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슈퍼페니스 제이슨 리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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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8일 라스베가스 리오 호텔 컨벤션홀에서 세계 최대의 포르노 산업 축제인 AVA 행사가 벌어졌다. AVA는 영화로 치자면 아카데미 시상식 같은 개념의 권위있는 시상식이다. 한마다로 세계 최고의 포르노 배우를 꼽는다. 해마다 팽창하는 포르노 산업으로 수많은 신인들이 배출되고 있다. 이제 포르노는 더 이상 음지의 산업이 아닌 많은 젊은이들의 워너비가 되어가고 있다. 행사의 마지막 하일라이트는 올해의 남자 퍼포먼스상을 수상하는 순서다. 포르노 산업 중에서도 한해동안 가장 인기가 많았던 최고의 정력남을 가리는 시간이었다. 하일라이트는 항상 최고의 배우가 발표한다. 미국 포르노 여배우 최다 수상에 빛나는 리사 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출처:야담넷}"2015년 AVA 올해의 퍼포먼스상은.....제이슨 리 입니다. 제이슨은 최초로 퍼포먼스와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한 동양인 출신으로 기록되게 됐습니다. " 유력 성인 미디어물들은 하나같이 Asia Cock(동양인의 자지)의 반란이라고 이야기 했다. 매니 파퀴아오, 야오밍, 이치로 같은 스포츠계에 큰 획을 그은 동양출신 스타들 보다도 하기 힘든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남성호르몬 생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동양인 남자에게 미국 포르노 진출의 벽은 스포츠보다 몇배는 높다. 혹자는 우사인볼트를 100미터에서 이기는 것보다 불가능 한 것이 동양인 남자가 미국포르노계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편견에도 불구하고, 제이슨 리는 진출 1년 반만에 그 벽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여배우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남자배우로 도약하게 됐다. 기라성 같은 포르노배우들은 제이슨 리를 더러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오르가즘 머신"이라고 칭했다. 제이슨 리는 과연 어떻게 미국 포르노계를 점령할 수 있었을까. 제이슨은 올해 초 전미 최대의 포르노 스트리밍 채널인 PORN TV에 출연해 출생때부터 현재까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수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제이슨 리로부터 직접이야기 했다. <리포터 지나의 멘트> 키:180cm 체중:75kg 10인치에 달하는 거대한 자지 외에 그에 대한 다른 정보는 그동안 비공개 되었습니다. 한국계라는 것만 알려졌지 교포인지 유학파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2014 AVA 올해의 퍼포먼스와 신인상을 수상한 제이슨 리. 오늘 처음으로 제이슨 리의 모든 것을 밝혀주기 위해 3부작 토크쇼를 준비하였습니다. 반갑습니다. 제이슨 제이슨 리: 하이 반갑습니다. Q:우선 수상을 축하합니다. 동양인 남자로 영어실력마저 유창하지 못하다는 핸디캡을 가지고 AVA에서 최고의 퍼포먼스와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직도 당신에 대한 정보는 불분명 합니다. 컨셉인가요? A:네, 사실 컨셉이기도 했습니다만,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미국에 올 생각도 없었고, 포르노계에 진출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저 어릴때부터 본능에 충실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상상도 하지 못한 성공을 안겨다준거 같습니다. Q: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더 궁금해지는 군요. 오늘 이자리에서 이제 당신의 모든 것을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A:분명히 말하지만 일부러 숨긴건 아닙니다. 영어가 짧고 이렇게 인터뷰 자리가 많지 않았다는거. 그리고 불과 석달전만 하더라도 추방을 걱정해야하는 불체자 신분이었다는 것 때문에 함구하고 있었던 겁니다. Q:추방이라니 의외네요? 그럼 교포는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A:전 한국에서 스물네살까지 살다가 2년전에 관광비자로 입국을 했었습니다.미국을 동경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두세달만 지내다가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바로 포르노산업에 종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Q:그럼 당신은 한국시민권을 가진 한국인인거죠? A:네 맞습니다. Q:어떻게 하다가 미국을 오시게 된겁니까.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A:한국에 있을때 저는 난봉꾼이었습니다. 그냥 난봉꾼이 아니었습니다.사춘기때부터 특별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능이 있었죠. 이미 10여년 전부터 저는 주변에서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보니 미국까지 와지더라구요. Q: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주시죠? A:중학교 2학년이던 15살때 성기 발육이 지금과 동일했습니다. Q:중학생이 10인치(25cm)라고요? A:네 Q:세상에 그래도 중학생 10인치는 너무하네요.(웃음) 그래도 중학생이면 관계를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지 않습니까? A:사실 어릴때부터 또래와는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Q:그럼? A:한국에서는 아줌마라고 부르죠. 여기 미국에서는 MILF나 COUGAR로 말하더라구요. 저는 성생활 초기부터 아줌마와의 관계가 익숙했습니다. Q:첫경험이 또래가 아닌 나이많은 여자라는 이야기인가요?흥미롭네요 자세하게 이야기 해줄 수 있나요? A:사실 첫경험은 다들 미숙하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타고난 사람은 첫경험부터 상대방을 미치게 할 수 있습니다.제 첫 경험은 14살때였습니다. 막 사춘기가 시작할때 쯤이었죠. 저도 제가 유혹한게 아니라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대쉬해왔습니다. 처음느끼는 묘한 느낌에 저는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죠.상대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했기에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Q:상대가 누구였는데요? A:My Hot Mom. Q:어머니? A:네 Q:(인터뷰 현장은 잠깐 정적이 흘렀나)세상에 AVA 퍼포머들을 인터뷰 하면서도 근친에 대한 이야기를 한것은 처음인거 같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A:제 어머니는 왕년에 끼가 많으셨던 분이셨습니다. 결혼도 안하시고 저를 나아 홀로 기르신 미혼모셨죠.혼자 십년넘게 끼를 절제해가며 살다가 절 유혹하신겁니다.이성을 잃고 들이대던 그 모습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Q:성생활의 시작을 지금 당신이 종사하고 있는 성인물처럼 드라마틱하게 시작했군요. A: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Q:시작에 불과하다니요. A:사실 올해 포르노업에 종사하면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극히 일부분일 수 밖에 없어요. 한국에 살때의 퍼포먼스는 지금보다 더 대단했습니다. 저의 본능 그리고 여자들의 본능이 이끄는대로 살았으니까요. Q:어머니 외에 다른 공세가 많았다는 뜻인가요? A:15살때부터 아줌마들 때문에 이사를 너무 많이 다녔습니다. 이사 가는 곳마다 며칠안가서 매일 아줌마들이 찾아왔습니다. 학업수행도 힘들었습니다. 덕분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가지 않았습니다. 혹시 한국의 아줌마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Q:아니요. 한국의 아줌마가 어떤데요? A:한국의 아줌마는 열성적이고 이기적인건 아마 전세계 1등일겁니다. 교육열만 봐도 알 수 있죠. 한국아줌마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본능에 눈을 뜨니 섹스에도 그런 모습을 보이더라구요. Q:어떻게 열성적이었습니까? A:제가 한사람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소문듣고 밀려드는 아줌마를 한명씩 상대해서는 24시간을 해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에는 계모임이라는 특별한 문화가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작은 커뮤니티를 결성하여 유지하는 형태를 계모임이라고 하는데요. 제가 이사가는 곳 마다 그런 형태의 커뮤니티가 생겼습니다. Q:그 커뮤니티가 어떻게 활동했는데요? A:장소를 섭외하고 섹스파티를 가졌습니다. Q:섹스파티? A:여러 아줌마와 함께 즐기는 형태였죠. Q:그럼 당신은 혼자? A:네.저는 항상 혼자였습니다. Q:혼자서 여럿을 매일 상대했다고요?하긴 당신이 보여준 퍼포먼스라면 이해도 됩니다. 제이슨 당신의 퍼포먼스를 보면 자지도 대단하지만 지치지도 않는거 같습니다. A:어릴때부터 일당백으로 상대했기 때문에 지금의 퍼포먼스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도 생각됩니다.전 한번 발기하면 사정할때까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루가 있다는 것을 알았죠. 하지만 돌이켜보니 지루가 지금 저에겐 큰 축복이 된거였습니다. Q:10인치 자지가 지루였다. 혼자 상대했다면 끔찍한 악몽이겠군요. 주로 몇명을 상대한겁니까? A:보통 아줌마 대여섯명. 많을땐 열명이 넘어갑니다. Q:와우.그들 모두 오르가즘을 느끼게 했나요? A:멀티 오르가즘이 아니면 제가 만족을 못했습니다.제가 오르가즘 머신이 된 데는 이때의 경험이 컸습니다. 다양한 아줌마를 동시에 상대하며 사람마다 다 다른 오르가즘 도달법을 깨닫게 되었죠.10명도 삼십분이면 충분했습니다.두시간쯤 하면 10명도 너댓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Q:어떤 포르노물보다도 자극적인 테마같네요. 왠지 오늘 인터뷰 이후에는 그런 장르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도 됩니다. A:안됩니다.하하. 일반적인 아줌마와 포르노배우랑은 다르니까요. 리사앤같은 포르노배우들은 서너명도 벅찰거 같습니다. Q:그럼 중간정리해볼까요. 제이슨 리 당신은 근친으로 시작해 15살부터 10인치 짜리 자지로 아줌마들과 그룹섹스를 시작해서 매일같이 다섯명 이상의 아줌마들을 상대했고 그들을 다 오르가즘을 보냈다? 그럼 그많은 아줌마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난겁니까? A:한국은 아줌마들끼리의 단합이 잘되요. 인구가 많고 어딜가나 커뮤니티가 넘치죠. 학부모부터 해서 미용실,각종 동호회,교회 같은 곳이 아줌마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세부적으로 이야기하려면 끝도 없을거 같아요. Q: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흥미로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1부 인터뷰를 마무리 하기전 그럼 간단히 정리를 합시다. 그럼 당신이 미국에 오기전까지 상대한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요? A:16살때부터 최소 하루 다섯명이라고 치면 연간 1700명으로 잡으면 되겠네요. 미국에 오기전이 스물네살이었으니까. 8년이라 치면(스태프 왈 13600명!) 13000명? Q:13600명?Holy Shit! A:최소인원입니다. 열명이상 상대한적도 많아서 2만명 가까이 될지도 모릅니다. Q:와우 세상에.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포르노배우들을 초토화 시킨 제이슨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1부를 마무리 하고 2부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A: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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