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나와 귀신이야기 16 (1) -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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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까지는 내가 익숙하게 겪었던 시간 이였다.
60초
60분
12시간
365일
속도가 빨라지고 느려지는 일은 있었으나 보통 내 상식안에서 적당히 컨트롤 되었다.
그러다가 처음 겪게 된 말도 안되는 속도의 흐름.
길을 걷다가 마주치게 된 시간의 왜곡현상.
내 눈에 비친 것은,
빗방울의 모양과 크기.
나뭇잎이 날리는 그 세세한 모습.
눈 앞의 빛이 점점 서서히 커지는 모습
차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운전석의 앉아 있는 사람의 경악하는 표정의 변화.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보며 말하는 것도 눈으로 읽게 되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나안안안안안ㄷ도도도도도도도돼돼돼돼.”
그후 나는 온몸이 찢어 질 듯한 고통을 느꼈고, 속도의 왜곡을 경험하던
나의 눈은 주변의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마침내 눈을
감은 것 보다 더 어두운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너무나도 추웠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순간에 일어난 일.
설명하면 너무나도 간단했다.
자동차가 내 몸 위로 지나가면서 나를 가볍게 뭉개 버렸다.
난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고, 쉽게 말하면 죽을 뻔 했다.
그렇지만 그 일은, 내가 앞으로 겪게 될..
그 때부터 나는 비참했지만, 신기하고 그리고, 너무나도 슬픈 일의 전조였다.
숨 쉴때마다 아팠다고 해야하나?
한쪽 눈을 간신히 떴을 때 내 머리는 제대로 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중간에
내 기억이 도려내져 버린 것처럼, 어떻게 여기에 누워있는 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슬픔, 아픔 모든 것보다는 오직, ‘살았다!’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표정은 지을 수 없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나왔다.
공포, 그 어둠속을 헤맬 때 착각했던 그것.
죽었다는 착각에서 벗어 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동시에 찾아 온 좌절감과 분노, 고통.
온 몸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만 그저 멀뚱멀뚱, 귀만 깜빡깜빡
가위에 눌려버린 것처럼 흐릿하게 보이지만,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상태.
깜빡깜빡 하는 내 귀에 한 남자의 말이 들렸다.
“사실대로 말씀 드리자면, 앞으로 움직이는 게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는고막의 움직임과 고작 며칠 전까지는 생생하게 모든
모습을 담을 수 있었던 두 눈이였지만, 왼쪽 눈은 떠지지도 않아
지금은 오직 세상의 반 밖에 담을 수 없었다.
나와 남자와의 일방적인 소통이 이어졌다.
“내 말 들립니까?”
-깜박-
남아 있는 오른쪽 눈으로만 나의 의사를 표현 할 수 있었다.
“다만 앞으로의 상태에서 의해서 예전과 비슷하게는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기는 하지만요. 힘내세요.”
사고 전에는 그저 무난하게 흘러갔던 시간이었다.
그게 무난 했는지도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리고 사고 직전에는 태엽을 감는 듯이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변해 버린 것처럼,
하얀 병실침대위에 누워있는 지금은...
그것보다 더욱 더 시간이 더디게 흘러 갔다.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가장 처음에는 신에게 감사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 갈수록 점점
왜 나한테만 이런 고통이 내려졌는지... 신과 악마 모두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난 집중치료실이라고 불리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온몸의 감각이 없는 덕분에 내 귀는 모든 것을 받아드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귀는 살아있었다.
사람이 우는 소리, 비명 지르는 소리, 죽어갈 때 나오는 모든 말들.
나도 저렇게 될 것 만 같아서 ‘나 여기서 내 보내줘.’ 말하고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괜찮아 질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거 있지 않나? 암 투병 말기의 환자에게 건강하다고
말한다는 것? 나도 그것과 똑같지 않을까? 정신적인 충격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하는 것.
제일 듣기 싫은 것은 순간의 적막이였다.
평소 때도 조용한 이 곳이지만, 사람이 죽어가기 직전에는 갑자기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며 아무말도 없는 진공의 상태가 되는지...
그리고 내 감각이 통하지 않는 몸에도 서늘한 오한이 느껴지는 지.
어서 나가고 싶다.
난 여기에 누워있으면 안된다. 나 마저 누워있으면 우리엄마, 동생.
살아있는 오른 눈 에서 물이 나왔다.
남자가 창피하게 울면 안 되는데...
닦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엄마와 동생은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집은 걱정마라고,
다행이 보험금이랑 상대방 운전자가 합의금과 치료비를 많이 주었다고
으응, 언제 보험을 들어놨었지?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기적적으로 몸이 움직여졌다. 신이 내 기도를 들어 주었다.
의사선생님도 기적이라고 하셨다.
손가락을 이렇게 자유롭게 움직 일 수 있다는 게 정말 고마운 건지 이제야 알았다.
병실도 옮겨지게 되었다. 죽음의 공포가 나 몸을 몸서리 치던 곳을 떠나서 삶의 온기가
느껴지는 병실로...
그런데, 신 께서는 기적을 반만 베푸신 건지,,,
다리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새로운 다리가 생겼다.
휠체어라고 하는 길가에서만 보던 바로 그거.
한 달 정도가 지났을 까?
생각 외로 물리치료가 잘 되어 상체는 다 쓸수 있었다.
“설민씨. 이제 퇴원하셔도 될 것 같아요.”
다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가면 사무직이나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깐 그렇게 걱정 없었다.
정 안되면 곰돌이 눈알이라도 붙일 수 있었다.
어차피 어머니 께서 도착하시면 퇴원할 때 조금 편하겠지만...
그 전에 전부 퇴원 수속을 내 스스로 밟고 하고 싶었다.
살아서 나간다는 그런 첫번 째 걸음.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무과로 내려갔다.
이렇게 긴 거리를 혼자서 가는 것은 처음이여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꾹 참고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무슨일로 오셨어요?”
밝은 미소의 창구 여직원분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퇴원수속 밟고 싶은데요.”
“네. 잠시만요.”
그 여직원분은 약간 컴퓨터를 만지더니 나에게 말했다.
“미납금을 완불하셔야 하는데, 오늘은 다 가져 오셨나 봐요?”
“네? 미납금이요?”
여직원의 입에서 ‘아차’라는 말이 나왔다 들어가는 게 그리고 그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천천히 굳어지기 시작하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네? 다시 한 번 말해봐요. 미납금이요?”
“아뇨. 아뇨. 음...”
“아까! 말했잖아요! 미납금이라고! 무슨말이에요!”
난 큰소리로 소리치며 그 탁자를 손으로 쳤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런 것을 아랑곳 할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뒤쪽에 있는 덩치가 있는 남자사원이 일어서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 남자사원은 나를 자제 시킨 후 안쪽에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갔다.
모든 소리가 죽어버린 이곳에서 나는 그 자리에서 사고 날 때 겪었던 ‘죽는다’ 라는
심정보다 더 아픈 것을 느낄 수 있다.
“설민씨. 죄송한데요. 수술비 일부만 제외하고는 아직 금액을 못내고 있어요.
원래 말하지 말라고 어머니께서 신신당부하셨는데, 우리 직원이 어려서 아직 잘 몰라봐요.
설민씨도 성인이고 그러니깐, 알꺼 아니에요.”
“얼마 밀렸는데요?”
직원이 말한 금액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그 직원은 완납을 하기전에는 병원을 못
나간다는 말과 당분간은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세상이 무너지고, 내 마음도 무너졌다.
나 때문에, 우리집은 빚더미에 올라버렸다.
가슴이 아파왔다. 몸이 아픈 것보다 가슴이 아프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 일줄은 전혀 몰랐었다.
역시 신은 없었다. Give and Take.
현실이란... 주는 게 있으면 가져가는 것도 있었다.
신이 나에게 시험을 주시는 건가... 악마나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건가
“엄마! 나핝테... 나한테... 거짓말 했어? 병원비 밀렸다면서..."
“걱정마..... 아는 사람이 곧 준다고 했으니깐... 곧 해결 될 거야.”
“뭐가 해결 돼! 뺑소니라면서,,, 병원비 한 푼도 못 받았다면서! 보험금도 거짓말이지.
우리집 형편에 보험금이 어디 있어!!! 엄마 허리도 돈 없어서 병원 못가는 거 나 뻔히 아는데!!!!”
불쌍한 나의 엄마는 죄라도 진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이 그만 하라고 하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려왔다.
-덜컹.. 쿵!-
너무 흥분한 나머지 휠체어가 내 격렬 한 움직임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난 바닥에 나뒹굴어 졌다.
동생이 깜짝 놀라서 내게로 다가왔지만.
“**! 꺼져!”
동생에게 소리 친 후 내 분을 이기 못해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을 손으로 쳤다.
손에서 피가 나왔지만... 그런것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손의 고통과 마음의 아픔이 내 머리끝까지 올라왔을 때 바닥을 움켜잡고 한 참을 울었다.
엄마와 동생이 잘못한 것은 아니였다. 정작 잘못했던 건 나였다.
내가 모든 원인을 제공했고, 내가 가장 나쁜 놈이였다.
엄마는 나 때문에 괜시리 고생만 하시는 거였다. 우리 남매를 뒷 바라지 한것도 엄마였고, 그런 엄마의 마음에 비수를 꽂아 버린 것도 나였다.
머리로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 다는 것을 알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내 인생이 원망스러웠다.
그 후로 나의 하루 일과는 멍하니 창 밖을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돈에 묶어 버린 이 하얀 감옥 안에서...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