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시련의 계절...힘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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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다들 잘 지내시고 계시죠?
오랫만에 또 글로나마 인사 올립니다.
보름전만 하더라도 갑자기 심신의 슬럼프가 찾아와서 하소연글을 남기기도 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염려해주시고 조언해주신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피로를 동반한 잠시동안의 흔한 슬럼프였던가 봅니다.
뚜렷한 겨울날씨로 접어들었나 했는데, 그래도 요 며칠동안은 날씨가 비교적 온화하군요.
날씨는 잠시 온화해졌을지라도, 날씨와 반대로 차가운 겨울처럼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이들도 계시겠죠.
그렇지않아도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지금 썩 좋지않은 시기라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도 그러한가 봅니다.
평온을 유지하다가도, 어느 순간 좋아졌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험한 시련이 찾아오곤 하는...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좋은 순간이 올 것을 기대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겠죠.
어제 퇴근 후에 친한 여동생과 만났습니다.
그녀가 저한테 얼굴 좀 볼 수 있겠냐고 연락해 왔길래 저녁에 약속을 정하고 만났던거죠.
몇달 전에 이곳 경방에 소개했던 <스튜어디스..그녀에 대한 추억>이라는 글 속의 그 아이입니다.
약속장소에 나갔더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근처 스타박스로 가서 구석진 자리에 앉았습니다.
다른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얼굴이 수척해져 있었습니다.
요즘 그 아이가 겪었던 마음고생을 그대로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얼마전에 그녀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거든요.
갑작스런 사고때문에 병원으로 옮겨서 며칠 안가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런저런 간단한 안부인사부터 시작해서 가벼운 화제부터 주고받다가 또 그 얘기가 나왔습니다.
자기가 먼저 그 얘기를 끄집어냈고, 아버지의 생전에 관한 일들을 추억하다가 눈물짓기 시작하더군요.
나중엔 얘기를 하면서 감정이 북받쳐올랐는지 눈물을 흘리면서 말소리가 흐느낌으로 변해가더군요.
저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 대해서, 그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비교적 많이 알고 있었으니까요.
예전 글에서도 소개드렸지만, 그녀는 어려서부터 나름대로의 상처를 안고 자랐던 아이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바람둥이셨죠, 그리고 실제로 너무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는 늘 상처를 받으며 사셨고, 그녀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두분은 이혼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왔고, 어머니의 한과 상처는 고스란히 딸에게 전이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남자에 대한 어떤 경계심을 갖고 있었고,
가정의 불화라는 환경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어떤 유리의 벽을 쌓으면서 자라왔었던 겁니다.
그녀가 나름대로 마음고생을 많이 하면서 자랐던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고,
학창시절부터 그녀를 많이 달래주고 아껴주면서 가까워졌습니다.
현재 그녀는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새신부입니다.
예전 글에서 그녀에게 청첩장을 받았다고 했었죠?
현재는 결혼해서 한창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만끽하고 있어야 할 새신부입니다.
그녀의 결혼식이 있던 날 저도 여친과 함께 결혼식장으로 그녀의 앞날을 축복하러 갔습니다.
우아한 웨딩드레스가 참 잘 어울리던 그날의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무척 감명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날 진심으로 그녀의 앞날을 마음속으로 축복해주던 그 시각,
그녀의 아버지도 딸의 결혼식을 위해서 나와주셨더군요.
그건 아버지로서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기도 하셨겠죠.
그녀는 바로 그날부터 변화가 시작됐다고 하더군요.
자신도 아버지도 바로 그날부터 그때까지의 서먹서먹하고 어색했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짐을 느꼈다고요.
결혼을 하고, 자신도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가정을 꾸리게 되었는지라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더 소중히 느끼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았던 아버지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고 합니다.
바로 그 변화의 과정이 막 열리게 될 무렵, 아버지는 갑작스런 사고로 너무나 어이없이 가버리신거죠.
가장 충격을 받으신 분은 역시 그녀의 어머니이신듯 하더군요.
한평생 자신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남편이었잖습니까.
슬픔에 잠기신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또 그동안 그토록 자신들에게 무심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 슬픔, 증오, 동정 등등....
그 수많은 미묘한 감정들이 한데 어울리며 그녀를 한없이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넋을 잃고 멍하니 저에게 하소연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까지도요....
반쯤 넋이 나간채 얘기를 하다가 감정이 북받쳐올라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마음이 몹시 아파왔습니다.
예전에 소개했던 글에서도 밝혔듯이 저 또한 예전에 그녀를 사랑했었으니까요.
그 누구보다 저를 아껴주고 공경함이 특히 깊었던 아름다운 그녀를 저도 진심으로 사랑했었습니다.
그녀가 승무원이 되어 첫 국제선 비행을 다녀온 날 꽃다발을 들고 픽업나갔던 사람은 저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유니폼 입은 모습을 사진에 담았었고, 그녀와 포옹을 했고 키스를 나누었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데이트를 즐겼고, 진심으로 서로를 소중히 대하고 있었죠.
심지어 앞으로 좋은 친구로, 사이좋은 오누이로 지내기로 약속하며,
연인으로 흐를뻔했던 우리의 관계를 정리하던 그 날도 우린 눈물을 흘리면서 깊은 키스를 나눴습니다.
만일 그때 이미 제가 지금의 제 여친을 몰랐다면, 저는 지금쯤 그녀의 남자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저는 지금의 여친과 원하던대로 연인이 되었고, 그녀와도 지금까지 좋은 남매로 남아있지만요.
하지만 그만큼 아꼈던 그녀였기에, 지금도 소중히 여기는 그녀이기에
한없는 슬픔과 회한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뭐라고 마땅히 달래줄 방법도 없어서 애태우고 있었습니다.
어느순간 그녀가 눈물이 흐르는 눈을 살짝 감고선,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으며 나직이 중얼거리더군요.
"오빠...전...우리 아빠가 죽기를 바랬어요...."
"응?"
"전...우리 아빠가 죽기를 바랬어요....항상 죽어버리라며 저주했어요...미워했어요..."
저는 놀랐습니다.
그녀의 회한이 너무 커진나머지 자기자신에 대한 자책이 지나치게 심해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녀가 평소 감정상 다소 극단적인 면은 있었지만, 이런 감정은 위험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냐!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거야. 어릴 때는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어서 그런 생각 누구나 할수 있어.
하지만 그 후엔 안그랬잖아. 잘못 생각하지마, 네 잘못이 아냐. 알겠니? 네 잘못이 아니었어!"
그애가 고개를 저으면서 계속 눈을 감은채로 눈물을 흘리더군요.
"받아들이게 됐다면서?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잖아?
결혼식에도 오셨었잖아, 결국 둘이 가까워졌잖아.
너도 아버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잖아. 아버지도 너랑 가까워지셨잖아.
결국은 둘이 가까워졌잖아. 한을 풀고 돌아가셨을거야.
아버지도 너를 소중히 여기시면서, 평생의 한을 풀고, 홀가분하게 가셨을거야.
네 잘못이 아냐, 엉뚱한 생각하지 마라, 너 때문이 아냐."
그렇게 그녀를 계속 위로해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마음 속의 큰 부담을 조금이나마 떨쳐버릴 수 있도록 위로해 줄 수 밖에 없더군요.
그리고 어느정도 잠시 시간이 흐르고서야 비로소 조금씩 진정이 되는가 봅니다.
한참 후에 그 애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미안해요, 오빠.
이런 모습 보여드리려고 보자고 한건 아닌데...
예전에 누군가에겐 처음으로....처음으로 오빠에게 저와 아빠에 대한 얘길 했었죠..."
그렇습니다.
대학 다닐 때 그녀는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 자신의 가슴 속에 맺힌 아픔에 대해서
다른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저에게 속마음을 밝히면서 지금처럼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자신을 가둬뒀던 유리의 벽을 걷워들였다고 했었죠.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둘은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키워나갈 수 있었었죠.
"그때처럼 지금도 오빠한테 이렇게 칭얼대네요...이젠 어린애도 아닌데...미안해요...
그래도 오빠한테는 이래도 될거 같아서...오빠라면 이해해 줄거 같아서...
오빠는 항상 그래줬으니까...나도 그래서 오빠를...오빠한테..."
그랬었죠, 그랬습니다.
그녀는 그때 저에게 그렇게 칭얼대고 나서...
그렇게 자신의 가슴 속에 숨겨왔던 아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서부터...
저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갖고 대해줬고, 저또한 그녀를 소중히 다뤘고...
그렇게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키웠었죠.
그리고 진심으로 그녀를 소중히 여겼기에,
이미 좋아하는 사람(지금의 여친입니다)이 있던 저로서는 그녀에게 오해의 여지를 줄 수 없었죠.
그녀가 또 저로 인해 상처받고 남자에 대한 불신을 갖지 않도록 하고자 그녀와의 입장을 정리했던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글로서 자세히 설명드리진 않겠지만...
이순간 다시한번 감정을 정리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자칫하면 뭔가 미묘한 상황으로 넘어가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녀가...아직 저에 대한 감정도 완전히 정리하진 못한것 같았습니다.
그녀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 점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죠.
그녀는... 그래선 안됩니다...조금이라도 그래선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어느 누군가가 잘못한 것도 아니지만...어떤 그런 미묘한 분위기가 좀 느껴지더군요.
"오빠를 그렇게 생각해줘서 정말 고맙다.
오빠한테 이렇게 털어놔줘서 고마워, 지금은 얼마든지 슬퍼해도 돼, 그래도 되는 시기야.
점차 나아지겠지만 앞으로도 가끔씩 생각이 날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야지.
그게 남아있는 우리가 당연히 겪어가야 할 과정일거야.
이제 너도 혼자가 아니잖아. 너도 이젠 사랑하는 남편이 있잖아.
네 어머니도 이젠 혼자가 아니셔. 늘 자랑스런 딸과 믿음직한 사위까지 있잖아.
넌 틀림없이 잘할거야, 남편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네 자신에게도 틀림없이 잘할거야.
그리고 앞으로 네 남편이 항상 네 옆에서 널 지켜주면서 둘이 함께 기쁨도 슬픔도 나누게 될거야.
나도 그러고 있어...여친이랑 같이 둘이서 함께 보듬어주고 함께 나눠가면서...
앞으로 너희들처럼 가정을 꾸려서 계속해서 둘이 의지해 나갈 수 있기를...네가 부럽다, 야.
우리 넷 모두 꼭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 아버님께서도 꼭 그렇게 되길 바라실거야."
대충 이런 식으로 그녀를 위로해주고, 힘을 북돋아줬습니다.
그리고 그녀도 어느 정도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렇게 나중에 그녀를 돌려보냈습니다.
물론 지금 저는 제 여친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함께 할 미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만...
한때나마 깊이 사랑했던 이의 슬픔을 지켜보는 심정은 여전히 착잡하고 안타깝더군요.
그녀는 꼭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데...
자기 신랑이랑 잘 해나가리라 믿는 수 밖에요...
그녀가 잠시동안의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밝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에고, 을씨년스런 날씨에 우울한 얘기 올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