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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야썰 철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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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40 회 작성일 24-07-08 00: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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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썰 철새공항에서 나는 가족들과 만난다는 기쁨에 화장실을 들락날락 여남은 번도 더 간 것 같았다. 이제냐 끝나는가 싶은 기러기 가족의 재회. 1년을 예상하고 나선 애들과 아내의 귀향은 3년으로 연장되었고, 이제 영어는 앞으로 평소에 게으르지만 않다면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월등할 거라는 아내의 자랑이 우리 가족의 재회를 결정하게 된 주된 원인 이었다. 그 동안 나도 나 나름대로 살아 나가기에 빠듯한 것도 사실 이었지만, 멀리 타국에서 가족들이 나와 떨어져 조금이라도 편히 있게 하려는 나의 고역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돌아올 기약이 없다고 하는 다른 기러기 아빠들 보다 나는 행복한 편이었다. 나도 1년이 3년으로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반발이 있었지만, 막상 현지에 나가보니 하루 아침에 귀와 입이 열릴 거라는 처음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학교에 적응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한국과 다르게 사교육이 없을 거라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던 것이 그 첫번째 였다. ‘여보, 정말, 여기도 우리 나라 저리 가라야. 내가 맨 처음 와서는 잘 몰랐는데, 저마다 튜터(가정교사)를 붙여서 이 과목 저 과목, 안 하는 것이 없고, 그 놈의 학교 밴드에 들어가려고, 악기 과외하는 애들도 수두룩 뻑뻑 이라니깐! 이곳 사립학교는 공립학교랑 다르게 수업료도 엄청 비싸고, 공부며, 취미 활동이며, 무지하게 시키고, 그 타이트한 과정을 따라 잡으려면 과외가 필수래. 더군다나 우리 애들은 여기 공립학교에 있어서 학비가 들지 않는다 뿐이지, 교육의 질이 공립이랑, 사립이랑 천지 차이야. 다른 엄마가 그러는데, 이곳에 유학 온 한국 대학생들 열명 중에 다섯은 전공도 못 찾아 먹고, 거 크레딧인가 뭔가만 따고, 학위는 취득도 못하고 이 대학 저대학 돌아다니다 귀국하는 일도 흔하다나봐. 주위의 사립학교 아이들 처럼 무지막지하게 공부시켜 대학을 보내 놓으면, 한국 유학생이나 이곳에 갓 이민 와서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은 그 아이들의 월등한 실력을 따라잡질 못해서 들러리 신세로 전락한대나 뭐래나. 여기서 그것도 공립학교에 보내 놓고 애들이 잘 하겠거니 맘 놓고 있는 게 다는 아닌 거 같아. 어떡할까?’ 모든 게 맘먹은 대로 이곳에서 인터넷에서 확인하던 정보며, 유학을 부추키던 학원의 강사쇄끼들 말만 믿고 보내 놨더니 현실은 너무 우리의 예상과 다른 곳에 떨어져 있었다. 유학을 가긴 갔지만,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한국과 별반 다름 없이 한국 학생들을 위한 학원으로 줄을 서서 가지 않고는 배겨날 수가 없더라는 얘기였다. 그럴거면 뭣하러 그곳에 가서 쌩고생을 하고 앉아있는 거야? ‘애들은 어때?’ ‘말도 말라니깐, 학교에 보내 놓고 3,4개월이 지났는데도 별반 신통칠 않아서 어느 날 애들을 불러 놓고 호되게 다구쳤지 뭐야? 너희들 이곳에 와서 공부하는 그 금쪽 같은 돈, 다 어디서 난 줄 아느냐? 아빠가 허리가 휘도록 일해서 부친 돈인데, 너희들은 고작 학교 갔다, 학원 들러 오면, 숙제랍시고 덜렁 해놓고는 그놈의 TV 만화에, 게임에, 한국 오락프로그램 비디오에 빠져 있으니 어떡할 거냐구 말이야.’ ‘그랬더니?’ ‘아, 글쎄, 학교에서도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한국 학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지, 한 반에 25명이 정원인데, 한국애가 12명인 반도 있다나봐. 게다가 아이들이 영어가 모자라 정규 수업과 병행해서 랭귀지 반을 따로 들게 해서 교육을 시키고, 정규 시간에도 난리굿을 피운데.’ ‘왜?’ ‘당연히 영어가 모자라니 그곳에서 태어난 한국아이들이나, 이민 온지 오래 되서 쫌 영어가 되는 아이들과 한 팀으로 묶어서 그 아이가 영어가 모자란 한국애 들에게 통역 비슷한 걸 해주고 있어서 학교에서도 외국 아이들과 얘기 한번 제대로 할 기회가 별로 없다고 투덜 대드라고…이거 보통 일이 아니더라구. 영어 배우라고 학교에 보내 놨드니 줄창 한국 애들이랑 어울려서 그게 한국 인지 뭔지 분간이 않 간다고 아이들이 그랬지 뭐야. 그렇다고 그 한국 애의 도움만 믿지 말고 너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니까, 당장 오늘 내준 숙제의 내용 파악이 안 되는데 쪽 팔리게 나 못 알아 들어요 하고 선생님에게 되물을 수도 없다고 하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알아본 인터넷의 정보는 거의가 현지에 가서 보니 나쁜 소리는 빼놓고 써 댄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현지에 가보니 정작 알아야 될 나쁜 소리에 대한 내용을 사전에 파악 했다면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푸념에 나는 아내의 하소연을 들어가며, 달래기에 바빴다. 허울좋게 외국에 유학 가서, 단기간 이기는 하지만, 탄탄한 영어 실력을 쌓아서 돌아가겠다던 초기의 부푼 꿈은 이미 물 건너 간 것 같다는 아내의 한숨에 나도 실은 기운이 빠지기는 했었다. 게다가 로칼 이라고 불리우는 현지 이민자나 시민권자들의 가시 돋친 시선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영어가 눈뜨고 깨어나면 술술 나온다는 발상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으며, 알량한 인터넷과 얄팍한 상술로 덕지덕지 덧칠이 되어 있는 유학 전문 학원의 꼬임만 믿고, 단기간에 영어를 마스터 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몽상에 빠져 가족 전체가 고생의 구덩이로 빠져 들어가는 기러기 가족 체제를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아내와 아이들 같은 부류를 보면서 혀를 차고, 영어가 1,2년 안에 될 거라고 믿는 또라이들 이라며, 뒤에서 쑤근 대는 것을 너무나 흔하게 보아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영어를 배우면서 욕부터 받아 들이고, 쓰잘데기 없는 단어나 먼저 외워대고, 겉멋만 들어, 한국인이 모여 상권을 형성하는 지역의 노래방이나, 비디오방, 만화가게에는 한국 학생들로 끌어 엎어진다고 탄식이 대단하다고 했다. 허기사 그 사람들이야 장사가 되니 겉으로 말은 않 해도 그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나, 교회 구역모임에서는 성토 비슷하게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넌지시 씹는다고들 했다. 아무튼 그런 저런 일들을 뒤로 하고서 이제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생각은 지나온 씁쓸했던 기러기 가족으로서의 좋지 않았던 기억을 뒤로 물릴 수 있었다. ‘아빠!’ ‘여보! 얘들아! 어디 얼굴 좀 보자.’ 부등켜 안은 우리 네 식구의 몸은 쉽게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서울에서 보다 조금은 수수해 진 것 같은 아내의 모습, 머리에 물을 들여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 아이들, 그 사이에 훌쩍들 커버려 어리둥절 하기까지 했지만, 가족은 가족 이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두 아이는 간간히 영어를 섞어 쓰면서 자기들 만의 감회를 얘기했고, 아내는 자기가 얼마나 아이들 데리고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여보, 그 동안 얼굴 많이 상했다, 내가 가서 밥 맛있게 해줄게. 나 그 동안 실력 많이 늘었다구!’ 나는 차를 몰고 서울로 들어 오면서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내가 그 동안 집안에만 있던 것이 아니고 일도 했다고 알려 주었다. ‘무슨 일? 당신이 할 줄 아는 게 뭐 있다구?’ ‘무시하지마, 이래 뵈도 다운타운(도심한복판) 샌드위치 샵에서 알아주는 헬퍼 였다구. 나 1년 넘게 일했어.’ 저마다 떨어져 있는 사이 자랑거리가 늘어 있었다. 이삿짐은 줄이고 줄이고 줄여서 배로 부쳤기 때문에 한달 후에나 도착 할거라는 말끝에 아내가 말했다. ‘그리고, 노트북은 내가 들고 올려고 했는데 워낙 들고 들어오는 짐이 많아서 맨 마지막까지 쓰다가 짐에 넣어 버렸어. 부서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 ‘부서지면 또 어떠냐? 3년씩이나 쓴 거, 요즈음 유행이 한 달이 멀다 하고 바뀌는 판국에.. 잊어버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식탁에 둘러 앉으니 감개가 무량했다. 아내나 나나 밥을 먹다 말고 물끄러미 얼굴을 쳐다보기를 몇 번, 아이들도 마찬가지 였다.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갈 수속을 하느라 현지에서 처럼 아내의 발걸음이 또다시 부산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예전처럼 대접 받아가며, 일을 나가는 한가로운 가장의 위치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못 만나다가 합쳐진 나와 아내의 부부생활은 뜨겁기가 그지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떤 주일은 하루도 거르질 않고 밤마다 섹스를 하는 통에 주말에 아내는 가랭이에 가래톳이 서서 잘 걸을 수가 없다면서 나를 흘겨보기까지 했으니깐. 아무튼 새로운 신혼을 맞이하는 것 같은 설레임이 다시 찾아오고 있었고, 몰라보게 원숙해지고, 풍성해진 아내의 살집은 밤마다 내 좇을 가만두질 않고 있었다. ‘따르릉!’ 아내가 전화를 받고 무언가를 받아 적는다. ‘여보, 우리 짐이 도착 했다나봐. 이 주소의 화물 운송회사로 가서 직원이랑 함께 공항 화물청으로 가야 된다나 뭐라나….’ ‘벌써 한달 이나 됐나? 세월 참 빨라. 알았어. 내가 갔다 올게.’ 나는 받아 든 쪽지를 들고 약속한 날짜에 운송회사 직원과 함께 화물을 찾으러 나섰다. 여러가지 복잡한 서류와 화물 내역서를 갖고 이리저리 청사내를 왔다갔다 하던 중에 그 직원이 어디선가 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네…네…. 알겠습니다. 네네 바로 서류 들고 들어가겠습니다. 네..네’ ‘뭐가 잘 못 되었습니까?’ ‘아니오, 그런 게 아니고, 역이민 하시는 분들이나 주재원, 외교관이 아니고 선생님 처럼 장기 체류자의 이삿짐일 경우에는 화주 입회 하에 인스펙션(화물검사)을 하게 되어 있거든요. 체류 기간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는 품목들이 다르기 때문에 일일이 검사가 들어 갑니다. 시간이 정해졌으니 가시죠. 만일 현지에서 물품을 구입하신 영수증이 없을 경우에는 억울하게 세금을 때려 맞는 경우도 있죠.’ 나는 멋모르고 따라 나섰다. 경찰관 같은 복장의 세관원과 함께 창고에 들어가면서 나는 왠지 주눅이 들고 있었다. 나무로 짠 이삿짐을 하나하나 열어가면서 귀중품이나 목록과 다른 것들이 있는가 없는가 확인하던 도중에, 마지막 나무 상자를 열었을 때, 그 세관원이 말했다. ‘이 상자 구만요. 적외선 투과 시에 파손 여부 확인요망 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노트북 피씨, 선생님 것 맞습니까? 다른 물건은 제대로 포장도 하시고, 일일이 구입 시기랑 영수증을 물건에 부쳐 놓으셔서 대단하시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독 이 노트북만 이렇게 허술하게 아무렇게나 넣어져서 박살이 났네요. 확인해 보시죠.’ 나는 LCD패널이 있는 덮개가 박살 난 노트북을 들어 보았다. 아마도 데이터조차 살리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리에서 운송회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것들은 괜찮은데, 노트북 피씨가 박살이 났다고 얘기하자, 상태를 보고 자기네가 계약된 조건 하에서 보상해 드릴 테니 걱정 말라고 해서 속으로 안심이 되기는 했다. ‘삼년이나 넘은 것을 보상해 주면, 이거 꿩 먹고 알 먹고 아냐?’ 나는 검사를 마친 짐을 인수 받아 포터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노트북은 보상을 해준다는 말을 하자, 아내도 잘 되었다고 하면서 좋아했다. 서로가 짐을 풀면서 현지에서 생활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좋아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한동안 떨어져 사는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이 지나고 회사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새나라 항공운송 입니다. 유진수씨 되시죠?’ ‘네 그런데요?’ ‘저 파손된 노트북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저희가 아는 수리센터에 의뢰해 본 결과, 수리비가 새로 사는 것보다 더 많이 청구가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내부의 하드디스크랑, 씨디롬에 꽂혀 있던 씨디는 별 영향이 없었는데, 아마도 노트북 피씨는 골로 간 것 같아서요. 새로 사서 드리면 안될까요?’ ‘저야, 뭐…그 시스템 안에 있던 하드는 외장형이나 추가 하드로 쓸 수 있게 해주시면 고맙겠는데, 그런 부탁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그렇게 최고급 모델은 아니라도 적정한 수준에서 신품을 구입해서 기존에 쓰시던 하드도 되살리는 방향으로 씨디와 함께 배달해 드리죠. 어디로 갖다 드릴까요?’ 나는 아내를 깜짝 놀래켜 줄 심산으로 회사로 배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3일이 지나고 회사로 정확하게 배달되었다. 나는 포장을 뜯고, 이리저리 노트북을 살펴 보면서 파손된 노트북에서 떼어내어 외장형 하드로 탈바꿈한 기존의 하드를 시스템에 연결하고, 따로 포장되어 온 그 씨디도 풀어서 새 시스템에 집어 넣었다. ‘따르릉!’ 그건 집에서 온 전화였다. 아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건 전화였다. ‘자기야, 지금 빨리 집에 올 수 없니?’ ‘왜? 무슨 일 있어?’ ‘아이들이 학교에서 일찍 왔는데….그게… 아무튼 빨리 와.’ 나는 알았다고는 했지만 바로 걸려있는 업무회의를 빼 먹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회의를 마치고, 이런 저런 정리를 하고, 배달된 노트북 피씨를 가방에 집어넣는 거 하며,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있었다. 평소보다는 일찍 이지만, 그렇다고 아내의 다급함에 부응하는 자세로 일찌감치 도착한 것도 아니었다. 현관을 열자, 아내의 바락바락 악쓰는 소리가 들리고, 그에 맞받아 치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함께 쩌렁쩌렁 울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너희들 어따 대고 버르장머리 없이 소리를 지르는 거냐?’ 나는 다짜고짜 아이들에게 눈을 부라리면서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실내를 진정시키고, 나는 담배를 피우면서 아내에게 찬찬히 얘기해 보라고 했다. ‘글쎄, 저 놈이 오늘 영어 시간에 선생한테 대들다가 혼이 나고, 아이들과도 대판 싸우고 들어와서는…’ 아내는 목이 거지반 쉬어 있었다. ‘학교에서는 왜?’ ‘그게, 선생 발음이 엿 같아서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했더니만 건방지다고 꿀밤을 멕였나봐, 그런데, 저 녀석이 그러면 그런 줄 알지, 뭐 잘난 게 있다고 왜 때리느냐고, 외국에서는 이런 일은 없다며, 대들다가 교무실에 끌려가서 줄창 터지고 왔다지 뭐야. 게다가 교실에 돌아와서는 외국물 먹고 와서 폼 재는 게 시덥지 않다고 누가 한마디 했는 모양이야. 그것 쫌 참지, 그걸 갖고 시비가 붙어서 그 애의 코뼈를 부러뜨렸대. 아까 병원에서 전화 걸었었는데, 그 집 부모 한테 내가 싹싹 비는 통에 눈물이 나와서…..’ 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큰 놈을 불렀다. ‘너 왜 그랬냐? 평생 살다 온 것도 아니고, 3년 나갔다 온 주제에 거드름을 떨었기에 친구들 눈 밖에 난 거 아냐? 어서 말해 봐.’ ‘아니에요. 말이 3년이지 너무 많이 바뀌고 어려워져서 요새 학교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구요, 알기나 아세요? 엄마, 아빠의 수고는 알겠는데요. 외국이면 외국, 한국이면 한국 이렇게 붙박이로 있는 게 아니고, 들락날락 해보니 나만 괴롭고, 따라잡기는 점점 더 어려워 지는 것 같아요. 영어가 다가 아니잖아요? 여기서 더 있다가는 미쳐 버릴 것 같아요. 내가 이런 곳에서 예전에 어떻게 공부했나 싶어요. 우리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면 않 되요? 이 곳에서는 하루도 있기 싫어요. 태어난 한국이 좋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나는 이런 것이 기러기 가족의 부작용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이 곳에 죽어도 적응하기 힘들 것 같냐?’ ‘숨통이 터져서 못 살 것 같아요. 눈만 뜨면 대학, 대학 그러고들 있는데, 사실 학교에 가 보면 몇몇 빼고는 다 졸고 있고, 학교에서는 학원숙제 하느라 수업에 신경 쓰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어요. 도대체 학교가 왜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엉터리 교육은 처음 봐요.’ 저녁을 먹고 밤이 이슥해 지도록 서로가 말이 없었다. 나도 아내도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주제는 단 하나였기에…..모두가 방으로 자러 들어가고, 나와 아내는 안방에서 마주 앉았다. ‘자기야,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나도 잘 모르겠어.’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이 사태를 예견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다시 애들과 아내를 돌려 보낸다는 것도 생각해 보진 못했기에…나는 대답 대신에 아까 회사로 배달된 노트북과 외장하드디스크를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내 생각에는…… 다시 돌아가, 다시 말이야, 그 곳으로……그게 좋겠다. 그게 우리 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니, 당신은 또 그게 무슨 말이야?, 돌아온 지가 언젠데, 다시 돌아가라구? 정말 그렇게 하고 싶어? 또다시 떨어져 살아야 하는 기러기 가족의 전철을 겪어 보자구? 난 못해. 너무 힘들어. 너무 힘들었다구……’ 나는 말없이 천천히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와는 무관한 것처럼 노트북을 켰다. 익숙한 화면이 나오고 나는 씨디롬을 열어 한 파일을 열었다. 미디어 플레이어가 자동으로 작동하면서 액정화면에는 낯설은 거실이 비추어 졌다. 누군가가 캠으로 찍은 듯한 광경, 매우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이건….’ ‘그래, 부숴져 있던 그 노트북 안에 있던 CD야, 왜 놀랐어? 이게 이렇게 살아 돌아올 줄 몰랐겠지?’ 화면에는 아내가 있었다. 술에 취한 듯, 약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아내를 소파에 앉히더니, 둘러선 두 명의 백인이 천천히 아내의 옷을 벗겨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정신을 차리질 못했고, 저희들끼리 키득대면서 벗기워져 가는 아내의 몸을 마구 주무르고 있었다. 한 사람이 옷을 벗기고 있는 동안, 다른 한 남자는 옆에서 자신의 옷을 벗고 있었다. 옷을 벗기도 전에 보여진 그 남자의 좇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가 대단했다. 서로가 역할을 바꾸어 가며, 세 사람이 모두 발가벗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정신을 차리질 못하고 있었다. 젖을 빨아대고, 한 놈은 아내의 다리를 있는 대로 벌리게 하고는 보지를 사정없이 빨아 재꼈다. 조금은 정신이 드는지, 자신의 보지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남자의 등을 툭툭 내리치기는 했지만 정신이 없는 것은 다름 없었다. 보지에 침을 칠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슨 종이를 잡아 째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아내의 보지는 그 남자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내의 보지를 빨던 남자가 우선 아내의 씹 속으로 그 바나나처럼 휘어진 좇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비명과 신음의 중간도 안 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는 아내. 옆에서 그것을 보다 못해 아내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런 말이 없다. ‘봐, 계속 봐, 네가 어떻게 했는지 두 눈을 뜨고 똑바로 보란 말이야. 나 없는 동안 그 곳에서 어떻게 하고 돌아 다녔는지를….’ 나는 아내의 머리 끄댕이를 잡아채서 머리털이 다 뽑아질 것 처럼 흔들면서 액정 화면 앞으로 얼굴을 들이 밀었다. 저희들끼리 좋아서 히히낙락 대는 것이 화면 가득히 보여지고 있었다. 캠을 찍는 놈이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고 있었다. 아내의 보지에 뿍짝 대면서 그 커다란 말좇 같이 대대한 물건이 거침없이 씹 끝까지 쑤욱 박히는 모습이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너무나 굵고, 커서 인지, 아내의 보지구녕은 똥그랗게 벌려져서 똥꾸멍 과의 사이에 있는 회음부의 살이 빤질거리며, 빤빤하게 펴져 있기도 했다. 옆에서 아내의 젖을 빨던 놈은 그나마 좇이라도 빨려 볼 심산 이었는지, 정신이 나가 버린 아내의 입 근처를 그 무지막지한 좇대가리로 툭툭 쳐대면서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내는 용만 써대고 신음만 흘렸을 뿐이지, 좇을 빨 정신 조차 없어 보였다. 아내의 몸은 시체와 다름 없었다. 그렇게 축 늘어진 아내를 그들은 인형처럼 갖고 놀았다. 캠을 찍던 녀석까지 세 놈이 번갈아 가면서 아내의 보지에 박아댔고, 소파는 그 장면을 보여 주기에 안성맞춤의 높이로 아내의 보지를 허공을 향해 까발려 지게 하고서 그 좇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게 했다. 급기야 그 녀석들은 한 놈이 소파에 앉은 채로 아내를 그 위에 올려 놓고 보지에 좇을 쑤셔 박아 올렸고, 곁에 있던 놈은 콘돔에 무언가를 잔뜩 바른 채, 소파로 기어 올라가서 아내의 항문에 나머지 좇마저 깊이 박아 넣어 버렸다. 캠코더의 초점은 아내의 보지 바로 앞에 와 있었고, 아내의 보지와 항문은 두 놈의 거대한 좇으로 뒤덮혀 쑤셔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위의 놈이 박아 넣고 빼는 듯 하면, 아랫 놈이 좇을 쑤셔 올려 치고, 아무래도 많이들 해 본 솜씨처럼 보이고 있었다. 항문에 박아 넣었던 놈이 사정을 했는지, 허연 정액이 가득 차 터질 것 같은 콘돔 씌운 좇을 항문에서 빼어냈는데, 연이어, 항문이 오그라 들 사이도 없이 캠코더를 찍는 녀석과 임무를 교대해서 항문에 다시 좇을 박고 난장을 떨어댔다. 그렇게 세 놈은 콘돔을 쓰기는 했지만 아내의 보지와 똥꾸녕을 벌창을 내놓고 섹스를 끝냈다. 그래도 아내는 정신을 차리질 못했고….. ‘바람을 피웠으면, 증거를 남기지를 말든가, 아니면 내놓고 나한테라도 털어놓든가 하지, 어쩌자구 이렇게 사람의 뒤통수를 치고 지랄이야, 지랄은?’ ‘흑흑.. 여보 미안해요. 입이 열 개 라도 할 말이 없어요. 저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흑흑….’ ‘저 새끼들은 뭐야?’ ‘한 사람 밖에 전 몰라요. 그리고, 저럴 려고 간 게 아니에요. 흑흑….. 제가 아는 저 갈색머리는 샌드위치 샵에 매일 오는 변호사에요. 제가 안 되는 영어로 무얼 물으니까 공짜로 컨설트 해주겠다고 해서 아무런 의심 없이 저녁식사에 초대 받아 갔어요…그때까지 전 외국에서는 금요일에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이면 그게 섹스를 의미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때 였어요.’ ‘뭘 물어 봤는데?’ ‘제가 지금 가디언(미성년의 보호자 자격)의 조건으로 아이들과 와 있는데, 이민 조건으로 변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하는 걸 물었던 거에요. 당신이 고생하는 것이 하도 안쓰러워서 샌드위치 샵이긴 해도 이렇게 돈을 벌어가면서 이민자의 자격으로 아이들을 공부시키면 학비도 훨씬 줄어들고 당신에게 돌아가는 부담이 좀 적을까 싶어서요….진심이었어요. 다른 뜻은 없었구요.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주스에 약을 탔는지는 저도 까맣게 몰랐고…..’ ‘그런데, 저 씨디는 어떻게 된 거야?’ ‘아침에 일어나 소스라치게 놀라서 집에 돌아와 보니 핸드백 안에 있더라구요. 저희들끼리 찍은 것을 나누어 가진 모양 이었지만, 말도 짧은 내가 뭐라고 대들 수도 없었고….저도 영문을 모르고 틀었다가 홧김에 노트북을 내던져 버렸어요. 그 바람에 깨져서 고장나고, CD는 빼내지도 못했고…..그냥 그렇게 고장 난 채로 있으면 당신이 버릴 줄로만 알고 있었지, 이렇게 살려서 갖고 올 줄은 꿈에도……제가 잘못 했어요…..당신 말대로 할께요. 가라면 갈께요. 아이들도 그러니, 어쩌겠어요? 이 마당에 이혼하는 것도 그렇고, 좀 떨어져 있다 보면 모든 게 정리될 때가 오지 싶어요. 당신은 어때요?’ 나는 또다시 불 꺼진 집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과 혼자서 멍하니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죽기보다 싫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었다. ‘한번 생각해 보자구, 온지 얼마 됐다구…..’ 그러나, 금이 간 생활은 어떤 접착제로도 붙질 않았다. 애들은 학교를 가지 않기 시작했고, 아내도 나날이 말 수가 줄어갔다. 나는 이래서는 모두 망조로 가는 길이 될 것 같아 괴롭기는 하지만 기러기 가족이 다시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여보, 몸 조심해요. 지금 진행하는 이민 수속이 어떻게 되나 빨리 알려 줘야 되요, 알았죠?’ ‘알았어, 당신이나 애들 데리고 건사나 잘해. 딴 생각 하지 말고… 애들아, 엄마 많이 도와 드려야 한다. 이번 여름에는 아빠가 시간 내서 들릴게!’ 얼마 전 공항에서 네 식구가 뭉쳐서 쉽사리 떨어질 줄 몰랐던 것처럼 이번에도 서로가 껴안은 팔은 좀처럼 풀어질 줄을 몰랐다. ‘몸조심들 하고, 여름에 만날 때까지 안녕!’ 출구를 빠져 나가면서 손을 흔드는 아내와 아이들, 이런 순간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할는지….그러나, 나는 출구를 돌아 게이트로 사라지는 아내의 얼굴에 담기는 회심의 미소를 보질 못했다. 그러나, 나는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내 앞에서 보인 눈물의 의미를…..그 씨디에 담겨 있던 나머지 두 번째 파일에는 정신이 말짱한 아내가 그자들과 어울려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가며, 미친 듯이 섹스에 열광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나는 보여주질 않았다. 어차피 아내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애쓸 것이 분명했고, 아이들의 교육 문제는 그저 핑계였다는 사실을 나는 그 파일을 보고 깨달은 것이었다. 철새처럼 왔다가 다시금 떠난 식구들… 그러나, 가슴속에는 이상하게 아무것도 남질 않았다. 그저, 계절이 바뀌어 또다시 돌아올 철새들을 위해 둥지를 깨끗이 청소할 일만 남은 날개 잃은 붙박이 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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