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노예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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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잖아. 네가 다른 놈하고 같이 사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둘 다 지옥불 속에 빠지는 게 덜 아플 것 같다면? 내가 너무 나쁜 놈인가?”
태욱의 격한 어조에 그녀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아프다고요?”
그 말은 단지 육체적인 의미가 아니라 마음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그녀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바보니까.
1년 전부터 현명해지려고 악마 같은 그의 마수로부터 벗어나려고 기를 썼는데 아팠다는 말에 다시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영아는 너무나도 잘 길든 마태욱의 노예니까.
“안 아플 거라고 생각했어? 넌 날 고통스럽게 하려고 기를 쓰는 중이잖아. 내가 얼마나 아픈지 자각하도록 끊임없이 찔러대면서 몰랐다는 듯 순진한 그 얼굴을 뭐야? 도대체 무슨 게임을 하는 거야?”
게임?
그녀는 몰랐다. 그가 말하기 전까지 자신이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쩌면 결별 선언을 하고도 그가 매달려 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받아들여 주니까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그제야 그의 전 여친이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공감이 갔던 것이다.
그는 결코 먼저 버리지 않는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그에게 필요한 여자는 익숙하고 편리하면 그뿐이니까.
절실함도, 사랑도, 미련도 그에게도 없다고.
그런데 그가 다시 그녀에게 찾아왔다.
끝난 사이는 결코 다시 관계하지 않는 그가 말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왜 뭔가 기대하게 하는 걸까? 이 미친 짓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피가 들끓는 걸까?
“오빠를 괴롭히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이게 게임인지는 몰랐네요. 난 게임 할 줄 모르니까.”
그가 그녀의 뾰족한 턱을 들어 올려 눈을 가늘게 떴다.
“틀렸어. 넌 게임을 잘해. 그것도 아주 사악하게.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의 손이 닿은 턱에 열기가 모여 다시 그녀의 몸이 데워졌다.
그 훈기가 무서웠다.
친밀한 사랑으로 착각하기 딱 좋은 체온은 그녀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었다.
다시 그의 노예가 되고 싶어 안달하게 말이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내리며 얼른 손을 뗐다.
“오빠는 날 미치게 해요.”
영아가 그를 노려보며 원망조로 소리쳤다.
“잘됐군. 너도 내 안에 미처 몰랐던 광기를 불러일으키니까. 미치지 않으려고 내가 얼마나 기를 썼는지 알아?”
그의 목소리는 격앙된 그녀의 음색과는 대조적으로 너무나 낮아 더 거칠게 느껴졌다.
“얼마나 기를 썼는데요?”
그의 검은 눈동자는 짙은 그늘로 덮였다.
그녀의 뱃속이 조여들었다.
이럴 때 그는 반갑지 않은 말을 했다.
듣기 싫은데 또 듣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대답을 그녀는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여자를 찾았지.”
그녀는 폐 속에 공기가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다 알면서도 그의 입으로 들으니 그 강도가 너무 셌다.
끓어오르는 질투심이 독이 되어 심장 깊숙한 곳에 퍼졌다.
그녀는 벌떡 일어났지만 그가 손목을 잡아당겨 무력하게 주저앉아서 그를 노려봤다.
“오빠는 그래 놓고 내가 다른 남자한테 가는 건 못 견딘다고요? 정말 남성 우월주의에 이기적이고…….”
“아니, 난 그저 남자일 뿐이야. 너한테 손을 대지 않으려고 내 안에 짐승을 죽이는 방법을 찾아야 했으니까.”
순간 팔팔 끓어오르던 분노가 차가워졌다.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으니까. 공감하니 맥이 빠졌다.
“알겠어요.”
“알아?”
“네, 나도 해봤으니까.”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언제?”
“작년 마지막 날…….”
말을 하다 보니 진후와 1년 됐다는 말이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 속의 활활 타오르는 분노는 거짓말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손을 떨쳐 버리려고 했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 단단히 옥죄었다.
그의 거친 숨결 소리가 그녀의 호흡마저 삼킬 기세였다.
“허세가 아니었어.”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바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사실대로 다 말해 버리면 방어벽이 다 없어질 테고, 그렇다고 목적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거짓으로 치장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불편했다. 그와 끝내지도 못할 거면 차라리 솔직해야 했다.
“반쯤은 그래요.”
“말장난은 집어치워. 이제 게임 종료야. 자, 말해. 어디까지가 진실이야?”
그가 그녀의 두개골을 부숴 버릴 것처럼 웨이브 진 숱 많은 단발머리에 손을 찔러 넣고 고개를 치켜올렸다.
그의 활활 타오르는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집어삼킬 듯 눈앞에 가득 채워졌다.
영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지만 그는 이마를 붙인 채 시선을 돌리지도 못하게 단단히 가두었다.
맹수한테 쫓기는 초식 동물같이 영아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그의 거친 숨결만큼 그녀의 숨결도 가빠졌다.
“우린 둘 다 위안이 필요했어요. 진후 씨는 결혼한 전 여친의 유혹으로부터 이겨내야 했고, 나도 비정상적인 관계의 고리를 끊어내야 했으니까.”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지. 안 그래?”
그가 그녀의 치마 속에 손을 넣어 모멸감이 느껴지도록 애액과 정액이 뒤얽힌 구멍을 훑었다.
그녀가 질 속이 얼마나 그를 환영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 안의 주인이니까. 그가 원하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고 사정할 수 있고, 긁어댈 수 있는.
“하아, 그만, 그만해요.”
움찔거리며 그의 손을 집어삼킬 듯이 욱신거리는 여성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그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늘 그렇듯이.
“뭘 그만하라고. 우린 멈출 수 없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만이지. 너도 이제 처절히 깨달았을 거야.”
그랬다. 부정할 수 없었다. 비참하도록 깨달았다.
그것도 단번에. 그런데 그의 당연하다는 듯 잘난 척하는 태도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가 이 순간 너무 미웠다.
“안 멈추면 어디까지 갈 생각인 거죠? 아, 오빠는 보통 3년을 선호하죠. 유진 언니와도 3년이었던가요? 그전에도 3년이라고 들었는데 우리도 3년. 횟수로는 4년이지만 뭐 1년의 공백기는 빼야 하니까. 그럼 다시 시작하면 오늘부터 3년?”
그녀의 비아냥거림에 그가 질 속에서 손을 뺐다. 그의 눈자위가 꿈틀거렸다.
“1년 전에 유진이를 만났어?”
그는 단정하듯 물었다. 그는 어조만 봐도 단서를 찾아내는 유능한 변호사니까.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