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앞에만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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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앞에만 서면,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그 울렁거림이 겉으로 드러나,
혹시 그녀가 눈치를 채면 어쩌나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녀 앞에만 서면,
나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내 딴에는 말 꽤나 한다고 우쭐대오던 터에,
그렇게 말문이 막히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녀 앞에만 서면,
나는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그녀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에 나오는 공주였고,
나는 일곱 난장이 중 한 난장이였습니다.
그녀 앞에만 서면,
나는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낯이 두껍기로 동네에서 소문깨나 난 내가,
그렇게 얼굴이 화끈거리니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녀 앞에만 서면,
나는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 싶었습니다.
입술은 언감생심 생각조차 할 수 없더라도,
뺨이나 이마 같은 데에 입술을 갖다 대고 싶었습니다.
그 무렵,
그녀는 일곱 살이었습니다.
나도 일곱 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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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무척 예뻤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김창숙 누나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의 그러한 미인관(美人觀)이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김창숙 누나 보다 더 예뻤던 것입니다.
그녀는 나이답지 않게 쌀쌀맞았습니다.
동네의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다 동네 아이들이 말을 걸면,
‘싫어.’라고 외마디로 말하든가, 고개를 가로로 젓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래도 나에게는 좀 나은 편이었습니다.
‘싫어.’라는 외마디에 몇 마디를 덧붙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싫어. 나 그런 거 못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동네 또래들 사이에는 그녀와 나에 대한 말이 많았습니다.
동네 담벼락에 ‘철호와 송이는 연애한다.’라는 투의 낙서가 심심찮게 써졌고,
심지어, ‘철호랑 송이는 XXX 했대요.’라는 낙서도 써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낙서들이 싫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어려웠습니다.
그녀 앞에만 서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내가 작아지는 것 같은 같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등은 여전했습니다.
그녀와 내가 각기 다른 유치원에 다녔던 것은 큰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같은 유치원에 다녔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그녀의‘가방 모찌’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방 모찌’가 뭣인지 아시죠?
자기가 모시는 분의 가방을 들고 그 분의 뒤를 쫄쫄 따라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전(前) 전(全)대통령의 영부인 이순자가
한때 큰손 장영자의 ‘가방 모찌’였다고 해서 5공 시절에 유행
했던 말입니다.―
내가 그녀의 ‘가방 모찌’가 되는 것 ―
그건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니, 즐거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녀와 내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게 되고,
그럼으로써 내가 그녀의 ‘가방 모찌’가 된다고 했을 때,
동네 아이들의 손가락질은 어떻게 견디며,
엄마가‘어휴! 바보같이 …’하며 먹일 꿀밤을 생각하면
같은 유치원에 다니지 않은 것이 다행스런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는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때는 ‘가방 모찌’를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노 코멘트’입니다.
아무튼,
같은 학교에 다닌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입학식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했습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무렵에는 입학식 다음날 신입생 전체를 운동장에 모아 놓고
교감 선생님이 학교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대학교에서 말하자면 ‘오리엔테이션’인 셈입니다.
그 오리엔테이션에는
학부형들이 신입생 무리 뒤에서 혹은 옆에서 지켜보았으며,
교감선생님께서는 어린 신입생들이 지루해 할까봐
교단으로 불러내어 노래를 시키곤 했습니다.
사단은 바로 그 입학식 다음 날에 일어났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 나의 엄마도 그녀의 엄마도 참석했었음은 물론입니다.
교감선생님은 이런저런 학교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다가
신입생들에게 노래를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교감선생님이 ‘노래 부를 어린이는 손들어 보세요.’하면
신입생 무리에서는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하며 손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면 교감선생님이 손 든 어린이 중에서 지명을 했고,
지명된 어린이는 높은 교단에 올라가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모두 동요였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는,
유치원에서 배웠던 ‘아빠 곰 엄마 곰 …’하는 노래라든가,
‘꼬부랑 할머니가 …’로 시작하는 노래 등을 불렀고,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까 곧 배울 ‘똑 같아요’라든가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몇 몇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 오빠들이 부르는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로 시작하는 노래라든가,
‘고향땅이 여기서 몇 리나 되나 …’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부르는 그런 노래를 듣기만 했지,
교감 선생님이 ‘노래 부를 어린이 손들어 봐요.’했을 때,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좀 창피했습니다.
엄마가 나를 얼마나 찌질 했으면 노래 부르겠다고,
손 한번 못들 까 생각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정작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은 그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녀가 나를 ‘용기 없고 못난 아이’로 여길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노래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교감선생님이,
“또 노래 부를 어린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그러는 것입니다.
나는 손을 벌떡 들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이었겠습니까?
교감 선생님이 나를 향하여 손가락을 뻗치면서
“거기 노란 점퍼 입은 어린이.”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꼼짝없이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교단에 올라 마이크를 손에 잡은 나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무슨 노래를 부를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곡목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학부형 속에 섞여있는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덤덤한 표정이었습니다.
아이들 무리 속에 앉아있는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역시 덤덤한 표정이었습니다.
내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당~ 신과 나아 ♪ 사이에 ♪♩ 저 바다가 어업었다면 ♬ ♪
쓰으라린 ♬♩이별만~ 은 ♩ 어업었을 거어엇을 ♪♬
해에 저문 ♬ 부우 두에서 떠어나가는 연락선을 ♪♩
학부형의 무리에서 폭소가 터졌습니다.
나는 엄마를 바라 봤습니다.
엄마는 두 손을 가로로 몇 번이나 내젓다가 위로 아래로 내저었습니다.
노래 그만 부르고 교단에서 내려오라는 손 신호였던 것입니다.
나는 그러는 엄마에게서 시선을 뗐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그녀에게로 가져갔습니다.
그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못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