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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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이
나는 엄연히 한준석 이라는 이름이 있다. 호적에도 할아버님께서 그렇게 올리셨고, 주민등록증에도 그렇게 씌여 있다. 군대에서도 그렇게 호칭 되었건만 고향에만 내려가면 나는 개똥이로 불렸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 때문이던가, 나는 어려서부터 고향 사람들이 나를 개똥이라고 부르는 것에 더하여 아버님이나 어머님도 개똥어멈, 개똥애비 라고 부르는 것에 치가 떨리도록 진저리를 쳤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는 무작시리 폭염이 강타하던 여름이었다고 한다. 텃밭에 나가 하루종일 땀을 흘리며, 피도 뽑고, 모자라는 물타박을 하면서 서로가 논에 물을 대려고 쌈박질을 하던 그 당시, 사람들은 복날, 몸보신에 그만이라는 개를 잡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집에는 그 당시, 복슬 강아지 새끼 한 마리가 떡 하니 버티고 앉아서 논에 나간 가족들을 대신해서 집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한다. 말이 복슬 강아지지, 할아버님의 말씀에 의하면 먹음직 하게 생긴 똥개 였다나? 논일을 하다 말고, 어머님께서는 덮쳐오는 진통으로 집으로 오시지도 못하고, 들녘에서 산파를 불러야 할 지경이 되었단다. 양수는 미리 터져서 온 고쟁이를 적시고, 진통이 쏟아지는 통에 어머님은 고래고래 고함을 쳐 대시면서 나 살리라고 아버님의 바지춤을 놓질 않으셨고….
‘아이구 임자, 이걸 놔야 내가 시방 댕겨올 것 아닌감?’
‘흐미, 나죽는 것….’
그 당시, 어머님께 아랫도리를 흠씬 붙들린 통에 아버님의 불알은 한 쪽이 부어서 짝불알이 되었다고 할아버님이 그러셨지만 믿을 수는 없었다. 산파를 부르러 가까스로 어머님의 손을 뿌리치고, 동네 아낙들은 임시로 원두막에 어머님을 모시고, 그 주위로 치마를 벗어서 둘러 쳤단다. 남정네들은 좋은 구경 났다며, 싱글벙글, 일손도 놓고, 원두막 주변에서 수박 서리하려는 동네 꼬마 녀석들 처럼, 눈에 쌍심지를 켜 대는 동네 아낙들의 눈치밥 에도 아랑곳 하질 않고, 비칠비칠 거드름을 피우며,
‘한여름 복날에 까 재끼는 걸 보니, 지난 겨울에 새끼 꼬다가니 배 맞아 부렀는 갑네. 낄낄낄…’
하며, 연신 농찌거리를 해댔다. 아버님은 이웃마을 산파를 부르러 가려고 달음박질을 하셨고, 다른 아주머니들은 가까운 집으로 끓인 물을 퍼오러 뛰어 다녔다. 산파가 도착하고,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어머님께서는 원두막에서 나를 출산하셨고, 어머님은 기진한 몸을 아버님 등에 기대어, 업힌 채,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였다. 정신 없는 와중에 집에 와보니 그놈의 강아지 새끼가 없어진 것이었다. 어린 새끼라 국거리도 안될 것을 어떤 후레 자슥들이 훔쳐갔던 모냥 이었다. 할아버님은 필시 윗동네의 젊은 것들의 소행일 거라고 곰방대를 바닥으로 내리치셨고, 아버님은 어머님을 바닥에 뉘여 놓으시기 무섭게 부리나케 윗 동리로 한걸음에 내달으셨다.
‘이장어른, 저 쪼가 봅서.’
‘뭔일이랴? 아니 아랫마을 한 서방 아닌 가베? 산달 다 않 됬남? 그래 워쩐 일이래?’
윗마을 이장님 앞에 아버님께서 내미신 것은 한 손 가득한 똥덩어리 였다.
‘워매, 이게 뭐당가? 흐미 냄시! 이거 똥 아니여?’
‘맞구만유. 그것도 우리 복실이 똥이랑게요.’
‘근디 개똥은 워치코롬 들고 이 난리랴? 누가 아프남?’
‘그게 아니구유, 오늘 저희 집사람이 출산을 혔는디, 진통이 워낙 심혀서 원두막에서 일을 치뤘어라, 근디 집에 떡 하니 가보니 이렇게 개똥만 남아 있잖여유? 이건 필시 이장님 동네의 그 젊은 것들이 훔쳐가, 지지고 볶아 먹은 것이 틀림없다 이말 이여유. 월매나 매가지를 끌려 갔을 판이면 질질 대며, 이렇게 똥을 싸 번졌겠시유!’
그 시간부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윗마을 이장님께서는 마을을 발칵 뒤집어 기어이 우리 복슬이를 훔쳐간 놈들을 색출해 냈고, 채 된장을 발라 쳐먹지도 못한 우리 복슬이는 개선장군 처럼 아버님의 손에 이끌려 아버님과 함께 똥내 풍풍 풍기시면서 자랑스럽게도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님 께서는 용타고 하시면서 아버님을 칭찬하시고, 동네 사람들도 모두 다 그 강아지가 명줄이 길다며, 혀를 놀렸다.
‘하이고, 워치코롬 찾아 냈다냐?’
‘다 수가 있지유.’
‘고것이 뭔디?’
‘냅다 달려 한참을 가는 디, 월래? 애까지 받아내고 긴장이 풀렸는지, 똥이 매렵지 뭐여유? 그리 혀서 길가 숲에 들어앉아 볼일을 보고 가려는 디, 그냥 맨손으로 갔다가는 사람 빙신 취급 당하고 면전박대 당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시유. 그래, 한 손에다, 싸 놓은 똥을 왠간히 틀어 쥐고는 우리 복슬이가 끌려가면서 싸질른 똥이라고 강짜를 부리면서 이장님께 들이댔다는 거 아녀유?’
그 날 이후로, 내 별명이 개똥이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식구들의 이름 앞에는 자랑스런 개똥이 언제나 붙어 다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향이 너무 싫었다. 그곳을 빠져 나오는 길은 오로지 공부 잘해서 도회지로 나가는 길 밖에 없었고, 유달리 영민했던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울에 올라와 자취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위아래 마을을 통틀어 서울에서 고등학교에다 대학까지 들어간 사람은 오로지 나 혼자 였고, 대학을 다닐 때에도 수도는 커녕, 전화도 변변히 없던 우리 동네에서 나는 이름하야 스타였다. 그러나, 나의 뒤 꼭지에 항상 따라다니던 촌놈이라는 명칭은 왠만 해서는 사라질 줄을 몰랐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에는 새로이 옮긴 하숙집으로 할아버님께서 올라오신 적이 있었다. 나이 드신 양반이 어떻게 길을 찾아 오실까 했지만, 기어이, 용케도 할아버님께서는 하숙집을 찾아 오셨다. 그런데,
‘준석 학생, 방에 있어? 이리 좀 나와 봐.’
‘네, 나갑니다.’
나는 촌시럽게 보이는 것이 하도 챙피 해서 열심히 서울말로 생활하려고 맹연습 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그런 촌구석 사람인지 금방 알아차리질 못할 정도로 나는 서울 말씨에 익숙해 있었고…
‘밖에서 어떤 갓 쓰고 도포 입은 노인 양반이 소리를 치고 계시는데, 그게 좀….’
‘왜 그러시는데요?’
‘아무래도 학생을 찾는 것 같아서….’
나는 할아버님께서 올라오실 것이라고 얘기도 해 놓은 터라 아무래도 할아버님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리 오너라!’
대문을 열고 나가니 아닌 게 아니라 할아버님께서 서 계셨다.
‘하이고 우리 개똥이 아닌가베?’
‘할아버지!’
나는 반가운 마음에 와락 할아버지를 껴 안았다. 그런데, 그 뒤에는 타고 오신 것 같은 포니 택시가 세워져 있었다. 운전기사도 함께….
‘저 맞게 찾아 왔는가 보네요, 휴 살았다. 학생, 할아버님께 말씀 좀 잘 해드리지…’
‘고연 놈, 뭔 말이 필요혀! 어여 냉큼 게오지 않구 설랑?’
‘아니,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개똥아, 이걸 좀 보란 말여. 이럴 수 있남?’
할아버님께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바로 할아버님의 버선발 이었다.
‘아니, 이게….’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까 전에 서울역에서 저 노인을 태웠는데, 아, 글쎄, 이곳에 다 와서 내리시라고 하니깐 안 내리시고 화만 내시는 거 아니겠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까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실 때, 고무신을 길가에 곱게 벗어두고 타신 모냥 입디다. 이거 원, 사람 사는 집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신발 벗어두고 택시 타는 촌사람은 살다 처음 보네. 아 거기까지는 좋다 이 말이요, 이제 와서 나보고 서울역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신발을 갖고 오라니, 내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니, 누가 신발 벗고 타라고 등 떠민 사람 있답디까? 억지를 부리셔도 유분수지….’
‘허허, 저 눔이 째진 입이라고 씨부리기는, 가마꾼 주제비에…’
나는 가까스로 운전기사 양반에게 백배사죄하고 그냥 돌려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가 고향을 살갑게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주위의 학생들이 하고 다니는 짓거리들 중에서도 첨단을 달린다고 하면 가리질 않고 저질러 댔다. 시간만 나면 하숙집으로 여자들을 끌어다가 덮치기 일 쑤였고, 그로 인해 눈물 질질 짜면서도, 결혼이라든가 약속 같은 것은 입도 뻥끗하게 못한 채, 건드린 여자들이 열씸히 섹스에 매달리게 하는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었으니까. 친구들은 나를 엄청 부러워 했고, 섹스는 곧 결혼 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던 그 당시에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섹스의 환락 속에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 뿐인가? 가뜩이나 보통 사람들 보다도 갑절은 굵고 긴 물건으로 인해 나에게 맛을 들인 년들은 벌벌벌 기면서도 기어이 내가 딴 년과 놀아나는 와중이라고 할지라도 방문을 두드리는 것을 두려워 하질 않았던 것만 보아도 그 당시 나의 화려한 전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고향을 등지고, 서울 사람인 것처럼 보이게 할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말투도 서울말로 고치고, 고향에서 올라오는 등록금과 생활비는, 언제나 모자란다며, 성화를 내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도 아랑곳 하질 않고 그저, 여자들을 꿰찰 용도에만 써 재끼고 있었다. 나는 점차로 여자들을 다루는 법에 익숙해져 갔고, 공부는 뒷전으로 미룬 채, 여자 사냥에 온 신경을 쏟는 이른바 고급 두뇌형 제비족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당시, 캬바레 앞에서 왕자파스 크레용 박스에 그려진 왕자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채,-우리는 그 머리를 재수 대가리 없는 왕자파스 머리라고 불렀었다.- 유부녀들을 나꿔 채가던 제비족의 피해상황이 세상을 어지럽히던 시절이었다.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제비족들은 여자들을 유혹해서 가정도 파탄 내고 돈도 뜯어가는 파렴치한 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멀끔하게 생긴 당당한 대학생 신분인 대다가 뭐를 바라지도 않고, 섹스만 줄창 해대는 나에게 그녀들은 제비족에게 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다른 면으로 내게 보답해 왔다. 구두 표에, 철 마다 양복티켓, 게다가 몸보신 하라며, 갈비는 짝으로 들여다 주고, 과일은 썪어 문드러 질 정도로 내 하숙집에 실어 날랐다. 그 덕에 하숙집에서 나는 명사대우를 받았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던져주는 갈비짝 이며, 과일상자 들로 인해 내 밥상은 언제나 기름진 음식으로 그득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체의 사장 사모님이셨다. 젊은 나이에 후처로 시집와서 남편의 바쁜 일과에 사랑 한번 제대로 받아보질 못하던 그녀와 나는 우연히 서점에서 같은 책을 고르다가 마주쳐서 그만 눈이 맞고 말았다. 그 당시, 수 많은 여자들을 상대하던 나는 혼빙간음 에라도 걸리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학생들에게는 언제나 단도리를 무섭게 했고, 되도록 이면 뒷 탈이 없는 유부녀들을 상대로 섹스를 했다. 그런 생활을 오래도록 하다 보면 급격한 체력저하로 고생하던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목욕탕에서 만난 어느 왕자파스 머리에게 나는 중요한 사실들을 전수 받을 수 있었다.
‘그게 그러니까, 기집들을 전부 건드리면서 싸대기 시작하면 제 명에 못 살거든, 그러니 어쩌겠어. 다른 무기를 키워서 대드는 거지.’
‘다른 무기 라뇨?’
‘이런 바닥에 있다 보면, 혀 잘 놀리고 손 잘 놀리지 못하면 단명하게 되어 있다니깐. 난 하루에 꼭 한 개씩, 그 비싼 바나나를 사다가 혀로 녹혀 먹는다구. 혀로 바나나를 숟갈 뜨듯이 계속해서 파먹는 거지. 맨 처음에는 혀 밑에 바늘도 돋고 죽겠드만, 요즈음은 그 딴딴해진 혀 땜시로 여자들 대번에 뻑 가게 하는 것은 유도 아니라니깐.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손가락이야.’
지금이야 음란 마사지네 뭐네 하며, 여자들을 홀키는 그런 마사지가 있었지만 제비족들 끼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텃취와 기술로 익혀가는 손가락 재주들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딜도도 없고, 마사지가 통용 되지도 않던 시절, 제비족들끼리 통하는 야사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이 바닥에서 여자들을 거치다 보면, 손으로 만족하는 년도 있는 반면에 무슨 국기 게양식 처럼 꼭 좇물을 싸 줘야 만족하는 것들이 있다니깐. 그래서 손가락으로 흠씬 몸을 달뜨게 한 다음에 좇을 넣을까 말까 하면서 평소에 원하던 것들을 하나하나 노래를 부르는 거야. 이건 뭐 로보트도 아니고, 좇 박아주기까지 얼마나 말을 잘 듣던지, 어떤 년은 좇질 하기도 전에 가산 거덜내는 년도 있다구.’
그자의 말에 의하면 좇물을 싸주는 조건으로 섹스를 하는 여자들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그러나, 제비족 스스로 체력유지를 위해 그 횟수도 극도로 제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양기가 하초에 충만해 져서 사정을 않한 채로 섹스를 손장난으로만 끝냈을 경우, 당첨의 영광을 안는, 다음 번 순서의 여자들은 눈들이 돌아가면서 기어이 제비족이라고 할지라도 그 좇맛을 잊지 못하고 또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발목을 붙든다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좇대가리가 강해 질 수 있도록 갖은 방법을 다 쓴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밤에 자기 전에 홍두깨로 좇을 흠씬 두들겨 패고 나서야 잠이 든다는 것이었다.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었어도 그 당시 나 또한 그 자에게 들은 그 비법을 한 6개월 쓰고 나니 보기에도 겁날 정도로 시커매진 좇대가리의 양생법으로 인해 나 스스로도 놀랐었던 점은 기억에도 새롭다. 그런 저런 와중에 만난 그녀였으니, 내게 맛이 가지 않고는 배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처음에 매우 극도로 조심하고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하숙집에 와보고 학생 신분임이 확인되자마자, 집에 돌아갈 생각도 않고서 바로 옷을 벗고 나에게 달겨 들었었다. 그 날 저녁에 명동 사보이 호텔에서 주유소 사모님과의 약속이 있었지만 나는 그 젊디 젊은 육신의 그녀에게 홀딱 빠져서 약속이야 어떻게 되던 말건 내깔겨 둬 버렸다.
‘준석이 학생, 나 젖 쫌 빨아주라. 우리 그이는 만져보지도 않는다니깐.’
‘아니 이렇게 풍성하고 아리따운 젖을 어째 사장님께서는 거들떠도 않 보신데요? 거 참 이상하네.’
내가 그녀의 젖꼭지를 살며시 입술에 물자, 고만 고개가 휘청 하며 뒤로 꺾여진다. 게다가 준비된 사수처럼 연마에 연마를 다한 내 딴딴한 혀끝이 그녀의 야들야들한 젖꼭지를 이리저리 뱅글뱅글 돌려대자, 그녀의 입김은 점차로 뜨거워지기 시작하고…내 손에 말아 쥔 그녀의 젖은 그 탱탱함이 글로만 접하던 수호지의 반금련 젖퉁이 이상 이었다. 나는 서문경이나 된 듯한 심정으로, 바보 같은 무대 사장님의 무관심을 속으로 비웃어가며, 그녀를 바닥에 부드럽게 눕혔다. 곧바로 덮치는 것보다 나는 그 동안 갈고 닦은 혀의 마술과 손가락의 현란한 재주를 선보일 차례라고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서부터 깃털로 쓸고 가듯이,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위아래로 훑고 스치는 내 손끝의 느낌으로 인해, 그녀의 살결은 소름으로 파도가 치는 것이 보였다. 옳커니!
‘사모님, 누가 사모님을 결혼한 사람이라고 그러겠어요. 이 살결 고운 거 하며, 이 보지는 또 어떻구요? 빛깔이 정말 장관이네.’
그녀는 생전 처음 남자의 입에서 보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한숨을 폭 내 쉰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벌려주지 않을 것 처럼 앙탈을 떨던 그녀의 가랭이를 내 턱과 느물거리는 혀는 기어이 열어버리고 말았다.
‘아! 거기는 …. 거기는 안돼….더러워….’
그 당시, 오랄 섹스가 뭔지도 모르던 시기, 만나는 여자들 마다, 하나 같이, 보지가 더럽다는 말들은 질리게도 많이 들어온 재방송이었다.
‘사모님, 더럽긴요, 이렇게 이쁜 보지가 더러울 수가 없지요. 쭙쭙, 훌훌, 캬, 이거 보세요. 얼마나 맛있는데, 이게 바로 무병장수 계곡주 라니깐요.’
여자들은 용기를 북돋우어 주면 대번에 디까져 버렸다. 이제는 시키지도 않는데 지가 지 손으로 가랭이를 쩍쩍 벌려가며,
‘나 이런 거 처음이야,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어.’
라며, 눈썰미를 배시시 풀어 재낀다. 그러나, 그것은 말뿐,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년들이 보지 빨아달라는 자세는 잘도 잡아냈다. 이쯤에서 나는 보지를 빨면서 손가락을 써먹어야 했다.
‘헉, 이게 뭐야, 벌써 집어 넣은 거야? 아잉 난 몰라! 헉헉흑흑…’
몰르긴 뭘 몰라, 다 암시롱! 여자들은 그 당시 보지에 들어가는 것은 좇대 뿐인줄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이럴 때, 씹공알을 겁나게 빨아주면서 손가락을 슬며시 보지 속으로 치밀기 시작하면 여자들은 빨면서 좇대를 쑤시는 줄 알고 대부분 기겁을 했다. 그리고, 좇이 아니라도 그와 비슷한, 좀더 구석구석까지 촘촘히 쑤셔주는 것이 세상에는 또 있구나 하며, 감탄에 감탄을 마지 않았다.
‘사모님, 보지안이 이렇게 따듯할 수가 없어요, 보지 물이 너무 맛있어서 보지 속으로 그냥 들어갈 것 같네. 어휴, 이 손가락 젖는 것 좀 봐.’
좇대가리로는 거의 흉내낼 수 없는 각도로 보지 속을 들락거리며, 쑤실 때에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여자의 보지 속에 숨겨진 G스폿을 잘못 건드려 대박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 스스로도 모르고 있다가 오줌 싸는 것처럼 물을 질질 흘리면서 엉덩이를 타고 마비의 증세가 덮치는 그 부위. 나는 그날도 정확하게 그녀의 보지 속에 버티고 있는 그 부위를 슬슬 눌러가며, 압박을 가해갔다.
‘아흥,…아흥….나 이런 기분 처음이야. 아 보지가 근질거려, 다리가 마비되는 것 같아. 아…..나 젖 쫌 빨아줘.’
이렇게 흥분이 고조 될 때는 반드시 여자들은 젖을 빨아달라고 보챘다. 나는 이런 상태를 매우 즐기는 편이었다. 하체에 매달려 있다가 능글 거리는 웃음을 머금고, 여자들의 젖으로 슬그머니 몸을 움직이면 여자들은 아래를 내려다 보다가, 나의 벌떡 선, 그것도 매일 저녁 홍두깨에 흠씬 터져야 잠이 드는, 말좇 만한 좇대가리에 눈을 흡부릅 떴으니까.
‘어머머, 저게 뭐래, 저게 사람 물건이야 뭐야?’
여자들은 얌전하고 정숙하다 싶은 모습을 끝까지 고집하고 싶은지, 처음에는 좇이네, 씹이네, 심지어는 자지, 보지라는 기본 단어 조차도 입에 올리질 못했다. 그러던 여자들이 한두번 만나고 나면 듣기에도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쌍욕과 단어들을 줏어 넘기는 것을 볼 때, 그러한 언어의 토설도 그네들의 욕구분출에 어느 정도 일조를 하면서 일종의 금기시 되어버린 행위를 과감히 저지르는 데에 대한 묘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맛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좇을 빠는 행위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처음에는 좇에 손 조차도 건드리질 못하던 여편네들이 길이 트이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냉큼 내 좇에 들러 붙어서는 보지 쑤심도 마다한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좇빨기에 빠져서 온통 바닥을 씹물로 번질거리게 만들곤 했다.
‘사모님, 이것 좀 보세요. 요 개똥이가 사모님 입속이 그리워서 똘망똘망 꺼덕 대잖아요?’
나는 싫기도 했지만 의례 내 좇을 개똥이라고 불렀다. 여자들은 그 단어가 주는 유쾌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별칭을 너무 사랑했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남자와 결혼 했음인지, 사까시에는 유달리 기술이 좋았다.
‘사모님, 혀 돌아가는 게 예술이네요.’
‘쩝쩝, 쭐쭐, 쯔-읍-쯔욱….내가 늙은이랑 살다 보니 이거 하나는 끝내 준다니깐. 영감 친구중에 60줄에 가까운 사람도 영감 앞에서 당장에 세웠었다구.’
나는 그 당시 꽤나 놀랐었다. 재벌들 사이에 자신의 부인들을 돌려가며, 먹는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그런 일들이 있는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왕자파스의 조언처럼 그녀에게 이번 만큼은 좇물을 뿌리질 않고 애간장만 태울 작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좇이 더 이상의 발기를 기대할 수 없을 지경으로 시커멓고 배불딱지게 발기된 것을 느끼자, 그 자리에 발랑 누워서 가랭이를 쩍 하니 벌려 온다.
‘뭐해? 어서 해 줘, 나 이렇게 기다리고 있잖아? 사람 애끓게 하지 말고, 어서….’
그러나, 나는 좇 대신에 다시 또 입을 들이댔다. 이번에는 혀를 전병 말듯이 돌돌 말아가지고는 그녀의 씹 안을 꿰질 듯이 들락거렸다.
‘어흥, 어흥… 이것도 좋지만….. 난 자기 물건이… 좇이…. 더 좋아…어흥, 윽윽윽….’
그러나, 나의 결심은 변하질 않았다. 혀로 씹구녕을 쑤실 때에는 손가락으로 씹물을 묻혀가며, 씹공알을 디리 돌려댔고, 씹공알을 입에 물고 혀로 자근자근 물어 댈 때면 손가락을 좇대 마냥 뻐쩡 세워 보지 속이 벌게지도록 쑤셔댔다.
‘윽윽윽…….악!’
그녀가 어푸러 졌다. 그럼 그렇지! 그녀의 눈에 흰자위가 드러나고 온 몸이 칭칭 감긴 뱀새끼 또아리 마냥 마구 둥글게 구부러졌다 펴졌다 하며, 덜덜 떨어왔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 물었고…. 정신이 들게 내버려 두자는 심정으로 나는 슬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아직 사보이 호텔까지 가는 데에는 시간이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판이었다. 누워서 정신을 놓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그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벽에 걸어놓은 바지를 입으려던 내 아랫도리를 털썩 거머쥐는 것이 아닌가?
‘오늘 못 가! 아니, 며칠간 못 갈걸!’
아니 그 말은 맞았다. 그녀는 그 시간 부로 나를 꽁꽁 방안에 묶어둔 형상으로 오도가도 못하게 한 뒤에 밥도 중국집 에서 시켜다 먹고, 몸도 씻지 않은 채, 이틀 밤낮을 그냥 섹스로 때려 버렸으니 말이다. 맨 처음에 나는 장난 인 줄로만 알았다. 그녀는 섹스에 환장한 여자처럼 나를 눕혀놓고, 그 위에 올라탄 채로 군만두를 집어 먹으며, 보지를 내둘렀다. 이거야 원….한 두번은 그런 대로 봐 줄만 했다. 그러나, 사람들도 다 알다시피, 섹스를 거듭하면 할수록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은 얼마나 많으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냄새는 또 얼마나 등천하는가? 방안은 온통 그녀와 내가 지려놓은 씹물과 좇물로 엉망이었고, 미처 치우지 못한 휴지 뭉태기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 밤이 새도록 그녀의 씹질은 끊임이 없었다. 내가 잠에 곯아 떨어질 만 하면 기어이 또 세워놓고, 위에 올라타 방아질 을 쳐댔고, 새벽에는 그녀의 뒤에서 보지에 좇을 박아 넣으면서 졸다가 침을 흘리기도 했다. 그녀는 이미 씹구녕 주변이 다 까져서 벌겋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쓰라린 통증이 쾌감으로 바뀌어 더 미칠 것 같다면서 나의 가슴팍을 쳐대면서 고꾸라 졌었다. 징한 년!
‘으휴휴, 으휴휴……’
이틀째 되는 방안, 창문도 못열게 하는 나의 방은 똥내가 지천 이었다. 화장실 간다면서 도망갈 수도 있다면서 그녀는 똥이 마렵다는 나에게 짜장면 그릇을 대주면서 싸라고 했다.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녀는 발기도 되지 않았지만 그 똥냄새가 향기롭다며, 내가 조져 앉아 자장면 그릇에 똥을 누는 중에도 내 좇을 빨아댔다. 다행히 내 방이 주인집과 별채였기에 망정이지, 같이 붙어 있기라도 했다면 나는 대번에 정신병자 취급 받아 쫓겨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더 이상 나올 좇물도 없고, 그녀도 이미 까진 보지살이 아물기도 전에 디리 쑤신 탓에 잘 앉지도 못할 만큼 쓰라린 와중에 나는 마지막으로 외마디 비명과 함께 쌍코피를 쏟고는 정신을 잃었다.
‘으음…..’
내가 눈을 뜨자, 온몸은 움직일 수 없을 만큼의 열기에다가 가슴을 지지는 듯한 가래와 구토 비슷한 기침으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개똥아, 정신이 좀 들어?’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은 바로 아버님 이셨다. 언제 올라 오셨는지….내가 벌려놓은 방안의 꼬락서니를 다 보셨을 텐데….
‘어떻게 오셨어요?’
‘그게 사람 사는 꼬락서닌 겨? 똥깐이 멀다고 방안에서 똥을 누질 않나? 돈은 방안에 도둑놈 침 흘리라고 만장으로 펼쳐 놓고 설랑은….밥 사먹으라고 돈 올려 보냈드만 내내 국수가락만 시켜 먹고…. 서울 생활이 고달프면 어여 고향에 내려오지, 뭐터러 이런 고생을 사서 헌디야? 대핵교 안 나온다고 밥 굶는 것도 아닌디…..’
나는 옷도 입지 못하고 그 방에서 만 사흘을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앓아버렸다. 그리고 그 여자는 나를 놔 둔 채, 정신을 차린 뒤, 그것도 사례비라고 돈을 바닥에 뿌리고 가버렸는가 보다. 나는 그녀가 간 뒤로 급격하게 탈진된 기력에 영양실조까지 겹쳐 폐렴을 앓아버린 것이었다. 그 날로 나는 아버님의 부축을 받으며, 고향으로 향했다. 나의 고향행은 금의환향은 아니었을 지언정, 모든 마을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를 한 몸에 받으며, 집에 당도 했다. 내가 자리에 누워 약사발을 받아 마시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너나 없이 폐병에 좋다면서, 아버님 처럼 다른 마을에 뺏겨도 냉큼 찾아 나설 정도로 자기네가 애지중지 하며, 키우던 개들을 잡아다가 고기를 해왔다. 나는 그들의 정성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항상 고향 무데기 들이 내 인생의 걸림돌인 것 마냥 벌레 보듯 하고, 외면하고 살아왔었는데, 그들은 나를 자기 식구 인 것 처럼 따스하게 대해주고, 이렇게 키우던 개까지 서슴없이 잡아오질 않는가 말이다, 내가 서울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다 왔는지도 모르면서…..나는 오랜만에 깊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한참을 자는데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소곤대시는 목소리에 나는 눈도 뜨기 전에 두 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임자, 피는 못 속이는 갑네, 개똥이 저눔아, 서울에서 여적 방맹이 휘 둘르고 다녔던 갑서.’
‘아이구, 영감 목소리 좀 낮추소. 개똥이 들을까 무섭소. 모른 척 하고 있으랑게요. 그래도 대학생 아닌가벼?’
‘윗동네 이장님 먼 친척이 개똥이랑 그렇고 그렇다가 끝냈다고 안혀?’
‘그 화냥년은 재벌집 엔가 어딘가 시집가서 잘살고 있다 허대! 워치코롬 영감을 그리도 빼다 박았 디야? 윗동네, 아랫동네 헐 것 없이 궁딩이 튼실한 년만 있으면 내 덮쳐 자시던 영감 아녀유?’
‘어허, 할망구도 언제쩍 야기를 이리 해쌌는 디야?’
‘암튼 동네 사람들도 다 알고 있지유?’
‘그려, 그려도 사람들의 허는 말이, 서울 사는 년들이 지랄 같은 년들이지, 우리 개똥이야 멋모르고 당한거라 하대. 그게 듣기 좋은 말인가는 몰러도…’
‘암튼 이번 기회에 우리 마을 이장님 둘째딸 연순 이랑 혼사 치뤄 올려 보낼 거구만유. 그러기 전에는 못 보내유.’
‘암, 그리 혀야지. 나도 당신 만나 잘 살고 잇잖여? 뭐니뭐니 혀도 고향 사람들이 으뜸인겨.’
‘으이그, 영감 화상하고는… 그렇케 젊을 적부터 내둘르던 몽둥이가 어찌 피를 타고 거까지 흘러 갔디야?’
‘그려, 사람들이 그러잖어?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고 말여, 개똥애비 밑에 뭐 있어? 개똥이 있지, 헐…..’
그래서 나는 그제나 지금이나 개똥이 였다. 지금의 마누라 연순이도 아직까지 나랑 싸움이라도 붙을 짝시면 또다시 서슬이 시퍼래져서 소리친다. 개똥이라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