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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더블 데이트 -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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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604 회 작성일 24-05-11 02: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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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더블 데이트 - 9부 

 

명희는 펄쩍 뛰었다. 내가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리라. 경악에 찬 그녀 표정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즐거운 기분까지 든다.

 

 

"너 이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어디긴? 니 직장이지. 어디 한번 떠들어보시지. 널 강간했던 새끼가 다시 찾아왔다고 말야."

도리어 이쪽이 당당하게 나가면, 저쪽에서는 할 말이 없어지는 법이다.

"뭐...뭐라고?"

"나야, 뭐. 이미 강간범 타이틀 달았으니 말야. 더는 잃을 것도 없어. 그렇지만 넌 좀 다를테지? 예전에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이 병원으로 온 것도, 살던 곳에서 나와 이사를 한 것도 죄다 주변의 시선들 때문 아니었나?"

"너...지금 뭐라고...."

"게다가 말야, 지금 한창 잘 사귀고 있는 그 물리치료실의 이강우인가. 그 놈이랑 좀 껄끄러워지지 않겠어?"

자신의 사적인 일까지 내가 남김없이 까발리자 명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다. 한층 더 다급해진 얼굴로 내게 소리지른다.

"이 새끼가 진짜!!"

좋게좋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 않다.

"닥쳐, 이 썅년아."

낮은 목소리에 힘을 담아 명희에게 윽박지른다.

"한번만 더 날 보고 이 새끼 저 새끼하다간 너희 병원 앞에다 광고판을 하나 달아주지. 이명희는 최한석에게 강간당했었다고. 아주 좋은 정보가 되지 않겠어?"

"그...그러고도 네 놈이 무사할 줄 알아?"

"모르지. 그렇지만 몰라도 상관없어.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널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아주 묘하게 바뀌게 되겠지. 강간당했던 여자라고 쳐다보겠지. 안 그래?"

강간이란 건 참 이상하다. 강간은 범죄다. 저지르면 가해자가 콩밥을 먹어야 하는 범죄란 말이다. 비록 누명이라고는 하나 내가 직접 먹어봤으니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건, 그 말도 안 되는 폭력의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비난받고 손가락질 당하게 되는 묘한 속성이 있다. 당장 뉴스에 강간이니 성폭력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실리면, 사람들의 반응은 혀를 차면서 피해자를 욕한다. 평소 행실이 어떻다느니, 왜 그 시간에 그 남자랑 단둘이 있었냐느니.... 적어도 내가 대학시절 바로 근처에서 보았던 동기의 불행한 일만 해도 그러하다. 

그 아픔을 알고 있는 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난, 되려 그것을 이용하여 명희를 겁박한다. 난 이렇게, 괴물이 되어간다. 나 자신도 나를 용서할 수 없는 쓰레기가 되어간다. 유미는 이런 내 모습을 본 것일까. 그런 걸까.

 

 

"이익....."

이를 갈며 대답을 잇지 못하는 명희를 보니 씁쓸하면서도 고소하다. 이명희가 내게 만들어준 전과 1범, 강간범이란 타이틀은 이렇게 뜻하지 않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미 더럽혀진 내 이름과는 달리 저년은 아직 사회에 있다. 잃을 것이 있는 사람은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말이 없는 명희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래. 진작에 그렇게 얌전히 나왔어야지."

"......."

"나도 여기서 길게 이야기 하고픈 생각은 없어. 그렇지만 오랜만에 봐서 반가우니 저녁에 식사라도 하자고."

"미쳤어? 내가 왜 너랑 밥을 먹어?"

"후후. 너무 모질게 대하지마. 한 때는 좋다고 내 물건도 빨고 박고 그랬잖아?"

일부러 더 느끼하게 은근한 목소리로 말한다.

"닥치라고!"

"입 거친 건 여전하네. 아주 그냥 걸레를 물고 사는구나. 네 언니와는 달리."

".....언니라니?"

명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안 그래도 방금 경찰이 언니 일 때문에 찾아왔다고.... 한 게.... 그래, 너였어. 그렇지! 너 언니에 대해서 알고 있는거지!"

지난 일주일 동안 명희는 제 언니 걱정을 하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진희 핸드폰에 쏟아졌던 명희의 문자와 부재중 전화를 보아온 나다. 물론 그녀의 언니가 하나 뿐인 동생이나 연인에게 연락할 틈도 없이 내 좆을 물고 있느라 바빴다는 건 나중에 천천히 알려주면 될 일이다. 조바심 내는 명희를 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아니, 뭐. 네 언니랑 아주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 말야. 말투도 부드럽고 나긋나긋하더라고. 천상 여자랄까."

"언니를 네가 어떻게 알아!"

"응? 알면 안 되나?"

그제서야 명희의 머리 속에서도 불길한 생각이 든 모양이다. 그녀가 씌운 누명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난 강간범이다. 그런 놈이 지금 지난 일주일간 연락도 없는 언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명희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너... 언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하면..."

 

 

"하면 어쩔껀데?"

"...가만 안 두겠어."

"어휴. 또 강간범으로 집어넣으시게요? 또? 응? 그렇게 걱정되면 언니한테 전화라도 해보든가."

날 노려보던 명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건다. 난 히죽히죽 웃으면서 품안에서 진희의 핸드폰을 꺼내든다. 배터리를 연결하고 전원을 켜는 동작을 일부러 느릿느릿하게 한다. 그것을 명희의 면전에 대고 흔든다. 명희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그녀는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아, 알았다. 너 이 새끼. 괜히 어디서 언니꺼 주워들고는 와서 유세 떠는 거지? 아니면 훔쳤어. 그렇지?"

이런 소리가 나올 줄 알았다. 아마도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대답 대신 품 안에 간직하고 있던 물건 하나를 더 꺼내어 명희의 앞으로 던진다. 이런 물건을 품에 넣고 다니는 건 좀 변태스럽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이건..."

"그것도 훔친 걸로 보여? 아스팔트 껌딱지인 네 년하고는 다르던데? 아주 그냥 커~다랗고 뭉클하고...."

제 언니의 브래지어임을 알아본 것일까. 명희는 벌떡 일어나 내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내가 더 빨랐다. 전처럼 멍하니 있다가 얻어맞고 그러지 않는다. 날아오는 명희의 주먹을 쳐내고 되려 그녀의 멱살을 잡는다. 자신의 공격이 차단당하자 그녀는 깜짝 놀라 얼어붙는다. 그런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얌전히 있어.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

"원하는 게 뭐야."

"아까 말했잖아. 조용히 이야기 좀 나누고 싶다고. 아니면 밥이나 한 끼 먹자고 말야."

"네 놈이랑 할 이야기 없어."

"그래? 그럼 네 언니의 몸에 대고 물어볼 수 밖에."

"야, 이 새끼야!"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멱살을 잡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명희가 질끈 눈을 감는다. 그녀의 뺨을 후려치려다가 아차 싶었다. 아직 마음수련이 덜 된 모양이다.

"아아, 미안. 앞으로 네년에게는 손을 안 대려고 했는데 말야. 그렇지만 너도 조심 좀 해달라고. 그런 거친 소리를 하면 이쪽도 발끈하지 않겠어?"

멱살을 잡았던 손을 풀어준다. 명희는 자신의 옷을 바로 하며 날 째려보았다.

"언니의 몸에 물어보겠다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너...."

"뭐, 짐작대로."

 

 

명희의 눈빛이 분노로 타올랐지만 그렇다고 아까처럼 소리 지르거나 내게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이를 바득바득 갈며 내게 말했다.

"....신고해버리겠어. 너같은 강간범을 세상에 그냥 놓아두다니... 말도 안돼. 바로 신고할거야."

악에 바친 명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좀더 약올려본다.

"그래, 해. 하라고. 하하. 뭐, 이미 한번 그랬는데 말야. 두번 그런다고 해서 나한테 무슨 탈이 생기겠어?"

"하라면 못 할 줄 알아?"

"그치만 네 언니도 괜찮을까? 내가 잡혀들어가면 말야, 어디 있는지도 모를 네 언니를 네가 찾을 수 있을까? 언니는 과연 무사할까? 대가리에 뇌가 들어있으면 생각해봐라. 응? 게다가 자매가 나란히 몸 망치고 신세 망쳤다는 소문이 나면 참 살기 편하겠는데?"

더러운 수작을 한 번 더 펼친다. 명희는 침묵했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나를 처리할 수 없으리란걸 깨달았으리라. 창백해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던 명희는 내게 묻는다.

"원하는 게 뭐야? 돈이야?"

"돈? 그것도 좋긴 한데... 일단 네 년의 사과가 듣고 싶군. 내가 하지도 않은 짓으로 감방에 간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쾌하거든."

"사과하라면 하겠어. 그렇지만 언니는...."

"일단 사과부터 해."

명희는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날 쏘아보다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사과하면....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 언니를 풀어주는 거야?"

"네 하는 걸 보고."

한참을 망설이던 명희는 겨우 고개를 숙였다. 내게 사과한다. 

"......미안해...."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걸 쳐다보고 있던 내가 물었다.

"뭐가 미안한데?"

"....그때...내가...너에게 했던 일이...."

"니가 나한테 뭘 했는데?"

 

 

"...누명을 씌워서...."

"누명? 그럼, 내가 널 강간하지 않았다는 걸 너도 알고 있었군. 모를 리가 없었어. 안 그래?"

"....그래."

"하핫. 하...하하하하...."

뜻 모를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허탈했다. 자신의 가족이 인질로 잡혀있다는 사실 하나에, 이토록 쉽게 사과할 년을 두고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분노를 키워왔다는 게, 너무도 허무하고 허탈했다.

"이제 돌려줘. 언니를."

"싫은데?"

여기서 끝낼 수야 없지. 널 위해 준비된 무대는 따로 있다고.

"싫다니? 약속이 틀리잖아!"

"내가 약속했다고? 언제? 네 하는 걸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지."

"이 자식이 진짜!!"

"워워. 진정하라고. 내가 말한 건 네년이 직접 와서 데리고 가란 말이었어. 내가 모셔다가 니 앞에 배달해줄 의무는 없잖아. 안 그래?"

"나보고 어쩌란 말야!"

"성미 급한 건 여전하군. 네 언니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지. 잠자코 따라와. 만나게 해준다고 약속하지."

자리에서 일어나자 명희도 따라 일어섰다. 몹시 갈등하고 있는 게 눈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결심한 듯 날 따라나섰다. 명희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나는 원무과의 여직원을 다시 찾아가 임의동행이 필요해서 명희를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놀란 여직원은 눈을 껌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게 무슨 일이냐고 되물을 깜냥은 없는 듯 했다. 

병원 앞에 차를 세우자 사복으로 갈아입은 명희가 나타났다. 명희를 옆자리에 태우고 교회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녀의 무릎 위에 올려놓은 핸드백을 눈여겨 본다. 내 시선을 눈치챈 모양인지 명희는 표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허튼 짓... 할 생각하지 마."

"허튼 짓? 무슨 짓을 말하는 거야?"

"뭐든지."

앙칼진 명희의 말에 껄껄 웃고 만다. 

"내가 너한테 직접 무슨 짓을 할 생각이었다면, 아까 거기서 진작에 끝내버렸겠지. 하지만 약속한다. 난 결코 네 년에게 손 끝 하나 대지 않을테니까."

무거운 침묵 속에서 차는 쭉쭉 나아간다. 이윽고 교회에 도착했다. "재림예수대비말세찬양교회"라고 붙어있는 교회의 기나긴 간판을 보고 명희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따라들어왔다. 역시 이년이 겁이 없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어디있지?"

"보채지 마. 곧 만나게 해주지."

명희를 데리고 징벌실이 있는 지하로 향했다. 아직 완전히 해가 지지 않은 늦은 오후인데도 지하로 이어지는 복도는 좁고 어두웠다. 조명이 꽤 넓은 간격을 두고 배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광도도 부족했다. 창문이 있기는 하지만 지표면에 거의 닿게 나있는 구멍이라 빛이 제대로 들지도 않는다. 

단단한 포석 위를 걸을 때마다 명희의 구두소리가 경쾌하게 이어진다. 딱딱.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그 걸음이 네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걷는 마지막 걸음이 될테다....

복도 끝에 도착한다. 징벌실의 문을 열었다. 내부는 깜깜했다. 벽에 있는 스위치를 올린다. 징벌실의 내부가 환하게 밝아졌다. 징벌실은 교회 내부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이들을 잠시 교화시키는 장소였다. 말이 좋아 교화지.... 생긴 건 영락없이...

"뭐야, 여긴 감옥이잖아!"

 

 

방 가운데를 가르는 쇠창살. 그 너머에는 의자가 하나 놓여있고 그 위에 진희가 앉아있었다. 늘어진 박스티셔츠 한 장만을 입고 있어서 그녀의 육덕진 허벅지와 다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개를 푹 숙이고 팔을 뒤로 돌리고 있는 그녀는 인기척이 났음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명희는 날 노려보며 외쳤다.

"언니를 당장 풀어줘!"

"싫은데?"

"뭐라고?"

"난 네게 언니를 보여주겠다고 했지, 풀어주겠다고 한 적은 없어. 이렇게 보게 해줬으니 약속은 지킨 거 아닌가?"

"뭐라고, 이 자식이!"

명희의 화가 머리끝까지 도달한 모양이다. 그녀는 핸드백으로 손을 넣더니 이내 그것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날 향해 겨누었다. 아이고. 무서워라. 무서워 뒤지겠네, 그려.

"너, 이 새끼. 진짜 대가리에 총 맞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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