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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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 12
“뭐하는데? 이리 내놔.”
-이미, 찢어져서 더 못 신어요.
“하지마..”
-큭..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건 분명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의 아내와 신세준. 다시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야 겨우 눈치 챈 건, 언제부턴가 나의 물건도 슬쩍 고개를 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애써 그걸 무시하고, 나는 자동차 창문이 완전히 올라갔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창문쪽으로 다가가 앉았다.
‘뭐지?’
방금전까지 내가 앉아있었던 자리에, -어둠속에서- 낯선 무언가가 놓여져 있는게 보였다. 방금전의 대화를 떠올리니, 분명 그건 아내가 신세준으로 하여금 ‘내놓으라’고 했던 그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집어 들었다. 어둠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내가 허물처럼 벗어버린, 아니 벗겨져 버린 검은색 스타킹이었다.
스타킹을 손에 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쉼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창문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랬더니 정말 얼마가지 않아 자동차가 다시한번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에선 더 이상 누군가의 등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얼마쯤 지났을 때, 다시 그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듯 다가와 부딪히는 누군가의 발이 보였을 뿐이었다. 더 이상 스타킹의 팁토가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당장 그것이 누구의 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그리고 사정없이 빌빌 꼬이고 있는 그 맨발의 방향을 보고, 그것이 자동차 뒤에서 ‘누군가에 깔려’ 누워있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 덕분에, 별다른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요란하게 흔들리는 자동차의 차체와 자동차의 창문을 부셔버릴 듯 세차게 두드리고 있는 그 발의 움직임을 보며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을 일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아내가 벗어놓은 그 스타킹을 손에 꼭 쥔 채.
한동안 자동차는 요란하게 흔들렸고, 나는 창문으로 누군가의 발의 움직임만 훔쳐보고 있었다. 엄지발가락이 이리저리 엉켜대고 있는 그 발을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저릿하단 말인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자동차 안의 움직임이 멈췄다. 사정이라도 한 건가?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다시 낯선 손이, 창문을 두드리듯 짓이기던 그 발가락에 다가가는가 싶더니, 정말 얼마가지 않아 누군가의 ‘얼굴’이 자동차 창문에 다가와 부딪혔다. 나는 가까스로 입을 틀어막으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아..’
분명 자리에 주저앉았는데, 그리고 자동차 창문을 붙잡고 인상을 구겨넣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있는데, 자동차의 요란한 움직임만 다시 시작될 뿐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등 뒤로 다시금 식은땀이 흘러 내려갔다. 하지만, 눈을 꼭 감은 채 입술을 깨물고 있는 아내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거야? 아니면 일부러 눈을 감고 안보고 있는거야?’
두 손을 자동차 창문에 가져다 댄 채, 눈을 감고 창문 여기저기에 깊은 쉼호흡을 새겨넣고 있는 아내를 보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났다. 떨림? 분노? 증오? 흥분? 그 어느 것 하나 나의 지금 심정을 정확하게 대변해 줄 수 없었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려서 자리를 옮겼을 때, 자동차 창문을 붙잡고 있는 아내의 등 뒤에서 거칠게 움직이고 있는 신세준의 얼굴이 들어왔다.
‘후배위’
뒤로 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아내와의 섹스는 늘 정상위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어쩌면 더한- 나는 아내에게 얼마전에 펠라치오도 받은 몸 아닌가? 요 근래 계속된 아내와의 섹스에서 왜 나는 한 번도 자세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자동차는 계속해서 심하게 흔들렸다. 아까와는 반대로 창문에 부딪히는 아내의 얼굴은 정신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머리를 숙였다가 뒤로 힘껏 젖혔다가. 창문에 두 볼을 비볐다가. 아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흥분한 채로 지켜보고 있던 나란 놈이 선택한 건.
“윽.. 으윽..”
아내가 벗어놓은 스타킹을 나의 물건에 가져다 대고 정신없이 문지르는게 전부였다.
거의 동시에, 자동차의 떨림과 나의 손의 움직임이 멈췄다.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아마도 그 놈은 사정을 한 것 같았다. 물론 아내가 내 건 조건을 생각하면, 피임도 확실하게 했을 것이다. 나는 겨우 진정이 되어서 슬금슬금 자동차 곁으로 가, 그놈과 내가 ‘망쳐 놓은’ 아내의 스타킹을 그대로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동차 창문을 훔쳐봤지만, 나는 결국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의 등이 보였을 때, 나는 마지막으로 몸을 숙이고 자동차에서 달아났다.
얼마쯤 지났을까. 자동차의 문이 열렸다. 자동차의 히터를 틀어놓아서인지, 조금 쌀쌀하게 변해버린 밤을 따라 희미한 연기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건, 신세준이었다. 손으로 허린지 무엇인지를 잠깐 감싸쥐고 있던 신세준은 열려있는 차문을 꼭 잡고 고개를 숙였다. 아마 아내의 모습을 확인하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차 안에 있을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여운이 긴 건가?”
씁쓸함이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 놈이 차 문을 쾅하고 닫았을 때, 나는 비틀 거리며 산 아래로 내려왔다.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끝내 걸어가지 못하고, 나는 어둠속에 멈춰 서서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사정을 마친 나의 물건을 타고 나른함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제야 정신이 멍해져 도저히 앞으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모든 걸 내 눈으로 확인했다.’
그래봐야 의미없는 확인이었다.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 않은가? 자리에서 억지로 일어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에 억지로 힘을 주며 안간힘을 써봤지만 끝내 어둠속에서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게 된 건,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불러왔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그대로 심장이 얼어붙었다. 고작 3음절의 한 마디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전해져 오는 끈적함과 부드러움은 댓번에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자리에서 일어서서, 어둠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그 실루엣을 마주하고 섰다.
“왠지 따라 오실 것 같았어요. 그것보다... 때리실 건가요?”
너무나 덤덤한 목소리. 그래서 화가 났다. 하지만 이상하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강간을 당한 아내, 하지만 끝내 쾌락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아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함구할 수밖에 없었던 나.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중심에 서 있는 신세준까지. 누가 누구를 탓하며, 또한 그 어떤 누가 다시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나는 멍하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후우. 다행이네요. 그래도 몇 대 실컷 얻어맞을 줄 알았.... ”
[퍽!!]
“억!!”
아뿔싸. 기어이 주먹에 힘이 들어가 버렸다. 허공에 흩뿌려진 나의 주먹을 뒤로하고, 자리에 쓰러진 신세준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 안 때리신다면서요?”
-아... 미안.
“세상에서 제일 나쁜게, 안한다고 했다가 하는거에요. 아 아파.”
재밌게도 괜시리 미안해 졌다. 잠깐. 그런데 생각해 보면, 네가 말하고 있는 그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은 이미 네가 시전하고 있는 바로 그것 아니더냐? 나는 너털웃음이 나서 신세준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슬쩍 손을 건냈다. 그건 앞으로 나에게 닥칠 ‘어떤 일‘ 들의 시작이자, 거대한 서막이었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내는 나에게 간단한 인사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는 아내의 옷에 주름이 잡힌 것도, 그리고 아침에 아내가 신고 나간 스타킹이 왜 당장 지금은 없는지도, 따져 묻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방으로 들어가는 아내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내의 대답을 애써 외면한 채, 나는 바람 쫌 쐬고 오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집을 빠져 나갔다.
“아직도 얼얼해요.”
집을 빠져 나와 얼마쯤 걸었을 때, 인적이 드문 놀이터에서 걸어나오는 신세준과 마주쳤다. 놀이터라고는 해도, 아주 후미진 곳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어 가끔 밤늦게 지나가다 보면, 가난한 연인들이 남몰래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참. 하필 기어 나와도, 이런 곳에서 기어나온다.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놀이터로 들어가지.”
-예. 뭐.
아까 신세준과 헤어지면서, -아내의 눈치를 살폈던 우리 둘은- 우리집 근처에서 다시 만날 것을 가볍게 약속했었다. 조금 재미있는 건 신세준의 태도였는데, 어쩐지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나 당당했다. 하긴. 뭐 그런 깡이 없으면 이런 짓을 할 놈이 못되지.
“담배 한 대, 피워도 되나요?”
-그래..
“드릴까요?”
-아 나도 있어...
없다. 제기랄. 바쁘게 나오느라고 담배도 챙기지 못했다. 나는 피지 말까 하다가, 녀석이 결국 피식 웃으며 나를 쳐다보기에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제기랄.
“후우.”
-후우.
거의 동시에 깊은 한 모금을 빨아, 그 담배 연기를 놀이터 하늘 위로 뿜어 올렸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리고 그 긴 정적을 먼저 깬 건, 신세준이었다.
“죄송합니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뒤를 밟을 거라는 걸 알았던 사람이, 딱히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런가요? 그런데 그건요. 뭐랄까. 솔직히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나는 신세준을 흘겨봤다. 그러자 신세준이 손바닥을 곧게 펴며 바로 말을 이었다.
“아니요, 아니요. 선배님 말고요. 저요 저.”
-누가 선배님이야?
“그럼 뭐라고 불러요?”
-.............
머리를 굴려봤다.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호구? 아니면 따남? 그러니까 ‘따’먹은 여자의 ‘남’편? 제기랄, 이젠 하다하다 별 이상한 생각이 다 든다. 나는 그냥 편할대로 부르라고 말했다.
“그럼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싫어.
“........... 편할대로 부르라면서요.”
후우, 역시 안되겠다. 나는 그냥 선배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러자 신세준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내가 정색을 했을 때, 기어이 바짝 쫄아서는 알겠다고 말했다.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까요? 아님 먼저 궁금하신게 있으신가요?”
-내가 아까 뒤를 밟을거라고 생각했던 건....
“그거야, 일전에 술집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제기랄. 나름 머리를 짜내서 돌리고 돌려서 얘기한다고 한건데.
“그래도, 좀 너무 심하셨어요. 아무리 그래도, 3살차이의 연상녀를 만났다고 하실 줄은...”
-.......
“무엇부터 말씀드리고 사과를 드려야 할까요?”
-사과?
신세준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과라는 말을 나는 곱씹어 보았다. 사과라. 이놈은 왜 내게 사과를 한다고 하는 걸까? 나의 아내와 몰래 관계를 가져서? 후우, 모르겠다. 과연 내가 그 사과를 받음에 마땅한 인간인지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아까 자동차에서는....”
-........... 네, 보신 대로. 과장님하고.....
“............”
신세준은 나의 눈치를 보고 말꼬리를 줄였다. 뭐, 그건 그러려니 했다. 정작 말문이 트이니 조금씩 궁금한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어쩐지 조금씩 망설이게 됐다.
“아까 위험하셨어요.”
-음?
“그러니까, 아까 자세를 바꾸는데, 선배님 얼굴이 보여서. 깜짝 놀랐거든요.”
-...........
제길, 일부러 그런건 말하지마.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건 이제 됐고. 뭐, 이제 이런 건 물어봐야 뭐에 쓰겠냐만...”
신세준이 나를 바라봤다. 어차피, 아내와 이놈이 출장에 가서 했던 일들은, 지난 번 술자리에서 들었다. 것보다, 난 조금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남자로써 제일 민감한...
“아내와 몇 번이나 잤어?”
-아...
“왜?”
-아니 조금, 의외라서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할 땐, 당연히 처음 질문은 어떻게 과장님과 처음 자게 되었느냐? 뭐, 그런걸 줄 알았거든요.
그것도 이미 다 들었다 임마. 너를 통해서. 그러니까 일부러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돼. 나는 슬쩍 눈을 감았다. 괜히 찔려서 눈을 감았을 뿐인데, 그걸 지켜보는 사람은 ‘아, 씨발, 또 내가 이 새끼 비위를 건드렸구나’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신세준은 내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횟수로 셀 수 있습니다.”
[퍼억]
“악!! 왜 또 갑자기 때리세요?”
괜히 눈에 보이는 구라라는 생각에 주먹을 날렸다. 신세준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어.
“진짭니다. 그러니까, 뭐. 물론 선배님께서 제게 물어보시지는 않았지만, 처음 과장님과 잠자리를 가진 게 한 달 전쯤 이었구요. 그리고 그 후에 관계를 가진건, 또 그 다음 출장이었어요. 하지만 정말 맹세코 그게 다에요. 심지어 정말 한 번씩만 했어요. 그리고 오늘이 세 번째 섹스였습니다. 정말이에요. 그건 맹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신세준을 바라봤다. 녀석은 그런 나를 보고, 마치 ‘이 인간이 결국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녀석의 태도를 보아하니, 거짓은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하지만 고작 세 번?
“정말입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하지만, 오늘 가졌던 관계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얼마 전부터 계속 과장님을 조르고 졸라서 한거에요. 정말입니다.”
나는 미간에 인상을 구겨넣었다. 그러자 이놈이 또 내가 주먹을 날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서둘러 놀이터 바닥에 무릎을 꿇는게 아닌가?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어쩐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고작 세 번이라? 맨 처음 섹스는 다분히 강간이었고, 아내의 반응은 이놈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가진 섹스. 솔직히 지금 이 순간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다. 너무나 갑자기 바뀌어 버린 아내의 태도... 랄까? 이걸 물어봐야 할까?
“저번에 술자리에서 했던 이야기.”
-네?
“저번에 술자리에서 네가 했던 이야기는, 분명 너와 내 아내의 이야기지?”
-네. 그땐 제가 술에 취했는지, 잠시 객기를 부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내 아내가 콘돔을 먼저 준비했어?”
-.................
녀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 눈치를 보며 고개를 위 아래로 흔들었다. 맙소사 도대체 왜?
“혹시, 첫 번째 섹스후에, 그러니까 첫 번째 관계와 두 번째 관계 사이에 아내와 만났다거나 했던 적은 없어? 따로 이야기를 하거나.”
-........
녀석은 내 눈치를 살폈다. 잘 대답해라. 난 분명 네가 내 아내와 만났던 일, 그러니까 네가 그 휴대폰의 영상으로 아내를 협박하던 일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다 보니..”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야. 사적인 만남 말이야, 사적인 만남.
“........ 사적인 만남이라기 보단, 회사에서 몰래 과장님과 첫 번째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건 사실입니다.”
나는 녀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별달리 거짓말은 아닌 듯 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놈이 내 아내를 협박했다는 사실을 캐물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럼 아내에 관한 비밀 키워드는, 결국 아내 자신이 가지고 있단 말인가?
우리는 말없이 담배를 한 대 더 나눠 피웠다. 머리가 어지럽다.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어쩐지 앓던 이가 빠지듯 조금 시원한 느낌도 있었다. 신세준은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는 머릿속을 굴러다니는 수만가지 키워드를 조합해 여러 가지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물론 그 모든 선택의 대상은 아내였다.
“한가지만 묻자.”
-네?
담배를 다 피우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천천히 신세준에게 말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모든 생각이 끝이 났다. 나는 시원하게 무언가를 선택했고 ‘그 단어’를 머릿속으로 계속 곱씹어 봤다. 하지만 확신할 수가 없다.
“내가 만약, 그러니까. 내가 만약 오늘 밤 네가 내 아내에게 했던 모든 일을... 그냥 덮겠다고 하면 말이다.”
-네.
“내 아내와의 관계를 멈추겠냐, 아니면 그래도 계속 아내와 관계를 몰래 가지겠냐?”
-.................
녀석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녀석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설령 조금 뒤에 ‘만나지 않겠다’고 해도, 그건 결국 거짓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나는 눈을 꼭 감고 내가 선택했던 그 단어를 다시 크게 곱씹어 봤다.
‘쾌락!’
신세준과 헤어지고 내가 다시 집으로 들어간 건, 그로부터 몇 분 쯤 지나서였다. 아내가 혹시나 나를 기다리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건 결국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아내는 –당연하게도- 피곤한지,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아내의 가슴쪽에 이불을 살짝 올려 덮어주고, 조심스럽게 그 옆에 들어가 누웠다. 그리고 팔베개를 하고 누워선 방금 전 신세준에게 했던 말을 되새겨 봤다.
‘내 얘기 잘 들어. 그리고 네가 나를 미친놈 취급하고 호구로 생각해도, 뭐. 이젠 솔직히 상관없어. 먼저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네가 했던 사과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일단 했던 사과니까 받아는 둔다. 그리고 네가 내 아내와 했던 모든 일은, 너무나 화가 나지만 –사실 이건 구라지만- 덮어두겠어. 그러니까, 뭐 난 법에 대해선 거의 깡통이니까, 이를테면 간통이니, 혹은 뭐 그 외의 다른 법적인 제제는 가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까 머뭇거리는 너의 태도로 보건데, 너는 분명 앞으로도 내 아내와 잠자리를 가지려 할거야? 그렇지? 그럼 말야.......‘
“후우.”
내가 잘 한 걸까? 확신이 서질 않는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봤다. 잠들어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아까 창문을 짓이기듯 두드리던 아내의 모습은 찾아낼 수 없었다. 정말 그건 내 아내였을까? 그리고 나는 천천히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몸을 몇 번이고 훑어댔다. 그렇게 아내를 사이에 둔, 녀석과 나의 위험한 거래는 시작됐다.
며칠간 잠잠했던 또 다른 설램이 천천히 내 몸을 감싸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이나 질투, 혹은 시기,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여태껏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종류의 설램이었다.
[띠링]
회사에 나와 멍하니 책상위에 앉아있는데, 문자가 왔다. 나는 회사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천천히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낯 선 전화번호로부터 찍힌 메시지를 천천히 눌렀을 때, 그 기다란 메시지가 나의 두 눈에 들어왔다.
[오늘... 과장님과 하려고 합니다. 물론 과장님께서 허락하신다면요.]
나는 가볍게 영문자 두 개를 눌러 전송을 눌렀다. O. K. 맙소사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 문자가 오기를 난 얼마나 기다렸단 말인가? 그러니까 녀석과의 ‘거래’가 있고나서 무려 3일이나 지나서였다. 무려... 무려...
‘시작인가?’
나는 깍지를 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몇 개 되지 않는 녀석과의 ‘거래 조건’을 머릿속에 하나하나 떠올려 봤다.
‘일단, 더 이상 나를 기만하거나 하지 않았으면 해.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가 나를 병신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어. 다만, 정 네가 내 아내와 관계를 가지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이유는 묻지마. 다만, 아내와 섹스를 하게 되면, 나에게 알려주었으면 해. 가급적이면 관계 전에 말이야. 그리고 물론 당연하게도, 아내가 섹스를 거절하면 절대 해선 안 돼. -그때 녀석이 내 말에 피식 웃길래, 내가 또 본능적으로 발로 걷어찼었다.- 그리고 피임은 철저히 해 주고. 콘돔은 항상 챙기라는 말이야. 알겠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이 모든 건. 철저히 비밀로 하자고.’
나는 깍지를 낀 손을 그대로 얼굴에 펴 발랐다. 과연 내가 잘 한 걸까? 누군들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내가 나에게 처음으로 요구한 것. 그리고 ‘애원‘한 것. 그게 섹스다. 항상 부부관계에 있어 ’을‘의 위치에 놓여 있었던 내가, 처음으로 ’갑‘의 위치로 올라선 것이다. 나는 말없이 두 눈을 감았다.
아내가 집으로 들어온 건, 9시쯤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귀가에, 당황한 쪽은 물론 나였다. 이미 퇴근 후에, 녀석과 아내의 관계를 떠올리며 또 혼자 자위를 했던 참이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간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나는 서둘러 녀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오늘, 아내랑 안했냐?]
보내놓고 보니 아차 싶었다. 뭐 이딴 질문을 보냈을까? 하지만 미처 후회하기도 전에, 녀석의 문자가 들어왔다.
[했습니다!. 전 한 번 말한 건 꼭 지키거든요!! ^^]
모르긴 몰라도, 네가 지금 내 옆에 있었다면 당장에 주먹이 날라갔을거다. 다행인줄 알아라. 후우. 것보다 이 이모티콘은 뭐라냐? 웃지마라. 후우.
나는 퇴근후에 관계를 가졌냐는 원시적인 문자를 보냈고, 그 원시적인 문자에 녀석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맙소사. 생각보다 너무 일찍 끝났잖아? 녀석과 별다른 문자를 더 주고받고 나서, 나는 샤워를 마치고 나서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먼저 침실로 들어갔다.
“후우. 피곤해.”
-뭐가.. 그렇게 피곤해?
내가 생각해도 너무 닭살스러운 말투였다. 아내가 슬쩍 고개를 들려 나를 바라봤다. 괜히 찔린 내가 서둘러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려 주물러 거렸다. 아내는 평소와 다르게 싫지 않았는지, 묵묵하게 내 손을 받아들였다.
“조금.. 늦었네?”
-어. 아까 뭐 먹고 온다고 얘기했잖아?
아니지. 정확하게 얘기해야지. 뭘 먹은건 신세준이고, 넌 그냥 ‘먹힌 거’지. 하지만 나는, 아내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제발 아내의 입에서 먼저 ‘그 말’, 그 ‘요구’가 흘러나오길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끝내 먼저 말을 건건, 역시나 나였다.
“우리... 한지 꽤 됐잖아?”
-......... 하고 싶어?
아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전개가 아니다. 빌어먹을. 좀 더 참을 걸. 하지만 피식 웃으면서 나를 향해 돌아서고 있는 아내를 보며, 그게 뭐가 대수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천천히 자신의 속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후우. 그래 뭐가 대수냐? 이런 전개도 나쁘지 않다. 결국 같은 길로 가는 거니까.
“으윽.. 윽..”
아내의 몸 위에 올라타서 나는 정신없이 허리를 움직였다. 아내의 가슴을 혀와 입술로 가득 머금으며. 어쩐지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의 젖가슴이 조금 커진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엔 이미, 산에서 봤던 아내의 얼굴과 스타킹. 그리고 문어의 움직임처럼 이리저리 꼬아대던 발가락만 사정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내의 몸을 정신없이 핥아대면서 나는 너무나 확인하고 싶었다. 아내도 나와 같이 흥분하고 있는지.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아내는 별다른 ‘소리’를 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해?”
아내는 조금 불편한 듯 나에게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내의 젖가슴을 입술로 물고 힘껏 허벅지를 올려 들었다. 그리고 조금 불편했지만 –아니 많이 불편했지만- 기어이, 아내의 발가락을 이러저리 만져댔다. 어라? 막 꼬아대고 그래야 되는데?
모르는 사람이 우리의 섹스를 지켜봤다면, 정말 이런 그로테스크한 형상도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거다. 체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내가 지금 아내와 만들어내고 있는 자세가, 어떤 체위인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을 정도였다.
‘뒤.. 뒤로.. 나도.. 나도 뒤로 하고 싶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허리가 저릿하게 아파오면서도, 신세준과 아내를 떠올리니 기어이 나도 아내의 뒤로 올라가 그 자세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런 생각을 할 때, 나의 물건에서 신호가 왔다. 안 된다. 아직.. 안된... 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