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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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10
새로운 날이 밝았다. 아내와 나는 평소처럼 각자의 직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아내가 차를 가지고 나가는 바람에, 나는 홀연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이래저래 생각할 게 많았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무언가 부족했던 우리 부부의 관계 –그러니까 조금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섹스- 가 예전에 비해 확연하게 개선된 건 정말 기뻤다. 그러니까 아내가 강간을 당한 건 논외로 치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또 마냥 그렇지가 않은 게, 기분이 좋다가도 사정을 마치고 나면, 신세준의 얼굴이 떠올라 버린다. 이게 아주 지랄맞단 말이지. 후우.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신세준이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냐, 욕을 퍼부어야 하냐.
“후우. 뜨겁네.”
일 때문에 아내의 회사에 갔다가, 아내가 갑자기 커피를 부탁하길래 인근 커피숍에서 뜨거운 에스프레소 2잔을 뽑아 로비에서 대기했다. 후우. 아내의 취향이라 어쩔 수 없이 맘에도 없는 에스프레소를 뽑아왔다. 대관절 이렇게 쓴 걸 어디가 맛있다고 마시는 건지 원. 후우. 당연히 내 쪽에는 시럽을 잔뜩 뿌려왔다. 에스프레소에 시럽이라. 최고의 조합이지 않은가?
“안녕하세요?”
아내를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냈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 나는 조금 뻣뻣하게 반응하고 말았다. 직감적으로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신세준을 바라보며 나는 어색하게 인사했다.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그렇게 볼려고 애를 쓸 때는 잘 안보이더니, 요즘엔 이렇게 자주 눈에 띈다. 참.
한참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내가 물어보고, 따지고 싶은 이야기는 살짝 접어둔 채. 그나저나 이 상황에서 아내가 내려온다면 꽤나 볼만할텐데. 그러다 마침 손에 들린 커피가 생각났다. 아차 싶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나란 놈은 ‘매너’를 찾는구나. 나는 손에 들린 커피 하나를 올려들며 신세준에게 말했다.
“아.. 이거 ‘먹을래요’?”
신세준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 찰나의 순간동안, 나의 머릿속에 퀘스쳔 마크가 떠올랐다. 커피에 어울리는 동사는 분명 마시다지, ‘먹다’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녀석에게 굳이 커피를 ‘먹겠냐’고 물어봤을까. 하지만 곧바로 돌아온 녀석의 대답은 다시금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니요. 이미 아까 ‘먹었어요’.”
신세준과 짧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헤어진 건 다분히 신세준 쪽이었다. 나는 커피를 들고 멍하니,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신세준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신세준이 나에게 남긴 그 말을 멍하니 곱씹었다.
‘이미... 먹었다... 인가?’
내가 잘 못 건낸 말에 대한, 단순한 반응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나에게 있어, 그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들린 커피가 더욱 더 뜨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안가 아내를 만났고, 나는 무덤덤하게 아내에게, 신제준이 아까 이미 ‘먹었다’던 그 커피를 건내 주었다.
아내와 헤어지고 회사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내가 일하는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쓸쓸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그것은 신세준과 아내에 관한 일들이었다. 자신을 강간한 신세준을, 왜 아내는 그렇게 쉽게 받아들인 걸까? 그 조건이란건 잘 지켜지고 있을까? 나 몰래? 얼마전에 나와 관계를 할 때, 아내의 그 곳은 왜 그렇게 젖어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얼마간 걸었을 때, 나는 그대로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내가 빠져나온 회사를 올려다보며 나지막하게 내 자신에게 속삭였다.
“역시.. 안되겠다, 더 이상”
긴 생각 끝에 신세준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아내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볼 용기가 없어, 아내 몰래 휴대폰에서 그 녀석의 전화번호를 몰래 빼낸 것도 나였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연락을 할 수 있을까 하다가, 결국 막무가내로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대충 얼버무리다가, 얼마전에 회식자리에서 아내랑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냈다. 그리고 억지로 퇴근 후의 술자리 약속을 잡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아내에게는 먼저 늦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건내 놓고, 내가 먼저 바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혹시 신세준이 아내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보고하는 건 아닐까? 뭘 그렇게 걱정할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아내에게 대충 둘러대면 된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녀석은 왠지 그러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세준이 어느샌가 내 곁에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조금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 시작인가?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쩐지 묘하게 긴장이 됐다. 그러니까 누가 보던, 나와 마주하고 있는 놈이 나쁜놈이고, 내가 좋은놈인건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숱하게 훔쳐듣던 지난날의 상황과는 또 다른, 묘한 흥분감과 긴장감이 천천히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좀 놀랐어요.”
-네?
“아니, 갑자기 절 보자고 하셔서요. 딱히 제 전화번호도 모르실텐데.”
-일전에 고마웠던 일도 있고, 와이프한테 부탁해서 연락처 좀 받아냈죠 뭐.
그래 이런 식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면 되는 거다. 나는 손에 들린 술잔을 들어 한 모금을 적셨다.
“좀 어리둥절 하네요. 그냥 직장 후배로써 해야할 도리를 했을 뿐인데, 그리고 음.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 누가 그러더냔 말이다. 직장 후배로써 상사를 대하는 도리 중의 하나가, ‘섹스’라고. 그리고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쉽사리 내 쪽에서 먼저 너에게 말을 편하게 할 리가 없다.
“이봐, 동생.”
-네, 형님.
“자넨 참, 뭐랄까. 느낌이 참 좋아. 생긴것도 잘 생기고.”
-과찬이십니다. 형님이야 말로 이 시대의 위너시죠. 다 가지셨잖아요? 능력, 그리고 훌륭한 와이프까지.
내가 이성을 놓친 건, 술이 몇 잔 들어가고 나서였다. 그런데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뭐 사실 별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내가 잘생겼다고 말해 줬으면, 너도 최소한 나한테 멋있다는 말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니냐? 끅. 아 취했나?
“와이프가 예쁘기는, 그냥 고집만 세지. 막 못살게 굴고 그러지? 우리 와이프가. 안봐도 비디오다.”
-아니요, 잘 해주세요. ‘여러모로‘.
여러모로 잘 해준다는 녀석의 말이 신경쓰여 슬쩍 흘겨봤다. 하지만, 술잔을 한 잔 더 들이키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술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관계에 급속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니까 최소한 내 생각에는. 녀석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관심사 취미, 회사 이야기 등등.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으니, 이제부터 천천히 와이프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우리 와이프가 회사에선 이미지가 그렇게 나쁘진 않은가 보네?”
-나쁘다니요? 인기가 얼마나 좋으신데요, 과장님이.
“그래? 여직원들한테만 인기가 많은 거 아니야? 딱 그럴 타입이잖아. 같은 여자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에이, 반대에요. 아 물론 여직원들한테도 인기 많으시죠. 그런데 남자직원들도 좋아해요.
“왜? 음. 성격때문은 아닐테고, 설마 몸매가 너무 좋아서 그런가?”
나는 슬쩍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녀석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하지만 나는 분명 볼 수 있었다.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댄 녀석이 분명 웃고 있었다.
“말씀 먼저 하셨으니까, 그럼 말할게요. 예쁘시잖아요, 과장님. 되게 매력적이시고.”
나는 살짝 숨을 죽였다. 그러면서도 살짝 웃으면서 녀석에게 적당한 리액션을 해줬다. 분위기가 얼추 무르익어 간다.
“하지만... 가슴이 좀 작잖아?”
-에이. 복에 겨운 말씀이세요. 큭.
“그런가? 큭.”
복에 겨운 말씀이라. 후우. 자 그럼 슬슬, 네 얘기를 좀 들어볼까?
“그나저나, 동생은 여자친구 없어?”
-여자친구요? 글쎄요, 뭐 딱히 만나는 사람은 없는데.
녀석이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술이 달아오른다. 하지만 절대 이성을 놓쳐서 실수를 하면 안된다.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으니까.
“이제 결혼할 나이 되지 않았나?”
-후우. 그러게요. 해야 되는데, 아직 철이 없는건지, 결혼 생각이 없네요.
철이 없는게 아니라, 음... 굳이 꼽자면 개념이 없는건 아닐까? 나는 안타깝다는 말을 건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녀석을 보며 먼저 말을 걸었다.
“사실 아내가 들으면 실망하겠지만 말야.”
-네?
“뭐 당연하겠지만, 아내는 내 첫사랑이 아니거든.”
-아. 뭐 그럴 수 있죠. 요즘에 첫사랑과 결혼하는 게 그렇게 흔하진 않잖아요?“
“응. 큭. 아 내 정신 좀 봐라. 동생한테 괜히 쓸데없는 얘기나 하고. 취했나?”
-아닙니다. 남자들 모이면 결국 나오는 건 여자 얘기잖아요? 저도 궁금한데요? 해주세요, 이야기.
이런 씨벌놈이... 그래, 하긴. 남자 둘만 모여도 결국 나오는 건 여자 얘기더라? 나는 고민하는 척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물론 녀석에게 비밀을 구하는 ‘헛짓거리’도 잊지 않았다.
“결혼하기 전에, 이런 저런 여자를 만났는데.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나보다 3살 쯤 많았던 누나하고 만났던 거야.”
-..... 3살이요?
3살이라는 말에 녀석이 살짝 반응을 보였다. 아내와 녀석의 나이차이는 정확하게 3살. 나는 성의없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서른쯤 이었나? 아내 만나기 바로 전이었으니까. 재미있는건 그렇게 오래 만나지도 않았다는 거야. 한 두 달 쯤 됐나? 성격이 잘 맞느냐, 아니면 관심사가 비슷했느냐? 물론 둘 다 아니었어.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말야. 꽤 재미있게 사귀었다는 점이야. 왠 줄 알아?”
-................. 음. 알 것 같은데, 괜히 대답하긴 좀 껄끄럽네요?
“왜?”
-그냥, 넘겨짚는 거긴 한데, 형님한테 결례가 될 것 같아서요.
“엥? 뭔데?”
-.......... 음. 사귀는 남녀가 관심사도 틀리고 성격도 잘 맞지 않는데, 그렇게 짧은 기간동안 잘 사귀었다는 건, 결국 하나의 조건은 꼭 맞았다는 거 아닐까요?
“하나의 조건?”
-섹스요.
내가 피식 웃었다. 그러자 녀석도 나를 두고 피식 웃었다. 물론, 내가 그런 여자를 만났던 기억은 조금도 없다. 단지 녀석을 떠 보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뿐이다. 후우. 나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해. 꽤나 강렬했었거든. 확실히 여러모로 리드도 할 줄 알고.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쾌락이었으니까.”
-아. 어느정도는 수긍이 되네요.
“그래? 그럼 동생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 혹시?”
-비슷한 경험이요?
“응. 수긍이 간다길래.”
녀석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괜히 뜨끔해진 내가 먼저 시선을 거두고 술을 한 잔 들이켰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했나? 너무 빨리 치고 들어간 건가? 나는 녀석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줄 때까지 눈을 감고 술을 마셨다.
“비슷한... 경험이라... 음..”
-..........
“비슷한지 어떤지 모르지만, 있었던 것도 같아요.”
-그래?
“네. 사실 남자한테 그런 류의 일은 어찌보면 흔하잖아요? 흠.”
-뭔데? 궁금하다. 들려줘봐.
그제야 나는 서둘러 녀석에게 내 얼굴을 들이 밀었다. 그러자 녀석이 나를 보며 살짝 잿빛을 구겼다. 아차, 또 너무 서둘렀나?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
이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