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봉건제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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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로 치면 여말선초 신진사대부나 조선 후기 실학 개념에 대한 비판과 비슷한가?
요약하면 교과서의 "봉건 피라미드"에서 연상되는
1000년간 지속된 "억압적인"(또는 서양 극우의 시선에서 이상화된 "안정적인") 계층구조는 존재하지 않았고
마치 크킹처럼 "계약"이라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중세 사회를 설명할 수도 없다는 것.
예를들어 백년전쟁때 프랑스 민중이 샤를 7세를 국왕으로 지지한 이유는 트루아 조약에 무슨 법적인 하자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단순히 영국에서 태어나 영어 쓰는 영국인 헨리 6세가 왕 하는 게 꼬와서였는데
"중세 봉건사회는 계약에 따른 지배-예속관계" 또는 "민족 개념은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전제에 매몰돼 트루아 조약에서 어떻게든 봉건적 결함을 찾으려고 몸비트는 학생들을 보면서 역사교수님들은 그냥 중세 봉건제라는 용어를 폐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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