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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거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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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880 회 작성일 24-05-12 01:0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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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거리 5   

 

평소와 달리 현수는 무척 상쾌한 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났다. 성현의 잠자리는 뒤숭숭했다. 토요일 오후가 훌쩍 지나서야 둘은 마주했다. 현수의 입 주변에 붙은 밴드와 퉁퉁 부은 눈을 보고, 성현은 죄책감에 눈치를 보았다.

“괜찮아?”

“괜찮아.”

 

 

불편한 미안함이 등을 떠밀어 물은 성현에게 현수는 더욱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 웃음이 성현의 마음의 짐을 덜라는 위로 같아 올곧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침 발라줄까?”

 

“죽어 제발!”

 

자신의 손에 침을 묻혀 장난스럽게 들이민 성현의 손을 현수는 버릇 같은 성가신 표정으로 쳐냈다. 자신이 알던 그가 맞는 것 같은 성현의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졌다.

 

“........나가서 밥 먹자.”

 

성현이 렌즈를 내려놓고 평소 잘 안 쓰던 안경을 집어 들며 말했다.

 

거리로 나간 둘은 가장 바빠 보이는 분식집에 들어가 제육 덮밥과 돈가스를 시켰다.

 

“잘 먹었습니다.”

 

주황색 두건을 두른 아주머니에게 6천 원을 내밀며 현수는 가게 밖을 나갔다.

 

“야! 나는!”

 

성현은 슬리퍼를 끌며 달려와 현수를 붙잡았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지갑을 다시 열었다.

 

“야. 담배도.”

 

“야 이.......”

 

현수는 속으로 오만 욕을 퍼부으며 성현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건물 그늘에서 담배를 태우는 둘은 현수가 쓰러졌던 거리의 낮을 봤다. 한산한 거리와 곳곳에 스며드는 봄바람, 적당하고 기분 좋은 태양과 파라솔을 펼치고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이 밤과 같은 거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했다.

 

“뭐 할까?”

 

“롤 할래?”

 

“그게 뭔데?”

 

“유행하는 게임.”

 

성현의 제안에 현수는 말없이 눈으로 사진이라도 찍는 듯 거리를 게슴츠레 바라봤다. 성현은 그런 그의 눈이 햇살에 반짝이는 것을 한참 지켜봤다.

 

“그럴ㄲ.......”

 

“아!”

 

정적 후에 현수가 대답하려는 찰나 성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다혜다!”

 

“다혜?”

 

“어, 왜 내가 전에 그 모텔.”

 

“아아.”

 

두서없는 그의 말을 대충 알아듣는 현수였다.

 

“어어-.”

 

성현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멀어졌다.

 

몇 분 후 성현이 헐레벌떡 돌아와 현수 앞에 섰다.

 

“야 어쩌냐.”

 

“왜?”

 

“게임방 못 가겠다.”

 

“친구는 휴일에 배나 긁으면서 집에 있으라 하고 너는 후배랑 비좁은 곳에서 The Game(sex) 하시려고요?”

 

“진짜 미안!”

 

“농담이야. 다녀와.”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현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 집 방향으로 달려갔다. 아마 지금 성현에게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라 확신하는 현수였다.

 

현수는 남색 반바지의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낮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혼이 빠진 듯 조용하고 어둑한 네온사인들, 세월을 비껴간 듯한 만화책 방과 철물점이 정겹게 보였다.

 

그는 벚꽃 잎이 비처럼 떨어지는 멋진 거리를 지나 높고 경사진 계단을 오르니 새벽에 거친 방식으로 끌려가던 소녀들과 마주한 거리에 도착했다. 그는 소녀들이 넘어진 자리를 둘러보다 목련이 핀 오르막길을 올라 공터를 발견했다.

 

현수는 공터에 가만히 앉아 연락하나 오지 않은 핸드폰을 엄지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때 갑자기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서 그 원인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색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갈색으로 때가 잔뜩 낀 낡고 두꺼운 외투와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공터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다. 현수는 그늘을 드리우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두꺼운 외투가 들쑥날쑥한 걸 보니, 죽은 것 같진 않았다. 현수는 그의 옆에 놓인 빈 통조림 캔에 만 원을 집어넣었다.

 

현수는 공터의 모래를 조금 끌며 조용히 뒤돌아섰다. ‘저벅’ 하고 모래알이 눌려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그가 걸어가는 순간,

 

“저 거지 아닙니다.”

남자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현수의 발길을 멈췄다.

 

“네?”

 

현수는 놀라며 뒤돌아보고 물었다.

 

“저 거지 아닙니다.”

 

남자가 눌러쓴 모자를 조금 올리며 꼬질꼬질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그럼 여기서 왜 이러고 계세요?”

 

“집이 없을 뿐이에요.”

 

“그러시구나.......”

 

현수는 무엇이 다른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거친 목 상태와 달리 외투 사이로 그가 들어 올린 팔과 얼굴의 영양 상태가 굶주리는 사람처럼 나쁘지 않아 보였다.

 

“고양이. 밥. 주다 잠들었을 뿐이에요.”

 

그는 빈 통조림을 한참 뒤적거리다 고등어 국물이 묻은 만 원을 다시 현수에게 내밀었다.

 

“아, 그냥 가지세요. 고양이 밥도 많이 주시고요.”

 

현수는 비릿한 냄새가 나는 만 원을 돌려받고 싶지 않았다.

 

“.......제 행색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마세요. 옷을 갈아입는 게 싫을 뿐이에요. 자, 보세요.”

 

남자는 외투의 안주머니에서 5만 원과 천 원짜리 지폐 뭉치를 꺼내 보여 주었다.

 

“저보다 돈이 많으시네요.”

 

“뺏을 거예요?”

 

“그럴 리가요.”

 

“착한 청년입니다.”

 

그는 현수의 대답을 듣자, 겨우 환하게 웃으며 모자를 벗었다.

 

많은 먼지와 보풀들이 바람에 날리고 그의 촘촘한 곱슬머리와 황금색의 눈과 커다랗고 하얀 이빨이 현수의 눈에 들어왔다.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

 

“jacob, 이스라엘 사람.”

 

그는 커다란 근육질의 팔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같은 시각 성현은 같은 시간 후배 다혜와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다혜야 그거 알아?”

 

“뭐가요?”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 생기면 고기를 사준다더라.”

 

“그거 고백이에요?”

 

“뭐 받아들이기 나름 아닐까?”

 

“그런 고백은 싫어요.”

 

“그럼 고백 아니야, 고백 아니야. 많이 먹어.”

 

성현의 익살스러운 취소에 다혜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밤이 슬슬 깊어지고 술로 둘의 밤을 조금씩 채웠다. 다혜의 얼굴이 빨개지고 아르바이트의 시간이 임박해왔다. 성현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계와 다혜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선배는 늘 장난 같아서. 솔직히 못 미더워요.”

 

“왜~ 오빠도 진지할 때는 진지해.”

 

성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혜의 옆에 앉았다.

 

“만날까?”

성현은 조금 진지한 얼굴로,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글쎄요.”

 

“야, 오빠가 기껏 응? 열과 성의를 다하고 있는데. 왜?”

 

“애들 사이에서 오빠 별명이 뭔 줄 알아요?”

 

“왜, 뭔데?”

 

조금 불안함이 엄습해도 호기롭게 성현은 물었다.

 

“금메달이에요. 금메달.”

 

“금메달?”

 

“영화 보러 가도 만족, 술 마셔도 흡족, 같이 밥만 먹어도 대만족. 우리 과 애들이 선배랑 같이 다니면 무슨 금메달 두르고 다니듯이 창피할 일 없다고!”

 

다혜의 투정 같은 귀여운 주정에 성현은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솔직히 말해요. 우리 학교에서 몇 명이랑 잤어요.”

 

“응? 가만있자.......”

 

성현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었고, 숫자가 더해질수록 다혜의 얼굴이 더욱 상기되더니 급기야 성현의 얼굴을 밀었다.

 

“장난이야. 다혜밖에 없어.”

 

“진짜? 믿어도 돼요?”

 

“응. 그럼 오빠 만날래?”

 

“다른 애들처럼 놀러 다니다, 나만 실컷 흔들고 버리는 거 아니죠?”

 

“야. 내가 그런 사람 같으니?”

 

다혜는 성현의 대답을 듣고 차오르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입을 맞췄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허벅지를 거쳐 작고 예쁜 엉덩이를 주무르며 성현은 구비한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받치고, 문을 열어 침대를 향하면서도 입맞춤을 멈추지 않고 방은 닫혔다.

 

그때 현수는 성현을 기다리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혼자서 우진의 사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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