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 결혼한 황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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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수마 2세의 딸 테쿠이치포츠 이시카쇼치친에 대해선 여러 설화가 존재한다.
우선 스페인의 침략이 있기전 아즈텍의 고위귀족과 이미 결혼한 관계였다는 설이다.
사실이라면 군주의 딸이 귀족과 정략결혼하는 어디서나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첫째 남편, 혹은 약혼자는 코르테스의 부관 알바라도가 폭주한 학살현장에서 사망하고
몬테수마 2세도 혼란의 와중에 사망.
아즈텍 제국은 스페인의 공세에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몬테수마 2세의 아들의 계승권을 박탈하고,
몬테수마의 동생 쿠이틀라우아크가 황제가 되었다. 쿠이틀라우아크는 조카 테쿠이치포츠를 황후로 맞이했지만,
80일만에 천연두로 병사해버린다. 사촌 콰우테목이 황제를 계승했고, 테쿠이치포츠는 다시 황후가 되었으며, 콰우테목은
제위분쟁을 우려하여 몬테수마 2세의 아들을 숙청한다.
코르테스는 아즈텍의 반대세력을 규합하여 아즈텍을 멸망시켰고, 황제와 황후는 포로가 되었다. 아즈텍 멸망
이후 코르테스는 콰우테목을 처형하고, 미망인이 된 황후를 부관 알폰소 데 그라도와 결혼시키니 4번째 결혼이었다
네번째 남편 알폰소도 일년만에 죽어버리자, 코르테스는 테쿠이치포츠를 데려가 임신시킨 이후 부관
페드로 가예고와 결혼시켰고, 옛 제국의 황녀는 기독교도 이사벨 몬테수마로 개종한 상태였다.
낳은 딸은 레오노르 코르테스 몬테수마, 정복자와 황제의 이름을 동시에 잇게 되었다.
코르테스는 레오노르를 적녀로 인정했으나, 이사벨 몬테수마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레오노르의 이복오빠는 코르테스에 헌신했던 말린체의 아들이기도 했다.
이사벨은 페드로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으나 페드로도 그 이후 일년을 못 버티고 죽어버렸다.
다음 남편은 스페인의 귀족 출신 후안 카노였는데 아즈텍이 붕괴한 이후에 도착했으므로 정복자라기보다는 이주자가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후안 카노와의 사이에서 아들 셋과 딸 둘을 낳았고, 많은 재산과 노예를 소유하고,제국의 혈통으로 유복한 생활을 보냈다. 성직자들이 글자를 가르치지 않았던 까닭에 문맹이었다.
사망하기 전에 노예들을 해방하고, 재산의 1/5을 교회에, 1/5을 인정하지 않았던 장녀 레오노르에게 분배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다.
레오노르는 코르테스이자 몬테수마로서 막대한 지참금이 필요한 결혼식이 예정되 있었고, 이후 스페인의 고관대작으로유럽의 왕가에도 혈통을 남기게 된다. 후안 카노는 남편이 다섯번이나 요절해버린 옛 황녀와 결혼을 자청했을까? 아니면 총독부에서 밀어넣은 도련님? 옛 황녀가 자주적으로 선택한 남편? 그는 이사벨 사후 20년을 더 살았다.
이사벨의 첫 결혼이 12세 이전이었다는 설을 따른다면 멸망한 제국의 황녀가 여섯번째 남편을 맞이했을 당시의 나이는 말린체가 코르테스를 처음 만날 때보다도 어렸다. 아버지, 삼촌, 사촌오빠, 황제, 정복자, 아즈텍 전통종교, 카톨릭 모두 어린 여자를 결혼시키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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