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모두를 위한 예술' 정신 깃든 구상회화 기증작들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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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최근 6년간 기증받은 60∼70년대 구상회화 전시
이병규, 〈고궁일우(古宮一隅)〉,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99×1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유족 기증[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관에서 최근 6년간 기증받은 작품 중 1960∼1970년대 한국 구상회화를 모아 소개하는 전시를 열고 있다.
출품작 150여점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기증받은 작품들로, 이 중 "이건희 컬렉션"이 104점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에서는 추상화가 대세를 이루며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구상화는 구시대의 미술로 여겨지거나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개성적인 시각으로 인물이나 풍경, 사물, 사건 등을 충실히 묘사하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던 33명 작가와 작품을 조명한다.
한국 구상미술의 중심에는 1958년 설립된 작가 단체 "목우회"가 있다. "우리의 미술은 아카데미즘의 토대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던 이종우, 이병규, 도상봉, 이종무 등이 주축이 돼 창립한 단체로, 이번 전시에도 목우회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이 여럿 나왔다.
도상봉 '백일홍' 관람
(과천=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2일 오전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어린이 관람객이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에 전시된 도상봉 '백일홍'을 관람하고 있다. 2024.5.22 [email protected]
이병규(1901∼1974)는 녹색을 주로 사용해 인물과 풍경 등을 표현했던 작가다. 근무했던 학교 온실의 나무와 꽃을 묘사한 "온실" 연작과 역시 온실을 배경으로 한 "자화상" 등을 볼 수 있다.
도상봉(1902∼1977)은 정물화로 유명하지만 풍경화도 많이 그렸다. 풍경화 역시 정물화처럼 단정하다. 안정된 구도로 겨울 풍경을 그린 "설경" 등 정물화와 풍경화 16점이 소개된다.
대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동훈(1903∼1984)이 가을의 계룡산을 그린 그림, 여인의 옆모습을 동양화 분위기로 묘사한 김형근(1930∼2023)의 인물화, 이른 아침 배가 들어온 선착장의 풍경을 담은 강정영(1947∼2003)의 그림, 해안가에서 어구(漁具)를 정리하는 여성과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성의 모습을 그린 김춘식(77)의 "포구" 등 일상 모습이나 노동 현장을 담은 그림들도 전시된다.
미술관 관람
(과천=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2일 오전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어린이 관람객들이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를 관람하고 있다. 2024.5.22 [email protected]
당시 구상 작가들이 아카데믹한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다. 구상에 뿌리를 두면서도 왜곡과 변형을 통해 비구상 요소의 접목을 시도하기도 했다.
노을 지는 전원 풍경을 많이 그려 "석양의 화가"로도 불리는 윤중식(1913∼2012)은 1970년대를 전후해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원근감과 거리감을 배제하고 대상을 단순화해 표현한 그림들을 그렸다.
소를 즐겨 그려 "소의 작가"로 불린 황유엽(1916∼2010)은 두터운 마티에르에 검은색 윤곽선으로 다양하게 소를 그렸고 생선 말리는 풍경을 자주 그려 "건어" 작가로 불리는 김태(1931∼2021)는 세부 묘사를 생략하고 물감을 두텁게 올려 대상을 표현했다.
김형구 '어부의 가족'
(과천=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2일 오전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관람객이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에 전시된 김형구 '어부의 가족' 등을 관람하고 있다. 2024.5.22 [email protected]
기증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예술을 가능케 하는 기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체 소장품 1만1천650여점 중 55.6%가 기증작품이다.
특히 2021년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유족이 '이건희 컬렉션' 1천400여점을 기증한 일은 미술품 기증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킨 계기로 평가받는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 이전인 2018∼2020년에는 한 해 기증작이 두 자릿수 수준이었지만 2021년에는 개인소장가(박주환)의 대량 기증과 작가, 유족의 기증이 이어지며 이건희 컬렉션을 제외하고도 536점이 기증됐다. 이후 2022년 117점, 2023년 297점이 기증되는 등 기증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전시작 중에도 이건희 컬렉션 기증 이후 유족들이 추가 기증한 작품들이 여러 점 나왔다. 이병규 작품은 이건희 컬렉션에 5점 포함됐으나 이후 유족들이 13점을 추가 기증했고 윤중식 작품 역시 이건희 컬렉션 4점에 더해 유족이 20점을 추가로 미술관에 기증했다. 전시작들에는 모두 기증자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기증 활성화를 위해 기증자 예우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임대근 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1과장은 "많은 기증자의 공통된 바람은 기증작들이 수장고에서 사장되지 않고 (여러 사람이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중식, 〈금붕어와 비둘기〉, 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61×72.8cm, 유족(윤대경) 기증[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1년 12월 김태 작품 38점을 미술관에 기증한 유족 김수정씨도 이번 전시를 위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예술 작품의 존재 이유는 많은 사람이 감상할 때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미술관에서 전시가 될 때 아버지의 컬렉션이 한 세트가 되어 보기 좋은 모습이 되도록 (기증작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22일까지. 유료 관람.
김태, 〈건어장〉, 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46×53cm, 유족(김미경, 김충정, 김미화, 김수정) 기증[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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