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내가 우익보수가 된 계기 . 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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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세줄요약
1. 할아버지 교수님, 좌빨학생이 벽돌테러
2. 할아버지 집 찾아와서 행패
3. 개객기야!
우선 나는 인증할만한 자료가 없다는점을 알린다.
주작이라고 욕할수 있겠지만 일베를 가려는것 보다는 그냥 니들이 알아줬으면 해서 올리는 글이다.
참고로 가족관련 내용도 있기에 일절 거짓말은 안한겠다.
이 글을읽는 니들이 상관하던 안하던간에, 나는 진실말은 말한다.
2000년 김대중이 김정일을 만날때 나는 학교 였고 학교에서 그 장면을 생중계로 TV를 통해 보여주었다.
약 50년 동안 전쟁위기를 앉고 살던 분단국가에서, 남북 정상들이 만나 웃으며 악수하는 장면이 나는 참 감동적이였다.
그때가 점심시간 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김대중과 김정일이 공항에서 만나 악수할때 감동에 벅차 기립박수를 쳤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때 기억하나? 그때 인터넷의 발달로 효순이 미선이 사건때 관련해서 참 많은 글을 읽은것 같다.
그때는, 나도 어린마음에 좌익세력이 올린글만 보고 반미성향이 강했었다. 또, 그때 김동성과 오노 스피드 스케이팅 반칙사건으로
확실히 반미가 되었다. 관련 사진들과 글들을 학급게시판 (교실 뒤에 있는 게시판)에 붙이고 친구들에게 알렸다.
참 찌질한 짓 이였는데, 당시 상황이 그랬던지라 같은반 학우들도 이에 동조하였다.
계속 이러다보니, 선생님들이 걱정하에 우리 어머니에게 이 일을 말하였다. 어린데 너무 정치성향이 강하다고. 벌써부터 반미평화를 외친다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말하였고 부모님은 그래도 직접적으로 혼은 내지 않았다.
어느날 아버지와 정치관련 얘기가 나와서 난 내 주장만을 피력하고, 보수성향이 짙은 아버지 말은 듣지않으려고 하였다.
내가, 반미평화를 주의자들은 참 대단하다. 누가 돈을 주는것도 아닌데 알아서 저렇게 큰 일은 한다고 찬양하는어투로 말을 하였는데,
아버지가 내 할아버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 할아버지는 경북대학교 독문학 교수셨다. 처음으로 파우스트를 한국말로 번역하시기도 하셨고, 매일신문에 꾸준히 기고도 하셔서
대구시 안에서는 꽤 유명하신분이셨다. 그당시 니들도 잘 알다시피 대학생들의 일과가 데모로 시작해서 데모로 끝내던 시기였는데,
한 학생이 우리 할아버지에게 질문을 하였다. 전국 대학생이 이렇게 독재에 반대해서 싸우고 있는데 대학 교수라는 사람은 가만히 있냐고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그 학생을 좀 꾸짖으셨단다.
그날저녁 우리할아버지가 퇴근하시는데 뒤에서 남자두명이 쫓아와서는 벽돌을 할아버지 머리에 찍고 달아났다. 다행히도 돌아가시지는
않으셨지만 조금만 더 세게 맞았으면 즉사할뻔한 상황이였다. 나중에 범인 한명이 잡혔는데, 그 범인이 그날 낮에 할아버지한테 질문한 학생이였다.
우리 할머니는 의사셨다. 개인병원을 하셨는데, 크고 거창한것은 아니고 할아버지 할머니 사시던 한옥집 별채에 따로 2층집을 지어 병원을 하셨다.
벽돌사건 이후 구속된 학생을 석방하라고 좌익학생들이 할아버지집에 쳐들어 왔는데 대문을 걸어 잠그니 담을타고 들어와서는 난장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할머니는 진료중이셨는데, 환자가 몸에 상처가많이난 환자셨다. 그 학생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쳐 환자와 할머니에게 욕설을 하며 주변물건들을
던지고는 도망갔다. 마침 낮시간때라 집안에는 남자가 한명도 없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그 선에서 끝내고 나갔고 심하게 다친사람도 없었다.
그러고는 어느날 어느무리의 학생들이 또 쳐들어와서는 아무도 못들어오고 못나가게 할아버지댁 대문을 막아섰었다. 결국 경찰이 와서 바로 체포는 못하고
(무서워서) 잘 달래서 보내게 되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1980년에 정년퇴직하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다 일본으로 가셨다. 할머니는 정년퇴직 하실때까지
일본에서 의사일을 하셨다.
내가 이 얘기를 들었을때 물론 처음듣는 이야기였던지라 충격적이였다. 하지만, 내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온것은, 그들은 민주주의를 악에 복받쳐 부르짖으면서
정작 하는짓은 동내깡패질이였다. 그런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선동하는것이였고 나는 그 사실을 안 순간부터
내가 이제동안 봐 왔던것들을 다시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보수청년으로 살고 있다.
우리 아버지도 박근혜 후보 대구경북 교수 자문위원단이란걸 또 얼마전에 알았고 나 또한 기회가 된다면 진정한 우익청년의 길을 걷고싶다.
인터넷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산업화를 노력하고 있는 우리 일게이들아!
힘내자!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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