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거리 11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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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거리 11 (마지막)
성현은 평소대로 우진의 사무실로 가는 계단을 내려갔다. 다친 우진의 직원들이 그를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성현은 두려울 게 없었고 조롱하듯 한 표정을 지었다. 우진은 잔에 담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에이, 삼촌. 이제 11시에 술은 좀 그렇다~.”
성현은 달갑고 잔망스럽게 우진을 나무랐다.
“어. 왔냐.”
“현수가 안 보이네?”
“오겠지 뭐.”
우진은 풀린 눈으로 잔에 든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삼촌 괜찮아?”
성현은 불안한 눈빛으로 우진의 안색을 살폈다.
“그럼, 괜찮지. 그냥 삼촌이 고민이 있어서.”
“고민?”
“응. 사람이라는 게 참, 마음대로 살기 힘들다 그렇지?”
“무슨 말이야.”
“용서가 될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우진의 말이 끝나고, 흉기를 든 남자들이 우진의 사무실을 채웠다.
“야! 이 X발 삼촌!!!!”
우진의 사무실의 문이 둔탁하게 닫혔다.
그 시간 현수는 어두운 노란 조명 아래 지원을 무릎에 앉히고 마주 보고 있었다.
“나도 궁금한 게 있어.”
지원은 현수의 입술을 만지며 말했다.
“응”
현수는 취한 듯한 의식이 희미한 상태였다.
“뭘 원해?”
“의지.”
“아니야.”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뭘 원해?”
뒤에서 성현의 목을 감싸며 말했다.
“돈독한 우정.”
“틀렸어.”
지원은 또다시 시야에 없어졌다.
-좀 더 솔직해져야 해.
그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졌다.
“나에게.”
이번엔 그의 귀 가까이서 그녀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리고 붉은 천 뒤에서 멋진 곡선을 가진 그녀의 실루엣이 지나갔다. 현수는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쥐었다.
“한마디야.”
왼쪽의 지원이 말했다.
“네가 원하는 걸 다 줄 수 있는 내게, 솔직한 한마디.”
“남자다움도, 좋은 친구도, 좋은 동생도, 바르고 좋아야 하는 그 무엇도 여기서 강요하지 않을 거야.”
“그럼?......”
“나약하고 병든 네 한심한 모습을 가장 너답게 보여줘.”
“보여주면?”
“보여주면.......”
지원은 붉은 천 뒤로 사라졌다.
“내가 널 범할 거야.”
붉은 드레스를 입은 지원은 하얀 다리를 드러낸 채로, 소파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우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원해.”
현수는 가슴 깊이 있는 욕망을 토해냈다.
지원은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현수에게 와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그와 연결된 채 현수를 바라봤다. 현수는 부드러운 키스를 했다.
그녀는 현수의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멈추지 마.”라고 속삭였다.
현수는 그녀를 들어 올려 바에 올려놓고 그녀에게 파고들었다. 그녀가 상처 입은 손목을 현수는 입을 맞추고 핥았다.
다시 지원이 그의 품에 안겨 서있는 채로 그와 하나가 될 때, 건물 지하에서 성현의 팔이 배트에 맞아 부러졌다.
엉덩이를 비비며 거의 울부짖는 신음을 흘렸다. 그의 페니스를 입으로 감쌀 때 성현은 눈이 녹슨 둔기에 맞아 골이 으깨졌고, 그녀가 현수의 위에 올라와 허리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일 때 성현은 칼에 맞아 피를 철철 흘렸다.
지원은 눈물을 흘리며 터져 나오는 물과 함께 포효할 때 성현은 숨을 거뒀다.
현수와 지원은 가게의 넓은 소파에서 보라색 커튼 하나만을 두르고 서로를 안은 채 잠에 빠졌다. 가게 창문에 검은 테이프를 붙여서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눈을 떴다.
일어나 보니 그녀는 천사 같은 얼굴로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지원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속옷만을 입고서 가게의 창문을 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창 밖 건물 아래에 jacob이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안 좋은 기운이 엄습한 현수는 재빨리 옷을 입고 계단 아래로 달려갔다.
“성현이는?”
“........”
그날 밤 현수는 성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영정사진 속에서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통곡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자리를 지키던 그의 아버지는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성난 표정과 걸음으로 장례식장을 뛰쳐나갔다.
현수는 넋을 놓고 벽에 주저앉아 있자 성현의 누나가 와서 다독였다. 현수는 멍한 표정으로 밖으로 향했다.
jacob은 처음 봤을 때처럼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황금빛 눈을 희미하게 뜨며 들어본 적 없는 언어로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무슨 뜻이에요?”
성현이 애써 밝게 물었다.
“무거운 돈지갑을 무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며 서툴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갔다.
현수는 본가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눈물이 흘렀다. 성현이 죽어가는 동안 했던 일에 대한 죄책감과 분신 같은 친구를 잃은 슬픔이었다.
“X나 나쁜 새끼네.”
현수는 찬장에서 먼지가 쌓인 검을 들고 집을 나와 열차에 올랐다.
현수가 우진을 찾아갈 때 jacob은 그의 부하들을 분쇄하고 있었다. 그의 강철같이 무거운 주먹은 그들의 뼈 마디마디를 박살 냈다.
그를 지켜보던 우진은 체념한 표정으로 웃으며 jacob에게 다가갔다. 우진은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지만 jacob은 가볍게 그를 막고 다리를 차 부러뜨렸다. 그의 배를 걷어차 책상 너머까지 날려버렸다. jacob은 책상을 들어 올려 넘어진 우진에게 내려찍었다. 그러나 순간 현수의 칼날이 책상을 두 동강 내며 책상은 사무실의 벽에 박혔다.
“친구를 죽였는데, 살려 주는 거냐?”
우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도 친구잖아요.”
“또라이 아니냐. 너?”
“일단, 그냥 죽지 마요.”
현수는 jacob을 찌를 자세를 취하며 우진에게 말했다.
“돈 뺏을 거예요?”
jacob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게 됐네요.”
현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jacob은 굳은살 가득한 주먹을 내질렀다. 현수가 황급히 피하자 jacob은 손날로 바꾸며 다시 현수를 향해 내리쳤다. 현수는 있는 힘껏 그 손날을 벨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고, 검은 그대로 jacob의 손에 박혔다.
그때를 노려 우진은 사무실과 지하를 빠져나가 부러진 다리를 끌며 도로로 향했다. jacob은 우진이 쳐다봤고, 현수는 그때를 노려 허리를 베며 파고들어 빙글 돌아 그의 다리를 깊게 베었다. jacob은 그대로 쓰러지고 현수는 검을 집어넣고 우진의 뒤를 쫓았다. 사람들은 다리가 부러져 절고 있는 우진을 둘러싸고 구경했고, 우진은 욕을 퍼붓고 손을 휘두르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때 갑자기 검은 세단이 우진의 몸을 강하게 쳤고, 쓰러진 우진 앞에 성현의 아버지가 서 있었다.
“네가!!!!!!”
‘퍽’
아버지가 내려친 골프 채로 우진의 머리가 함몰되었다.
“감히!”
‘퍽’
“창녀 삥이나 뜯는 놈이!”
‘퍽’
“어떻게 내 아들을!.......”
‘콰직’ 소리와 함께 끔찍한 광경이 벌어졌고, 뒤따라온 현수는 고개를 돌려 눈을 질끈 감았다.
성현의 아버지는 대동한 부하에게 골프채를 던지며 차에 올라탔다.
현수는 지원의 가게에 가서 미친 듯이 지원을 찾아다녔다. 흔한 번호와 주소조차 모르는 현수는 그녀를 만난 후의 아무런 계획과 생각 없이 붉어진 눈으로 무조건 그녀를 찾아 헤맸다.
분노인지, 걱정인지, 다급한 기분으로 그녀를 찾아다녔다.
현수는 피범벅이 된 하얀 셔츠와 여기저기 찢어진 양복 차림으로 미친 사람처럼 지원을 찾았다.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정류장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현수를 기다렸다.
현수는 물집이 잡힌 발을 끌고 지원의 앞에 섰다.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지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예쁘게 웃었다.
“많지, 뭐부터 물어야 할까. 뭘 원했냐고? 아니면 왜 그랬냐고?”
“이미 내가 잘못이 있다고 너 스스로 답을 정했는데 뭐.”
“그냥, 그냥 아무런 핑계도 없이 대답해줘.”
여름 바람에 지원이 입은 파란 블라우스의 소매를 펄럭였고 그 안에 여전히 검붉은 흉터가 드러났다.
“있었어. 반드시 이루겠다는 거, 자신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없네.”
지원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끝으로, 다가오는 커다란 초록색 버스에 몸을 던졌다.
지원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고 뜨거운 아스팔트에 저 멀리 마네킹처럼 덜컥거리며 굴렀다.
현수는 붉어진 얼굴로 달려가 숨진 그녀를 껴안고 절규했다.
현수는 지원의 부러진 목과 뺨에 볼을 비비며 목 놓아 울어댔다.
가장 혹독한 벌을 받은 사람처럼, 그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