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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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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868 회 작성일 24-05-03 04: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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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9 

 

 

“뭐하는 건데?”

! 뭐하는 건데? 궁금하다. 하지만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에서 고개를 숙이고 훔쳐듣는 내게,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건 그건 분명 아내의 목소리였다. 

“그냥 바람 쐬러 나왔는데, 과장님이 계시길래, 따라와 봤어요.”

-후우.

“그나저나 괜찮으세요? 아까 보니까 술 잔득 드시던데.”

-괜찮아. 괜찮으니까 들어가자.

“하여튼 회식자리에서 왠 술을 그렇게 드세요?”

-지금 네가 누굴 걱정해 주는거냐?

“후우. 이거야 원. 아직도 그렇게 화가 나신거에요?”

나는 잠자코 아내와 신세준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분명, 이대로 가면 뭐가 나와도 나올 것이다. 

“착각하지마. 그런거 아니니까.”

-뭐, 맨날 착각하지 말래. 솔직히 전 이제 어느정도 감이 잡히는데요? 

“뭐?”

-그렇잖아요. 솔직히 처음엔 완전히 강제였다고 해도, ‘두 번 째’는..

“시끄러. 입 닫어.”

맙소사. 그 ‘단서’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직접적인 성관계를 인정한 것도 아니고, 별다른 말도 아니었지만 그 ‘두 번째’라는 말은 나에게 꽤나 큰 자극을 주었다. 

“후우. 직원들 안 나와요. 걱정하지 마세요.”

-암튼, 들어갈거야.

“알았어요, 들어갈 땐 들어가더라도. 이제 우리 어떻게 할까요?”

-뭐? 

“이제 우리 어떻게 하냐구요.”

-뭘 어떻게 해. 

“아, 그러지 말고 좀 솔직해 지세요. 서른다섯이나 먹어놓고 뭘 그렇게.”

-너 입조심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애초에 과장님도 저 강간으로 고소할 생각 없으셨던 거 아니에요?”

-입 닫으라니까. 

“뭐야.. 아니에요? 그 때 출장 가서 끈적하게 놀 때, 저는 나름 확신했는데.”

결국 내가 얻을 수 있는 단서를 모두 얻어내고 말았다. 끈적... 내가 혼자서 했던 그 수많은 나쁜 상상들이 결국,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예전에 신세준의 이야기를 훔쳐들었을 때처럼, 다시 내 몸이 묘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의외로 아내였다.

“몇 가지만 지켜.”

나는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건 아내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인정하는 한 마디였고, 동시에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는 신호탄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내 아내를 강제로 탐했던 신세준을 받아들이는 허락의 한마디였다. 

“우선, 상식적으로 행동할 것.”

-상식적으로 행동해요? 저 원래 상식적인 사람인데.

“상식밖의 행동은 하지 말라는 뜻이야.”

-후우.

“그리고 어떤 기록도 남기지마. 이건 무슨 말인지 알지?”

-음. 제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그거요? 그거라면 진즉에 지웠는데. 

“또, 피임은 확실하게 할 것.”

-에이. 그건 좀. 

“암튼,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모든 건 비밀로 하자? 그거죠?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맙소사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단 말인가. 

“알겠어요. 그것만 지키면, 또 과장님을...”

-조용히 하라니까? 

“큭. 그럼 저도 부탁이 하나 있어요.”

-넌 내게 부탁을 할 입장이 아니야.

“알아요. 그렇게 무리한 부탁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가끔씩 치마나 스타킹도 좀 입어달라는 것뿐이에요. 맨날 바지만 입으시니까, 여러모로 곤란하잖아요.”

-뭐가 곤란해?

“예쁜 몸을 못 보는것도 그렇고, 음.. 또.. ‘쉽게’ 하지도 못하고..”

-시끄러!

“큭.”

아내와 신세준은 그대로 사라졌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막상 진실을 알게 되니, 어쩐지 덤덤하면서도 답답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가만히 있을걸.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회식 잘 하시구요.”

약간 얼굴이 상기된 와이프가 우리 쪽 사람들에게 와서 인사를 건냈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이 을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니, 우리 쪽 사람들이 사색이 되어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젠장. 나는 슬쩍 자리를 옮겨 와이프에게 다가갔다. 

“또 어디가?”

-후우. 피곤한데, 자꾸 2차가자고. 

“응..”

어쩐지 별다른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것보다 처음으로 감정의 변화가 생겼다.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 때문에. 

“먼저 들어가.”

-우리도, 2차 갈 거 같애.

“아 정말? 후우. 우린 근처 노래방 갈 거 같아. 암튼 연락하고.”

-응. 노래방 도착하면 연락해. 

슬쩍 아내를 보냈다. 마침 자리에서 나오는 신세준과 마주쳤다. 그러자 신세준이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속에서 묘한 기분이 샘솟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신세준을 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2차가자 2차가자!!!”

술에 잔뜩 취한 부장이 우리에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주위를 살펴보며 노래방이라는 노래방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일부러 아까 전화를 걸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받은 전화를 통해 -2차가 역시나 노래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차마 무슨 노래방이냐고는 묻지 못했지만. 

 

 

늘러붙는 부장을 멀리하고 그대로 헤어졌다. 빌어먹을. 짐승같은 놈들. 고기값으로 얼마가 깨진거냐. 이걸 와이프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아니지. 그 땐 나도 따지고 들까? 신세준이랑 있었던 일을 다 알고 있다고. 후우. 

나는 네온사인이 불타오르는 노래방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다짜고짜 “혹시 한 시간 전쯤 몇 명의 회사원들 안 들어왔냐고, 일행이라 그런다”는 말도 안 되는 설명을 해봤지만, 역시나 노래방 주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다급해 졌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려고 바지춤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후우. 안받네.”

역시나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거야 원. 역시 무식하게 또 노래방을 찾아야 하나? 나는 또 다른 노래방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판이 조금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노래방을 발견하고 그 쪽으로 다가갔을 때,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나와요. 후우. 알았으니까. 후우. 요령껏. 그러니까, 잠깐 화장실 간다고 하시고 나오시라니까요?”

그건 신세준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거의 반사적으로 숨을 곳을 찾았다. 이거야 원. 

“저도 담배핀다고 잠깐 나왔잖아요. 아 ‘상식’적으로 행동한다니까요? 잠깐만 나와봐요. ‘과장님’도 솔직히 좀 땡기지 않아요? 여기 좋은데 있어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맙소사. 이놈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고 있단 말인가? 나는 멍하니 신세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신세준이 서 있는 곳을 쳐다봤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정말 얼마가지 않아, 누군가가 노래방에서 나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신대리 여기서 뭐해?”

-아, 임대리님. 그냥 바람 좀 쐬려고요. 담배 피시려구요?

“응. 뭐해? 들어가.”

-예. 큭.

그건 아내가 아니었다. 왠 남자였다. 신세준은 머쓱해진 표정으로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뭐라고 해야할까. 

한 시간 쯤 지났을까. 나는 근처 공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망상은 또 쓸데없이 시작되어, 노래방 안에 앉아 있는 신세준과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비어있는 방에 들어가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는 나의 아내와 신세준. 그 불안함에 나는 치를 떨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노래방을 빠져 나오고 있는게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곳에 시선을 꽂아 넣었다. 술에 취해 있는 아내를 누군가 부축하고 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중하니, 그건 어떤 여직원이었다. 나는 가만히 그 사람들이 연기처럼 흩어지길 바라며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3차를 외치는 직원들과 집으로 가려는 아내가 두 갈래로 갈라섰다. 신세준은 뭔가 조금 아쉬운 눈치로 아내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직원들과 헤어지고 아내는 천천히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콜택시를 부를까? 어차피 차편은 끊겼고 집까지 가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잠시 멈칫했다가 나는 전화기를 집어 들고 아내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흠칫 놀라 돌아보니, 저기 멀리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버릇처럼 주위를 살피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를 지나쳐 아내를 뒤좇아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 남자를 따라 걸었다.

“같이 가요.”

신세준이 아내의 곁에 다가갔을 때, 한마디를 건냈다. 이미 약간 취기가 올라 있던 아내가 신세준을 보고 놀랬다가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나는 가로등 바로 뒤에 숨어서 숨을 죽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엔 나와 아내, 그리고 신세준이 있었고, 밤길을 달리는 자동차 몇 대가 우리를 지나치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야? 상식적으로 행동하라고 했지?”

-집에 같이 가는게 비상식적인 행동이에요?

“아까 노래방에서부터 진짜.”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상한 버릇이 생겨 버렸다. 훔쳐듣기. 후우. 

“노래방에서 별 일 없었잖아요? 아까 연락했을 때 나오셨다면 또 모르겠지만.”

-별일이 없어? 아까 직원들 눈치 보이느라. 후우. 다들 네가 왜 그러나 하는 눈치였고.

“큭. 뭐 놀다보면 춤도 추고 그럴 수 있는 거고. 그래도 간만에 과장님 엉덩이에 부비부비 하니까 기분은 좋더라구요.”

엉덩이에 부비부비. 그것도 회사 사람들 있는 앞에서? 이 녀석은 벌써 아내와의 약속을 하나 어겼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행동해라 이 자식아. 후우.

“콜택시 부를게요.”

-혼자 갈게. 따로 타고 가라. 그리고 남편도 지금 회식 끝났을거야. 전화해서 끝났다고 하면 같이 들어가면 돼. 

아내의 말에 흠칫 놀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내는 물론이고 나 역시 깜박 잊고 있었다. 그래도 아내가 나를 완전히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었구나. 씁쓸하면서 묘한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전화기를 붙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아.. 안녕하세요?”

신세준이 나를 보고 어색하게 인사를 건냈다. 나 역시 신세준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어색한 연기 끝에 이곳까지 달려온 참이었다. 아내는 내 옆에 다가와 기대어 섰다. 신세준의 인상이 약간 찌푸려지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오히려 화가 나는건 물론 내 쪽이었다.

“콜택시 불렀어?”

-응. 후. 그래도 다행이네. 당신도 지금 막 회식이 끝나서.

사실 회식은 진즉에 끝났어. 기다리면서 내가 했었던 걸 봤더라면 아주 박장대소할거야, 정말.

“그럼, 신대리는 들어가고. 내일 봐. 남편 올 때 까지 옆에 있어줘서 고맙고.”

그러니까... 음.. 뭐랄까. 굳이 그렇게 해도 안먹힐 연기를 안해도 돼. 억양과 호흡, 그리고 발음. 모든게 어색해서 죽을 지경이니까. 

하지만 것보다, 신세준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역시나 술이 들어가서 수컷의 욕구가 발현되는 것일까? 그런데 재미있는 건 역시나 나란 놈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옆에 있는 아내를 모른 척 하고, 신세준을 바라보며 한 말 이라는게.

“같은 방향이면, 같이 가시죠? 밤도 늦었는데.”

차 안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아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건 질투와 시기, 그리고 증오와 분노라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만들어낸 아주 졸렬한 생각의 결과물이었다. 콜택시 아저씨가 우리에게 왔을 때, 도히려 내가 양해를 구했다. 뻔히 보이는 아내와 신세준의 표정은 애써 무시하고 계속 말을 했다. 그리고 그 결정판은, 내가 먼저 자동차 보조석의 문을 열고 들어가 앉은 것 이었다. 콜택시 밖에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던 아내에게 내가 던진 말이라곤.

“피곤해서. 후우. 당신이랑 세준씨는 뒷좌석에서 편하게 가.”

그거 한마디였다. 고작 이런 것에서 나는 그 어떤 쾌감이나 승리감에 도취될 수 있을까? 아니면 정녕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일까? 아무튼 택시는 말없이 달리기만 했다. 

한참을 달렸을 때, 나는 슬쩍 눈을 감았다. 택시 안에 내려앉은 어색한 침묵이 싫어서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나와 와이프, 그리고 신세준이 한 장소에 모인 최초의 시간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어쩐지 너무 조용하다. 기분이 너무 나쁠 정도로. 

집까지 달리면 30분 정도 걸리겠지. 나는 슬쩍 눈을 감고 백미러로 뒤를 훔쳐봤다. 아내는 눈을 뜨고 바깥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동안을 멍하니 아내만 바라봤다. 후우. 역시 ‘무언갈’ 기대하는 건 애초에 무리였을까. 그렇게 자동차는 말없이 얼마간을 더 달려 나갔다.

운전을 계속하던 택시기사의 낌새가 이상한 걸 눈치챈 건, 자동차가 신호에 맞춰 멈춰섰을 때였다. 내가 잠시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택시 기사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백미러로 자신의 시선을 던졌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기사 몰래 또 다른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아있는 와이프를 쳐다봤다.

‘잠든건가?’

와이프가 어느새 잠들어서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는 뭘 그렇게 훔쳐보고 있었던 거지? 조금 답답했지만, 나는 최대한 주의하면서 아내를 살폈다. 아내는 여전히 눈을 꼬옥 감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아내가 눈을 뜨고는 –아마도 신세준이 앉아있을- 옆을 쳐다봤다. 괜히 놀란 내가 기사 쪽을 훔쳐보자, 기사 역시 놀랬는지 서둘러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몸에 약간의 진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내를 살폈을 때, 아내는 여전히 신세준을 바라보며 인상을 구겨넣고 있었다. 무슨 실랑이 같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뭘 하는거지?’

나는 실눈을 뜨고 계속해서 아내를 바라봤다. 그러자 왠 손이 아내의 어깨 위로 살짝 올라가는가 싶더니, 아내가 반항할 틈도 없이 다른 한 손이 그대로 아내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백미러로 정확히 볼 수 없는 것으로 보아, 그건 가슴이나 어깨가 아니었다. 훨씬 밑이었다. 아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대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제야 나를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모든 게 꿈이겠지? 감았던 눈을 뜨면, 결국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있겠지?

“다 왔습니다.”

나를 현실로 잡아 이끈 건, 그러니까 나의 눈을 뜨게 만든 건, 택시기사 아저씨였다. 나는 어색하게 일어나며 슬쩍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아내와 신세준이 가운데에 휑한 여백을 만들어 놓고, 각각의 창가 쪽으로 바싹 다가가 앉아 있는게 보였다. 나는 서둘러 택시기사에게 얼마를 쥐어주고 택시에서 내렸다. 심장이 쿵쾅 거린다. 아까 본 건 역시나 꿈이었을까?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신세준이 나를 보고 말했다. 감사하다.... 인가? 심장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전에 아내가 받았던 문자 메시지가 오버랩됐다. 수고하고 감사하다라. 뭐지? 이 기분은?

 

 

신세준을 보내고 나와 아내는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 아니 그 모습을 누가 봤더라면, 그건 차라리 내가 아내를 강제로 이끌고 집으로 들어가는 형상에 가까웠을 것이다. 내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리고 있었고 머릿속엔 아내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한 번.. 한 번 할 수 있을까?”

얼굴이 벌개진 내가 침대위에 아내를 앉히고 한 말이라곤, 고작 저게 전부였다. 아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살짝 난색을 표했다. 그러면서 피곤하다, 술을 마시지 않았느냐, 샤워부터 하고 싶다는 말을 쏟아냈다. 예전 같았으면 그대로 물러섰을 텐데,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본 나는 더 이상 아내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그냥 느낌이지만, 지금 이대로 아내를 안아도 결국 아내는 나를 받아들일 것 만 같다는 그런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로 아내의 목덜미를 빨았다. 그리고 정신없이 아내의 옷을 잡아 벗겨냈다. 아내는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말없이 침대위에 누웠다. 맙소사. 물건이 잔득 발기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아내의 옷가지를 벗기는둥 마는둥 하다가, 결국 바지는 무릎쪽에, 그리고 스웨터와 브레지어는 목덜미에 댕강 걸어놓았다. 그리고 아내의 젖가슴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꼭 확인해 보고 싶은’ 은밀한 그 곳에 나의 두 손을 집어넣었다. 역시나. 젖어있다. 아내의 그곳이. 

나 역시 옷을 완벽하게 벗지 않고 별다른 애무없이 그대로 아내의 은밀한 부분으로 들어갔다. 땀냄새 고기냄새, 그리고 아내가 즐겨쓰는 향수가 한데 버무러져 묘한 체취를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그건 그거대로 묘한 흥분감을 자아냈다. -아내의 성격상- 이런 섹스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극적인 건, 아내의 그곳이 정말 흠뻑 젖어있었다는 점이었다. 신세준이 무얼 했을까? 하지만 그런 잡념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시간은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정말 거짓말처럼 얼마 가지 않아 사정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윽...”

별다른 애무도 없이, 그렇다고 별다른 체위의 변화도 없이, 나는 그대로 아내의 그곳에 나의 흔적들을 흩뿌렸다. 귀두를 통해 나의 저릿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나는 아내의 목덜미와 젖가슴을 핥았다. 그리고 더 이상 내 물건에서 어떠한 흔적도 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계속해서 아내의 그곳을 나의 물건으로 자극했다. 그건 다분히 본능적인 행위였다. 

큰 침대위에 나는 나의 물건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아내는 나와의 섹스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일어나는가 싶더니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결국 샤워를 하는건가? 후우. 

사정을 마치고 나는 나른한 기운을 느끼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아까 신세준과 아내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곱씹어 봤다. 그 몇 가지 조건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내가 남편인 나에게까지 비밀로 하려 하다니. 그건 어쩐지 정말 괘씸하게 느껴졌다. 나는 자신을 믿고 끝까지 기다려 주기로 마음먹은 사람인데, 이건 정말 배신이라고 해도 좋지 않은가? 그리고 아내의 몸속에 나의 흔적을 뿌려대고 나니, ‘그 놈’도 나처럼 아내의 몸에 사정을 울컥하고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곤란한 것 아닌가?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아내가 그 놈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피임은 확실하게 해 줘’

피임이라. 후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쪽의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니지. 혹시 그것이, 그 날 출장에 가서 섹스를 나누고 별다른 피임을 하지 않았기에, 나온 경고라면? 만약에 그렇다면... 후우. 아 모르겠다. 또 머리가 아프다. 

샤워를 마친 아내가 얼마 후에 들어왔다. 여전히 물건을 가리지 않고 침대위에 누워있는 나를 흘끔 바라봤다. 아내는 조금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내 곁에 다가와 누웠다. 고기냄새와 향수냄새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아내를 슬쩍 안을까 하다가, 나는 먹먹하게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있잖아. 하나 물어봐도 돼?”

-.... 내가 대답할 수 있는거면.

말투가 조금 덤덤하게 느껴졌다. 술이 이렇게 빨리 깬단 말인가? 암튼,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 아내에게 ‘요즘 왜 이렇게 섹스에 대담해졌어?’ 라는 말을 하려다, 그걸 조금 돌려서 물었다. 그러자 아내가 조금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머리를 말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별 이유가 있을까? 갑자기, 하고 싶어져서.”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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