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운명은정해져있는가? (브금,스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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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비누, 직물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알칼리성 물질인 소다회(Na2CO3)와 가성 칼리(K2CO3)의 효과적인 제조법을 공업화하여 많은 돈을 벌었던 벨기에의 화학자 솔베이(Ernest Solvay, 1838-1922)는 번 돈을 화학, 물리학, 사회학을 연구하는 국제과학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썼다. 그는 또한 과학자들의 학술회의를 후원하기도 했다.
제5차 솔베이 회의(1927, 벨기에 브뤼셀), 세계 물리학계의 거두들이 모이다
솔베이가 기부한 기금으로 1911년에 시작된 솔베이 회의는 양자 물리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계 정상급 물리학자들만을 초청해 3년마다 열렸던 솔베이 회의에서는 당시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들이 모여 주요한 물리학 주제에 대해서 발표하고 토론했다.
제5차 솔베이 회의는 1927년 10월 24일부터 29일까지 브뤼셀에 있는 솔베이 연구소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는 보어, 퀴리, 로렌츠, 플랑크,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드브로이, 보른 , 에렌페스트, 로렌츠,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당시 물리학계의 거물들이 모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코펜하겐에서 온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는 양자 물리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 해석이 양자 물리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으로 현재 양자 물리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해석이다.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은 이미 이탈리아의 코모에서 열렸던 볼타(Alessandro Volta, 1745~1827) 서거 100주년 기념 강연에서도 발표되었던 터라 회의에 참석했던 물리학자들은 그 내용을 이미 많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회의는 양자 물리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의 성공을 확인하고 축하하는 회의가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제 5차 솔베이 회의, 레오폴드 공원에서 촬영한 호의 참석자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시킨,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논쟁
보어의 발표가 끝나자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해석을 조목조목 날카롭게 반박했다. 아인슈타인의 예상치 못한 반격으로 회의는 축제에서 토론으로 바뀌었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상보성 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자연현상은 확률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엄격한 인과법칙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여러 나라에서 온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반박에 대해 여러 나라 말로 시끄러운 논쟁을 벌여 어수선해졌다. 회의를 주관했던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로렌츠(Hendrik Antoon Lorentz, 1853~1928)는 질서를 회복하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마침내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오랜 친구이며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네덜란드의 라이덴 대학교수였던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 1880~1933)가 칠판 앞으로 걸어가 구약성서의 한 구절을 칠판에 크게 썼다. “신께서 지구 상의 모든 언어를 다르게 하셨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보고 크게 웃었다. 그 후 솔베이 회의는 아인슈타인이라는 골리앗과 보어라는 다윗의 싸움터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해석이 왜 완전하지 못한가 하는 수많은 예를 들어 보였고 보어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반박해 나갔다.
에렌페스트의 집에서, 보어(앞)와 아인슈타인(뒤)(1930년, 에렌페스트 촬영)
토론은 보통 아침식사 시간에 아인슈타인이 코펜하겐 해석에 분명히 반대된다고 생각하는 사고 실험을 제안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회의에 참석한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사고실험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하루 종일 그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에는 보어가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새로운 사고 실험으로도 코펜하겐 해석을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곤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면 아인슈타인은 코펜하겐 해석을 무너뜨리기 위한 더 복잡한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비슷한 논쟁이 며칠 동안 계속되자 에렌페스트는 아인슈타인에게 “당신은 당신의 적들이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반대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양자이론에 반대하고 있습니다.”라고 충고했지만, 아인슈타인은 그의 친절한 충고마저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계의 존경 받는 지도자로 솔베이 회의에 도착했었다. 그러나 그는 외로운 사람으로 회의장을 떠났다. 그는 아직 상대성이론을 비롯한 초기연구로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구시대의 인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인슈타인, 양자 이론의 위대한 개척자였으나…
양자 이론의 위대한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인 아인슈타인이 양자 이론을 반대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1921년에 아인슈타인이 수상한 노벨상도 ‘빛이 양자라는 작은 에너지 알갱이’ 라는 사실을 밝혀낸 광전효과 연구 공로로 받은 것이었다. 이것은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이끌어낸 중요한 연구로 양자 물리학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코펜하겐 그룹을 이끈 보어와 아인슈타인은 보어가 베를린에서 원자 이론에 대해 강의를 했던 1920년에 처음 만났다. 보어가 덴마크로 돌아간 후 아인슈타인은 그에게 “내 인생에서 당신처럼 같이 있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에렌페스트가 당신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보어는 이러한 칭찬에 대해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내게 가장 큰 경험 중의 하나였습니다.” 라는 답장을 보내 아인슈타인에 대한 호감을 표현했다.
드브로이의 물질파 논문이 발표되었을 때 아인슈타인은 강력하게 그 이론을 지지했다. 그는 이 이론이 원자를 이해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슈뢰딩거 방정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평가를 했었다. 1926년 5월에 아인슈타인은 그의 친구에게 “슈뢰딩거가 양자 역학에 대한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것에서는 깊은 진리의 냄새가 납니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것이 양자 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우호적인 표현이었다.
끝내 확률적인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 "신이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
얼마 후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이 슈뢰딩거의 파동함수를 확률 파동으로 재해석하면서부터 아인슈타인은 양자 물리학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모든 사건은 현재 상황과 물리 법칙으로 예측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무작위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우리가 아직 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의 법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미래에 일어날 모든 사건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연법칙에 확률을 개입시키는 것을 싫어했다. 이런 그의 생각은 "신이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라고 한 말에 잘 나타나 있다.
1927년 1월 아인슈타인은 슈뢰딩거 방정식에 대한 그의 새로운 생각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나의 가슴은 슈뢰딩거의 연구로 더 이상뜨거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과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쯤부터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주장하는 물리학자들과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이 반발한 코펜하겐 해석이란?
그렇다면 보어를 중심으로 한 코펜하겐 그룹이 제안했던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 입자의 상태는 파동함수에 의해 결정되며, 파동함수의 제곱은 측정값에 대한 확률밀도를 나타낸다.
2. 모든 물리량은 관측이 가능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 물리적 대상이 가지는 물리량은 관측과 관계없는 객관적인 값이 아니라 관측 작용의 영향을 받는 값이다.
3. 서로 관계를 가지는 물리량들은 하이젠베르크가 제안한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4. 전자와 같은 입자들은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상보적으로 가진다.
5. 양자 도약이 가능하다. 양자 물리학적으로 허용된 상태들은 불연속적인, 특정한 물리량만 가질 수 있다.
따라서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기 위해서는 한 상태에서 사라지고 동시에 다른 상태에서 나타나야 한다.
이런 요약만 가지고는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양자 물리학 이야기는 이제 코펜하겐 해석의 내용 하나하나를 살펴보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하여 알아볼 차례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양자 물리학이 등장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양자 물리학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인용된 내용은 필자가 번역하여 출판한 「괴델과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책에서 인용했다는 것을 밝혀둔다.
물리학에서는 현재 상태를 물리법칙에 대입하여,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측하려고 노력한다.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물리법칙을 알고 있으며, 그 물리법칙을 나타내는 방정식을 풀어 해를 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정확하게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뉴턴역학을 기초로 하고 있던 고전 역학에서 그것은 사실이었다. 많은 경우에 정확한 해를 구할 수 없어서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많았지만 정확한 해를 구하고도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것은 자연에서는 역학 법칙에 위반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철저하게 인과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 물리학에서 통했던 인과법칙, 더 이상 양자 물리학에서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양자 물리학에서는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었다. 초기조건을 현상을 설명하는 물리법칙인 슈뢰딩거 방정식에 대입하여 미래의 상태를 나타내는 해를 구해보면, 하나의 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해가 존재했던 것이다. 이것은 같은 상태에서 출발해서 같은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고도 다른 상태로 갈 수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측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문제가 남게 되었다.
슈뢰딩거의 사고 실험을 현실로 만들면 이런 형태였을 것이다.
양자 물리학의 큰 흐름을 결정한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여러 가지 다른 상태가 가능한 입자의 상태는 가능한 여러 가지 상태의 중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입자의 상태를 구하기 위해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었더니, 그 해가 ϵ1의 에너지를 가지는 ψ1상태와 ϵ2의 에너지를 가지는 ψ2의 상태로 나왔다. 그렇다면 이 입자의 상태는 두 상태를 모두 포함하는 ψ=aψ1+bψ2로 나타낼 수 있다.
우리는 이 때 이 입자가 ϵ1의 에너지를 가질 확률과 ϵ2의 에너지를 가질 확률을 계산할 수 있고, 그 에너지의 기대값을 계산할 수 있다. 왜 양자 물리학에서는 입자의 정확한 상태(결과)가 아니라 확률과 기대값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일까? 이유는 앞의 광자재판 편에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가 이 입자가 실제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측정을 하면, 입자의 상태는 두 상태가 중첩된 상태에서 하나의 상태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측정하는 순간 확률이 붕괴하여 입자는 특정한 하나의 상태로 확정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양자 물리학에서는 고전 물리학과 다르게 확률과 기대값으로 결과를 나타내게 되었다.
전편의 광자 재판에서 다룬 광자가 지나간 경로도 같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관측하지 않을 때 광자의 상태는 두 창문을 통과하는 두 상태의 중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광자가 동시에 두 창문을 통과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어느 창문을 통과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한 측정을 하면 광자는 두 창문 중의 하나의 창문을 통과하는 상태로 고정되어 버린다. 이런 경우 우리는 광자가 두 창문 중에서 하나만을 통과한다고 했다. 이러한 확률의 붕괴는 측정이 어떻게 물리량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해준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 1/2살았다 + 1/2죽었다??
양자 물리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에 동의할 수 없었던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는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양자 물리학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후, 1935년에 코펜하겐 해석을 반박하는 아주 중요한 사고 실험 두 가지를 제안했다. 하나는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의 이름으로 제안된 것으로, 이들의 이름 머리글자를 따서 EPR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슈뢰딩거의 이름으로 제안된 슈뢰딩거의 고양이였다. 슈뢰딩거는 1935년에 독일에서 발간된 이라는 잡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 글을 실었다.
다음과 같이 우스꽝스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고양이 한 마리가 철로 만들어진 상자 안에 갇혀있다. 이 상자 안에는 방사선을 검출할 수 있는 가이거 계수관과 미량의 방사성 원소가 들어 있다. 방사선 원소의 양은 아주 적어서 한 시간 동안에 한 개의 원자가 붕괴할 확률과 한 개도 붕괴하지 않을 확률이 각각 50%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상태가 중첩된 슈뢰딩거의 고양이
만약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면 가이거 계수관이 방사선을 감지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스위치가 작동되어 연결된 망치가 시안화수소(HCN)산이 들어있는 병을 깨트려서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시안화수소산이 흘러나오도록 하는 장치가 되어 있다. 이 상자를 한 시간 동안 방치해 둔 후에 고양이의 상태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양자 물리학에서는 고양이의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는 살아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와 죽어 있는 고양이를 나타내는 파동함수의 중첩으로 나타낸다. 다시 말해 고양이는 죽어 있는 상태와 살아있는 상태가 혼합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고양이는 살아 있는 상태나 죽어 있는 상태 중의 한 상태로 확정된다는 것이다. 관측하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 있는 상태가 중첩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중략---
이 사고 실험은 실재(實在)를 나타내는 ‘흐릿한 모델’을 순진하게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다. 흔들려서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과 구름과 안개로 뒤덮인 강둑을 찍은 사진은 다른 것이다. 이 사고실험의 목적은 코펜하겐 해석이 가지고 있는 명백한 오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의 직감은 어떤 관측자도 여러 가지 상태가 중첩된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고실험 속의 고양이는 여러 가지 상태의 중첩으로 나타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는 것이다. 고양이가 특정한 상태에 존재하기 위해서 외부의 관측자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만약 고양이가 살아 있다면 고양이는 외부의 관측자의 관찰 유무와 관계없이 살아 있던 자신의 모습 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의 모순을 부각시킨 이 사고 실험에 매우 만족해했다. 훨씬 후인 1950년에 슈뢰딩거에게 쓴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스를 열어 눈으로 확인하면 고양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라우에(Max T.F. Von Laue, 1879~1960)를 제외한다면 당신은 실재에 대한 엉성한 가설 주위를 맴돌지 않는 유일한 정직한 사람입니다. 과학자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실재를 가지고 얼마나 위험한 장난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실재는 실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양이를 포함한 전체 시스템이 살아 있는 고양을 나타내는 파동함수와 죽어 있는 고양이를 나타내는 파동함수의 중첩으로 나타내진다는 그들의 설명은 당신의 고양이+방사성 원소 + 증폭기 + 화약을 이용한 사고실험으로 거부되었습니다. 고양이의 상태가 관측의 유무와 관계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참고로, 원래 슈뢰딩거가 제안한 고양이 상자에는 화약이 들어 있지 않았고 대신 가이거 계수관과 독약이 들어 있었다. 화약은 15년 전에 슈뢰딩거와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것이었다.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 덕분에, 코펜하겐 학파는 ‘관측’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여러 가지 상태의 중첩으로 나타내지는 체계는 측정이 실시되는 순간 하나의 상태로 확정된다. 따라서 상자가 닫혀 있는 동안에는 죽은 고양이의 상태와 살아 있는 고양이의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고양이는 두 가지 상태 중의 하나의 상태로 확정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제안한 슈뢰딩거나 아인슈타인을 설득시킬 수 없었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관측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따라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 물리학에서 관측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이 제안된 후 이것을 설명하는 많은 이론들이 제안되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 대한 다양한 설명은 지면 관계상 다음 이야기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20세기 초에 성립된 양자물리학은 원자보다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라는 것이 수많은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처음 양자물리학은 원자와 원자가 내는 스펙트럼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되었고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세세한 부분에서 이견이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물리학 내에서는 양자물리학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에 대한 철학적 해석의 문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양자물리학과 측정
양자물리학의 가장 큰 반대자였던 아인슈타인. 역설적으로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양자물리학은 한 번의 측정 결과가 어떤 값을 나타낼지를 확률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뿐, 하나의 값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측정값은 양자물리학적으로 허용된 값(고유값)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다시 말해, 계는 양자물리학적으로 허용된 여러 가지 고유값을 다 가질 수 있다. 물리계는 여러 가지 고유값을 가지는 서로 다른 상태의 중첩 상태에서 측정에 의해 특정한 고유값을 가지는 상태로 확정된다.
양자물리학의 가장 큰 반대자는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연 현상이 확률에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양자물리학이 확률을 포함하는 것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며 알려지지 않은 변수를 찾아내면 확률적인 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EPR 역설 : 입자의 물리적인 성질은 국소성을 가져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1935년에 발표한 포돌스키(Boris Podolsky, 1896~1966) 그리고 로젠(Nathan Rosen, 1909~1995)과 함께 쓴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물리학적 기술은 완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양자물리학의 불완전성을 부각시키려고 시도했다. 세 사람의 이른 머리글자를 따서 EPR 패러독스라고 불리는 이 제안은 그 후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이 논문에는 아인슈타인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프린스턴에 있던 고등학술연구소에서 아인슈타인, 로젠과 했던 토론을 바탕으로 포돌스키가 작성한 것이었다.
A입자와 B입자가 얽힘 상태에 있는 경우, A입자의 스핀 상태를 결정하면, 그 즉시 우리는 B입자의 상태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이 논문에서 물리적 성질은 국소성(Principle of locality)을 가지고 있어서 시공간의 어떤 점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체계는 동시에 서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고 그런 정보의 전달은 상대성 이론에 의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에 대한 코펜하겐의 해석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입자에 대한 측정이 다른 입자에 동시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양자물리학은 완전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인슈타인 등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입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숨어 있는 변수를 알지 못하게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이 숨은 변수를 포함하지 않은 양자물리학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얽힘 상태 : 하나의 입자의 상태가 다른 입자의 상태를 결정하는 관계
EPR 역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얽힘 상태(entanglement)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전자나 양전자와 같은 입자들은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다. 이 자전에 의한 각운동량을 스핀이라고 한다. 그런데 스핀은 특정한 축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돌거나 좌측으로 도는 두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측으로 도는 것을 스핀 업 상태라고 하고 좌측으로 도는 것을 스핀 다운 상태라고 부르기로 하자. 특정한 전자가 어떤 스핀을 가졌는지는 측정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측정하기 전에는 스핀 업 상태와 스핀 다운 상태가 중첩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측정을 하면 두 가지 스핀 중의 하나로 확정된다. 두 가지 스핀의 중첩 상태에서 하나의 스핀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이제 전체 스핀이 0인 파이온이 붕괴하면서, 전자와 양전자를 생성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처음 파이온의 스핀이 0이었으므로 각운동량 보존 법칙에 의해 전자와 양전자의 스핀을 합한 값도 0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입자가 스핀 업 상태에 있고 어떤 입자가 스핀 다운 상태에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두 입자는 모두 스핀 업 상태와 스핀 다운 상태가 중첩된 상태에 있다. 그러나 만약 두 입자 중 하나의 스핀을 측정해서 스핀 값을 확정하면 다른 입자의 스핀 값은 반대 방향으로 정해져야 한다. 이렇게 하나의 입자가 어떤 물리량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른 입자가 가져야 하는 물리량이 정해지는 두 입자를 얽힘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얽힘 상태는 스핀 상태뿐만 아니라 빛 입자(광자)의 편광 상태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EPR 역설은 바로 이러한 양자적 얽힘 상태 때문에 발생한다.
EPR역설에 따른 스핀의 측정은 불확정성의 원리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파이온을 검출하는 장비. 파이온이 붕괴하면서 전자와 양전자를 만드는 상황은 EPR역설의 대표적인 사례다.
입자에는 여러 가지 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임의 방향을 정해 스핀을 측정하면 이와 수직인 축의 스핀은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해 z 축을 중심으로 한 스핀 상태를 측정하면 x 축을 중심으로 한 스핀은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다. z 축에 대한 스핀 값과 x 축을 중심으로 한 스핀 값 사이에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z 축을 중심으로 한 스핀을 측정을 통해 확정하면 x 축 방향의 스핀은 업이 될 가능성이 50%, 다운이 될 가능성이 50%인 상태에 있어야 한다.
양전자는 전자의 반입자이므로 전하의 부호만 다를 뿐 다른 물리량들은 모두 같다. 전자와 양전자는 에너지로부터 쌍으로 생성되기도 하고, 함께 소멸하여 에너지로 사라지기도 한다. 이것을 쌍생성 또는 쌍소멸이라고 부른다. 이제 파이온이라는 중간자가 붕괴하여 전자와 양전자가 생성되는 반응을 생각해 보자. 전자와 양전자는 생성되고 나서,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A점과 B점에 도달했다.
이제 A점에서 전자의 z 방향 스핀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이 실험으로 전자의 z 방향 스핀 값을 하나로 확정하였다. 따라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양전자의 스핀 값도 하나의 값으로 확정되어야 한다.
A점에 있는 전자는 z 방향의 스핀에 대한 측정의 영향을 받아 x 방향의 스핀 값을 정확하게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B점에 있는 양전자에는 z 방향의 스핀 값을 알기 위한 실험을 하지 않았으므로 x 방향의 스핀을 측정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만약 B점에 있는 양전자의 x 방향 스핀 값을 측정을 통해 확정할 수 있다면 이 값으로부터 A점에 있는 전자의 x 방향 스핀 값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z 방향의 스핀과 x 방향의 스핀을 동시에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불확정성 원리는 더는 성립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동료는 이러한 모순이 생기는 것은 양자물리학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으로 보어는 불확정성이 측정 행위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에 발생한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불확정성 원리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벨의 실험 : EPR 역설과 코펜하겐 해석의 한판 승부
아인슈타인 등이 제안한 EPR 이론을 진리가 아닌 역설로 만들어 버린 사람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벨(John Stewart Bell, 1928~1990)이었다. 벨은 1964년에 벨의 부등식(Bell’s inequality) 을 제안했다. 이것은 코펜하겐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양자물리학의 예측과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숨은 변수 이론의 얽힘 상태에 대한 예측이 측정 가능한 정도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이식으로 인해 과학자들은 어떤 이론이 옳은지를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벨의 부등식을 이용한 양자물리학적 얽힘 현상을 관찰하고자 하는 실험. 관용적으로 수신기 하나를 앨리스(Alice), 다른 하나를 밥(Bob)이라고 부른다.
벨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아주 짧은 거리에서 얽힘 상태를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1997년에는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과 오스트리아 과학 아카데미의 연구자들은 800미터 떨어져 있는도나우 강의 반대편의 실험실까지 공공 하수구를 통해 광섬유를 연결했다. 그들은 800미터 떨어져 있는 실험실에서 한 실험이 다른 실험실에 있는 얽힘 상태에 있는 입자(여기서는 광자)에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했다. 2003년 6월에 오스트리아의 과학자들은 더 먼 거리에서 실험했다. 그들은 레이저를 바륨 붕산염 결정에 통과시켜 광자 쌍으로 분리했다. 파장이 810nm인 이 얽힌 광자들은 공간을 통해 송신 망원경에서 두 개의 수신 망원경으로 보내졌다. 하나는 150미터 떨어져 있었고 하나는 다뉴브강 건너 500미터 떨어져 있었다. 두 망원경은 직접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하나의 광자에 어떤 작용을 가하자 다른 광자에 그 효과가 동시에 나타났다. 두 광자는 600미터 떨어져 있으면서도 얽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양자 전송이라고 부른다.
코펜하겐 해석의 완승 :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 두라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이런 실험 결과를 들을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1955년에, 그리고 보어는 1962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만약 두 사람이 이런 실험 결과를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인슈타인은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어는 이런 현상을 철학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과는 관계없이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것만으로 만족해할 것이다. 그러면서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납득하지 못한 채로 내버려 두라고 충고할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 세상을 감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외부 세계에 대한 생각을 만들어 간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전해주는 기관은 시각이다.이런 이유 때문에인간은 눈으로 본 것을 사실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한 번 본 것이 백 번 들은 것보다 확실하다는 이야기이다. 법정에서 내가 직접 보았다.라는 증언이 가장 큰 증거 능력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참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자연의 참모습이 우리가 보아서 아는 것과 다르다면?
만약 자연의 참모습이 우리가 보아서 아는 것과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 수학을 이용해 표현한 자연의 모습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나 직관과 다르다면, 어떻게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양자물리학은 우리가 평소에 경험할 수 없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로 다룬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작은 세계에서는 우리가 경험을 통해 아는 일들과는 전혀 다른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상식이나 실 세계에서 보고 경험하여 알게 된 사실들이 작은 양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주변의 원을 지우면, 가운데 있는 원의 크기가 같음을 알 수 있다. 과연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일까?
자연을 수학으로 기술한다, 그러면 그 수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양자물리학은 우리가 실 세계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다루기 위해 고안한 물리학이다. 물리학에서는 수학을 이용해 자연을 기술한다. 그것은 고전물리학에서나 양자물리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고전물리학에서는 자연현상을 기술하는 수학 그 자체가 가진 의미가 명확했기 때문에, 별도의 해석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상을 다루기 때문에, 수학 그 자체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하는 해석이 필요해졌다.
대부분의 물리학자가 받아들이는 양자물리학에 대한 해석은 보어를 주축으로 하는 과학자들이 제안한 코펜하겐 해석이다. 1930년부터 보어와 함께 일했으며 가장 강력한 코펜하겐 해석의 지지자로, 코펜하겐 그룹의 대변인이라는 칭호까지 들었던 로젠펠트(Leon Rosenfeld, 1904~1974)는 양자물리학에는 "코펜하겐 해석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자 물리학에는 코펜하겐 해석 외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그 중, 중요한 것만 살펴보면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였던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1903-1957) 등이 제안한 ‘프린스턴 해석’, 코펜하겐 해석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아인슈타인을 위시한 과학자들이 제안했던 ‘앙상블 해석’과 ‘숨은 변수 이론’, 에버렛 등이 제안한 ‘여러 세계 해석’, 머민(N. D. Mermin) 등이 제안한 ‘이타카 해석’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였던 장회익 교수 등이 제안한 ‘서울 해석’도 있다. 이런 다양한 해석에 따라 양자물리학의 여러 가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당연히 우리가 오늘 이야기해야 할 슈뢰딩거 고양이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인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코펜하겐 해석 –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가 측정 순간에 하나로 확정된다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여러 가지 상태의 중첩으로 나타내는 체계는 측정이 시행되는 순간 하나의 상태로 확정된다. 다시 말해 상자가 닫혀 있을 때, 고양이의 상태는 죽은 고양이의 상태와 살아 있는 고양이 상태의 중첩으로 나타내지만,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두 가지 상태 중의 하나로 확정된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했다면, 고양이가 들어 있는 상자와 이 사람은 두 가지 다른 상태의 중첩이 아닌 특정한 상태에 있게 된다. 그러나 아직 그 사람의 측정결과를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관측자에게는, 아직 고양이는 중첩 상태에 있다. 이것은 고양이의 상태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관측자와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설명은 일상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우리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실 세계에서 고양이는 우리가 관측하던 관측하지 않던, 죽어 있거나 살아 있어야 한다. 코펜하겐 해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태양과 달이 관측할 때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고 반문했다. 관측은 단지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할 뿐이라는 것이 우리가 가진 상식이다. 우리의 상식과 일치하지 않는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은여러 과학자들은 새로운 해석을 제안했다.
에버렛 해석 – 세상은 여럿으로 나뉘어있고, 측정은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1972년에 휴 에버렛(Hugh Everett III, 1930~1982)은 여러 세상 해석을 제안했다. 여러 세상 해석에서는 서로 다른 상태가 중첩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측정하는 것은 여러 세계 중에서 하나의 세계를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여러 세계 해석에 의하면 상자 속의 고양이는 죽어 있는 고양이와 살아있는 고양이가 섞여 있는 중첩 상태가 아니라, 살아있는 고양이와 죽어 있는 고양이가 모두 존재한다. 관측자가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우주는 살아있는 고양이를 포함한 우주와 죽어 있는 고양이를 포함한 두 개의 우주로 분리된다는 것이다.
어떤 색깔의 지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에버렛이 주장한, 여러 세상 해석은 여러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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