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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오빠의 노예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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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400 회 작성일 24-04-09 17:4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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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 부탁드립니다.”


“난 커피.”


비서가 나가자 안 회장은 아들의 표정을 꼼꼼히 살폈다. 

여유로워 보이는 차림새와는 달리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아들의 모습이 마치 보육원에서 처음 데려왔던 날 같았다.


무슨 일이지?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구나.”


속을 잘 안 보이는 아들이 이 정도로 표를 낼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니었다.


“네.”


긍정은 했지만 바로 풀어 놓지는 않는 아들을 보니 안 회장은 긴장했다.


“왜 이렇게 뜸을 들이니? 얼마나 엄청난 이야기를 하려고? 혹시 전 여친 중에 내 손자라도 생겼니?”


이 정도 되니 안 회장이 생각하는 큰일은 여기까지였다. 남편이 이 아이 이야기를 처음 꺼내기 전에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표정이었다. 


결혼 전 교제했던 여자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너무 충격받고 상처받아서 믿고 싶지 않아서 한동안 말도 안 했다. 대화를 섞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 엄마가 태어나자마자 버린 아이라 자신마저 버릴 수 없다고 혼자 책임져야 한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으니 겁이 났다. 


남편의 과거 때문에 상처받았지만 그래도 그를 잃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였던 아이를 사랑하는 건 힘들었다. 아무리 그냥 아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남편과 다른 여자와 관계했던 증거물은 틀림없었으니까. 


지금도 이 아이를 사랑하는 건지 정이 든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분명한 건 친아들 같은 맹목적인 사랑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가장 힘들 때 곁을 지켜 준 아이라 동지애 비슷한 감정도 있었다. 


남편이 그렇게 떠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가까워지기 힘든 사이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 어린 나이에도 상황 판단이 빨랐던 태욱이 이렇게 무겁게 이야기를 꺼낼 이야기라면 그 정도 수준까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원하지 않는 여자가 아이를 가졌다면 상당히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태욱도 안 회장의 말속에 묵은 상처가 드러난 걸 눈치챘을 것이다. 방금 전보다 더 경직된 아들의 표정을 보니 틀림없었다. 


안 회장은 묵묵히 기다릴 걸 하고 후회했다. 괜히 그녀뿐만 아니라 태욱의 약점까지 건드렸던 것이다. 

태욱이 자신의 태생을 얼마나 죄스러워하는지 잘 알면서 지금껏 그 죄책감을 덮어 주려고 그렇게 의연한 척했으면서 경솔한 말 때문에 다 그르쳤다.


“미안하다. 네가 너무 심각해 보여서 실언이 나왔어.”


“어머니.”


왜 이렇게 무겁게 부르는지.


“응, 그래 말해 봐.”


안 회장은 태욱의 바짝 당겨진 날렵한 턱을 주시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게 의지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감상적인 말로 서두를 꺼내는 거지?


안 회장은 딱딱한 법조인에 실리주의인 아들답지 않은 언행에 의아했다.


“그건 맞아. 너와 이렇게 내가 모자지간이 된 것도 그렇고. 우리도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


“어머니께서 원했던 아들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저라도 어머니 입장이었다면 그랬을 겁니다. 예전에는 어머니 상처를 짐작만 했지만 이제는 그 상처의 깊이도 알 것 같아 더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저는 효자는 못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아들이 되고 싶은 의지는 강했습니다.”


어, 점점 왜 이렇게 서두가 길어? 본론이 얼마나 충격적인 이야기길래?


그녀의 사업적으로 접한 사람들과의 경험과 사적인 경험을 다 통틀어 오는 오는 촉은 그랬다.


“넌 좋은 아들이야. 난 네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사실이었다. 주변에서 그녀의 아들을 사윗감으로 얼마나 탐내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아들의 사생활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거절하면서 목에 힘을 주었던 것이다. 태욱은 지금까지 그랬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놈입니다. 제가 얼마나 이기적인 놈인지 알면 저를 가차 없이 내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회장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듯 양팔을 낀 채 소파에 등을 기댔다. 왠지 불길한 예감에 거리를 둬야 할 것 같았다.


“음, 지금 스무고개라도 하는 거니? 넌 확실히 내 아들이야. 알게 모르게 이 어미를 닮으니 말이다. 자, 아들아 이제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니? 말해 봐.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불효를 저질렀기에 이렇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거니?”


그때 비서가 생수와 커피를 가져왔다. 


비서가 나가기를 기다렸다 태욱이 생수병을 집어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 모습에 안 회장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저렇게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초조해 보이는 태욱은 정말 낯설었다. 


안 회장은 커피 잔을 들려다 그만뒀다. 이럴 때 뜨거운 건 멀리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정말 아들의 입에서 나올 폭탄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안 회장은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쯤 마신 생수를 탁자위에 내려놓은 아들이 말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아들이 어떤 잘못을 했다고 해도 이 어미는 다 수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다.


“어머니는 관습과 법 중 어느 규칙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십니까?”


안 회장은 뜻밖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한 채 눈을 가늘게 떴다. 


그냥 상식적인 질문이었다면 아마 법이라고 바로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태욱의 질문은 함정 같았다. 말을 일단 뱉어내고 나면 후회할 게 뻔했다. 신중해야 할 때였다.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어떤 상황인데?”


이제 오히려 침착함을 찾은 태욱에 비해 안 회장은 숨이 막혔다. 점점 목이 조여 오는 것처럼 목소리도 갈라졌다. 가슴을 짓누르는 불길한 예감이 안 회장의 심장을 죄여 왔다.


“입양 말입니다. 영아도 저도 입양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법적으로 남매는 아닙니다.”


안 회장은 긴장된 목을 어루만지며 잔뜩 굳은 어깨를 돌렸다. 애써 아무 일도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거리며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얼굴 근육이 겨울바람에 언 빨래처럼 굳어졌다.


“너 그거 아니지? 아닐 거야. 내 아들이 내 딸이 그럴 리가 없지. 게다가 영아는 결혼할 사람도 있는데. 안 그래?”


안 회장은 차마 짐작을 말로 뱉어낼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위장 약혼을 한 겁니다. 우리 둘 다 마음을 접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기를 써도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안 회장은 차마 태욱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나서 창가로 갔다. 등을 돌린 채 심호흡을 했지만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런 기분 평생 다시는 안 느끼고 싶었다. 배신감 말이다. 물론 이 아이가 불륜으로 태어난 존재는 아니었지만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던 안 회장 입장에서는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여자 사이에 낳은 아이는 그와 비슷한 강도로 상처가 되었다. 겹겹이 묻어 두었던 상처가 어제 일처럼 떠올라서 현재와 함께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니, 사과하지 마. 사과할 짓은 하지 말라는 게 내 원칙이다.”


“저도 마음 붙일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허탈하고 죽도록 도망쳐도 제 마음은 향한 곳은 오직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안 회장이 주먹을 꽉 쥐자 손톱이 손바닥을 팰 정도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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