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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여승무원, 연인, 여자 -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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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095 회 작성일 24-05-13 21:0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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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여승무원, 연인, 여자 - 13화 

 

후우~~!

 

 

담배연기가 허공을 가른다. 

회색 빛을 띄고있는 악마의 연기가 구름처럼 두둥실 피어오른다.

머리 속이 멍해진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도대체 뭐야 이 착잡하고 우울한 심정은....

정체를 모르겠다...

후우~~~!

다시 한모금의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오늘 밤은 별들도 초롱초롱하구나...강화의 밤은 원래 이런가...

천천히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고 있었다.

오늘 처음 가봤던 석모도의 경치는 괜찮았다.

기암도 좋았고, 혜미와 함께 걸어 본 갯벌의 느낌도 좋았다.

혜미와 함께 보문사에도 올랐다.

혜미는 보문사에 오르자 무척 즐거워 했다. 

젊은 아가씨이면서도 사원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뭐, 처음 아는거야 당연하지.

언제 둘이 같이 가본 곳이 있어야지.

어쨋든 석모도에 다녀 온건 잘한 일이다. 

석모도에도 펜션이 있던데....진작 좀 더 알아보고 그쪽으로 잡을 걸 그랬나...

어쨋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뭐, 우리 펜션도 나쁘진 않잖아. 

위치도 괜찮고..방도 깨끗하고...

뜰에는 그네까지 있는 동화 속 동심의 경치인걸 뭐.

석모도에서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내 쪽으로 먼저 나가서 이것저것 식량(?)도 간단히 구입했다.

분위기 좋게 와인을 고집하는 나와는 달리 혜미는 맥주가 좋다고 했다.

밀러를 좋아한다고 하길래, 나는 애써 무시하고 카스를 골랐다.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표시하는 혜미의 표정이 귀여웠다.

계속 삐죽거려라, 난 네 삐죽거리는 표정이랑 섹스할 때 일그러지는 표정이 제일 맘에 들더라.

거기에 맑고 고운 신음소리까지 곁들이면 최고지.

"한밤중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영창피아노~!!

한밤중에 울리는 낯뜨거운 소리~????!!!"

밖으로 둘이 나와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향했다.

차를 타기 전에 담배를 한개피 꺼내어 불을 붙였다.

혜미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안 끊었지? 한대 피울래?"

"주세요."

혜미가 사양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 한다.

농담 한마디 건넸다가 뜻하지 않은 광경을 목격 하는구나.

담배를 피울 줄 아는구나....

피우는 모습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한개피를 끄집어 내려는데....

"제가 꺼낼께요. 그냥 갑 째로 주세요."

얼씨구...당돌한 것.

"그러렴" 

담배를 통째로 건넸다.

혜미가 담배갑을 받아들더니 자기 호주머니 속으로 그냥 넣어버린다.

"뭐야? 안피우니?"

"담배 필요하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갖고 있을께요."

으잉? 이게 무슨 소리여? 지금 담배 압수하는 것이여?

"그래...그러지 뭐."

나도 쓸데 없이 그런 걸로 짜증내는 성격은 아니다.

건강까지 챙겨주겠다니...엔조이 파트너로서 너무 서비스 좋은거 아냐?

서비스 직에서 일하는 애라서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배어있는 것인가....

다시 담배를 한모금 빠는데, 갑자기 웬 남루한 차림의 아저씨가 어느새 우리 뒤에 떠억~버티고 섰다.

"저기요...선생님...저...죄송한데요..."

아니, 이런 곳까지 노숙자들이 진출했나.

내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없거든요. 죄송하지만 저리 가 주실래요?"

그런데....혜미가 손지갑을 열고는 동전을 이리저리 찾고있다.

"야, 뭐하는거야?" 라고 큰 소리로 말하기도 그렇고....

 

 

아저씨가 어느 새 혜미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다.

그 광경을 보니 속에서 짜증이 확~치밀어 올랐다. 

난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런 사람들이 대단히 혐오스러워 졌다.

특히 서울역 앞의 노숙자들을 보면 짜증이 더 치밀어 오른다. 

노숙자 그 존재자체를 부정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나 행태를 보면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들지않고 분노가 치솟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전락한 사연은 다양하겠지만, 도대체가 다른 이들에게 기생하며 연명하면서도,

그것을 당연시 할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난 동정심을 가지지도 않고, 오히려 냉정하게 홀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혜미는 손지갑을 뒤적이며 이런 인간에게 줄 동전을 찾고있는게 아닌가.

가만히 보자.

혜미는 어느 새 5백원짜리 주화...세...세개??

거기에 백원짜리 주화까지 적어도 반웅큼은 충분히 꺼내들고는 아저씨의 손에 건네주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

아저씨가 돌아선다. 

"이 바보같은 계집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런데 혜미는 지갑 속을 더 뒤지더니 또 다른 동전을 찾아내었다.

혜미가 고개를 치켜든 순간 그 아저씨는 이미 저만큼 걷고 있었다.

"저기요...!"

혜미가 아저씨의 뒤로 뛰어가려고 했다.

나는 혜미의 손목을 확 움켜잡으며 만류했다. 

"야, 그만 둬!"

혜미가 약간 놀란 듯, 눈을 약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어리둥절한 듯이 쳐다본다.

"왜요?"

"저런 사람들한테 왜 돈을 줘? 노인도 아니잖아!"

"조금 도와드리는게 어때서요?"

"저런 사람들 동정할 필요없어, 스스로는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들이야."

"...................."

혜미가 그냥 고개를 숙이고 지갑을 챙긴다.

어느 새 담배가 다 타버렸네.

"담배 하나만 줄래?"

혜미가 잠자코 담배 한 개피를 꺼내서 나에게 건네준다.

나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한모금 당기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시선을 저쪽으로 옮겨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혜미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옮겨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담배를 천천히 피우며 마음을 달랬다. 

그냥 알게모르게 심정이 착잡했다.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다.

담배를 거의 다 피워갈 때, 조금 전의 그 아저씨가 어느 새 또 뒤로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내밀며 말한다.

"선생님...죄송한데요...저...."

언젠가 서울역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이 아저씨는 주변을 돌며 계속 이러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에 혜미에게서 돈을 받아 간 사실조차도 기억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렇다. 

 

 

전혀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혜미가 지갑에서 조금 전의 그 동전을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울화가 치밀어 약간 큰 소리로 성질을 부렸다.

"이봐요, 아저씨! 조금 전에 이 아가씨한테 돈 받아가셨잖아요!"

아저씨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혜미가 바로 곁에서 그러지 말라는듯한 표정으로 내게 눈짓을 한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아저씨에게 쏘아붙였다.

"기억 안나세요? 이 아가씨가 조금전에 동전 가득 드리지 않았어요?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아저씨가 당황스러워하더니 "아!"하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서 황급히 멀어져 간다.

혜미가 그 아저씨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내 쪽으로 돌아서며 고개를 푹 떨군다.

고개를 푹 떨군다....

혜미의 그런 모습을 보니 갑자기 뭔가 가슴 속이 뜨끔해진다.

내 가슴이 갑자기 펑펑 뛰어올랐다.

나도 모르게 몸이 약간 부르르 떨리는 듯 했다.

내가 뒷편으로 시선을 돌려 잠시 주위를 바라보았다.

잠시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고는 혜미에게 말을 건넸다.

"혜미야, 오빠가 너무 냉정하니?"

혜미가 고개를 들긴 했지만 눈은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두어번 고개를 끄덕였다.

혜미의 눈이....

눈빛이 슬퍼보인다...

뭐야 이거? 

순간적으로 내 가슴이 더 떨려왔다.

난 도대체 무엇에 그토록 놀라고 있는 것일까........

우리 둘은 차를 타고 펜션으로 향했다.

혜미는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나는 묵묵히 운전대를 놀리고 있다가....

정면의 도로를 응시하며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넸다.

"오빠도...원래 그러진 않았어..."

내가 생각해도 뭔가 변명하는 듯한 말투다...

"괜찮아요...."

혜미의 조용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무척 조용한...부드러운...

정말 부드럽게 위로하는 듯한 목소리다.

그래...난 그렇지 않았다.

확실히 난 그렇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내 성격은 몹시 밝고 명랑했다. 

능청스럽기도 했고, 몹시 활달해서 운동을 즐기고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리고...적어도 내 주변사람들의 평가와 내 자신이 느껴도....

매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주변에 조금이라도 동정이 갈만한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곤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그사람들을 감싸고 보호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는 그런 성격이었다.

그러던 내 성격이 언제부터....그토록 냉정해진 걸까....

도대체 언제부터....

난 그동안 무엇인가 커다란 것을 잊어버린 채....

애써 부정하면서 내 마음 속의 그 무엇인가를 지워버리려고만 한건 아니었을까.....

순간적으로 온갖 무수한 상념들이 뇌리에 떠오르며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일까....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갑자기 머리 속에 조금 전 혜미의 눈빛이 생각났다.

 

 

슬픈듯한...뭔가 슬픈듯한...

깊고 깊은 눈망울...

마치 어디선가 본듯한....

내 마음 속 깊은 곳 어딘가에 항상 간직하고 있었던 듯한 그 눈빛....

살짝 눈을 돌려 바라보니 혜미는 무표정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마음이 안정이 되질 않는다. 

잊어버리자, 털어버리자, 쓸데없는 감상에 빠지지 말자....

운전에만 전념하자!

바로 그 순간 또다시 혜미의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내 귓 속으로 들려온다.

"잊어버리세요 오빠....."

앞을 바라보며 못들은 척 했다.

마치 마음 속을 들켜버린 듯 하다. 

이 아이는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걸까.

나한테 뭘 전하고 싶은걸까. 

그런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듯이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응...고맙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한 걸까.....

펜션으로 돌아왔을 때 혜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나도 아무렇지도 않아진 듯 했다. 

혜미의 말 한마디에 적지않은 위안을 받은걸까...

모르겠다. 

사 온 재료로 나름대로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봤다. 

혜미가 곁에서 잔잔한 웃음을 지으면서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다 군데군데 자기가 나서서 도와주기도 하는 솜씨가 능숙하다.

"요리 자주 하니?"

"갤리에서는 간단한 음식도 우리가 직접 만들어요."

혜미가 밝게 웃으며 대답한다. 

"쩝...이럴 때 최고의 마술사는 어머니인데...어느 집이나...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곤 하시잖아."

혜미가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바라본다. 

"왜?"

"....................."

"뭘?"

쌩긋^^ 하고 혜미가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리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는 요술쟁이!^^"

"암, 엄마는 요술쟁이~! 엄마 만세~!!"

내가 능청스럽고 명랑한 목소리로 외친다.

"엄마 만세~!!!^^" 

 

 

혜미도 따라 외친다.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가 즐겁다. 

건배~!!!를 외치고 맥주를 들이킨다. 

"캬아~~!!!" 

찬물에 재어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가 시원하다.

너나할 것 없이 동시에 만족스러운 탄성이 올랐다. 

주거니 받거니 곤드레 만드레를 외친다. 

한잔 두잔 석잔 넉잔......

술이 몇 순배 돌자 혜미의 얼굴이 발그레 해진다...

술이 들어가 발그레한 빛을 양 볼에 띄자 어딘지 모를 요염한 자태가 피어나며 혜미의 얼굴이 더 예뻐 보인다. 

혜미가 마른 안주를 먹기 좋게 찢어준다.

그리고 "아~"하며 한조각을 내게 건네준다.

나는 입을 벌리고는 혜미의 손가락까지 함께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혜미의 손가락을 입술과 혀로 빨면서 천천히 안주를 홅아왔다.

혜미의 흠칫하는 전율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느껴졌다.

눈을 내리깔며 양 볼이 붉으스레해진다.

사랑 스럽다....

지금 덮쳐 버릴까...

"혜미야...."

"응..?"

"너 왜 이렇게 예뻐...?"

"원래 예뻐."

"으응??"

"흠헤헷^^"

"흐흐...그래 맞아. 혜미는 원래 예뻐...아주 예쁘다 정말."

"푸히힛^^"

"혜미는....어머니를 닮았어? 아버님을 닮았어?"

".............."

순간 아무 말이 없다. 

그러다 갑자기 외친다.

"건배~!!!"

"그래, 그래..마시자...마시고 죽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또다시 술잔을 부딪히고 혜미가 술을 두어모금 들이키고 잔을 내려놓는다.

"엄마!"

"으...응..?"

"엄마 닮았다고."

"어머니 닮은고야?"

"웅."

"쿡쿡...웅이래...너무 귀여운거 아냐?^^"

"흠헤헷....^^"

"어머니가 미인이시구나...."

"그럼요. 우리 엄마 정말 예뻐."

"그러실거야, 틀림없이. 혜미는 좋겠네?"

"좋죠."

또다시 술을 들이킨다.

"혜미야...."

"응?"

"오빠 소원 하나 들어주라..."

"뭔데?"

"유니폼 한번 입어 봐."

"유니폼은 왜?"

"보고싶으니까...."

"나 퇴근했쏘..."

"퇴근했다고 유니폼 못입나?"

"이미 옷 갈아 입었쏘."

"옷은 언제든지 또 갈아입을 수도 있는 법이잖아."

".........................."

"보고싶다...혜미 유니폼 입은 모습....정말로..."

혜미가 아무 말이 없다.

짧은 순간이 술이 들어가서인지...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무척 길게 느껴진다.

"왜 그렇게 유니폼에 집착해?"

혜미가 고개를 숙인 채로 내게 물어온다.

"그럼 혜미는 왜 유니폼 입고 일해??"

"좋잖아..."

"그래, 나도 좋아...혜미의 유니폼 입고 일하는 모습....그래서 보고 싶어...무척...보여줄래...?"

혜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아주 잠시 또 침묵이 흐른다.

".........................."

".........................."

"....잠시만...기다려요 오빠..."

혜미의 예의 그 나지막한 목소리다.

"으..응..."

혜미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바라보며 한번 쌩긋 웃는다...

그리고 역시 천천히 샤워실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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