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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바닐라 클럽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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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62 회 작성일 24-05-07 11: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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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 클럽 1부 

 

 

1장

 

5월 3일. 내 생일이며, 회사에 사표를 내던진 날이었다. 동시에 무료함에 지친 운명이 내 멱살을 와락 

거머진 날이었다. 물론 그때는 이 사실을 몰랐다. 그날 아침, 동료들보다 일찍 나와 실장의 책상에 사표

를 곱게 올려 놓고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 나가는 동안 내내, 종종 꿈꾸 어 온대로 기세 좋게 실장의 

얼굴에 사표를 던지지 못했나 후회하고 있었다.

실장 곽 재원. 곽 실장은 뉴욕에서 나고 자라 대학원까지 마친 후 워너 브러더스 사 광고담당으로 근무

하다 특채 된 케이스로 서른 둘에 기획실장 자리를 꿰어 차고 앉았다. 곽 실장은 미국 물을 먹었다면서

도 회사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곽 실장 앞에서는 사생활이 용납되지 

않았다. 곽 실장은 명쾌한 논리와 화려한 화술로 직원들을 꼼짝 못하게도 했을 뿐 아니라 입을 다물고 

있을 때도 슬슬 눈치를 보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곽 실장은 누가 봐도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미모와 탄탄한 아랫배와 쭉 빠진 다리를 가

진데다가 나보다 키가 컸다. 당신이라도 곽 실장 앞에 서면 주눅이 들 게 분명하다. 나는 엘리베이터로 

가던 걸음을 멈춰 화장실로 꺽어 들어갔다. 그냥 이대로 가는 건 억울하다는 생각이 내 발길을 돌려 놓

았다. 나는 티 하나 없이 닦여진 거울 앞에 서서 노트북 가방을 매고 있는 나를 들여다 보았다. 거리에

서 만나는 그렇고 그런 넥타이 부대원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곽 실장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몰골이었다. 

솔직히 나는 키가 작은 편이 아니다. 평균 이상이다. 곽 실장, 아니다. 사표를 던졌으니 곽 재원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페미 니스트들은 곽 재원이 여자기 때문에 내가 자격지심에서 사표를 내던졌다고 생

각할 가능성이 높다. 오해는 마라. 나는 성에 차별을 두지 않는 사람이다. 곽 재원 앞에만 서면 내가 쪼

그라든다는 느낌이 정말로 나를 미치게 하였 다. 곽 재원은 내가 꿈꾸어 온 완벽한 사람이었다. 나는 한 

번도 완벽해 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간혹 

있다. 곽 재원 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사무실로 또각또각 걸어와 턱을 약간 쳐든 채 나를 내리깔 듯 

쳐다본 곽 재원의 출근 첫 날 이후로 곽 재원은 내 모든 스트레스 의 진원지가 되고 말았다. 

곽 재원을 비난할 뜻은 없다. 나만 특별히 못살게 군 적이 없음을 하늘에 두고 맹세할 수도 있다. 곽 재

원이 존재합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나는 가시밭길을 걷듯 고통스러웠다. 몇 번이나 혼자 술을 마시면

서 곽 재원은 완벽하지 않다를 외쳐도 보았지만 그건 내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곽 재원은 한 치의 실수

도 없었다. 

[곽 재원은 사람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에요. 알고보면 모두 거기서 거기라구요.] 

아나이스가 그렇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곽 재원을 보면 그렇게 말 못할 걸요?] 

식어 버린 커피를 마시려고 커피잔으로 손을 뻗던 내 눈에 아나이스의 대답이 들어왔다. 

[병이로군요.] 

절로 콧방귀가 뀌어졌다. 커피를 한모금 마신 후에 자판을 두드렸다. 

[완벽주의자가 되겠다는 게 병이라면 세상에 병 아닌 게 어딨습니까?]

[......] 

아나이스는 마침표를 정확하게 여섯 개를 찍었다. 내가 막 자판 위에 얹어 두었던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데 아나이스가 글자를 보 내왔다. 

[그래서 결국 그냥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에서 나와 버렸단 말이네요. 처량한 최후네요.] 

나는 무서운 속도로 자판을 두드렸다.

[무슨 소립니까? 화장실 휴지통에 일회용 컵이 있더란 말입니다. 거기에다가 똥을 싸서 곽 재원의 책상 

위에 턱 하니 올려 놓고 왔습니다.] 

물론 내 말은 뻥이었다. 사실 나는 거울만 쳐다보다 화장실을 빠져 나왔다. 동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 계단을 이용했습니다. 

[후후.] 

아나이스의 반응은 의외였다. 내 손놀림은 더 빨라졌다. 

[후후라뇨? 내가 없는 말을 지어냈단 말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게 중요한 사건인가요? 어쨌든 당신처럼 재미있는 사람

을 만나게 돼서 반갑네 요. 다음에 봐요.] 

아나이스는 순식간에 대화방을 빠져나가 버렸다. 봄꽃들로 둘러싸인 종각이 보이는 사이버 카페 구석에 

앉아 있던 나는 다시 외 톨이 신세가 되었다. 나는 아나이스에게 아무 것도 물어본 것이 없었다. 아나이

스의 질문에 대답만 했습니다. 왜 이런 시간에 통신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 에 사표를 내던지고 나온 길이라

는 말을 꺼냈다가 그만 흥분해서 내 얘기만 하다 말았다. 그래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끊이지 않고 얘

기를 했는데... 인연이 없나보다, 라고 그때는 생각했습니다. 하루에 똑같은 사람을 그것도 우연히 피씨 통

신 대화방에서 만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나이스를 불러낼 작정으로 궁상을 떨었다. 내

가 있던 곳은 홍대 근처 사이버 카페였고, 날씨는 죽여줬다.

[그럼 친구를 불러요. 시간도 많잖아요?] 

그 말에 김이 팍 빠졌다. 그 말을 듣고 시계를 보니 4시 25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누구 불러낼 만한 사

람이 있나 잠깐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시간 낭비만 하고 말았다. 

[이런 기분으로 만나봤자 술만 퍼마시게 될테고... 차라리 이렇게 얘기나 하는 게 좋겠습니다.] 

[미안하네요. 전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나는 아나이스가 또 작별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사라질까봐 재빨리 손가락을 놀렸다. [여긴 자주 오세

요? 대화방 말입니다. 자주 못보던 아이디라서요.] 

그 질문에 아마도 아나이스는 피식 웃었을 것이다.

[여기 터줏대감이신가 보네요. 저는요, 사람을 찾고 있거든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인터

넷 할 것 없이 다 돌아 다녀요.] 

아나이스가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으려고 더 빨리 자판을 쳤다. 

[대단하시네요. 근데 누굴 찾으십니까?] 

[이제 호김심이 발동하는 모양이지요? 어떤 때는 호기심은 위험하기도 하죠. 농담이 아니에요. 사실 저

도 제가 찾는 사람을 아 직 몰라요.] 

나는 고개를 갸웃뚱거렸다. 도대체 아나이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겠죠? 전 어디에서나 아나이스에요.] 

[잠깐만요!] 

그러나 나는 또 아나이스를 놓치고 말았다. 아나이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화방을 빠져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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