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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 1. 촌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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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88 회 작성일 24-05-07 03: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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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 1. 촌놈   

 

#1. 촌놈

 

“어디로 가면 돼?”

 

“으응... 우리 학교 정문에서 내려오면 큰 슈퍼 하나 보일 거야. 거기서 오른쪽 골목으로 가다 보면...”

 

 

칼바람이 몰아치는 대학가 원룸촌을 돌아다니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전에도 서울에 몇 번 와 본 적은 있지만 혼자 와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에 비슷한 이름. Y가 K대 앞에서 자취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주소 하나만으로 찾아가기엔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없었던 때라 주소 검색도 할 수 없는 상황. 나는 그저 건물 현관에 붙은 건물 이름들을 샅샅이 뒤지는 중이었다. 거의 한 시간을 헤매고 나서 간신히 찾은 Y의 집은 5층.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한겨울이지만 땀이 날 지경이었다.

 

딩동. 벨 소리가 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Y가 튀어나와 내 품에 안겼다. 가슴팍에 간신히 이마가 닿는 작은 키에 어깨를 간신히 넘긴 파마머리. 겁 많게 생긴 커다란 눈. 예쁘다기보다는 귀엽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Y는 나를 올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찾아오느라 고생 많았지?

 

“아냐. 금방 찾았어.”

 

찬바람에 얼어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보면 단번에 거짓말이란 것을 알 수 있을 테지만 Y도, 나도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보일러 빵빵하게 돌려놨으니 얼른 들어와서 몸부터 녹이라는 Y는 귀엽게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끽해야 열두 평쯤 되어 보이는 투룸. 거실이라기보다는 현관으로 통하는 복도 같은 느낌의 거실을 두 걸음만에 지나쳐 들어온 Y의 방 안은 여자 냄새가 물씬 풍겼다. 대학생이라기보다는 아직 소녀티가 채 가시지 않은 고등학생 같은 방. 사실 외모로 봐도 Y는 대학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펌도 해 보고 어설픈 화장도 하지만 대학교 신입생은 꾸며 봐야 신입생인 법이다.

 

“우와. 자기 방 예쁘네?”

 

“헤헤. 너 온다고 해서 어제부터 청소했어.”

 

Y는 한 살이 많았다. 여름방학 때 인터넷 동호회 오프라인 모임에서 처음 만난 Y는 대학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외모와 행동으로 회원들의 전폭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여자라기보다는 동생으로 보이는 Y에게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사랑은 아니었다. 남중 남고 출신의 시커먼 환경에서 자라온 남자가 보일 수 있는 여자에 관한 흥미 정도. Y에게 나 역시 지방에 사는 아는 동생 정도였을 것이다. 첫 만남 이후로 간간이 문자를 주고받았고, 두어 달쯤 뒤 문자와 메신저로 오고 가던 대화 속에서 나는 Y의 감정을 읽었다. 이성으로서는 처음 접해보는 여자였기에 언제부터였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아마 Y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수능을 치기 몇 주 전, 자정이 다 된 시각에 Y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떨리는 목소리와 횡설수설하는 단어 속에서 40분짜리 통화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통화가 끝난 후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과 통화요금이 엄청 나올 것 같다는 걱정을 했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반바지와 면 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딱 봐도 새로 산 옷. 사이즈를 알 리 없었기에 헐렁했지만 집이 따듯해서 별문제는 아니었다. 방으로 들어가자 Y는 스킨과 로션 병을 열며 방긋 웃었다.

 

“배고프지? 치킨 주문했어. 얼른 스킨 바르고 먹자.”

 

어린애가 된 것처럼, 아니. 그때는 어린애가 맞았다. Y가 발라주는 스킨 냄새보다 볼에 와 닿는 Y의 보드라운 손가락이 더 기분 좋았다. 반바지가 헐렁한 게 다행이었다. 빳빳하게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물건 덕에 속옷이 아플 정도로 조여왔으니까.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로션까지 꼼꼼하게 바르고 나서야 흠흠 냄새를 맡으며 예쁜 냄새가 난다고 웃던 그녀를 끌어안았다. 영화에서나 나오던 로맨틱한 키스는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깜짝 놀라 휘둥그레지는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이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속에서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듯한 것을 꾹 내리누른 나는 대신 Y를 꽉 끌어안은 채 이마에 입술 자국을 남겼다. Y 역시 무슨 상황인지 대충 눈치챈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 착하다. 근데 치킨 시켰단 말이야. 이따가. 응?”

 

정말로 어린애가 된 듯한 기분. 이름 모를 룸메이트는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 버린, 단둘이 있는 자취방 안에서 여자와 단둘이 있는다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이 흥분되는 일이었다. 마침 초인종이 노래를 불렀다. ‘잠시만요’ 지갑을 들고 현관으로 종종걸음치는 Y를 보며 나는 재빨리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제멋대로 일어선 녀석을 위쪽으로 잘 뉘어주었다. 아직까지도 Y의 집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실감 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불이 꺼지면 더 이상 어린애는 아니게 될 거라는 것뿐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Y를 보고 잠시 잊었던 허기가 몰려왔다. 비닐봉지 안에서 피어오르는 고소한 치킨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아래는 딱딱하게 부풀어 오른 성욕, 그리고 입에 한가득 침이 고인 식욕. 조그마한 무릎 식탁을 꺼내 온 Y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술을 꽤 좋아했다.

 

“잘 먹겠습니다!”

 

눈 깜짝할 새 치킨 박스는 바닥을 보였다. 반쯤 남아 있는 맥주 페트병을 안주 없이 비워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Y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밖에서 갓 들어왔던 나보다 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작은 몸에 술도 거의 못 하는 그녀에게 맥주 세 잔은 거의 치사량이었던 듯싶었다. 식탁을 통째로 번쩍 들어 거실에 내다 놓은 나는 심호흡을 한 채 다시 Y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바들바들. 나도 모르는 새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무서워서였을까, 흥분 때문이었을까. 작은 손가방 속에서 꺼낸 가그린을 들고 있던 Y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내게 내밀었다. 촉촉하게 젖은 그녀 입에서 알싸한 민트 향이 났다.

 

그래서였을까. Y의 보드라운 입술이 와 닿을 때 청량감이 느껴진 것은. 어린애들 뽀뽀와 별다를 것 없던 입맞춤이었지만 내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있었다. 어디서 해 봤을 리가 없었다. 그녀도, 나도 서로가 첫사랑이었으니까. Y가 입은 니트의 까슬함 밑으로 여린 몸이 바짝 긴장해 있는 게 느껴졌다. 혀가 Y의 입술 사이를 슬쩍 기웃거리자 긴장은 더 심해졌다. 틱. 불을 끄자 Y는 내 품 안으로 더 파고들었다.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늑대 품 속으로 파고드는 새끼양을 보는 늑대의 심정은 어떨까. 아무튼 그때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쓸 새 없었다.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그녀와 침대 위로 쓰러졌다. 어색한 자세로 그녀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고 다시 한 번 혀를 밀어 넣었다. 잠시 망설이다 열린 입술 속에서 만난 Y의 혀는 달콤했다. 미지근한 타액 속에서 부끄럽게 꼬물거리는 혀끝이 시럽같았다. 귀에 들린다던 종소리나 아이스크림같은 소리를 믿을 정도의 감수성은 없었지만 처음 느끼는 달콤함과 부드러움은 턱이 뻐근할 정도로 그녀의 입안을 헤집게 만들었다.

 

“파하.”

 

간신히 떨어진 입술 끝에 매달리는 가쁜 호흡을 정리하는 Y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 단어뿐이었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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