난 생각이 나는 여자가 하나 있다.

지금 내 나이 오십이 한참 넘었으니 걔도 사십은 족히 지난 중년의 가정주부로 남편과 아이들 데리고 화목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이야 농촌도 도시 못지않게 문화시설을 갖추고 살며 또한 도로의 발달로 세 시간이면 가고도 남을 거리요

그곳에서 도회지로 나오는 버스마저 시간 시간마다 있고 또한 농업기술의 발달로 풍족하게 살지만

당시에 그곳은 인근 도시에서도 하루에 두 차례만 버스가 다녔고 그나마도 비가 많이 오면 오도가도 못 하는 아주 벽촌이었다.

내가 그곳에 간 것은 대학교 일학년 때였다.

또 요즘이야 하는 말을 써야 할 것 같다.

요즘이야 앞에서도 말하였지만 말이 농촌이지 도시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기에 구태여 농촌 봉사활동이란

단어마저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 때에는 여름방학이 되면 각 서클마다 서로 앞장을 서서 농활을 하러 갔었다.

동아리에서 일학년이면 궂은일이란 일은 다 해야 한다.

난 내 친구와 함께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나면 설거지를 도맡아 놓고 해야 하였다.

참 먼저 그곳으로 가게 된 동기와 가던 길의 이야기부터 하자.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그곳은 요즘 관광객 등살에 여름이면 편히 쉴 개울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지리산 밑에 자리 잡은 아주 작은 마을로서 당시에 영화 한 번 못 보고

산 사람이 절반이 넘었으며 TV 한 대도 없고 또 라디오도 없어서 이장 댁에서 확성기를 통하여 들려주는

뉴스나 드라마 그리고 노래를 듣는 것이 유일한 문화 수단일 정도로 벽촌 중에 벽촌이었다.

그런 그곳에서 우리 동아리에 농활을 부탁을 한 것은 경상남도 도청에서였다.

요즘이야 또 앞에서 말을 하였지만 고속도로가 발달이 되어서 한 시간 반이면 진주에 도착을 하고 아니 진주 외곽을 스쳐 지나 바로

그 마을 앞으로 고속도로가 나 있어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을 하지만 당시에는 국도를 타고 진주에 도착을 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하루에 두 번 있는 버스의 오후 차 시간을 맞춘다고 맞추었으나 부산에서 진주로 오는

그놈의 털털이 버스가 연착을 하는 바람에 그 한 번 뿐인 버스를 놓치자 동아리 회장이이 부랴부랴

경상남도 도청에 긴급히 SOS를 요청하였고 도청의 담당자가 노력을 한 끝에 어떤 종교단체의 강당에서 하룻밤을 유숙을 하고는

날이 새자마자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는 새벽에 있는 첫차를 타고서 그 마을에 갈 수가 있었었다.

그런데 가면서 버스 차장(요즘이야 없지만 당시에는 차장이 있었음)의 말에 따르면 전날 오후에 간 차는

비가 많이 와서 우리가 갈 곳 가지 못 가고 덕산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돌려 나왔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어쩌면 부산에서 진주로 타고 온 그 털털이 버스의 연착이 우리를 도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정말이지 전날 물이 범람을 하였다던 그 다리는 겨우 차가 지나갈 정도로 물이 불어 난 상태였다.

천신만고 끝에 마을에 도착을 하자 제일 먼저 반긴 것은 아이들이었다.

요즘이야 시골에 아이들 보기가 힘들고 또한 많은 분교들은 물론 초등학교가 학생들이 없어서 폐교를 하지만

당시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으나 그나마도 학교에 가려면 거의 이십 리(8Km)이상을 걸어야 분교가 있었다.

나와 우리 친구들은 도착을 하여도 걱정이란 생각을 하였으나 그것은 기우였다.

가지고 간 쌀과 부식이며 그 밖의 갖가지 약품 상자며 도구를 막내인 우리가 다 운반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버스가 도착을 하고 차에서 물건을 내리는 쪽쪽이 아이들이 낑낑 대며 우리가 머물 숙소로 옮겼다.

난 거기서 맡은 부분이 처음에는 시골 사람들과 좌담회를 하며 농촌이 살길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기로 하였으나

경험이 전무 한 탓에 첫날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거기에서 밀려나 아이들과 놀고

공부를 가르치고 밤이면 야학을 맡게 되었는데 구질구질한 복장이며 버짐 투 성이고 머리에는 이며

몇날 몇일을 머리도 감지도 않은 아이들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 불만이었으나 막내라 불평 한마디 못 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였다.

물론 다른 선배나 친구들은 분무기를 등에 지고 농약이며 소독약을 뿌리는 것에 비하면 나 분명히 쉬운 일을 맡은 것이 분명하였다.

그것은 내 몸이 다른 선배나 친구들에 비하여 아주 허약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잠간 집고 넘어가야 할 일은 우리 동아리에는 여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밥이며 설거지 그리고 모든 것을 남자들인 우리가 손수 하여야 하였다.

또 인원이 부족하여 아이들 상대는 나 하나뿐이었다.

스무 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데리고 논다는 것은 혼자에게 아주 벅찬 일이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내려 온 지니라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가 있었다.(당시에는 국민 학교하고 함)

걔는 옷도 아주 단정하였고 덩치도 다른 아이에 비하면 아주 크고 또한 그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TV를 본 아이였다.

둘째 날 그러니까 내가 담당을 하고는 첫 날이었다.

그 날은 아이들에게 구충제를 먹이기로 하였기에 집에서 멀리 데리고 나가야 하였다.

요즘이야 구충제 먹고 밥을 바로 먹어도 되지만 당시에 산토닝이란 구충제를 먹이면 한 끼의 식사는 걸러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군것질이라고는 하지도 못 하든 아이들에게 밥 한 끼를 그도 쌀밥은 구경도 못 하고 보리가 태반인 밥이지만 굶게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는 아이들을 대리고 아주 깊은 산중 계곡으로 갔다.

“어린이 여러분 이제 선생님 말 잘 들어요, 알았죠?”하자

“네!”하고 우렁차게 대답을 하였다

“지금 부턴 지나가 우리 반 반장이어요. 반장 나와”하자

“헤헤헤 선생님”하며 앞으로 나왔다.

“지니는 이제 모두 줄을 세우고 선생님이 약을 나누어 주면 이름 적어요, 알았어요?”하자

“네, 선생님, 자 모두 줄 서”하자

“난 약 같은 것 먹기 싫은데”하고 한 아이가 투덜대자

“민기 너 그럼 크레용 안 준다”지니는 역시 똑똑한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내가 들고 가는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몰랐지만 중간에 오다가 무거워 잠시 내려놓은 사이에

지니가 번쩍 들고 갔는데 안에서 내용물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걔는 그게 크레용이란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크레용, 그럼 먹어야지”하며 아이들은 지니의 말에 따라 차례로 줄을 섰다.

“그럼 선생님이 주는 약 먹은 것 지니가 확인하고 크레용하도 도화지 나누어 주세요”하자

“네 선생님”하고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난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약을 나누어 주었고 지니는 옆에서 약을 삼키는 것 보고 물을 주고 또 크레용과 도회지를 나누어 주었다.

“너 약 먹는 시늉만 하고 안 먹었지? 선생님 얜 안 먹고 숨겼어요, 손 펴”한 아이가 먹는 시늉만 하고 물을 먹자 지니가 나에게 일렀다.

“손 펴”난 화를 내면서 말하자

“먹을 게요”하며 약을 먹었다.

그러게 실랑이를 하면서 거의 삼십 분 동안에 걸쳐 약을 먹였다.

“자 그럼 이제 여러분이 가지고 온 공책을 밭치고 그림을 그리는데 가장 잘 그린 어린이에게는 상으로 이 크레파스를 주겠어요,

그리고 지금부터 만약 도망을 가는 어린이가 있다면 크레용도 다 압수를 하고 내일도 좋은 것 줄 것인데

안 줘요 알았죠?”난 아이들이 집으로 가서 밥을 못 먹게 해야 하였기에 으름장을 놓아야 하였다.

“네”하고 일제히 대답을 하자

“선생님 근처에서 그려도 되죠?”하고 지니가 물었다.

“여기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되지만 밑으로는 저기 바위 끝 밑은 안 돼요”하자

“네”하고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흩어졌다.

“선생님 전 저 밑에서 애들 내려가나 감시하며 그릴 게요”지니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렇게 해 주겠니?”하자

“그럼요”하고는 크레용과 도화지를 들고 바위 뒤로 숨었다.

그 바위 옆을 안 지나면 산등성이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였기에 그 길목만 지키면 문제가 없었다.

그것을 지니가 해 준다고 하자 난 한 시름 놓은 기분이 들어 아이들 곁으로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것을 구경하였다.

아이들은 그림을 둘째이고 크레용이 첫째였다.

궁핍한 살림살이에 크레용도 겨우 몇 가지 색깔만 가진 것을 가지고 다니던 아이들에게 14가지 색깔이 든 크레용은 거의 보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참을 돌다가 혼자 외톨이로 길목을 지키는 지니에게 갔다.

다소곳이 앉아 그림을 그리다가 나를 보고는 벌떡 일어서며 웃었다.

“잘 그리네”하고 그림을 보자

“헤헤 몰라요”하며 그림을 뒤집었다.

“앉자”하며 지니 옆에 앉자

“네”하고 옆에 앉았다.

“서울 살다가 시골로 오니 재미없지?”하고 묻자

“아뇨 한 가지만 빼곤 다 재미있어요, 헤헤헤”철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게 뭔데?”하고 묻자

“몰라요”하며 얼굴을 붉혔다.

“뭔데?”하고 재차 묻자

“그럼 비밀 지켜요”하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좋아”하며 새끼손가락을 걸자

“서울에서는요 아이들과 어른들 이야기도 하였는데 여기선 그런 이야기 하는 애가 없어요”하며 얼굴을 붉혔다.

“무슨 어른 이야기?”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헤헤헤 얼레리꼴레리 있잖아요?”하며 웃었다.

“뭐? 그런 이야기도 하니?”하자

“헤헤헤 이상한 비디오도 보는 걸요, 헤헤헤”하며 웃었다.

“너도 봤니?”놀라며 묻자

“그럼요 몇 개나 봤어요, 헤헤헤”하고 웃기에

“어떤 것”하고 다시 묻자

“헤헤헤 다 벗고 헤헤헤”하며 얼굴을 붉혔다.

“뭐? 뭐라고?”놀라며 말하자

“선생님은 그런 비디오 안 봤어요?”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며 물었다.

“선생님이야 어른이지만 넌”하고 말하자

“그럼 해 봤어요?”정말이지 난처한 질문이었다.

대학에 합격을 하고 친구들과 몰려서 창녀촌에 가 창녀를 사서 해 본 것이 경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손가락의 힘을 빌려 딸딸이를 치는 것에 비하여 훨씬 좋다고 하였으나 막상 쑤시고 보니 마치

웅덩이에 공깃돌 하나 넣은 것처럼 헐렁하여 기분이 안 좋았으나 돈이 아까워서 펌프질을 하였고

내 불쌍한 분신인 좆 물은 콘돔 안에 싸야 하였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한 기분이 들면서 웃음이 아노는 것을 난 억지로 참으며

“아니 안 해봤어”하고 거짓말을 하자

“정말?”하며 웃기에

“응”하고 대답을 하자

“선생님 그럼 우리 한 번 해 봐요”지니의 입에서 놀라운 제안이 나왔다.

“뭐?”놀라며 말하자

“피~싫어요?”나의 면상을 째려보며 말하기에

“넌 아직 어려”하고 일어서려 하자

“좋아요, 그럼 오늘 수근이 오빠에게 하자고 할 거예요”하며 놀라운 폭탄성 발언을 하였다.

겨우 이틀을 그 동네에 있었지만 난 젊은 사람 아니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얼굴은 운 좋게 익히고 있었다.

수근이란 애는 고등학교 일학년으로서 요즘말로 발랑 까진 아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맹랑한 아이였고

중학생 또래의 여자애들은 그 애 곁에서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가진 아이였다.

“너 정말이니?”놀라며 묻자

“네, 우리 동네 언니 중에 혜란이 언니도 수근이 오빠에게 처음으로 줬대요”하며 웃었다.

“여기서는 곤란하겠지? 애들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내가 생각하여도 놀랍게 난 걔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정말 나랑 할래요?”지니가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지니가 꼭 원한다면....”하고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히히히 나도 선생님에게 제일 먼저 주고 싶었어요, 히히히”하며 내 팔에 팔짱을 끼었다.

“................”난 저돌적인 걔의 말에 할 말을 잊었다.

“그럼 선생님 다시 앉아요, 내가 재미있는 놀이 해 줄게요”하며 먼저 바위 위에 앉기에

“뭔데?”하며 앉자

“히히히 선생님은 고개 돌리고 애들 오나 안 오나만 감시해요, 히히히”하며 바위틈을 가리켰다.

조그만 바위틈으로 내려오는 길이 훤하게 보였다.

“그래 알았어”하며 눈을 바위틈에 맞추고 내려오는 길을 보는데 걔의 손이 내 바지 지퍼를 잡았다.

“아니 너”놀라며 걔의 손을 잡자

“가만히 계시고 감시나 잘 하세요”내 손을 뿌리치며 말하였다.

“으....응”하고 난 다시 바위틈으로 시선을 고정하였다.

“쯥~쯥~쯥”놀랍게도 걔는 내 좆을 끄집어내더니 입으로 빨기 시작을 하였다.

“아니 너”놀라며 말하자

“쯥~쯥~쯥~쯥”내 좆을 빨며 올려다보더니 손가락 하나로 내 입을 막으며 웃었다.

“으~~~~~”창녀의 헐렁한 보지에 비하면 정말이지 그 흡인력은 대단하였다.

“쯥~쯥~쯥~히히 좋아요?”한참을 빨더니 손으로 좆을 주무르며 물었다.

“으....응 너 처음 아니지?”하고 묻자

“응, 이런 건 서울에서 몇 번 했어요, 히히히”하며 천진난만하게 웃기에

“그러면서도 그것은 안 했니?”하고 묻자

“응 무서워서 안 했는데 이젠 안 무서워요, 히히히”하고 웃더니

“선생님 물 내가 먹어도 되지요?”좆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용두질 치며 물었다.

“먹어 봤니?”하고 묻자

“응, 이상한 냄새가 나 안 좋았는데 시골에서 살면서 밤꽃 냄새랑 냄새가 같았어요, 히히히”하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산에 무수하게 널려있는 밤나무에서 그 그윽한 밤꽃 냄새가 내 코를 간질이고 있었다.

“누구에게 해 줬니?”놀라며 묻자

“응, 서울 살 때 우리 주인 집 오빠”하고 대답을 하더니 다시 좆을 입에 물고 빨면서 흔들기 시작하였다.

그런 경험이 전무 한 나로서는 걔의 능숙한 손놀림이며 빠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아니 흥분이 극에 달하였다.

“으~~~~~~”아주 조심하여 신음을 하면서도 난 바위틈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였다.

농촌에 봉사활동을 하러 온 대학생이 마을의 여자 그도 겨우 국민 학교 육학년 애에게 좆을 빨리고 있었으니

그 것을 같이 온 애들이 보고 소문이라도 낸다면 나는 물론 좋은 일을 하자고 온 우리 동아리

선배와 친구들은 당장에 그 마을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요 어린애를 데리고 그런 짓을 하였다고

학교에 소문이 나면 학교는 고사하고 친구들에게도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으~~~~나온다, 나와”그리 오래 버티지를 못 하였다.

“쯥~쯥~쯥 타다닥 타닥 타타타타”오히려 내 말에 걔의 동작은 더 빨라졌다.

“꿀~꺽, 꿀~꺽”좆 물이 나오자 걔는 날 올려다보며 목구멍 안으로 삼켰다.

“너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더 이상 안 나오기에 좆을 바지 안으로 넣고 지퍼를 올리며 말하였다.

“히히히 좋았어요, 히히히”웃으며 물었다.

“응 아주 대단하였어, 아주”하며 웃자

“히히히 그럼 이번에는 선생님이 좀 만져 주라”하며 치마를 들치며 가랑이를 벌렸다.

“정말.....이니?”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응 어서”하며 내 팔을 잡더니 가랑이 사이에 대어 주었다.

솜털도 하나 안 난 느낌이 팬티 위로 들었다.

“아이 바보 선생님 안에 넣고 만져”웃으며 말하였다.

“좋아”난 바위틈에서 시선을 때지 않고 육감적으로 손을 팬티 안으로 넣었다.

놀랍게도 걔 보지는 축축이 젖어 있었다.

“아니 너”놀라며 걔 얼굴을 보자

“히히히 나도 물 나왔지, 히히히”하고 웃었다.

“너도 느끼니?”놀라며 묻자

“히히히 나도 여자 아니야?”되려 나에게 물었다.

난 걔 보지를 주무르고 또 금을 따라 손가락을 상하로 움직였다.

“히히히 기분 좋다, 히히히 잠시만 봐”하며 팬티의 고무줄을 당기더니 안을 보여 주었다.

“히히히 예쁘지?”하며 자신의 보지를 보며 물었다.

“응 아주 예뻐”정말이지 무모의 보지는 자신이 흘린 물이 묻어 윤택을 내고 있었다.

“선생님 다 그렸어요, 선생님”하고 떠드는 소리에 우리는 더 이상 아무 짓도 못 하였고 난 걔에게 마저 그림을 그리라고 하고는 아이들에게 가야하였다.

“자! 다 그린 어린이들은 그림과 크레용에 자기 이름 쓰고 여기에 넣고 계곡에서 물놀이해요”하자

“와!”하고 함성을 지르는 아이와 그림을 완성하지 못 하여 아쉬워하는 아이들로 갈라졌고 그림을 다 그린 아이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여자아이나 남자아이들 모두가 팬티 차림으로 지니가 안자 있던 곳을 지나 계곡으로 달려가더니 물장구를 치면서 놀았다.

지니가 앉아 있는 자리는 아이들을 감시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였다.

난 다시 지니 옆으로 가 앉았다.

“히히히 쟤들 저러다가 팬티도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마구 놀아요, 히히히”지니가 그림을 그리며 말하였다.

“하하하 그런 넌 애들 고추 자주 보겠구나?”웃으며 묻자

“요만 해요, 볼 것도 없어요, 히히히”크레용 하나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하하하 그래”하자

“선생님 더 안으로 들어가면 저기에서 우리 얼굴만 보이지 안 보여요”하며 바위 옆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그래”하고 나도 뒤로 물러나 앉았다.

“자 어서”놀랍게도 지니는 또 치마를 가볍게 들며 팬티의 고무줄을 당겼다.

“아니 너”놀라고 말았다.

“히히히 내가 주물렀지, 히히히”아까 내가 만졌을 때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은 물기를 자랑하며 번들거렸다.

“너 자주 이렇게 하니?”놀라며 묻자

“응 아침에 눈을 뜨면 하고 또 학교에서도 심심하면 하고 또 자기 전에도 해”하며 내 팔을 당겨 팬티 안으로 넣더니 치마로 덮었다.

난 한참을 주물러 주었고 걔는 아주 가는 신음을 내며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 오늘 밤에 우리 마을 앞 냇가로 와요 알았죠?”그림을 다 그리자 내 팔을 당겨 끄집어내며 말하였다.

“으....응”하고 대답을 하자 걔는 일어서서 그림을 모아 둔 곳으로 가더니 그림과 크레용을 넣고 계곡으로 달려가 팬티만 입고 아이들과 어울려

물장구를 치며 노는 모습은 내 좆을 빨고 흔들던 그 아이가 아니었고 또 자기 보지를 주무르게 하던 아이는 아니었다.

난 흥분을 가라앉히고 아이들의 그림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을 하였다.

아주 잘 그림 그림도 있었고 개중에는 거의 낙서에 가까운 그림도 있었다.

한참을 지나서 해가 서산에 걸리자 난 아이들을 불러 모았고 그 자리에서 간단한 심사평을 하고

그 중에 잘 그린 애들 두 명을 호명하여 크레파스를 상으로 주었는데 본래는 그림을 잘 그린

세 명에게 주기로 된 것을 하나는 내 보조를 하며 수고 하였다고 지니에게 주고는 모두들 데리고 마을로 돌아 왔다.

그날 밤 선배들과 친구들은 가가호호 방문을 하여 고충과 서투른 지식이지만 농촌이 잘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난 저녁을 먹고 난 설거지만 하면 일과 가 끝이었다.

더 다행인 것은 나와 같이 설거지를 담당하던 친구 녀석이 낮에 농약을 치는 일이 고되었던지 나에게 혼자서 해 달라고 부탁을 하며 잠자리에 들어버렸다.

난 서둘러 설거지를 마치고 걔가 말한 곳으로 달려갔다.

몇 명의 동아리 선배들이 목욕을 하고 있어서 몸을 숙이고 살피는데

“선생님 여기”하는 나직한 목소리가 냇물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 내 귀를 두드렸다.

“응”살금살금 기다 시피 걔 옆으로 가자

“선생님 저 위로 가요”하며 앞장을 서서 살금살금 움직였다.

한참을 올라가자 선배들의 모습은커녕 마을의 불빛도 마치 반딧불이 처럼 아주 작게 빛을 내고 있었다.

“히히 여긴 아무리 소리쳐도 마을이나 저기서는 안 들려요”하며 내 귀에 대고 말하였다.

걔 말이 옳았다.

거긴 냇물이 계단을 이루어서 떨어지는 소리에 귀에 입을 대고 말을 하면 옆에서도 잘 안 들렸다.

“응 그러네, 그래”하고 나도 걔 귀에 대고 말하였다.

“히히 손 줘요”하며 내 팔을 당겼다.

“아니 너 벌써?”놀라고 말았다.

이미 팬티는 없었고 또 걔 보지 주변은 아주 매끄러웠다.

“빨리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미리 주물러서 물을 나오게 했어요, 여기 앉아요”하며 평평한 바위를 더듬더니 말하였다.

“응, 이렇게”하며 바위에 걸터앉자

“아~이 바지하고 팬티 내려야지 어떻게 그렇게 해요”하며 핀잔을 주었다.

“으...응 그래”하고 일어나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앉았다.

“절 선생님 무릎에 앉혀요”하며 두 팔을 벌렸다.

난 걔 겨드랑이 사이에 두 팔을 넣고 번쩍 들어 올리자 걔 스스로 가랑이를 벌리고 내 무릎 위에 앉더니

“선생님은 제가 당기라고 하면 엉덩이 잡고 있다가 당겨요”하며 내 좆을 쥐었다.

“그래”하고 대답을 하며 난 걔 엉덩이를 잡았다.

걔는 아주 익숙하게 내 좆을 잡고 자기의 보지 금을 벌려 대어주었다.

“히히히 당겨요”하기에

“그래 에~잇”하고 당기자

“악! 가만있어요, 들어갔어요. 아파”하며 내 품에 꼭 안겼다.

처음으로 창녀의 보지에 박은 그 느낌과는 전혀 다른 아주 빡빡한 느낌이 내 좆에 전달이 되었다.

난 조심스럽게 한쪽 손을 엉덩이에서 때어 내 좆으로 옮겼다.

정말이지 내 좆은 거의 절반 이상 걔 보지 안에 박혀 있었다.

“많이 아프지?”하고 조심스럽게 묻자

“응 엄청 아파요 선생님 그건 움직이지 말고 흔들어서 싸요, 훌쩍훌쩍”아주 작은 소리로 흐느끼며 말하였다.

“참을 수 있겠니?”걱정스런 마음에 조심스럽게 묻자

“참겠어요, 어서 해요”하기에 난 아주 천천히 좆을 잡고 용두질을 쳤다.

“참 안에다 싸면 안 위험하겠니?”임신이 두려워 물었다.

“히히히 전 알아요, 생리 일주일 전 후는 아기 안 밴대요. 히히히”언제 울었냐는 듯이 웃으며 말하였다.

“생리 끝났니?”난 천천히 용두질을 치며 물었다.

“히히 오 일이나 그 육 일 있으면 시작 할 거예요, 히히히”하며 내 품에 안기어 웃었다.

난 안심을 하며 걔 엉덩이를 조금 더 당기며 용두질을 쳤다.

마치 하늘을 훨훨 나는 기분이었다.

난 한참을 용두질 친 끝에 걔 보지 안에 들어간 좆이 종착역이 가까웠다는 신호를 보내기에

“나오려 한다, 으~~~~”하며 용두질을 더 빨리 치자

“싸요 싸”하고 내 품에서 고개를 들고 올려다봤다.

어둠에 익숙해 진 탓인지 눈물이 반들거리는 걔 얼굴이 보였다.

“으~응 아~~~나온다, 나와”하며 난 걔의 엉덩이를 더 힘주어 두 손으로 당겼다.

“아~윽 살아서 움직여요 아~악”하고 내 목에 매달리며 비명을 질렀다.

난 걔의 여린 보지 안으로 좆 물을 뿜었다.

“뜨거워요 히히히”고개를 들더니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한 번 더 해고 되겠니?”다 싸자 보지에 박힌 그 느낌을 더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좋아요”하고 물었다.

“너무 좋아”한 가지 아쉬움은 있었지만 좋았었다.

“그럼 해요”하며 내 목에 매달렸다.

난 다시 용두질을 쳤다.

눕히고 엉덩이를 흔들며 펌프질이 하고 싶었지만 참으면서...............

두 번째 좆 물을 걔 보지 안에 뿌리고 걔를 일으켜 세웠다.

“히히히 넣고 빼고 하고 싶었죠?”걔는 내 속을 간파하고 있었다.

“응”하고 말하며 불빛이 안 세어 나가게 웅크리고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러면서 걔가 눈치를 못 채게 슬며시 내 좆을 봤다.

내 좆과 주변에는 걔의 처녀막이 터진 흔적인 피가 묻어있었다.

걔는 냇가로 조금 움직여 쪼그려 앉더니 보지를 물로 씻었다.

“선생님 몇 일 밤 더 있어요?”솜에 묻은 물기를 치마에 닦으며 물었다.

“음 오늘이 이틀째니까 네 밤 더 자면 간다.”아쉬움을 느끼며 말하자

“히히히 그럼 앞으로 네 번 더 하겠네, 히히히”하고 웃었다.

“매일 하게?”놀라며 묻자

“히히히 낮에도 애들 안 보며 해도 되요, 히히히”하고 웃으며 팬티를 입었다.

난 그 다음 날도 걔와 단 둘이만의 시간을 내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역시 내 무릎 위에 앉히고 용두질을 쳐서 좆 물을 보지 안에 뿌렸다.

그 뿐이 아니었다.

걔 스스로가 밤이면 냇가로 나오라고 하여 좆을 보지에 박고 용두질을 쳤다.

그리고 마지막 밤 우리는 군청의 도움으로 영사기를 대형 천을 도로의 가운데에 치고 스크린으로 삼아 영화를 상영하게 되었다.

소문은 인근의 많은 부락에게 까지 알려져서 거의 수 백 명의 인파가 영화를 보기 위하여 몰려들었다.

내 옆을 지키던 걔는 영화의 제목을 보더니

“선생님 전 이 영화 서울서 봤어요, 가요”하며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며 내 팔을 당겼다.

“우리 숙소 앞에 있어”걔 귀를 당기고 말하였다.

“응”하고 걔가 먼저 빠져나갔다.

잠시 후 난 가까이 있던 선배에게 화장실 다녀온다고 말하고 숙소로 왔다.

걔는 담장 밑에 숨어 있다가 날 보곤 달려 나왔다.

난 행여나 우리 일행이 올 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걔를 데리고 창고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오늘은 제가 누울게 선생님이 위에서 해”하며 짚단 위에 가랑이를 벌리고 눕더니 치마를 들어 올렸다.

역시 팬티는 입지 않았고 문틈으로 들어오는 불빛에 걔 보지는 적나라하게 모습을 들어내었다.

몇 일을 쑤신 탓인지 처음에 그림을 그리러 산에 올라가 봤을 때와는 많이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고 또한 많이도 부풀어 있었다.

난 서둘러 바지를 내리고 걔 몸 위에 올라타곤 좆을 박았다.

걘 역시 아픔을 참았고 난 시원스럽게 펌프질을 하여 걔 보지 안에 좆 물을 뿌릴 수가 있었다.

그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을 연속으로..............

그 다음날 아침을 먹고 이별을 해야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나 이이들은 웃으며 잘 가라고 배웅을 하였으나 걔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주소를 주기에 그 뒤에도 몇 번의 서신 왕래가 있었으나 중학교는 도시로 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나와 연락은 단절이 되었다.

내가 어쩌다가 여름이면 걔 생각이 나는데 걔도 여름이면 한 번 쯤은 내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

하지만 인연이 되어 다시 만나 수만 있다면 한 마디만 묻고 싶다.

내가 그저 좋아서 줬는지 아니면 그냥 호기심에 줬는지...........

또 거기에 있는 동안 매일 두 세 차례 심지어 그 이상을 하면서도 매 번 피가 묻어나왔는데 어떻게 그 아픔을 참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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