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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가을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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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40 회 작성일 24-08-02 17: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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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여인
 


 


그 오솔길은

큰 길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오솔길에 불연 듯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저 오솔길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그런 호기심이었습니다.

나는 그 오솔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오솔길은 좁았고,

양 옆에는 숱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숱은 막 단풍을 시작하는지

울긋불긋한 색깔을 머금고 가을을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한 십 분쯤 걸었을 때였습니다.

족히 수 십 그루의 나무를 쳐낸 듯싶은 공터가 나왔고,

그 공터에는 겨우 흉물을 면한 콘크리트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 건물에는

‘라면’ 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간판 집에서 제작하여 붙인 간판은 아닌 듯 했습니다.

서툰 글씨체가 그걸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빛바랜 페인트칠의 밀문을 열고 그 건물 안에 들어서자

칠팔 평 남짓의 홀이 나를 맞았습니다.

탁자 서넛이 그 건물이 식당임을 유일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탁자들 한 가운데에 난로가 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지난해 설치해 놓고는

주인의 게으름으로 봄과 여름이 지나도록 치워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 난로는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럭비공 보다 클까 말까한 크기였습니다.

나는 탁자의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장식물이라곤 없었습니다.

식당이라면 으레 붙어있기 마련인 소주회사 포스터 한 장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하얀 페인트칠을 한 사방 벽에는 온통 낙서였습니다.

주인이 벽에 하얀 페인트칠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낙서 한 가운데에 메뉴를 써 넣은 두 장의 종이가 붙어있었습니다.

한 장의 종이에는 ‘호호라면’ 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나머지 한 장에는 ‘그냥라면’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냥라면’ 이라면 말 그대로 그냥 라면일 터였고,

‘호호라면’은 짐작이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홀 모서리의 조그만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섰습니다.

그 가게의 주인이었습니다.

멜빵의 바지를 입고 목이 긴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대단한 거구였습니다.

그리고 배가 좀 심하다 싶을 만큼 나와 있었습니다.

그 멜빵 아저씨는

담배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멜빵 아저씨의 거구와 럭비공만큼 한 쬐끄만 난로가 주는 언밸런스 ―.

그 언밸런스는 나에게 묘한 정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라면 먹을 거야?”

멜빵 아저씨는 스스럼없이 그렇게 반말지거리였습니다.

그 반말지거리 역시 나에게 정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예, 호호라면으로 해 주세요.”

“혼자 오는 사람에게 호호라면은 안 팔아. 그냥라면 먹어.”

나는 ‘그냥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죠?”

“이천 원이야.”

“예? 왜 그렇게 비싸요? 자장면도 천 원 밖에 하지 않는데…”

“호호라면은 싸. 천 원이야.”

나는 라면 값을 치르고,

벽 한쪽에 낙서를 했습니다.

― 젠장, 호호라면은 팔지도 않고,

난로는 쇠 부랄 보다도 작고,

주인아저씬 고릴라 몸집보다 크고,

그러나 담에 또 올 거야. ―

그런 낙서를 남긴 나는 다시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또 십여 분 걸었을 때였습니다.

오솔길 옆의 나무 둥지에 붙은 작은 푯말이 내 눈에 뜨였습니다.

그 푯말에는,

‘강변찻집’ 이라는 예쁜 글씨가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화살표와 함께

‘500m만 더 걸으세요.’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예쁜 글씨하며 문구의 어휘가

그 푯말을 붙인 사람이 여성임을 단번에 알아보게 했습니다.

‘이 오솔길의 끝이 여성이 하는 찻집이라… 괜찮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백 미터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오백 미터를 삼사십 미터 남겨두었을 때,

숲 사이로 어떤 물체가 보였습니다.

조금 더 다가갔습니다.

그 물체는 ‘강변찻집’ 건물이었습니다.

목조로 지은 아주 아담한 건물이었습니다.

‘숲속 강변의 찻집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내 귀를 간질이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소리는

‘유모레스크’의 바이올린 선율이었습니다.

* 유모레스크(Humoresque)는 기악연주의 한 형식인데,

드보르의 7번 유모레스크가 워낙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은 유모레스크가 드보르 작곡음악의 제목인줄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피아노곡이었으나, 바이올린 연주가 일품입니다.

나는 그날의 감흥을 잊지 못하여

유모레스크를 지금도 나의 휴대폰 컬러링으로 쓰고 있습니다. *

‘강변찻집’의 마당은 잔디가 깔려 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잎이 무성한 나무들로 울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 탁자들이 있었고,

나무둥지에는 스피커가 달려있었습니다.

그때의 ‘유모레스크’는 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아무 탁자에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여인이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커피 드릴까요?”

“커피 말고 다른 차는?…”

“저희 집엔 커피와 우유 밖에 없는데…”

“예, 좋아요. 커피 주세요.”

그런데,

그 여인의 얼굴이나 인상은 생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대하던 얼굴이었고,

숱하게 머릿속에 그리던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얼굴 그 인상을

언제 어떻게 마주해 봤는지 기억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때가 가을인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인상에 가을 내음이 짙게 풍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그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찻집 이름이 강변인데, 강이 보이질 않네요?”

“강변찻집에 강이 없어서는 안 되죠. 저 가게 뒤쪽에…”

“아하, 가게 건물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거였군요.”

“가게 뒤로 가 보면, 나루터도 있어요.”

“나루터?… 어딜 왕래하는 나룻배죠?”

“을숙도 갈대밭이에요.”

“그럼 뱃사공도 있겠군요?”

“그럼요, 귀머거리 뱃사공인데. 너무 근사한 할아버지에요.”

그렇게 대화를 해 봤지만,

내 기억은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나는 그날 그녀에게 빠져들었습니다.

가을 내음을 풍기는 인상 ―.

서늘한 눈매와 고르고 하얀 치아 ―.

약간 각이 있지만, 그게 오히려 이지적으로 보이게 하는 턱선 ―.

낮은 톤이고 약간의 비음이 섞였지만 낭랑한 목소리 ―.

이러한 것들이 나를 흡인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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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매일처럼 ‘강변찻집’을 찾았습니다.

‘강변찻집’에 갈 때마다

오솔길 변의 그 라면집도 들렀습니다.

그러나 나는 ‘호호라면’을 먹을 순 없었습니다.

“호호라면은 혼자 오는 손님에게 팔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냥라면 먹어.”

이렇게 멜빵 아저씨에게 번번이 퇴짜를 당했던 것입니다.

------------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좀 이른 시각에 ‘강변찻집’엘 갔습니다.

가을안개가 짙게 낀 날이었습니다.

‘강변찻집’은,

낮게 깔린 안개 너울에 고즈넉이 싸여 있었습니다.

그녀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나는 가게 문을 밀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녀의 다섯 살짜리 아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장난감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림.”

“그림 그리고 있다구?… 어디서?”

꼬마는 고개를 틀어 턱을 비쭉이 내밀고는

‘저어기’ 하며 뒤쪽을 가리켰습니다.

나는 가게 뒤로 갔습니다.

그녀는 이젤 앞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그러한 모습을 오래도록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개에 싸여 그림을 그리는 여인 ―.

그건 내가 간간히 머리에 그려보는 아름다운 영상이었습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을숙도의 갈대밭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캔버스에는 안개에 덮인 갈대밭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갈대밭을 그린다 ―, 그럼 상상화인가요?”

“어머! 깜짝이야. 언제 왔어요. 이렇게 이른 시각에…”

나는 그녀의 그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물음을 계속했습니다.

“상상화인가요?”

“아녜요. 사실화예요.”

“안개에 가려 갈대밭이 보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상상화?”

“모든 그림은 상상이 섞여 있어요. 상상이 없다면, 그건 사진이지 그림이 아녜요.”

“그렇긴 하네요. 근데, 상상을 하며 그릴 그림이라면 가게 안에서 그려도 될 텐데…”

“가게 안엔 안개가 없잖아요… 안개가 내 살갗에 닿아야 안개의 느낌을…”

“그렇군요. 시나리오 작가가 상황을 체험하는 것과 같은 이치군요.”

나는 한 달여 동안 ‘강변찻집’을 드나들며,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드가와 피카소, 그리고 김홍도와 천경자를 들먹이며,

미술 얘기를 했고,

드보르와 슈베르트, 그리고 서태지와 조용필을 들먹이며,

음악 얘기를 했는가 하면

박경리 조정래 이문열을 들먹이며

문학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전혜린의 죽음에 대하여도 얘기했습니다.

안개 낀 그날,

우리들의 얘기는 어떻게 하다 보니 ‘라면집’으로 흘렀습니다.

“그런데, 난 그 호호라면이란 것을 한 번도 먹어보질 못했어요.”

“그랬을 거예요. 그 아저씬 혼자인 손님에게는 절대 팔지 않거든요.”

“그 호호라면이 도대체 뭐죠? 훈이 엄마는 먹어봤어요?”

“아뇨, 나도 아직… 근데, 다른 사람이 먹는 건 본 적이 있어요.”

“뭔가요?… 값은 오히려 그냥라면보다 싸다는데…”

“별거 아녜요. 남녀 커플이 한 그릇에 담긴 라면을 호호 불면서 먹는 거예요.”

그런 대화 끝에,

그녀는 멜빵 아저씨에 대하여 얘기해 주었습니다.

멜빵 아저씨는 원래 성악을 전공한 오페라 가수였다는데,

그녀는 그가 노래 부르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음반 같은 그 흔적조차 본적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멜빵 아저씨는 가곡을 부르는 소프라노 가수와 결혼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긴 열애 끝에 막상 결혼을 해 보니,

그 소프라노 가수가 지독한 독신주의자였다는 것입니다.

소프라노 가수는 섹스를 밝혔지만 한 침대에서 잠자는 것을 거부하려 했고,

일상생활도 따로 하길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 소프라노 가수는 결국 멜빵 아저씨에게 별거를 선언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선언은 이혼으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듣고,

멜빵 아저씨가 ‘호호라면’에 집착하는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멜빵 아저씨에 대한 얘기를 끝낸 그녀는

나에게 라면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호호라면’을 먹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라면집에 갔을 때,

멜빵 아저씨는 탁자에 우두커니 앉아 파이프 담배를 빨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이런 인사말을 거의 동시에 했습니다.

그러나 멜빵 아저씨는 우리를 전혀 반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멜빵 아저씨는 파이프 담배 연기를 두어 번 내뿜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어이 붙었군.”

‘붙었군.’ 앞에 ‘흘레’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멜빵 아저씨는

‘기어이 흘레를 붙었군.’

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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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붙었군.”

그 말이 ‘년과 놈이 기어이 흘레붙었군.’ 이라는

말의 축약된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그녀는

기분 나쁜 표정도,

부끄러운 표정도,

당황해 하는 표정도 짓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멜빵 아저씨의 그 축약된 말을 풀지 못했는지,

풀긴 했으나 멜빵 아저씨의 말투가 원래 그래서 그러려니 했는지,

아무튼 그녀의 표정은 무덤덤했습니다.

그날, 그녀와 나는 처음으로 ‘호호라면’을

정말 호호 불어가며 먹었습니다.

그리고 멜빵 아저씨는

그 이상 해괴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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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이었습니다.

나는 서울의 그녀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때? 부산생활이…”

“그냥 그렇죠 뭐.”

“과부 아줌마랑은 많이 엉켰어? 그 버릇이 부산이라고 가시진 않았을 테고…”

“과부 아줌마라니… 표현을 그렇게 밖에 못해요. 누나가 천박해 보이잖아요.”

나는 그녀의 ‘과부 아줌마’라는 표현에

강변의 그녀가 떠올라 잠시 당황했고,

그 당황함을 메우느라 그렇게 대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 원래 천박하잖아. 그럼 과부 아줌마를 어떻게 표현해야 돼?”

“미망인이나 이혼녀… 뭐 그런 표현 있잖아요?”

“그래 좋아. 미망인이랑 이혼녀랑 많이 엉켰어?”

‘엉켰어’ 라는 표현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꼭 강변 그녀와 섹스를 했느냐고 묻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나는 ‘그녀’와 ‘섹스’ 는 전혀 별개의 개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가을 내음이 물씬 풍기는 그녀에게

색정의 이미지가 스며들 틈이 도무지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와 섹스 이미지를 접목시켜보는 것 자체가

그녀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엉켰어가 뭐예요. 다른 표현도…”

“오늘은 웬 표현 타령이야?”

“가을이잖아요. 가을밤에 쓰는 표현치곤…”

“알았어. 가을밤에 어울리는 표현을 해 주지.”

서울의 그녀 말투에 비아냥거림이 섞였습니다.

평소 그런 음탕한 말투를 좋아했던 내가 새삼스럽다는 투였습니다.

“그래야죠. 어디 해 보세요”

“씹!… 미망인과 씹 많이 했어?… 어때? 가을밤에 어울리는 표현이지?”

“누난 못 말려. 근데, 이 밤에 웬 전화예요.”

“너, 이젠 부산 과부랑은 씹 못하게 되었어.”

“왜요?”

“회사에서 복귀명령이 났어. 다음 주 월요일부터 서울 사무실로 출근해야 해.”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나는 ‘라면집’과 ‘강변찻집’을 찾았습니다.

작별을 고해야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의미 있는 가을을 보냈습니다.”

“저도 그랬어요. 상수씨로 해서 올 가을이 좋았어요.”

“이 ‘강변찻집’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을 겁니다.”

“그럼, 다시는 부산에 올 일이 없나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다시 오도록 노력은…”

“아니, 노력까지는 …”

‘강변찻집’에서 그렇게 작별의식을 치른 나는

‘라면집’으로 갔습니다.

멜빵 아저씨는

처음 그때의 그 모습으로 나를 맞았습니다.

멜빵바지, 긴 장화, 담배 파이프,

그리고 무표정 ―

그 모든 것이 처음 그대로였습니다.

“혹시, 다음에 또 여기 올 수 있어?”

“글쎄요. 다시 오려고 노력은 하겠습니다만…”

“담에 올 때는 호호라면을 같이 먹을 처자와 같이 와. 강변 그 여편네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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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온 나는,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동분서주 했습니다.

그러던 사이, 그해 가을은 점점 물러서고 있었습니다.

가로수의 낙엽이 거의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가 오소소 추위에 떨 무렵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다니던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촬영장소가 필요했고,

그 장소 헌팅을 위해서 그 학교의 영상자료실을 찾았던 것입니다.

나는 자료실에서 ‘가을’과 연관이 있을 것 같은 영화들을 골라냈습니다.

그 골라낸 영화중에는

‘만추(晩秋)’ 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내가 골라낸 ‘만추’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무렵인 1960년대 초반에 제작된 영화였는데,

물론 흑백이었고,

이만희 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나는 그 영화를 학교 다닐 때,

바로 그 영상 자료실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 영화 ‘만추’ 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이만희 감독의 ‘만추’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작품성이 떨어집니다.

리메이크 된 영화는 칼라였지만,

흑백인 이만희 감독의 영화보다 영상미가 훨씬 떨어집니다.

리메이크 영화에는 당시 내노라하는 여배우가 출연하지만,

흑백영화의 ‘문정숙’ 이라는 여배우의 심오한 연기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리메이크 된 영화의 시나리오를

각종 영화제에서 시나리오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가 각색했지만,

전문 작가가 아닌 이만희 감독이 쓴 오리지날 시나리오가

훨씬 문학성이 높습니다. ―

나는 그 ‘만추’ 영화의 필름을 영사기에 걸었습니다.

첫 장면 화면 가득히 낙엽이 떨어집니다.

이어서 카메라는 낙엽 떨어지는 어느 공원을 멀리서 비춥니다.

벤치의 한 켠으로 어떤 여인이 앉아 있고,

멀리서 청소부 할아버지가 낙엽을 쓸면서 여인 곁으로 다가옵니다.

카메라는 천천히 줌업(Zoom up)하여 여인의 모습을 점점 크게 잡습니다.

여인은 바바리코트 차림이었으며,

코트의 깃을 올리고 있고,

긴 머리가 코트 깃 위로 흘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머플로로 얼굴을 감싸고 있습니다.

여인의 얼굴이 점점 확대되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가벼운 전율을 느껴야했습니다.

영화화면에 ‘강변의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수에 젖은 영화 속 여인은 강변의 그녀와 너무 닮아있었습니다.

가을 내음을 풍기는 인상 ―.

서늘한 눈매와 고르고 하얀 치아 ―.

약간 각이 있지만, 그게 오히려 이지적으로 보이게 하는 턱선 ―.

‘영화 속 여인’과 ‘강변의 그녀’는

모두 이 같은 인상과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내가 강변의 그녀를 처음 대했을 때,

그녀가 전혀 생소하지 않았던 이유,

어디서 많이 마주했던 느낌을 받았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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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해 여름이 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일에 쫓기느라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녀가 보고 싶었습니다.

부산사무소에 근무할 명분을 만들고,

서울의 그녀에게 졸라대고 하여

나는 기어이 부산사무소 근무 발령을 얻어내었습니다.

부산에 도착한 나는

숙소에 대충 짐을 정리하고 강변찻집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나를 매우 반겼습니다.

얼굴에 좀처럼 띄지 않던 홍조를 띄기까지 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난 축제를 해야죠?”

“축제?… 어떻게?…”

“우리, 을숙도 갈대밭에 가요. 나룻배 타고…”

“지금은 볕이 너무 뜨거울 텐데… 아직 가을이 온 건 아니잖아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강이 있고 갈대가 있는데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나룻배를 탔습니다.

귀가 먼 뱃사공 할아버지는

노를 저어 배를 띄우기 전에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뱃사공 할아버지는 귀가 멀었을 뿐만 아니라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수화로 그녀와 대화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죠?”

“호호, 상수씨가 누구냐고 묻고 있어요.”

“그래서요, 누구라고 했어요.”

“우리 훈이를 예뻐해 주는 나의 남자친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요?”

“아주 좋은 사람 같다고 하시네요.”

우리가 강을 건너 을숙도에 도착한 건 오후 세시쯤이었습니다.

햇볕이 한 여름 못지않게 따가웠습니다.

갈대밭은 배에서 내리자 바로 펼쳐졌습니다.

우리는 갈대를 헤쳤습니다.

앉아서 얘기를 나눌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녀는 몹시 덥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녀에게서 따가운 햇볕을 차단시켜줄 어떤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나는 키가 큰 갈대로 우거진 어떤 장소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내가 간이 원두막을 지어드릴게요.”

“어떻게 원두막을…”

“두고 보세요.”

나는 갈대 수 십 그루를 바닥에 뉘었습니다.

평평한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자리는 사방으로 갈대가 우거져있었습니다.

나는 어느 한쪽 갈대와 반대편 갈대의 끝자락을 묶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묶어나가자,

그 평평한 자리에는 지붕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갈대로 묶은 지붕은 얼기설기 했지만,

제법 지붕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햇볕을 가려줬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갈대 지붕의 조그만 원두막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조금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때요? 훌륭한 원두막이죠?”

“누가 지은 원두막인데…”

“좀 시원해요?”

“예, 많이 시원해요. 상수씨 마음이 햇볕을 가려주어서 그런가 봐요.”

우리는 그곳에서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원두막에 햇볕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원두막 안이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이어서 후두둑 소리가 들렸습니다.

빗방울이 갈대지붕을 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아요. 우리 돌아가요?”

“소나기인데, 좀 있으면 그치겠죠.”

“아녜요. 곧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요. 한 여름 소나기가 아니잖아요.”

“그렇더라도, 배가 있어야 강을 건너죠.”

“강둑에서 손을 흔들면, 뱃사공 할아버지가 와요.”

그녀와 나는 강둑에 서서 팔을 들어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강 건너 보이는 나룻배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어졌습니다.

나는 그런 와중에도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밤에 갈대밭을 찾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텐데(특히 남녀 단 둘이),

그때는 어떤 방법으로 뱃사공에게 신호를 보내느냐는 궁금증이었습니다.

“밤에는 어떻게 뱃사공에게 신호를 보내죠?”

“갈대 몇 잎에 불을 붙여 흔드는가 봐요.”

뱃사공 할아버지는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얼굴의 빗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안 되겠어요. 우리 저리로 가 봐요. 비를 피할 곳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래야 되겠네요.”

우리는 빗속을 헤치며 강둑을 걸었습니다.

강둑이 너무 좁았기 때문에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강둑을 걸었습니다.

그녀의 옷은 빗물로 흠뻑 젖었습니다.

옷의 엷은 천이 살갗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나신(裸身) 굴곡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잘록한 허리의 곡선 ―.

육감적으로 흘러내리는 등허리 ―.

조금은 크다 싶을 정도의 엉덩이 ―.

그 엉덩이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노란색 팬티 ―.

이러한 것들은 나의 욕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달래나 보지’의 전설에 등장하는 남매가 생각났습니다.

약초를 캐러 산에 갔다가 소나기를 만난 남매는

그날의 우리처럼 옷이 빗물에 온통 젖었습니다.

그 전설 속의 남동생이 꼭 나와 같은 욕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야말로 온갖 노력을 다하여

끓어오르는 욕정을 지워내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욕정을 느낀다는 것은

곱고, 그리고 신성하기 까지 한 그녀에게

구정물을 끼얹는 모독적 행위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찬 빗줄기를 헤치며 강둑을 걸은 것이 십여 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갈대를 걷어낸 공터가 보였고,

거기엔 어떤 음료회사의 비치파라솔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비치파라솔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미 맞을 만큼 다 맞은 비였고,

이미 젖을 만큼 다 젖은 옷이었지만,

그녀에게 우선 안도감을 주기 위하여

그렇게 비치파라솔을 받쳐 들었던 것입니다.

그녀와 나는

그 비치파라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그녀 뒤에서 비치파라솔을 받쳐 들고 걸었습니다.

그녀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녀의 젖은 몸에서 발산되는 체취가 내 후각을 자극했습니다.

그 체취는 씀바귀를 삶을 때 나는 내음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육신을 뒤에서 와락 껴안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억제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거리만큼 더 걸었을 때였습니다.

어떤 청년이 보였습니다.

그 청년은 영화 ‘티코’에 나오는 청년처럼

벗어재낀 윗몸에 조개로 만든 목걸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낚시도구 같은 게 들려져 있었습니다.

“가겟방 찾는교?”

“그래요, 여기에도 가게가 있나요?”

“그라믄, 날 따라 오이소.”

청년이 앞장서서 걸어 우리를 가게로 안내했습니다.

얼마 걸어가지 않아 가게가 나왔고,

우리는 그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낚시꾼들을 상대로 잡다한 것을 파는 가게인 듯 했습니다.

청년의 어머니인 거 같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아이고, 저 비 맞은 것 좀 보소. 감기 들겄네, 여름도 다 갔는데, 무신 쏘내기가…

어여 방에 들어가 옷 좀 말리소.”

우리는 아주머니가 방에 들어가란 말에 어정쩡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방에 들어가야 할지 몰랐고,

어느 방인지 알더라도 한 방에 같이 들어가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아닌가베. 그라몬 아지매는 저 안방에, 아저씨는 저 정지방에 드가이소.”

나는 아줌마의 그러한 조치에 적이 안도했습니다.

그녀와 같은 방에 들었다가는 끓어오르는 내 욕정이

나로 하여금 어떤 일을 저지르게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시간 쯤 옷을 말렸을 때 날이 걷혔습니다.

언제 소나가를 퍼 부었느냐는 듯 파란 하늘이 펼쳐졌습니다.

그 가게에서 우리가 팔아 줄 물건은 없었습니다.

나는 약간의 돈을 아주머니에게 내밀었습니다.

“방 사용료라 생각지 마시고 그냥 받아두세요. 감사의 표시입니다.”

“아이고, 이라믄 안되는데, 우짤꼬…”

우리가 나룻배에 올랐을 때,

서쪽 하늘엔 석양이 장엄하게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철새들이 무리지어 그 노을에 노닐었습니다.

그녀는 뱃전에 앉아 뱃사공 할아버지와 수화로 대화를 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왜 손을 흔들었는데도 와주시지 않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빗속의 우리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그랬다 네요.”

“훈이 엄마 말대로 멋쟁이 할아버지군요.”

---------------------------------

그해 가을이 무르익을 때였습니다.

그날은 계절답지 않게 비가 추적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강변찻집’에서 가을비에 취해있었습니다.

가을과 비에 관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난, 비가 내리면 학교 앞 다방에서 듣던 노래가 생각나요.

그런데 그 후로는 그 노래를 통 들을 수가 없어요.”

“어떤 노래인데요?”

“제목을 몰라요. 비오는 날 다방에 앉아 있으면 꼭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었죠.”

“그럼 한번 불러 봐요.”

“아이, 제목도 모른다는데…”

“그럼 허밍으로…”

그녀는 나지막이 허밍을 하였습니다.

그 노래는 그리스의 3인조 보컬그룹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Rain and tears’였습니다.

“아, 그 음악 「아프로데테스」의 ‘레인 엔 티어즈’네요.”

“어머, 이 노래 아세요?”

“그럼, 알죠. 내가 무척 좋아했던 노래예요.”

“어머, 어쩜… ‘레인 엔 티어즈’ 라면 우리 말 제목은 ‘비와 눈물’이겠네요.”

“처음엔 그랬죠. 그러나 나중엔 ‘눈물이 비 오듯’으로 바뀌었죠.”

나는 그녀에게 ‘Rain and tears’에 대하여 소상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Aphrodites Child의 탄생에서부터,

그들이 이 노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팝시장의 해적이었죠.

국제저작권기구에 가입하지 않아서

외국의 팝을 제작사의 허락도 없이 마구잡이로 복사해서 유포시켰어요.

그래서 그런 과정으로 제작된 음반을 ‘해적판’,

혹은 디스크 쟈켙이 백지로 되었다고 해서 ‘빽판’이라고 불렀죠.

그런데, 그 해적판에 노래의 제목을 붙여야 하는데 자주 해프닝이 벌어졌죠,

‘Obradi Obrada’를 ‘벼룩시장’ 이란 제목을 붙이기도 했을 정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노래도 ‘비와 눈물’이란 제목이 붙여졌었군요.

그럼, ‘눈물이 비오 듯’은 어떻게…”

“최동욱이라는 라디오 DJ가 개칭했죠.”

그녀는 그 노래를 무척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소장하고 있던 팝음악 테이프를 모두 틀어놓고

그 음악을 찾는데 열중했습니다.

그녀에게 디스크는 아니더라도 녹음된 테이프라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두 시간 정도의 노력 끝에 나는 그 노래를 찾을 수 있었고,

그 노래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시켰습니다.

작업이 다 끝났을 때는 열시 가까운 시각이었습니다.

당장 테이프를 그녀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지만,

내가 ‘강변찻집’에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테이프를 주머니에 넣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어서 빨리 기뻐하는 그녀가 보고 싶었고,

그 노래를 듣는 그녀 얼굴 표정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변찻집’은 한밤의 고요함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게에서 불빛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리곤 유리문을 통하여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가게에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그녀였고,

또 한 사람은 멜빵이었습니다.

멜빵은 탁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서 있었고,

그녀는 그 앞에 쪼그려 있었습니다.

멜빵의 바지는 무릎 아래로 내려져 있었고

그녀의 스커트는 허벅지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습니다.

멜빵의 입에는 파이프가 물려있었고,

그녀의 입에는 남자의 성기가 물려있었습니다.

멜빵의 한 손은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있었고,

그녀의 한 손은 자신의 팬티 속에 들어가 음부를 비벼대고 있었습니다.

멜빵의 입술 사이에서는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는 침인지 멜빵 자지의 걸물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멜빵의 눈에서는 음탕한 빛이 발해지고 있었고,

그녀의 눈에서는 광기서린 색정의 빛이 뿜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냥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뒤돌아섰습니다.

그리곤 어둠을 헤치고 달렸습니다.

되도록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습니다.

나는 달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건 배신이야!… 내 영혼에 대한 배신이야!… 두 얼굴의 여자! 가증스러워…’

나는 오솔길을 벗어나기 전에,

주머니에서 테이프를 꺼내 숲속으로 던졌습니다.

숙소에 돌아온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서울의 그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녀가 수화기를 들자 앞뒤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나는 내게 있어서 이 세상 최고 여자예요. 사랑해요, 미치도록…”

그녀는 나의 두서없는 넋두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나의 넋두리가 끝을 맺자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또 상처를 입었구나. 어서 서울로 올라 와. 내가 안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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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

나는 그런 일이 있고,

일 년여를 ‘배신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내가 안정을 찾은 것은,

가을을 두어 번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십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그곳(사람들은 그곳을 ‘에덴공원’이라고 했습니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흔적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솔길도

내가 테이프를 던졌던 숲도

‘라면집’도

‘강변찻집(실은 그 가게의 상호는 ‘강변 밀크숖’이었습니다.)도

나루터도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가 즐비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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