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거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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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거리 2
골목은 붉은 어둠으로 깜깜했다. 걷다 보니 밝은 통로가 나왔고 많은 여자들이 걸어가는 그들을 보며 웃었다. 그들은 동굴 같은 지하로 내려갔다.
잔뜩 경계하는 현수와 달리 성현은 성큼성큼 걸어가 문 손잡이를 돌려 열었다.
“삼촌!”
도착 전 성현의 말에 의하면 삼촌은 조직폭력배 2인자로 활동했었다. 지금은 거리에 모든 유흥업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현수는 머릿속에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상상했다. 밤의 제왕 같은 직업을 가진 남자의 모습을 기대하며 빛이 새어 나오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방 문 사이로 짧은 털을 가진 작은 강아지가 나왔다.
현수는 그 자리에서 쪼그려 앉아 강아지 머릴 쓰다듬었다. 강아지는 그의 곁을 잠깐 맴돌다 어디론가 걸어갔다.
“야, 뭐 해. 우리 삼촌이야.”
성현은 현수의 팔을 잡아당겨 방으로 들어갔다.
성현이 소개한 삼촌은 작은 키와 오목조목한 외모가 만화 톰과 제리에 제리를 닮았다. 촌스러운 색안경과 늘어난 티셔츠는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상상한 이미지와 상반된 사람이었다.
“반가워.”
그는 색안경을 중지로 올려 쓰며 현수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 네!”
현수는 달려가 악수했다.
“화 안내?”
성현이 현수에게 물었다.
“왜 화를 내?”
삼촌이라는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얘 초면에 반말하면 까고 봐. 눈 뒤집혀서.”
“너도 정상은 아니구나?”
“또라이지.”
“거친 성격 치고 손이 예쁜데?”
그는 현수의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맨손으로 까지 않습니다. 그리고 친구 지인에게 예민할 필요 없으니까요.”
현수가 잡은 손을 놓으며 말했다.
“자신감 넘치네. 어떤 운동 했어?”
“검도 4년 정도 했습니다.”
“흐음, 그래서 뭐 들고 까는구나. 그럼 이런 잡일하는 꼬마 실장 말고 상무를 지원하는 게 벌이가 나을 텐데.......”
그는 현수를 계속 이리저리 보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차차, 설명은 할 텐데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걸 말해줄게. 나한테 대들면.......”
“대들면?.......”
“죽어.”
그의 느슨한 표정이 순간 흉악하게 일그러지며 날카로운 시선이 현수의 눈에 꽂혔다.
“아.......네.”
사늘한 삼촌의 눈동자에 비친 현수는 몸이 경직되고 호흡도 가빠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조카 친구한테 그렇게 예민할 필요는 없겠지? 앞으로 우진 삼촌이라고 불러~. 면접 끝.”
그는 현수를 보고 위압적인 표정을 거두고 웃으며 말했다.
성현과 현수는 방에서 나왔다. 건물을 벗어나자 성현은 너스레 떨며 현수의 좋지 않은 기분을 달래고 현수는 숨을 몰아쉬었다.
“멋있네.”
“삼촌?”
“응.”
“그렇지? 건달 아무나 하는 거 아닌가 봐.”
성현은 현수의 면을 세워주기 위해 괜히 우진 삼촌을 칭찬했다.
둘은 자신들의 익숙한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날 수업을 마치고 성현은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성현 오빠!”
후배는 성현의 전화를 받고 만나기로 한 장소로 와서 성현을 반겼다.
“저녁 아직이지?”
성현은 자연스럽게 후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네, 우리 밥 먹으러 가요?”
“그럼~. 저번 일도 있으니까 맛있는 거 사줄게.”
“우와~! 얘들아!”
“응?”
후배의 말에 여자 후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성현 선배님이 오늘 맛있는 거 쏘신대!”
“와아~!” “감사합니다!!!”
성현은 사색이 되었다. 캠퍼스 입구까지 후배한테 터덜터덜 끌려갔다.
“다혜야......?”
둘만의 핑크빛 데이트를 기대했던 성현은 글썽이는 눈으로 후배를 보며 호소했고, 후배는 귀여운 얼굴로 혀를 길게 내밀며 놀렸다.
몇 시간 뒤 현수는 학원을 마치고 가방을 들었다.
“현수야.”
랩 선생님이 레슨 방을 나오며 현수를 불렀다.
“가사 쓸 때 뭔가 공감은 가는데 철학이 없어.”
“철학이요?”
“응, 뭔가 확고하게 뜨겁거나 차가운 게 없어. 힘들어도 계속 힘들고, 강함 뒤에 나약함이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니?”
“아.......”
“모르겠지?”
“네.......”
“나도 모르겠다. 허허, 아무튼 발음이나 가사 연습 더 해봐, 플로우는 정말 좋으니까.”
랩 선생은 웃으며 현수의 가슴팍을 툭툭 치고 뒤돌아 레슨 방으로 들어갔다.
녹음한 자신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계단을 내려오자 어제 선생님과 함께 있던 여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분홍 캡 모자와 회색 야구점퍼 남색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현수는 이어폰 한쪽을 빼고 목례를 하는 둥 마는 둥 건네고 그녀 사이로 지나갔다.
“저....... 현수씨 커피 좋아해요?”
그녀가 현수를 가로막았다.
“아니요.”
“밥은 먹었어요?”
“집 가서 먹으려고요.”
“그럼 잠깐 얘기라도 좀.......”
“밥 먹고 바로 알바가요.”
“잠깐 미뤄달라고 하면.......”
“첫날이어서요. 그럼.”
현수는 빼놓은 이어폰을 다시 끼우고 다른 틈 사이로 여학생을 빠져나갔다.
‘덥석’
현수는 한 블록을 나가기도 전에 옷소매를 잡혀버렸다. 그리고 그는 이젠 이어폰을 빼서 둘둘 말아 주머니에 넣고 여학생의 말을 기다렸다.
“원래 그렇게 철벽 쳐요?”
“네?”
“원래 그렇게 사람한테 틈 안 주고 그러냐고요.”
“아니, 정말 다 사실이에요. 날이 부적절해서...”
“선생님한테 전 여자 친구분 얘기 들었어요. 그것 때문이에요?”
“아니에요.......”
“근데 왜 그래요? 내가 이렇게 티 내는데. 아니면 내가 맘에 안 들어요?”
“아니 그게.......”
현수는 그녀가 얼마나 예쁘고 멋진 존재인지 말하고 싶었다. 힐끔 쳐다본 적도 몇 번 있고, 전날 랩 선생과의 관계에 대한 추궁을 하고 싶을 정도로 자신의 여자이길 원한다는 말도 하고싶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내일이 참 아름다울 것 같다는 말도.
그러나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단 내일 얘기해요.”
현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흔든 뒤 몇 블록 떨어진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밤 11시, 네온사인 가득한 거리 한가운데.
각자 다른 답답함을 가진 성현과 현수가 만났다. 서로를 보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남자끼리 스킨십이 껄끄러운 대한민국의 문화만 아니었다면 서로를 부둥켜 안았을 것이다.
“건전한 성생활은?”
“못 했지-! 평안한 하루는?”
“못 누렸지 뭐.”
“병신.”
“씹병신.”
둘은 서로의 하루를 비웃으며 위로했다. 그리고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우진의 사무실로 향했다.
“너희가 할 일은 정말 귀찮고 간단한 일이야.”
간단한 인사 뒤 우진이 처음 꺼낸 말이었다.
“이곳은 유흥거리가 많아. 대부분이 룸살롱, 클럽, 나이트클럽, 보도야. 모두 내가 모시던 형님이 관리하시는 거고.”
우진은 성현을 힐끗 보며 말했다.
“나머지는 여관, 대화방, 페티시방, 립 카페, 안마, 오피, 건마 등 많은데 돌아다니다 보면 외울 거고, 다른 지역은 모두 개개인이 하는 경우가 많아. 이 거리는 내가 여관을 제외한 모든 영업장을 사들여서 직접 관리하고 있으니까 각자 꽂아놓은 실장한테 관리 현황 듣고 수금하는 게 주 업무야. 질문 있어?”
“여관은 왜 제외야?”
성현이 물었다.
“거긴 내가 코 흘릴 때부터 할멈들이 다방이랑 협업해서 쌓아놓은 영업장이라서 조합에서 보호비만 적게 받고 있어. 또 궁금한 건?”
“다른 건 다 알 것 같은데 대화방은 뭡니까?”
현수가 손을 들고 물었다.
“대화하는 방이지. 대신 혀로 한다는 게 특징이야.”
우진은 손바닥을 비비며 답했다.
“다른 일은?”
“아! 이것도 중요한데.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개인 업장이나 조건 만남 하는 애들 대충 접선해서 증거 될 만한 거 가지고 있다가 경찰에 신고해라. 너희 뒤는 우리가 봐줄 테니까.”
“오케이~.”
“첫 출근 축하하고, 잘 갔다 와라.”
우진은 둘의 등을 힘차게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