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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스토리 8 (NTR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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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4 회 작성일 23-12-07 12:0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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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



괜히 기대가 되었다.

매일 같이 집에서 보는 아내였지만 아내와 학교 주변에서 술을 마실 때면 항상 기분이 들뜨는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내 아내는 더 좋아한다.


* * *


서른네 살에 만 10년 만에 아내를 다시 만났고, 아내를 다시 만나고 한 해가 지나서 서른다섯 살에 그렇게 미친 듯이 아내를 쫓아다니다가 


아내에게 청혼을 했었다.

아내는 당연히 거절을 했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싫어서 거절을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내 손을 잡아주면서 말을 했었다.

그렇게 네 번을 아내는 내 청혼을거절했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아내는 내 청혼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나에게 반드시 후회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터트렸었다.


그게 4년 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다.


내 나이 서른다섯 그리고 아내 나이 서른네 살에 말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지 횟수로 15년이 지나버린 그 아름답던 가을날에 나는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주었다.


* * *


아내의 얼굴이 살짝 발그레한 상황이었다.



"술 많이 먹었어?"


"아니요 그냥 폭탄주 몇 잔. 오늘 금요일인데 2차도 안 가더라구요. 난 춤추고 싶은데, 그래서 불렀어요. 괜히 성가시게 한 건 아니죠?"


"내가 언제 당신 성가시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었나?"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아내가 따라주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마시고 클럽 가요. 오늘 춤이 막 땡겨요 "


아내는 나를 보고 웃는 얼굴로 말을 하고 있었다.


"회사 사람들은 클럽 안 가지?"


"그쵸 뭐 나도 이젠 뭐랄까 노땅 취급인가 봐. 젊은 사람들은 모르죠 뭐. 나만 은따시키는지도 "


"내가 보기에는 당신은 아직도 이십 대 처럼 보여. "


나는 말을 마친 후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아내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에이…. 또, 손 그럴라고 그러죠…? "


아내가 싫지 않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말을 했다.

아내는 정답을 이야기 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은 아내의 육체였다. 그 이상의 즐거움은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급하게 맥주 몇 병을 마신 상황이었다. 아내가 따라주는 대로 넙죽넙죽 다 받아 마신 상황이었다.

아내는 살짝 취기가 올라있는데, 나는 맨정신인 것은 공평하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옆으로 가서 아내의 베이지색 미니스커트 엉덩이 부분에 슬쩍 손을 대었다.

고개를 돌려서 뒤를 보았지만 우리가 항상 오는 이 호프집은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다른 테이블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엉덩이를 만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무런 저항 없이 나에게 엉덩이를 내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내의 엉덩이를 만지다가 미니스커트 안으로 손을 슬쩍 넣으려고 했다.

그러자 그제서야 아내가 나를 제지했다.


"아이…. 그건 그만 이따가…. "


아내가 웃음을 참으면서 나에게 말을 했다. 나도 웃었다.

순간 아내의 웃음을 보면서 아내를 만 10년만에 다시 만난 서른네 살의 그 아련한 시간들이 다시 떠올랐다.

스물네 살에 그녀, 그러니까 지금의 내 아내, 내 첫사랑, 그 지독한 첫사랑, 내 아내에게 동정을 바쳤었던 기억이 다시금 아련하게 솟아나는 것 같았다.


스물두 살, 그 지옥 같던 군대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물집이 잡히고 피가 흐를 정도로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겼었던 그 지옥 같은 스나이퍼 훈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원동력은 바로 그녀였었다.

스물두 살 오월의 어느 푸르던 날에 첫 휴가를 나와서 그녀를 보고 목청이 터져라 같이 고함을 질렀었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것인지, 그녀가 내 뒤에서 내 손목을 잡아주었던 그런 일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 기억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한 것 같았다.

레이스가 달린 흰 장갑을 낀 채로 내 손목을 꼭 잡아서 내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던 그녀, 그녀는 내 지옥 같았던 군생활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준 나만의 베아트리체였었다.


스물두 살, 그 찬란하던 봄날에 첫 휴가를 나와서 나는 휴가가 끝나기 전에 천신만고 끝에 멋진 응원단 춤을 추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정말 간신히 한 장 건질 수가 있었다.

여러 장을 찍었지만 춤을 추고 있는 피사체의 얼굴이 정확하게 나온 것은 딱 한 장이었고 나는 그 한 장을 마치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이 간직한 채로 기나긴 군대생활을 이겨냈었다.

그 한 장의 사진 때문에 군에서 정말 엄청난 일들을 많이 겪었었지만 결국 그 사진은 내 군대 생활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던 것은 십수 년이 흘러버린 지금 생각해 봐도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스물네 살의 어느 초가을 날에 나는 제대를 했었다.

내 입대 동기들은 모두 이미 전역을 한 상황이었고 나는 서류상은 자발적이었지만 거의 강제적으로 조금 늦게 전역을 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전역을 하고 나는 예비역 하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학교 주변에 자취방을 하나 얻었다.


솔직히 해가 바뀌고 다음 해 봄에 3학년으로 복학을 하지만, 나는 학교 주변에서 글을 쓰고 싶어서 초가을의 그 어느 날 자취방을 얻고 자취를 시작했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순전히 핑계였었다.

그녀가 학교에 아직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선택을 했었던 것이었다.

스물네 살 그 초가을 날에 그녀 역시 제대로 학교를 다녔으면 스물세 살 졸업반 이었겠지만 전해들은 정보에 의하면 그녀는 졸업반이 아니라 3학년이었다.


나는 그녀의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곳이면 친한 지인이든, 친하지 않았던 지인이든 가리지 않고 물어보았던 것 같은 기억이 있었다.

정작 그녀 본인에게는 접촉을 하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그녀는 중간에 1년 동안 휴학을 했다고 했었다. 그 이유는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냥 가정형편 정도로만 아직도 그렇게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주 나중에 추측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스물네 살 그 어느 늦은 가을 날에 나는 그녀에게 동정을 바쳤다.


기말고사가 끝나는 종강 시즌이었다.

내가 있는 자취방은 굴다리가 있는 언덕배기의 아주 작은 방이었다.


군 시절에 다른 동기들은 받지 못 했었던 특수 수당이라는 것을 받았었다.

보안 부대의 특수성 때문에 밥도 정말 잘 먹었고 일반 사병들이 받는 월급처럼 월급도 따박따박 받으면서도 수당이라는 것을 따로 받았었다.

그 수당은 생명수당이라고 불렀지만 솔직히 나는 아직도 그 수당이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내가 속해있던 훈련조는 아니었지만 실제로 같이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던 다른 조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하여 실제로 내 또래의 젊은 청년이 목숨을 잃은 적도 있었다.

직접 본 것은 아니고 같이 훈련을 받던 보안 부대 내의 방첩 부대원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훈련 중 사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게 팩트인지 내 눈으로 확인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무서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루 종일 총을 가지고 훈련을 해야 하는 보직의 특성상 총기 사고의 공포는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여간에 나는 이년 반 동안 그 수당을 거의 안 쓰고 따박따박 모았었고 그건 전역을 할 때가 되니 꽤나 짭짤한 목돈이 되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나는 전역 후에 바로 자취방을 얻었고 새벽에 농산물 시장에서 하는 알바를 구했었다.

가정 형편은 솔직히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궁핍하고 그런 것도 분명히 아니었다.

나이 많은 부모님의 늦둥이 막내 아들 누나들과 나이 터울이 많은 막내 아들이라서 솔직히 부족한 것 없이 자랐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3학년 부터는 학교에서 통학 시간이 편도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자취를 하기로 결심을 한 상황이었다.


3학년 학기가 개강을 하고 방을 얻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이지만 나는 그렇게 미리 방을 얻어놓고 새벽에는 농산물 시장에서 알바를 해서 또 따로 돈을 모았다.

운동은 정말 싫어했지만 군 생활을 하면서 몸이 단련이 된 탓인지 그 어렵고 힘들다는  보통 알바들은 삼 일이면 나가 떨어진다는 그 농산물 시장 구르마 알바를 나는 너무도 쉽게 적응했었던 그 젊은 날의 기억들이 바로 어제의 일 같았다.

새벽에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알바를 한 후에 나는 자취방에서 씻고 나서 바로 학교 도서관으로 매일 같이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주 목적이었지만 나는 사실 그녀를 쫓아다니는 것이 진짜 숨어있는 목적이었다.


그녀는 휴학 이후에 응원단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3학년이라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았지만 1년을 휴학을 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기수 문화가 군대만큼이나 확실한 응원단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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