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산신의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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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년 정도 전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구마모토현의 어느 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 곳은 대단한 시골로, 전교생 수가 백명도 안 되는 매우 작은 학교였다.
도쿄 토박이었던 나에게 큐슈로 이사 가는 것은 불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타지에서 온 나에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요리를 잘 못하는 나를 위해 반찬을 가져다 준다거나, 마을 잔치에 초대해주는 등 많은 배려를 받았다.
그 덕에 어느 정도 불편한 것은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도쿄보다 즐거웠었다.
그리고 부임한 지 2년 정도 되자, 나도 어느새 꽤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은 없지만, 시골에서는 그 나름대로 즐거운 것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산에서 노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은 학생들이었다.
도시의 아이들과는 달리, 그 아이들은 대부분 일년 내내 산에서 놀고 있었다.
물론 도시 아이들처럼 야구나 축구를 하기도 하고, 비디오 게임도 즐겨 했었다.
하지만 비중으로 따지면 단연 산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가장 많았다.
처음에 나는 아이들끼리 산에 가면 위험하지 않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주변의 선생님이나 학부모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도시에서만 살던 나에게는 이 곳이 위험한지 아닌지 전혀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함께 산에 가서도 [선생님, 그 쪽은 위험해요.] , [헤엄은 여기서만 쳐야 되요.] 라고 한 수 배웠을 정도였다.
내가 학생들에게 배운 것 중 특히 놀라웠던 것은 낚시였다.
아이들은 스스로 대나무를 자르고, 낚싯대를 만들었다.
시냇가에서의 낚시는 금새 나를 매료시켰다.
나는 거의 매일 학교가 끝나면 산기슭의 시냇가로 나가 낚싯줄을 늘어트렸다.
처음에는 미끼를 끼우는 것도 힘들어했지만, 점점 물고기를 낚는 맛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학생들이 놀랄 정도로 낚시에 빠졌다.
낚은 물고기는 그 자리에서 잡아서 모닥불에 구워먹었다.
은어 같은 물고기는 민물고기 특유의 냄새도 없어서 매우 맛있었다.
여름도 반쯤 지나가고, 추석이 막 지나갔을 무렵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시냇가에 나가 평소보다 상류로 올라갔다.
학생들은 상류로 올라가는 것은 꺼리고 있었지만, 그 때 나는 등산 장비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걷기 시작하고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나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강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는 사이, 어느새인가 안개가 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짙어서, 팔꿈치 아래 쪽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무렵에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어둠이 찾아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금새 산에 내리쬐던 햇빛은 사라지고, 갑자기 공기가 차가워졌다.
그런데도 변함 없이 안개는 짙게 끼어 있었다.
어떻게든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나는 섣불리 안개 속을 움직이지는 않기로 했다.
큐슈에는 곰 같은 큰 육식 동물이 없다.
비록 여기서 밤을 새더라도 짐승에게 습격당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장비를 제대로 챙겨오고 있었다.
낚시도구 뿐 아니라 전기 랜턴도 가져왔던 것이다.
나는 산에서 하루를 보낼 각오를 하고, 근처에서 마른 가지를 찾아 신문지에 불을 붙여 모닥불을 피웠다.
산에 갈 때 신문지가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하다고 가르쳐 준 학생들에게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브랜디를 꺼냈다.
산에 갈 때면 챙겨오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나는 술이 강한 편은 아니기에 많이 마실 수는 없지만, 그 대신 그만큼 좋은 술을 마신다.
그 때는 마침 브랜디에 꽂혀서 잔뜩 모아두고 있을 때였다.
모닥불을 쬐면서 안개 속에서 브랜디를 조금씩 마신다.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칼로리 밸런스를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비교적 부드러운 곳을 찾아 누웠다.
습기가 심하긴 했지만, 젖어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푹신한 부엽토 덕에 기분이 좋았다.
눕자마자 잠이 몰려와, 나는 정신을 잃는 것처럼 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갑자기 눈을 떴다.
모닥불 근처에 누군가 있었다.
나는 놀라서 일어났다.
그 사람은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가지를 꺾어 불 안에 던졌다.
노인이었다.
나이는 70대 정도로, 수염이 길게 자라 있었다.
삼베옷을 입은채, 놀란 나를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내가 조심스럽게 인사하자, 가볍게 인사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또 가지를 꺾어 불에 던졌다.
어떻게 보더라도 현지 사람이었다.
유령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하물며 요괴일리는 전혀 없었다.
[불을 살펴봐 주고 계셨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싱글벙글 웃으며 내 손에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브랜디였다.
[아, 한 잔 하시겠습니까?]
노인은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고 품 속에서 이상한 모습의 잔을 내밀었다.
[우와, 연꽃의 꽃잎입니까?]
풍류가 넘치는 그 모습에 나는 감동 받았다.
분명 이 사람은 우아한 정취가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세련될 수가 없다.
큰 연꽃의 꽃잎에 나는 브랜디를 따랐다.
노인은 브랜디를 본 적이 없는 듯, 매우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입에 맞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쪼록 한 잔 하시지요.]
노인은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잔을 들이켰다.
가슴을 지나가는 뜨거움에 고개를 숙였다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정말 기뻐하는 것 같은 얼굴이어서, 술을 권한 나까지 행복한 기분이었다.
[마음에 드셨습니까? 외국에서 온 브랜디라는 술입니다.]
노인은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품 속에서 잔 하나를 더 꺼내 나에게 주었다.
물론 연꽃의 꽃잎이었다.
밤이슬에 젖어 무척 부드러웠다.
노인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의 잔에 브랜디를 따라 주었다.
물론 나도 노인의 잔에 한 잔 더 따라드렸다.
우리는 건배를 하고 함께 술을 마셨다.
연꽃 잔에 따른 브랜디는 놀라울 정도로 달고 향기로웠다.
그리고 나와 노인은 함께 술병이 비도록 신나게 술을 마셨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노인의 모습은 없었다.
대신 머리맡에 물고기가 몇 마리, 비쭈기 나무의 가지로 매여서 놓여 있었다.
게다가 손 안에는 잔으로 썼던 연꽃의 꽃잎이 남아 있었다.
[답례로 놓고 가신걸까?]
우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감탄했다.
안개는 완전히 걷혀 있어서, 나는 그 길로 집에 돌아갔다.
이틀 뒤 나는 방학인데도 학교에 나와 있던 학생들에게 그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놀라는 것이었다.
학생들 뿐 아니라, 주변에서 풀을 뽑고 있던 교장 선생님까지 내게 다가오셨다.
나는 자세히 노인에 관해 이야기했다.
상냥한 할아버지로, 매우 말이 없었지만 함께 술을 마셨다고.
게다가 선물로 물고기를 주었다고 말이다.
아이들은 [우와!] 라고 신기해하고, 교장 선생님은 [이야, 자네는 운이 좋구만!] 이라며 등을 두드리며 웃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내가 [혹시 유명하신 분인가요?] 라고 묻자, 그 노인은 산신령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산신령은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데, 노인부터 소녀, 가끔씩은 동물로도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보통 다른 지방의 산신령은 매우 못생긴 여자라지만, 구마모토현의 산신령은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난 것은 아쉽게도 미녀는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상냥한 분이었다.
그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노인을 만난 적은 없다.
단지 가끔 브랜디를 그 곳에 두고 돌아가면, 다음날에는 반드시 없어져 있었다.
술의 답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는 신기하게도 물고기가 잘 잡혔다.
나는 지금 시코쿠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지만 그 때 그 체험만은 잊을 수 없다.
결혼할 때 지금의 아내에게 [난 산신령과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당연히 아내는 웃었기 때문에, 나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연꽃으로 만든 술잔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꽃잎은 시들지 않고 지금도 촉촉하게 젖어있다.
언젠가 다시 그 노인과 즐겁게 술을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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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늘의 유머 VKRKO
http://todayhumor.com/?humorbest_442269
2012년에 양질의 괴담을 번역하여 올려주셨던 VKRKO 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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