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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오빠의 노예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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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775 회 작성일 24-04-09 06: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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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영아가 다녀갔다. 근데 누구를 데려왔는지 아니?”


안 회장은 아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수수께끼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외아들인 마태욱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안 회장의 전남편이자 태욱의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아들은 속을 더 알기 힘들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돌연사로 잃었던 탓에 태욱은 장례식 내내 줄곧 멍한 상태로 울지도 않았다. 


그런 아들과는 대조적으로 일찍이 무너져 내린 안 회장은 꿋꿋이 견뎌준 아들한테 의지했다. 

겨우 열일곱 살밖에 안 된 아들은 그러고 훌쩍 자라 버렸다.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안 회장은 그런 아들한테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버팀목이 되어 줘야 했는데 오히려 보살핌을 받았으니 어쩔 수 없이 가장이 되어야 했던 아들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 아들한테 큰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엄마 역할을 잘 못 했던 그녀가 아들한테 받기만 했으니 말이다.


“친구라도 데려왔습니까?”


“스무고개 하지 말고 그냥 말해. 남자 친구, 아니지 신랑감이지. 곧 결혼할 사이라고 하니까.”


안 회장의 남편인 수한이 바로 말해 버리자 여사는 김빠졌다는 듯 곱게 노려보다 웃고 말았다. 

하지만 아들의 표정이 굳어 있어서 얼른 웃음을 지워 버렸다. 


아들은 유난히 영아를 챙기는 편이었다. 그러니 동생한테 남자가 생겼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당연했다. 


하긴 영아는 지금껏 아들의 과보호 속에 남자 친구 하나 없이 모태솔로로 지냈다. 

1년 전, 아들의 감시망에서 드디어 벗어난 영아가 남자를 사귄 것이다. 

게다가 결혼까지 한다니 각별히 아꼈던 오빠로서 흔쾌히 받아들이기 힘들게 분명했다.



“넌 몰랐나 보구나. 첫눈에 반해서 1년이나 교제했다는데 너한테도 비밀로 했네. 하긴, 워낙 네가 단속을 하니 어느 정도 깊어질 때까지 비밀로 했던 게지.”


안 회장이라도 그랬겠다 싶었다. 


아들은 법조인이었던 전남편을 닮아서 말수는 적었지만 책임감이 강했다. 

특히나 여동생에 관한 한 보호 본능이 지나쳤지만 어릴 때는 묵묵히 따랐던 영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달했다 싶은지 오빠한테서 벗어나려고 기를 썼다. 

그 여파로 초등학교 교사가 되자 부산으로 떠나 버렸다. 

그 중요한 일을 사전에 의논 없이 통보식으로 전했던 영아였다. 


태욱은 소식을 듣자마자 열 일을 제치고 부산으로 달려갔다. 

대형 로펌 대표로서 일 중독자인 태욱이 출장 일정까지 조절할 정도였다. 


영아의 도발이 미친 영향력은 엄청났던 것이다. 

그게 작년인데 급기야 결혼까지 마음대로 한다니 태욱이 어떻게 나올지 안 회장은 흥미진진했다. 

평소 침착하기 이를 데 없는 아들을 이렇게 흔들어 놓는 재주가 있는 영아가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던 것이다. 


부친을 잃고 난 후, 뭘 해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무덤덤한 태욱을 사람답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가 영아였다. 

태욱이 손목시계를 보더니 차려 놓은 식사도 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설마 지금 부산으로 갈 건 아니겠지? 여독도 풀리지 않았는데 푹 자고 내일 가렴. 그리고 이제 영아한테 가려면 꼭 연락하고 가. 집에 없을 수도 있고, 혼자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이제 태욱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아무리 여동생이 각별해도 짝이 있으면 조심을 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아들이 교제한 여자를 영 모른다는 건 아니었다. 

굳이 아들이 소개해 주지 않아도 여자 쪽에서 티를 내니 알아차리는 법이니까. 


사실 태욱의 사생활이 그렇게 화려한 건 아니었다. 

교제하면 오래갔지만 깊은 애정도, 그렇다고 미래를 약속해 주지도 않으니 다 지쳐서 떠나 버렸다. 

그마저도 이제 시들한지 지난 4년 동안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안 회장은 일만 하고 사생활이 없는 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영아가 먼저 결혼하면 자극받아서라도 당장 결혼까지는 안 바라도 연애라도 했으면 싶었다. 

혈기 왕성한 나이에 왜 저렇게 재미없게 사는지 정말이지 마음대로 된다면 여자라도 소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생활 참견이라도 했다가는 아들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아니 꾹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들리는 성마른 태욱의 한숨 소리는 귀를 의심하게 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감정 통제에 뛰어나고 표현을 잘하지 않는 태욱은 숨소리조차 통제하는 아이였다. 

그만큼 영아의 결혼 소식이 태욱의 신경을 긁었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니, 영아가 염려되는 안 회장이었다. 


안 회장과 사 작가가 재혼한 10년 전부터 여동생이 된 영아는 태욱의 지나친 단속에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 

그러니 태욱의 눈에서 벗어나니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까지 진행된 영아였다. 

그 사실이 못마땅해서 제 눈으로 상대 남자를 확인하는 데 지체할 수 없는 태욱의 모습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행여나 태욱이 결혼을 반대한다면 영아는 깊이 상처받을 것이다.

아무리 맞선다고 해도 결국은 태욱을 상대하는 건 달걀로 바위 치기일 게 분명했다.


“우리 눈에는 두 사람 잘 어울리던데. 남자가 악의 없어 보이는 게 영아를 많이 아껴 주는 모습이 마음에 들더구나. 그러니 태욱이 너도 웬만하면 잘 봐줘.”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라 사 작가도 나섰다. 

아무래도 이대로 영아를 만나면 태욱이 순순하게 허락해 줄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물론 이렇게 편든다고 태욱의 고집을 꺾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야 했다. 

그만큼 지금 태욱의 기분 상태가 상당히 위험하게 보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안 회장도 괜히 자극하지 말걸 그랬다 싶었다.


“저는 보이는 대로 평가할 겁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더 이상 대화할 시간도 없다는 듯 찌푸린 얼굴로 손목시계를 본 태욱은 그대로 나가 버렸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안 회장과 사 작가는 동시에 한숨을 푹 쉬었다.


“태욱이 입장에서는 영아가 사고를 쳐도 단단히 친 거지. 연애하는지도 몰랐는데 결혼한다니, 그것도 태욱이 출장 간 사이에 우리를 통해서 통보한 거니까. 태욱이 순순히 인정해 줄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야.”


사 작가가 아들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편들었다. 


물론 안 회장도 태욱이 배신감마저 느낄 거라고 짐작하는 바였다. 하지만 이제 성인을 넘어서 독립까지 한 딸아이 입장도 살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영아의 인생이었고, 지나친 오빠의 간섭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그 때문에 사랑을 잃는다면 아무리 하나밖에 없는 오빠라고 해도 영아가 순순히 따를 수는 없으니까. 


그 마음을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없는 태욱이 이해할 거라고 안 회장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아도 만만치 않아 보여요. 태욱이도 동생이 자기 인생을 당당히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텐데요. 마냥 어릴 때처럼 오빠를 우상처럼 따르던 여동생만 보고 싶어 한다면 현실 부정인 거죠. 이번에 보니 영아가 훌쩍 자란 것 같던데 슬기롭게 잘 설득할 거라고 믿어요.”


그랬다. 영아는 놀라우리만큼 단단해졌다. 

그러니 태욱도 작고 여리다고 마냥 어린애로 보다가는 큰코다칠 것이다. 

벌써, 이번 결혼 발표로 한 대 얻은 맞은 기분일 테니 말이다. 


어쨌든 아들이 일 말고 다른 곳에 신경을 돌리는 건 좋았다. 

그래도 감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고, 그 연장선으로 제대로 된 짝을 만나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까.


안 회장은 아직도 전남편과의 열렬했던 연애 시절이 그리웠다. 

당시 전남편은 불혹을 앞두고 있었지만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안 회장한테 첫눈에 반해서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호텔 후계자 경영 수업 중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안 회장의 혼을 쏙 빼놓았던 전남편은 결혼도 일사천리로 해치워 버렸다. 


오직 가슴만 따랐던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결혼 생활 내내 마냥 행복했던 건 아니었다. 

위기도 있었고, 상처도 받았지만 굳건한 사랑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 


두 번째 결혼은 그에 반해 잔잔한 사랑이었다. 

교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신앙으로 우정을 키웠고, 안 회장이 혼자된 후 사랑으로 바뀐 것이다. 


출산 중에 아내를 잃고 아이만 겨우 살렸던 수한 또한 더 이상 불같은 사랑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외로움은 추억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한계였다. 

우정으로 위안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고, 그게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같이 살고 싶었다. 

합법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그때 영아의 나이는 열다섯이었고, 태욱은 스물다섯이었다.

아이들이 반대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별다른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었다. 


그건 지금도 아이들한테 고마웠다. 

둘 중 한 명이라도 반대했다면 다시 가족을 이룰 용기를 내지 못했을 테니까. 


그만큼 두 사람에게 아이들은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나도 믿어. 우리 아들도 딸도 좋은 아이들이니까. 이제 서로 좋은 짝 만나서 화목하게 외롭지 않게 오순도순 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는데. 영아는 이제 만났으니 태욱이 짝도 찾아야 할 텐데.”


안 회장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봐도 지금은 희망이 안 보였다. 

여동생한테 신경 쓰는 반의반이라도 연애하는 데 관심을 보여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이건 그저 연애에 시들해진 게 아니라 4년 전에 깊은 상처라도 받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상처에 새살이 돋듯 연애할 마음이 들 만도 한데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할 따름이었다. 

대놓고 물으려고 해도 대답해 줄 리 만무하니 아예 입도 떼지 않는 게 나았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는 아들에 반해 그래도 사근사근한 딸이라도 있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정말이지 재혼을 안 했으면 얼마나 외로웠을지 생각할수록 이런 남편과 딸을 얻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래도 아들을 향한 믿음만큼은 굳건했다. 


안 회장은 아직도 남편을 잃은 후 아들이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보살폈는지 잊지 않았다. 

그 후 서먹했던 안 회장의 마음이 아들을 향해 열렸던 계기가 되었으니까. 


큰 슬픔을 통해 두 사람은 유대감을 쌓았고 안 회장은 비록 남편은 잃었지만 아들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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