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의 뿌리, 무가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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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치감은 속에서부터 사람을 갉아먹습니다. 내 존재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의구심이 들죠. 나르시시스트는 만성적인 무가치감을 안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무가치감 : 나의 가치, 존재 이유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없는 상태)
나르시시스트는 내면의 무가치감을 올라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 여기고 환상 속 자신의 모습을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고 잊기 위한 노력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어 타인의 고통에는 눈길조차 줄 여유가 없죠. 이것이 나르시시즘입니다.
올라오지 못하게 누르기에, 나르시시스트의 무가치감은 무의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에 있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렇게 덮어진 음식물 쓰레기가 지독한 냄새를 내뿜듯이 무의식이라는 장막 밑에서 무가치감의 악취가 넘실거리죠.
이 악취를 잊기 위해, 잠시 덮기 위해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대단하거나 비범한 사람이며 자격이 있고 남들과는 다르다는 자기환상이라는 독한 향수를 뿌립니다. 부풀려진 자기관(Grandiosity)입니다. 그럼에도 악취는 사라지지 않기에 그 냄새가 자신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라며 죄없는 곳에 손가락을 겨눕니다.
이는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이 가진 무의식 속 무가치감을 바깥 세상에 투영하며 가깝고 약한 존재를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나르시시스트는 그래서 배우자나 자식,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자기 하나를 살리기 위해 살아가는 내내 자신의 가까이에 오는 약한 존재들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절대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자각하지 않습니다.
인정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릇되게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면 꽁꽁 숨겨놓은 무가치감이 올라올 테니까요.
외부에서의 소리나 두드림이 전해지지 않는 방공호에 들어간 것 처럼 귀와 눈을 닫고 자기기만의 목소리만을 들으며 곱씹으며 삽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무가치감을 잊기 위해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찰싹 달라붙어 내키는대로 상처를 주며 착취를 하거나 ‘인맥관리’라는 명목으로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넓고 얇게 퍼뜨립니다.
무가치감의 치유는 그것을 들여다보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내 안의 뻥 뚫린 부분을 직시하는것이죠.
나르시시스트는 들여다보지 않기에 무가치감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무의식 속 넘칠듯 넘실대는 무가치감이 내뿜는 독한 기운과 악취를 외면하고 잊기 위해 자각없이 살 뿐입니다.
자기 자신과 주변을 기만하고 진정한 사랑을 나누지 못합니다.
진실하지 못한 관계는 원망과 불신으로 남을 뿐이죠.
거짓말을 하거나,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는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의 무가치감을 들여다보고 의식 수준으로 올려 바라본다는 것은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실제적인 위험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무가치감 : 나의 가치, 존재 이유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없는 상태)
나르시시스트는 내면의 무가치감을 올라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 여기고 환상 속 자신의 모습을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고 잊기 위한 노력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어 타인의 고통에는 눈길조차 줄 여유가 없죠. 이것이 나르시시즘입니다.
올라오지 못하게 누르기에, 나르시시스트의 무가치감은 무의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에 있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렇게 덮어진 음식물 쓰레기가 지독한 냄새를 내뿜듯이 무의식이라는 장막 밑에서 무가치감의 악취가 넘실거리죠.
이 악취를 잊기 위해, 잠시 덮기 위해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대단하거나 비범한 사람이며 자격이 있고 남들과는 다르다는 자기환상이라는 독한 향수를 뿌립니다. 부풀려진 자기관(Grandiosity)입니다. 그럼에도 악취는 사라지지 않기에 그 냄새가 자신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라며 죄없는 곳에 손가락을 겨눕니다.
이는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이 가진 무의식 속 무가치감을 바깥 세상에 투영하며 가깝고 약한 존재를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나르시시스트는 그래서 배우자나 자식,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자기 하나를 살리기 위해 살아가는 내내 자신의 가까이에 오는 약한 존재들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절대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자각하지 않습니다.
인정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릇되게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면 꽁꽁 숨겨놓은 무가치감이 올라올 테니까요.
외부에서의 소리나 두드림이 전해지지 않는 방공호에 들어간 것 처럼 귀와 눈을 닫고 자기기만의 목소리만을 들으며 곱씹으며 삽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무가치감을 잊기 위해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찰싹 달라붙어 내키는대로 상처를 주며 착취를 하거나 ‘인맥관리’라는 명목으로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넓고 얇게 퍼뜨립니다.
무가치감의 치유는 그것을 들여다보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내 안의 뻥 뚫린 부분을 직시하는것이죠.
나르시시스트는 들여다보지 않기에 무가치감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무의식 속 넘칠듯 넘실대는 무가치감이 내뿜는 독한 기운과 악취를 외면하고 잊기 위해 자각없이 살 뿐입니다.
자기 자신과 주변을 기만하고 진정한 사랑을 나누지 못합니다.
진실하지 못한 관계는 원망과 불신으로 남을 뿐이죠.
거짓말을 하거나,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는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의 무가치감을 들여다보고 의식 수준으로 올려 바라본다는 것은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실제적인 위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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