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썰 비구니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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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썰 비구니의 꿈
현초 스님
모두들 그 비구니 여승을 현초 스님이라 부른다.
대게의 비구니들은 인생에서 힘든 시련을 겪고서 머리를 깎고 속세를 떠나 산중생활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현초 스님은 남부러울 것 없는 다복한 집안에서 자랐고 명랑한 소녀시절을 보내었으나 언젠가
수덕사에 여행을 다녀 온 뒤에 한 동안 두문불출하며 거의 말이 없더니 갑자기 부모님께 여승의 길을 걷겠다고 하였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대단한 불심을 가진 분들이었지만 막상 자신의 딸이 승려의 길을 가겠다고 하자 울면서 애원도 하였고
협박을 하며 달래기도 하였으나 한 번 마음을 정한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 눈물을 머금고 출가를 허락하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절에 다니기를 아주 좋아하였던 현초스님이 불가에 귀의를 할 줄은 그녀의 부모는 꿈도 못 꾸었었다.
기껏해야 친구들과 여름 켐프나 다니고 공부만 하였지 남자 친구는커녕 가은 반 남학생도 하나 집으로 초대를 하지 아니한 그녀였다.
공부도 항상 상위권에 들어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였으나 여학생이면 으레 남선생님을 흠모하여
짝사랑에 마음이 아픈 시절의 있게 마련이련만 현초스님은 그런 허다한 일도 단 한 번 없는 착한 소녀였다.
부모 입장에서는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을 앞 둔 시점 그도 수능시험 성적이 우수하게 나온 그녀가 출가를 한다는 말은 하늘을 노랗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남자스님도 고행의 길로 접어들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봐 온 그녀의 부모는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모든 여승들이 출가를 하면 미망과 깨달음에 대한 모든 생물의 생존과 경지를 10종류로 하여,
중국 천태종의 개조인 지의대사가 교의로서 종합하였는데 이를 십법계라고도 하는데 이 십계를 받으면 사미니 생활을 시작한다.
그 법을 받고 사미니 생활을 자기 딸이 한다는 생각을 생전에 단 한 번도 안 하였는데 그녀의 출가는 청천하늘에 날벼락과 같았다.
그럼 여기에서 불교의 십계에 대하여 간단하게 집고 넘어가자.
미망의 생존은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아수라계, 인간계, 천상계의 6종인데, 이곳의 생존은 그 행위의 업연으로 각기의 세계에 전생하므로 육도윤회라고 한다.
깨달음의 경계는 성문계, 연각계 보살계, 불계의 4계로 합해서 육범사성이라고도 한다.
이 세계와 경지들은 인도의 불전에서는 이미 주장되었는데, 천태의 지의는 모든 생존을 십계로 나누고 불계 이외는 방황과 고뇌의 세계와 불완전한 깨달음이지만,
각기의 심계가 서로 다른 9계를 포함, 구비하고 있으므로 십계의 생존인 모든 중생은 일체성불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십계호구라고 한다.
그런데 사미니 생활이란 여가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법 높은 스님의 수족이 되기도 절간의 식모도 되기도 한다.
물론 일부 사찰에서는 속세의 할머니나 아주머니를 모셔서 보살이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공양 준비를 시키기도 하지만
사미니들이 모여서 본격적인 수도생활을 하는 곳의 사찰에는 거의 속세의 사람은커녕 보살님들도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하기에 사미니들이 스스로 모든 것을 맡아서 하여야 하는 고달픈 생활이요 수행이다.
이런 사실을 평소에 절에 드나들며 보아온 그녀의 부모 입장에서는 무슨 방법을 동원하여서라도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유독 고집이 세었던 현초스님의 출가를 그녀 부모들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다복한 집안에서 자랐고 명랑한 소녀시절을 보냈던 현초 스님에게는 오죽하였겠는가.
노스님으로부터 <햇빛을 한 줄기만 발에 받고 온 몸에 따스함을 어이 받을 꼬>란 알지도 못 할 화두와 함께
사미니계를 받은 현초스님은 아무리 힘든 사미니 생활 속에서도 단 한 번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고 묵묵히 고행과 수행에 용맹 전진하였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2년의 사미니 생활을 한 후에 바로 구족계를 받고 비구니로서 본격적인 승려생활을 하지만
학교에 다니면서도 불교의 교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식차마니 생활이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없어 진 것을 알고
큰스님에게 간청을 하여 2년간의 사미니생활을 더 하는 지극히 모범적인 승려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였었다.
그리고 그녀의 나이 22살에 남자 승려들은 250가지 구족계 계목을 받으나 비구니라는 이유로
무려 98계가 더 많은 348종의 계목을 받음으로서 그녀는 진정한 비구니의 길로 들어설 수가 있었다.
말이 좋아 겨우 348종의 계이지 승려로서 지켜야 할 규율이자 법도이기에 그 까다로움은 이루 일반 중생들로서는 거의 절반도 지키기 어려운 계율이다.
그 구족계를 받는 의식도 아주 중요해 삼사칠증을 완벽하게 갖추어야 한다.
삼사는 계율을 직접 설하는 수계아사리, 계율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교수아사리 그리고 갈마아사리를 말하는 것이며,
칠증은 수계의식이 원만히 이루어졌는가에 대하여 증명해주는 법사 7명을 모시고 위의를 갖추어 설하게 되어 있다.
새로 출가한 자에게 수여하는 사미계 즉 구족계보다는 낮은 단계의 기본 계율을 받는 수계 식은 수계자가
이전에 이미 수계한 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할 수 있는데 수계자는 승려의 법복을 입고 삼보 즉 붓다(부처님) 다르마(法)
그리고 승가에 귀의할 것과 십계 즉 승려가 지켜야 하는 기본적이고 윤리적인 행동규범을 지킨다는 말을 따라한다.
또 수계자는 스승과 함께 수계사 앞에 서서 해당 계율을 받을 것인가 아닌가에 대하여 질문을 받는다.
이때 수계자는 3번 질문을 받는데, 만일 계율을 받아 승려가 되는 데에 반대 의견이 없으면 이
출가자는 승려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여성 출가자도 이와 유사한 의식을 통하여 비구니가 된다.
이와 같이 복잡하고 많은 계율을 나누면, 바라이, 승잔, 부정, 사타, 단타, 바라제제사니, 중학, 멸쟁의 8가지이다.
구족계는 십 송율과 오 분율 선견율비바사 팔리어계본, 티베트어계본 등에 담겨 전해지나 그 내용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바로 구족계라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헌법과 동등하며 그 밑에 것은 형법은 물론
사법을 포함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봐도 되며 그 조목조목을 열거하면 우리의 헌법보다 더 많은
승려로서 지켜야 할 법과 심지어 수행을 하는데 대한 방법은물론 생활 전반에 걸쳐서 세세히 율법으로서 규제를 하기에 이를 어기면
승적박탈은 물론 파계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하산을 하여 속세로 돌아가야 하는 엄격한 것이기도 하였다.
현초스님은 그런 엄격한 율법도 잘 지키며 용맹정진을 하였다.
노스님이 그에게 내린 알 수 없는 화두<햇빛 한 줄기만 발에 받고 온 몸에 따스함을 어이 받을 꼬>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갈구하면서
현초스님 승가대학에 입학을 하였을 때 그의 속세 나이 28살이었고 승복을 입은 나이로 10세이었다.
그러니까 현초스님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속세와 인연을 가진 곳에 나왔던 것이었다.
다른 사미니나 비구니들은 속세와 통하는 일차 관문인 말사에 큰스님의 심부름을 받고 수시로 내려갔으나
철저하게 좌선과 염불 그리고 비구니로서의 완벽한 생활을 하는 것을 지켜보신 큰스님은 현초스님에게는 말사에 가는 것도 허용을 안 하였다.
아니 어쩌면 현초스님 자신이 원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승가대학.
비록 비구니들만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속세를 제 집 드나들듯이 드나들었던 비구니도 있었고
또 강사님들도 출가 스님으로만 구성이 된 것이 아니라 처자식을 둔 출가스님들은 물론 속세의 유명한 사람들도 가끔은 출강을 하였다.
10년.
말이 쉬어 10년이지 단 한 번도 속세와 인연이 없이 깊은 산중 암자에서 속세와 담을 쌌고 수행 정진을 한 현초스님의 입장에서는 별천지나 다름이 없었다.
속인들의 화려한 옷이며 화장 그리고 자유분방한 모습은 10년 전과 사뭇 달랐다.
잿빛 가사만 걸친 자신에 비하여 속인들은 거의 팬티가 보일락말락한 옷을 입고 비록 승가대학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찰 경내를 마치 자기 집인 냥 활보하는 모습도 놀라웠으나 더욱더 놀라운 것은 남자와 여자가
얼핏 봐도 나이차이가 많이 나 보이는데도 보라는 듯이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며 자기야 라고 부르는 모습은
정말로 10년이란 세월이 무상함을 느꼈으나 자신은 불도에 집중을 해야 하고 자기 수련과 득도의 길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되 내이면서 애써 외면을 하려고 하였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런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와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 앞에서 천배를 올리기를 마치 밥을 먹듯이 올리며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며 용맹전진을 하는 모습은
그를 제자로 거두어주신 대 스님이 보기에도 안타까웠으나 자신도 그 과정을 지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못 본 척하고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현초스님은 열심히 승가대학에 출석을 하여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무릇 불교는 이제 대중화에 앞장을 서야합니다. 산중 불교에서 대중을 포용하고 대중과 더불어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것만이 우리 불교가 가야할 길이며 그 길은 바로 여러 학승들께서 해야 할 의무이자
임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현초스님이 처음 입학을 한 그 다음다음 해 그러니까 30세에 3학년에 올라가자
한국 불교 역사 과목을 강의하시는 재가출신 강사께서 입에서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시며 강의하시자
현초스님은 그 정열에 그만 감탄을 하였는데 그 것으로 끝이 났으면 좋으련만 감히 수행을 하는
비구니라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자신을 나무라지 않고 수수방관하였다.
그 결과 현초스님은 같은 승가대학 안에서 가장 한국 불교 역사에 대하여서는 월등한 실력을 가진 비구니로 인정을 받았다.
어쩌다가 그 재가스님 강사께서 결강이라도 하게 되면 승가대학에서는 현초스님에게 그 시간을 맡기는 월등한 실력을 보였다.
“원효대사께서는 617년에 탄생하시어 686년에 열반을 하셨습니다. 대사께서는 29살에 출가를 결심하시고
자신이 살던 집을 허물어 거기에 초개사라는 절을 짓고 진덕여왕 2년 즉 648년에 황룡사로 들어가 불전을 섭렵하시며 수도에 정진하셨습니다.
34세 때 더 많은 법을 얻기 위하여 의상대사와 당나라로 떠났으나 중도에 귀환, 10년 뒤 다시 떠났습니다.
가는 도중 잠결에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는 이튿날 <모든 사물과 법은 마음에서 난다>는 깨달음을 얻고 당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되돌아왔습니다.
당시 장안 거리에서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느냐, 네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로다>라고 노래해
무열왕이 이를 듣고 홀로 된 요석공주와 짝을 지어 주어 설총을 낳았습니다. 실계 한 대사께서는 스스로
소성거사 혹은 복성거사라 하며 속인 행세를 하였습니다. 광대 복장으로 지내며 화엄경의 이치를 쉬운 내용으로 담은
무애가라는 노래를 지어 민중 속에 퍼뜨리며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을 섰습니다. 대사께서는 불교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노력하였으며,
많은 저서를 썼으나 총 100여 부 240권 중 20부 22권만이 현존합니다. 특히 대승기신론소는 중국 고승들이 즐겨 인용하였고,
금강삼매경론은 대사의 세계관을 반영한 대 저술이기도 합니다. 대사께서는 학승으로서 뿐만 아니라
민중 교화 승으로서 당시 왕실 중심의 귀족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또한 정토교의 선구로서 분파된 불교이론을 하나의 진리로 종합, 정리하여 세운 화쟁 사상은 대사의 일심사상 무애사상과 함께
가장 독자적인 사상체계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혈사에서 열반하시고, 뒤에 고려 숙종이 대성화정국사라는 시호를 하사받으시었습니다.
저서로 화엄경소 해심밀경소 발심수행장 삼론종요 십문화쟁론 무량수경종요 아미타경소 미륵상생경종요 등이 있습니다”
현초스님의 강의는 막힘이 없었고 강의를 듣는 비구니들은 찬사를 아끼지 아니하였다.
그는 옛날 고승들의 연혁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 열반을 한 경봉스님을 비롯한 한국의 거의
모든 고승에 대하여 해박하고 탁월한 지식을 가진 특이한 승가대학의 학생이자 모범적인 비구니로서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나중에 아주 큰스님이 될 비구니로서 주목을 받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런 그가 3학년 중반에 승가대학에는 몸이 아파서 쉬어야 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다시 암자로 들어가 버렸다.
그 자세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승가대학이라는 곳도 부처가 되기 전의 인간들 세계인지라 무성한 소문만 난무하였다.
그 중에 가장 우세한 소문은 바로 한국 불교의 역사를 강의하는 재가스님을 남몰래 흠모하였다가
재가스님이 흔들리지 아니하는 실연을 당하였다는 것이 우세하였으나 확증은 없었고 오직 현초스님 자신만이
그 사연을 알고 있었으나 깊은 산중 암자로 들어간 현초스님의 소식은 승가대학에 단 한 번도 들리지 아니하였다.
암자로 들어온 현초스님은 눈을 뜬 시간이나 공양을 하는 시간 이외의 시간에는 법당에서 염불을 하거나
좌선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부처님만 멀뚱멀뚱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 도저히 그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도 아니면 큰스님이 젊은 시절에 수행을 하였다는 토굴에 은거하여 보름이고 한 달이고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암자에 기거를 하는 모든 비구니와 사미들은 암자의 제일 큰 어른이시자 스승이신 큰스님께서 노환으로
오늘 내일 하는 마당에 아무리 큰스님의 수제자로 통하는 현초스님이지만 그녀에 대하여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더구나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녀를 그 누구보다도 더 가장 아끼고 수제자로 일찍이 점을 찍으신
큰스님께서 임종이 가깝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토굴에서 면벽 수행을 하거나 법당에서 좌선과
염불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자의 비구니들이나 사미니에게는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는 일이었으나
그 누구 하나도 현초스님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이 묵묵하게 자신의 맡은 일에만 열중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동안거를 이틀 앞에 둔 일이다.
동안거라 함은 스님들이 겨울 석 달 동안 한곳에 모여 참선 수행하는 일로서 기간은 음력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인데 그 중에는 사찰이나 암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직 수행에만 정진을 하는데
더더구나 유명한 큰스님이 임종을 앞 둔 터라 다른 사찰이나 암자에서도 큰스님을 존경하거나
큰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제자들이 모여 있어 많은 비구니들이 함께 동안거를 하여야하였기에
그 작은 암자는 시장 못지않게 붐비며 사미니들은 공양 준비에 만도 눈을 땔 시간이 없었고 손에 물이 마를 시간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현초스님은 묵묵하게 법당 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좌선을 하다가는 점심 공양 시간을 알리는
죽비소리가 들리자 공양 간으로 가 점심 공양을 마치자마자 다시 법당으로 가더니 한쪽 구석에 놓인
천 개의 염주 알이 역인 것이 담긴 바구니 세 개를 방석 옆에 가지런히 놓고 절을 시작하자 참 천배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현초스님의 몸 걱정만 하면서도 동안거 준비와 큰스님 임종에 대비한 일로 부산을 떤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이미 한 개의 천 개 염주 알이 담긴 바구니는 옆으로 비켜있었고
또 하나의 염주도 거의 절반을 넘었으나 현초스님은 공양도 거르고 부처님께 절만 올리고 있었다.
산사의 밤은 아주 고요하다.
더더구나 깊은 산중에 있는 암자의 밤이야 오죽하겠는가.
큰스님에 기거하시는 방에서만 간간히 병간호를 하는 비구니들과 심부름을 하는 사미니들의 소리만 들렸지 말 그대로 적막강산 그대로였다.
깊은 밤은 산중 암자에도 아침이 오게 하였다.
아침 도량석을 하느라 몇 몇 비구니들이 목탁을 치며 암자 주변을 돌았으나 현초스님은 여전히 법당 안에서 절만하고 있었다.
물론 아침 공양 시간을 알리는 죽비소리가 나도 현초스님은 공양을 거르고 부처님께 절만 하고 있었다.
두 개의 바구니가 다 비웠고 마지막 바구니의 염주를 돌리는 것을 본 것은 큰스님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법당 앞을 스쳐지나가던 사미니가 마지막이었다.
“스님 제가 스님께 공양을 할 것은 오로지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육신뿐입니다, 부디 소승의 몸을 받아주십시오”현초스님이 말하였다.
“현초스님, 저는 재가지만 그래도 법복을 입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같은 부처님의 제자인
현초스님을 품에 안겠습니까?”재가스님이신 한국 불교 역사를 강의하시는 스님이 손을 가로저으며 말하자
“스님 저는 이미 파계를 한 몸입니다, 육신의 파계가 아니라 마음의 파계를 하였습니다, 어서 이 몸을 받아주십시오,
어서”현초스님이 재가스님의 몸에 매달리며 애원을 하는 모습은 가히 눈물겹기까지 하였었다.
“허~어 아닙니다, 절 더 이상 시험에 들게 하지마시고 현초스님도 불법 공부에 용맹전진 하셔서 해탈을 이루도록 하세요”재가스님의 말도 간절하였다.
“아닙니다, 저는 이미 부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어서, 저를”하면서 현초스님은 재가스님의 목을 팔로 감았다.
인적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직 부처님만이 근엄하면서도 온화한 눈으로 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람 안 되는데”재가 스님의 손이 떨리면서 현초스님의 잿빛 가사의 저고리 고름을 잡았다.
“아닙니다, 스님 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현초스님도 재가스님의 잿빛 가사의 저고리 고름을 떨리는 손으로 풀었다.
“스님”
“스님”벌거숭이로 변한 현초스님과 재가스님은 부둥켜안고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
“...................”
“어서”긴 침묵 끝에 먼저 말을 한 것은 현초스님이었다.
“모르겠소, 현초스님”재가스님이 방석 두 개를 가져다 연결하며 말하자
“죽어도 스님 원망은 안 할게요”현초스님은 얼굴을 붉히며 두 개의 연결된 방석 위에 몸을 눕히고 외면을 하였다.
“원망을 안 한들 이 죄가 씻어 지겠소?”재가스님이 현초스님의 알몸 위에 알몸을 포개며 말하였다.
“....................”그 말에 현초스님을 말없이 눈물만 흘리며 재가스님의 엉덩이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푹!”현초스님이 재가스님의 엉덩이를 끌어안자 재가스님의 좆이 현초스님의 보지 안으로 들어갔다.
“아~스님”현초스님은 도리질만 치며 눈물을 흘렸다.
“현초스님 이게 아마 전생에 우리의 업이었던 모양이요”재가스님이 천천히 엉덩이를 들썩이며 말하였다.
“퍽,퍽퍽, 철썩,퍽퍽퍽,철썩”고요한 법당 안이 들썩이는 소리와 살이 부딪치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아흑~~아아아……악…아 스님”현초스님은 몸부림만 쳤다.
“퍽퍼퍽, 퍽퍽퍼거, 퍼억,푸욱”재가스님은 심각한 얼굴로 펌프질만 하였다.
“아~…스니, 부처님 나무관세음보살”현초스님은 부처님을 바라보며 합장을 하였다.
“퍽퍽퍽, 퍼-억,퍽퍼윽, 퍽-억,퍽-억!,퍽퍽퍽퍽”재가스님은 현초스님의 그런 모습에 펌프질은 더 힘이 들어갔다.
“악 ……악…….아아아…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현초스님은 연신 관세음보살만 연호하였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재가스님의 펌프질이 갑작스레 빨라졌다.
“악~~악~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현초스님은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한 체 염불을 낭송하였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아~악 스님”현초스님의 염불은 계속 되었다.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재가스님은 현초스님의 젖가슴을 움켜잡고 펌프질을 하였다.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현초스님은 부처님을 올려다보며 염불만 외웠다.
“퍽억,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재가스님도 간혹 부처님을 보며 펌프질을 하였다.
“아윽, 아윽, 아윽,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현초스님은 계속 반야바라밀다심경을 낭송하며 부처님을 올려다봤다.
“퍽퍽퍽, 퍼-억,퍽퍼윽, 퍽-억,퍽-억!,퍽퍽퍽퍽”재가스님의 펌프질은 무척 힘이 있어보였다.
“학학학,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의 반야바라밀다”현초스님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계속 염불을 낭송하였다.
“퍽퍽퍽,퍼-억,퍽퍽,퍽퍽”재가스님도 힘이 드는지 펌프질을 천천히 하였다.
“고득아뇩다라삼먁 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아~흑 스님”현초스님이 합장을 하던 손이 재가스님의 목을 감고도 계속 염불은 낭송하였다.
“팍팍 퍽퍼퍽,퍽퍽, 퍽퍼퍾!!!!!!!!!!!!!!!!!!!”갑자기 재가스님의 펌프질이 빨라졌다.
“윽,악윽, 윽!-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현초스님은 재가 스님의 목을 팔로 감고 끌어안으면서도 눈물만 흘리면서 법당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염불은 계속 하였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현초스님이 재가스님의 목에서 팔을 풀고 합장을 하며 염불을 계속 하였다.
“퍽퍽퍽, 퍽억,퍽퍽퍽프-으-억,퍽퍽퍽”제가스님은 계속 부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펌프질을 하였다.
“아학, 하흑,학하,학학학”현초스님이 염불을 계속하지 못 하고 신음만 하였다.
“퍽억,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어느 틈에 재가스님의 눈시울도 촉촉이 젖어있었다.
“으악,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엉엉엉”현초스님의 염불은 울음 반 염불 반이었다.
“퍽퍼퍽, 퍽퍽퍼거, 퍼억,푸욱”재가스님의 눈물이 현초스님의 젖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악!, 아 윽,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현초스님의 염불을 계속되었다.
“퍽퍼퍽, 퍽퍽퍼거, 퍼억,푸욱 으~~~~~현초스님 미안하오, 미안하오.”재가스님이 현초스님의 눈물에 젖은 젖가슴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말하였다.
“아~스님 따스해요, 따스해”현초스님이 재가스님의 엉덩이를 힘주어 끌어안고 외쳤다.
“찰싹”현초스님은 어깨를 치는 죽비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큰스님..........”재가스님은 온데간데없고 근엄한 얼굴의 큰스님이 인자한 얼굴로 현초스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현초야 햇빛 한 줄기만 발에 받고 온 몸에 따스함을 받았느냐?”큰스님이 인자한 얼굴로 현초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큰스님”현초스님은 옷매무새를 바로하며 발에 따스함을 느끼고 뒤돌아봤다.
놀랍게도 아침 햇살 한 줄기가 현초스님의 발바닥에 비치고 있었다.
“스님, 큰스님”현초스님은 합장을 하고 큰스님 얼굴을 봤다.
“현초야, 너는 이미 득도를 하였다, 장하다 장해”하는 큰스님의 머리 뒤에서는 후광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스님, 큰스님”현초스님은 다시 한 번 더 옷매무새를 바로하고 큰스님에게 큰절을 올렸다.
“큰스님! 큰스님! 아이고 큰스님! 아이고, 아이고”현초스님이 큰절을 마치고 고개를 들자 요사 체에서
통곡의 소리가 조용하던 암자에서 울려 퍼지더니 메아리가 되어서 현초스님이 있는 법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방금까지 현초스님의 눈에 보였던 큰스님은 현초스님이 고개를 돌리자 잔영 하나 없이 사라진 후였다.
“나무관세음보살”현초스님이 눈물을 흘리며 요사 체를 향하여 합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