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시~원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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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무덥고, 하늘에 빵꾸라도 났는지 빌어먹을 놈의 비는 몰아서 쏟아붓는 바람에 애꿎은 사람만 다치고 나자빠지고, 아무튼 비 피해 입으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 드리면서, 무더위에 딱 어울릴만한...예, 바로 그겁니다. 귀. 신. 이. 야. 기.
..참고로 이 이야기는 조금의 과장이나 거짓, 혹은 각색, 등등은 일절 없는 100% 실화임을 "강력"히 말씀드립니다. 들어보심 아시겠지만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절대" 없는 그런...진짜 경험담, 오...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절로 쳐지는군요. -.-;;;
때는 1990년대 중반, 강원도에는 무장공비가 출몰해 전군이 비상경계에 돌입하고 있던 "살벌"한 시기였지요. 네, 요사이 군생활 하신 분들은 경험하지 못하셨을, 정말이지 "꽤나" 살벌했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겨우 예비군이나 상대하는 "널럴한" 부대였던 저희 부대도 거의 두달가까이 24시간내내 얼굴에는 깜장칠하고 워커도 못벗고 그냥 아무데서나 디비자는 그런 엄혹한 시기였다지요.
대체 강원도에서 온갖 특수부대의 엄중한 포위망 안에 갇혀 다 죽어나자빠진 무장공비가 무슨 수로 수도권까지 겨들어올리가 있다고 그런 쌩고생을 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는, 저를 비롯한 전우들의 생각이었지만은,
잘 아시지요. -.- 군대란게 어디 상식이 통하는 곳인가요. 무장공비가 나타났으니 군인이라면 제주도에 있는 부대원이라도 "전군비상"인게지요.
아무튼 그 날도 저와 부사수, 위병조장 셋이서 아무도 오지않는 한밤중의 부대정문을 하릴없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비상경계태세의 피로에 쩌들어 꾸벅꾸벅 졸던 저는 뭔가 이상한 물체가 저 멀리 부대진입로 언덕에서 정문쪽으로 내려오는걸 느끼고 졸려서 흐리멍텅해진 눈으로 그쪽을 쳐다봤습니다.
희끄무레한 그 물체는 어느새 바리케이드까지 순식간에 다가오고있었지요. 게다가 분명히 제 눈에는, 지그재그로 놓여진 바리케이드를 그냥 뚫고 스윽하고 다가오는걸로 보였습니다.
...아, 꿈 꾸고 있는거구나.
그렇게 생각한 저는 어느새 제 코 앞까지 가까워진 그 하얀 물체가 검은 머리를 산발한, 흰 소복의 "전형적인" 여자귀신이라는걸 깨닫고 더더욱 제가 꿈을 꾸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지요.
그 "귀신"이 제 앞을 지나쳐 부대쪽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잠에 취한 저는 "아, 귀신이 지나가는갑다"하고 멍해있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아직까지 "군인정신"은 살아있던 그런 짬밥이었던지라 "용감하게도" 총을 들어 그 귀신의 진입을 막는 용기까지 발휘했지만, 뭐 당연히 귀신은 아까 바리케이드를 뚫고 지나갔듯이 제 총과 팔을 통과해서 부대 후문 방향으로 미끄러지듯이 사라져갔습니다.
네,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한밤중의, 격무에 시달리던 한 위병의 가위눌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와 같이 근무를 서던 부사수 녀석이 마치 드릴질하면서 말하듯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는 겁니다.
"....저기, XX님, 방금 통과시키신 그거, 뭡니까"
...아, 그때까지도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저는 사태파악이 저언혀 안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위병조장이 위병소 문을 열고 미친듯이 뛰쳐나오며 제게 소리를 지르더군요.
"야 이 미친 새끼야, 비상경계령 떨어졌는데 민간인이 부대 들어오는데 그냥 멍때리고 있는 새끼가 어딨어! 빨리 안 잡아와?"
...순간 등골을 타고 차가운 전류가 쭈르륵 흐르는 "그" 느낌.
잠은 순식간에 싸그리 달아나고, "이런 씨발, 지금 나 꿈꾸고 있던거 아니었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세 명이 한꺼번에 똑같은 헛것을 볼리가 없잖아요.
위병소 안에 있었던지라 아직 자신이 "귀신"을 본거라는 사실을 채 깨닫지 못한 위병조장은 얼어붙어 아무말도 못하고 패닉상태에 빠져있는 저와 제 부사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일단은 상황이 급한지라 지가 직접 부리나케 그 "민간인"을 쫓아 후문쪽으로 달려갔지요.
저는 그냥 그러고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서 정신줄을 놓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아무런 생각도 안 나더라구요. ...귀신이다, 귀신... 요 생각외에는.
물론 부사수 녀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내민 총을 그냥 쓰윽 투명인간처럼 통과한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녀석도 얼이 빠져있기는 저와 마찬가지였지요.
웃기는게 진짜 무서우면 못 움직인다는 말, 그 전에까지는 몰랐는데, 정말이더군요. 진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수가 없더라구요. 차라리 손에 잡히는 효도르랑 한판 붙고 말지, 안개처럼 잡히지도 않는 상대라니, 으윽...정말로, 진심으로, 영혼 깊숙히 뼈저리게 무섭더라구요.
이 정도로 끝났으면, 위병조장한테 뒤지게 깨지고 나중에는 둘이서 헛거를 봤다고 대강 넘어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참 뒤에야 위병조장이 후문쪽에서 동초(순찰조) 둘과 올라오면서 부터였습니다.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의 눈, 기억과 맞서 나름의 합리화를 시도하며 진정을 찾아가던 저와 부사수 앞에 나타난 세 명의 전우들 표정은 딱 조금 전 저희 둘의 표정이었습니다.
...네, 후문쪽에서 올라오던 동초 둘을 뚫고 사라지는 그 귀신을 위병조장도 목격한겁니다. 귀신이 제 몸을 뚫고 지나간 동초 둘 역시 말할것도 없구요.
시커먼 장정 다섯이 한꺼번에 똑같은 가위를 눌릴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될까요?....
...그 뒤로 저희 다섯명의 전우는 그 누구보다도 더 단단한 전우애로 맺어지게 되었답니다. 뭐랄까, 그 사다코스러운 귀신에게 같이 "역강간"(?)당한 동료의식이랄까요. -.-
....이상 한여름밤의 귀신이야기였습니다.
뭐 믿고 마시고는 읽으시는 분의 자유겠지만, 그 날 이후로 최소한 제가 아는 다섯 명의 남자(저 포함해서)는 "이 세상에 확실히 귀신은 있다"라고 믿게 되었다지요. ...글쎄, 귀신은 정말로 있다니까요. 검은 생머리에 하얀 소복 입고다니는. 그러고 보면 귀신이라는 존재, 참 보수적인 드레스코드를 가지고 있단말이지요. 천년전 전설에서나 20세기 말에서나 복장이 전혀 바뀌질 않고 있으니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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