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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카페 알바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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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413 회 작성일 24-05-14 02: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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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알바녀 2   

 

예전에 TV를 보다가, 어느 유명한 개그맨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굉장히 시니컬한 캐릭터였던 그는 자기 삶의 가치관이 ‘아니면 말고.’ 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 네 글자에 많은 것이 담기어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갈등이나 선택의 순간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몇 번이나 재고, 고민하고, 누군가와 상담하거나 괴로워하고 또 후회하는 것을 반복한다.

 

 

그런데, 때로는 에이 시발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임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어찌 보면 도전의식이나 끈기 따위는 없는 전형적인 패배자 마인드일 수도 있겠으나, 이게 막상 해보면 정말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이야기하는 카페 알바생 그녀는 아니면 말고! 라는 생각으로 들이대서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다음날도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샀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 다음 날도 카페에 들렀다. 과도한 커피 섭취에 화장실을 몇 번 오가긴 했지만, 그때마다 꾸준히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런 것도 쌓이기 시작하니 이제 소개팅 자리만큼 서로에 대해 질문을 나눈 정도의 레벨이 되었다.

 

열 잔에 한 잔 무료인 쿠폰으로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될 즈음, 나는 그녀의 이름과 학교, 전공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어느덧 그녀에게 말도 편하게 놓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던 그 날에 나는 그녀에게 내가 살 테니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라 권했다. 카운터 바로 앞에 있는 자리, 정확히 말하면 자리라기보다는 손님이 잠깐 대기하기 위해 앉는 자리에 앉고, 그녀는 카운터에 서서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바 끝나면 보통 뭐해?”

 

“그냥 집에 가서 TV 보거나 인터넷 하거나……그러다가 자는 거죠. 오빠는요?”

 

하얀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묻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응 야동 보면서 딸쳐’라고 차마 말할 수 없어서 근사한 취미를 찾기 위한 노력을 그 찰나의 순간에 하고 있었다.

 

“여행 계획 짜지.”

 

“여행 계획이요?”

 

내가 사준 망고 에이드를 마시면서 그녀가 되물었다. 여행은 개뿔.

 

“내가 취미가 여행이라서….. 요새는 캠핑에 꽂혀 있거든.”

 

군대에서 군용 텐트 치는 거에 이력이 나서 나는 캠핑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캠핑이 한창 유행하기도 전이었는데, 왜 저런 말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는 아주 좋은 구실과 뻥이었지만.

 

“보통 일은 몇 시에 끝나?”

 

“음….. 여섯 시? 아니면 여덟 시까지 할 때도 있어요.”

 

“오늘은?”

 

“여섯 시에 끝나요.”

 

슬쩍 시간을 보니 다섯 시 사십 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아마 교대 근무를 위한 누군가가 곧 오지 않을까 싶었다. 슬슬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4천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지금까지 열 잔 마셨으니 4만원인데, 그 정도면 충분히 ‘1회 들이댐 티켓’ 정도는 산 게 아닐까?

 

“오늘 끝나고 뭐해? 밥이나 먹을래?”

 

“네?”

 

그녀의 눈이 살짝 동그랗게 변했다. 화장기가 그렇게 많지 않은 그녀였는데, 눈꼬리가 올라가니 섹시하다. 얼굴만 보면 굉장히 귀염상인 그녀이지만, 아메리카노를 내려주기 위해서 뒤 돌아 서 있을 때 봉긋하게 솟은 힙을 보면 그 얼굴이 귀엽게만 보이지 않았다.

 

“오빠가 사줄 거에요?”

 

“아니 엔빵…… 아니, 더치페이.”

 

“에이. 뭐에요.”

 

그녀가 살짝 웃자 긴장이 조금 풀렸다.

 

“농담이고. 먹고 싶은 거 내가 사줄게.”

 

“정말이에요?”

 

살짝 미소 짓는 그녀를 보니 아싸 성공이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다. 배시시 웃는 그녀의 엉덩이…. 아니 얼굴에는 그 어떤 거부의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 매운 거 먹고 싶어요. 오빠 매운 거 좋아하세요?”

 

아니. X나 싫어해…..

 

“콜. 매운 거라면 환장하지. 뭐 먹을래?”

 

“음….. 이 근처에 낙지 볶음 잘하는 집 있어요!”

 

보통 그녀의 이미지나 나이 또래를 생각했을 때 파스타니 스테이크니 혹은 해산물 뷔페니 이런 걸 말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매력 있는 메뉴 선택이었다.

 

“그럼 나가서 기다릴게.”

 

“아… 네!”

 

저녁을 먹자는 것을 끌어냈으니 시간을 끌어서 그녀에게 고민의 여지를 줄 필요는 없었다. 때마침 다음 타임 알바생 남자가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와 그녀에게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 슬쩍 눈길을 준 뒤 매장 밖으로 나갔다.

 

정말 봄이 오기는 온 모양인지, 여섯 시가 되었는데도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다. 이게 뭐라고 설레는지, 이미 머릿속에서는 모텔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저희 대실이에요. 숙박은 댓츠 노노.’ 쓸 대 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나왔다.

 

사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을 보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녀는 줄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치마 밑으로는 흠잡을 곳 없는 다리가 길고 하얗게 뻗어 있었다. 한 손에 둘러보고 싶은 잘록한 허리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슴라인.

 

나는 사실 복장에 대한 약간의 패티쉬가 있다. 간호사복이나 교복, 오피스 룩 같은 특정 복장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너무 어울리는 옷이 있으면 두 배로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그 옷이 치마건 바지건, 누더기건 한복이건 러시아 전통 의상이건 삐에로 복장이건 간에 그 사람의 이미지나 몸매와 잘 맞으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그녀가 입고 나온 줄무늬 원피스가 그랬다.

 

“이제 가요. 많이 기다렸어요?”

 

내가 상상 속에서 줄무늬 원피스 치마를 들치고 만질만질 하는 것을 알 리가 없는 그녀가 밝게 웃으며 내 팔을 살짝 잡아끌었다. 그녀가 말한 식당은 걸어서 2~3분 거리에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정말 맛있는 집이긴 한 모양인지, 6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도 빈자리는 거의 없었다.

 

“낙지 볶음 소 자로 하나 주세요.”

 

“소주도요.”

 

그녀의 주문에 내가 슬쩍 숟가락, 아니 소주를 얹었다.

 

“술 마시려고요?”

 

“왜? 낙지에는 소주 아니야?”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술 못 마셔?”

 

“잘은 못해도 좋아는 해요.”

 

아싸!!!

 

“그럼 반주로 한 잔씩 하자.”

 

남자들의 자신감은 여자들의 리액션에서 나오는 법이다. 아무리 말 많은 남자라도 여자가 말이 없으면 할 말이 떨어지는데, 그녀는 명랑하게 먼저 말도 걸어주고, 내 말을 잘 들어주기까지 했다. 맵기는 더럽게 매운 낙지 볶음과 소주가 나오고, 그녀와 나는 한 잔씩 주고 받기 시작했다.

 

“근데 너는 남자친구 없어?”

 

“남자친구? 왜요?”

 

“그냥 궁금해서.”

 

“없어요. 남자친구는.”

 

“남자친구는…. 이라는 말은 남편은 있어?”

 

“뭐야.”

 

그녀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매운 낙지 때문에 발음이 조금 꼬이고 변태마냥 헉헉거렸지만 남자친구가 없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테이블 위에 술병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술이 그다지 센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실 때는 소주 반병 이상 마시질 않았다. 아마 나 술 안 먹는다고 지랄했던 어떤 친구 한 놈이 봤으면 욕을 쉴새 없이 퍼부었을 정도로, 나는 그녀에게 술을 먹이고 나도 마셨다. 하얀 얼굴이 발갛게 물드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술을 한 잔 두잔 마시고 나니, 대화의 깊이가 깊어졌다.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그녀는 고향이 부산이었고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자취한다고 했다. 물론 자취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불끈했다. 남자들은 공감할 거다. 아님 말고.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기는 하지만 대학생활이라는 게 의외로 돈이 많이 들어가서, 카페에서 알바를 한다고 한다.

 

“너 공대 다니잖아? 남자들한테 인기 많겠네?”

 

“당연하죠. 밥은 돈 주고 사 먹은 적 별로 없어요.”

 

“네 입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공대에는 치마만 두르면 웬만해서는 그렇게 돼요.”

 

하긴 저렇게 귀여운 핫바디가 후배라면 나는 대출도 받을 자신이 있다. 제1금융권이 안되면 제3금융권이라도. 그녀는 내 직업에 관해 물었고, 나는 내가 하는 일들, 그리고 부업으로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이상하게도 내 주변의 이성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당연히 없을 거로 생각하나?

 

“너는 어떤 남자 스타일 좋아해?”

 

“키 크고…. 덩치 좀 있는 스타일이요.”

 

그 말을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모텔 갈래?’ 라고 말할 뻔했다.

 

“아 이거 또 완전 내 얘기하는 건데?”

 

“맞아요. 오빠가 말 걸었을 때 그래서 좀 좋긴 했어요.”

 

빨간 얼굴이 저런 대사를 날리면서 나를 바라보는데 술 까지 마셔서인지 심장이 목구녕으로 튀어나올 거 같았다.

 

“아 배부르다. 잘 먹었어요. 오빠.”

 

소주 세 병에 낙지 볶음이 사라지고, 매운 걸 먹어서 비 오 듯 땀을 흘리는 나와 얼굴이 발갛게 물든 그녀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맥주 한 잔 더 할래?”

 

내 말에 그녀는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배부른데요. 그리고 저 맥주랑 소주 같이 마시면 다음 날 숙취가 너무 심해서…..”

 

그럼 2차로 또 소주 먹으면 되지….라고 하겠지만 그러면 나도 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살아? 바래다줄게.”

 

“OO역 근처에요. 근데 차 운전 못 하지 않아요?”

 

“차 안 가져 왔는데. 같이 전철 타준다는 의미였어.”

 

“하하. 뭐야~”

 

낙지 볶음을 먹고도 이빨에 고춧가루 하나 안 낀 해맑은 미소를 보니 안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차로 바래다주는 것만 바래다주는 건가? 지하철이 얼마나 위험한데. 치한도 많고.”

 

“치한?”

 

“그래. 누가 네 엉덩이 만지면 어떡할래?”

 

“그럼 오빠는 안전해요?”

 

아니. 사실 내가 제일 위험하지…….

 

“당연한 거 아니야? 가자. 바래다줄게.”

 

그녀는 거절도, 긍정도 하지 않고 나를 따라나섰다. OO에서 OO까지는 생각보다 가까워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든 2차로 맥주라도 하고 싶은데, 처음으로 카페 밖에서 만난 날에 너무 무리하면 안되겠지 싶었다. 흔들리는 전철에서 그녀는 조잘조잘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재수 없는 교수 이야기, 취업에 대한 걱정, 늘어나는 과제며, 자기 친구 중 한 명은 남자 잘못 사귀어서 대학교 자퇴 후 방황 중이라는 등등의 이야기였다. 나는 들어주며 슬쩍 그녀의 몸에 밀착했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전철에서 내려 그녀의 집에 다다랐을 때쯤에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바래다줘서 고마워요.”

 

“고맙긴 겁나 가깝던데.”

 

그 와중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안을까? 뽀뽀할까? 그러기엔 눈이 너무 많은 오피스텔 앞이었다. 고민 끝에 진심 어린 말이 나왔다.

 

“집 구경하고 싶어.”

 

“오늘요?”

 

“그럼 뭐 다음 주 수요일에 구경할까?”

 

“오늘은 정리도 안 되어 있어서…..”

 

“괜찮아. 내가 치워줄게.”

 

“오늘은 안 돼요.”

 

곤란한 듯 웃는 그녀는, 그 와중에도 내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딱 한 번만 더 들이대고 아니면 말고로 나가자.

 

“커피 마시고 싶어. 커피 한 잔만 마시고 갈게 그럼.”

 

“커피요? 또 마셔요?”

 

“아니면 뭐 주스라도.”

 

얼버무리는 나를 보더니 뭐가 웃긴지 쿡쿡거리며 웃는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고민하듯 고개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더니,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더럽다고 뭐라고 하지 않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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