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했던 여친(?)-3 -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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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이야기는 죄송하지만 야하진 않습니다.
헤어진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유야 너무나 뻔한 "성격차이"였습니다.
누구나 다들 헤어질때 쓰는 표현이지요.
2번째 편에서 말했듯이, 여친의 성격이 굉장히 감수성이 풍부했습니다. 이게 장점이기도 했죠.
하지만 밤만되면 우울해 하는 여자와 사귄다는 건 실제로는 굉장히 스트레스입니다.
이유도 없이 무작정 달콤한 말로 달래줘야 하는데, 그것도 한두번이지 매일밤마다 달래주기는 조금 벅찼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과 사귄다는 것은 스킨쉽과 진도빼는게 전부가 아니더군요.
만나서 부둥켜 안고 있을때야 분명 뿌듯하고 기분이 좋지만..
안만나고 있을때는 대부분 문자와 통화로 상대방의 우울함을 해소시켜주는데만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저도 괜히 우울함이 전염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친구가 조금 성격이 많이 어립니다.
집에서 곱게 자란 공주님이라서 세상물정도 좀 많이 모르고, 안해본것도 많았습니다.
사회성이 굉장히 부족해서, 누구나 다 아는 농담이나 장난들을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상처받는 성격이었지요.
그럼 또 우울해지고, 저는 달래주고.
제가 가끔 장난치면, 그거에도 또 충격받습니다.
어느정도인지 예를 들자면,,
제가 장난으로 "우와. 바보구만. 바보." 머 이런 정도의 가벼운 농담에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뚝 멈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봅니다.
"이거... 장난 맞죠..?"
...이 정도였습니다. 정말 장난인지, 제가 진심으로 그녀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는건지 고민하는 거지요.
머리는 굉장히 좋은데, 기본적인 눈치가 결여되어 있는거지요.
게다가 머리가 좋다는 말은 뭐냐면, 암기력이 장난이 아닙니다.
공부도 잘하고, 한번 본 건 거의 외웁니다.
그래서 가끔 제가 생각없이 했던 말들을 전부 기억해뒀다가 밤이 되면 곱씹으면서 또 우울해하죠.
물론... 제가 말빨로 잘 둘러대면서 달콤한 말로 포장하면 또 우울한 건 풀리고 또 전화기 저 너머에서는 굉장히 저에게 감동을 하거나 기분이 날아갈려고 합니다. 그럼 또 관계는 더욱 발전하고...
하지만 이런 똑같은 패턴이 매일 반복되다보니 저도 결국 지쳐버린 겁니다.
결국 점점 소홀히 대하게 되고(물론 심하게는 아닙니다.)
또 그 조그만 변화를 이 감수성 풍부하고 머리좋은 여친님은 미묘한 부분이 달라진 걸 포착해서 우울해하고..
결국 진도는 다 빼고 나서 한달인가 두달 정도 더 사귀었을 때 쯤에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아무런 트러블도 아무런 싸움도 없었습니다.
그저 수많은 대화 끝에 여친쪽에서 먼저 자연스럽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더군요.
물론 그런 대화를 은연중에 주도한건 저였습니다.
제 친구들은 그런 진실을 알기에 저보고 나쁜놈이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게 좋게 헤어졌습니다.
누가 채이고 차고 이런 것도 아니고, 앙금도 뒤끝도 남지 않은 헤어짐이었지요.
그리고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2학기 개강을 했는데, 그때가 막 제 생일이었습니다.
갑자기 두달동안 연락도 없던 여친이 갑자기 문자가 오더군요.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그래서 뭔일인가 싶어서 잠깐 학교안에서 만났는데, 저에게 왠 봉투 한장을 주더군요.
학교에서 마주쳐도 좋은 모습으로 대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였습니다.
저는 편지인가 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10만원짜리 백화점상품권이었습니다.
생일선물이었던거지요.
고맙기도 했지만, 사실 황당함이 더 컸습니다.
제 생각에는 사실 이 타이밍에는 그 안에 자기 심경이 담긴 편지 한두장이 들어가 있어야 했거든요.
그거면 충분했는데..
그런건 없고 나중에 문자 하나 더 오더군요.
혹시 제가 잘못볼까봐 걱정됐는지, 그거 5만원짜리 두개가 겹쳐있다고 혹시 실수하실까봐 문자보낸다고 하더군요.
네. 사실 이 친구 집이 좀 잘 삽니다.
이 친구 자체는 사치가 전혀 없는 성격이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것이 드러나지요.
인터넷에선 물건 한번도 안사봤고, 옷이나 전자기기는 무조건 백화점가서 안전하게 현금내고 삽니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품질도 좋고 안전하고, 인터넷은 불안하고 어렵고...
사귈때 잠깐 나쁜 마음을 먹은 적도 있지요.
그냥 이 친구와 결혼을 해버리고(저와 그녀의 성격 조합상 충분히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친구 집에서 건물 몇채 받아서 월세 받으면서 살고, 적당한 직업을 유지하면서 즐겁게 랄랄라...
그리고 이 친구는 가정적이라 꿈이 현모양처니까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것이고,
그럼 전 밖에서 일하면서 즐겁게 바람피고..
혹시나 들키더라도, 제가 잘 둘러대면 적당히 넘어갈테고..
그런 시나리오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관계가 그렇게 머리로만 돌아가는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결국 서로를 위해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요즘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그 여친이 생각나서 문득 연락해서 이번에 한번 만나고왔습니다.
뜨겁게 사귀다 헤어진 연인치고는 서로 반갑게 만나서 밥도 먹고 까페도 가고 오랜만에 얘기도 좀 했지요.
들어보니까, 그렇게 우리가 헤어지고 한참뒤에 다른 남자친구가 생겼었는데, 그 친구의 극단적인 감수성에 적응 못하고 남자가 금방 두손들고 도망갔다더군요.
그나마 저니까 그정도 받아줬지 남들한테는 좀 빡셌나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거 듣고 제가 막 웃으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진짜 내 성격 그렇게 이상해요?"라더군요.
그 표정 보니까 세월이 흘러도 아직도 그 친구는 여전하더군요.
아직도 나쁜마음만 먹으면 다시 꼬셔서 만날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더 이쁜 사람 만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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