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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서 만난 아저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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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728 회 작성일 24-05-09 09: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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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 도착한 첫날, 딱 100달러로 카지노에서 큰 돈을 벌어보자 마음 먹고 그랜드 리스보아에 들어갔지만 깡통만 차고 나왔다. ‘역시 사람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해’ 따위의 생각을 하며 카지노 밖으로 나오니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진동했고 그제서야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카지노 근처에 있던 훠궈 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식당 입구와 가까운 빈 식탁에 앉았다. 그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었던 터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던 때, 우산을 접으며 들어오는 아저씨가 내 식탁에 같이 앉았다. 홍콩이 합석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카오도 합석 문화가 발달했나?’ 잠깐 생각했다. 무엇보다 빈자리가 많았는데도 내 앞에 앉았기에 잠시 그를 쳐다봤다. 그러나 이미 아저씨가 앉았으니 같이 먹기로 했다. 그의 인상은 상당히 강렬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 있었고, 입을 닫고 있을 땐 영화배우 뺨치게 잘 생겼는데, 입을 활짝 열면 앞니가 있어야 할 공간이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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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을 펼쳐서 어떤 훠궈를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심한 광둥어로 내게 말을 걸었다. 말의 분위기 상으로는 이 식당에서 맛있는 메뉴가 무엇인지 추천해주는 것 같았는데 내가 아는 광둥어라곤 ‘음꼬이’, ‘음호우이씨’, ‘얏이싼’, ‘멩멩아’, ‘쫌 메아’ 등 영화에서 짧게 들어본 표현들이 전부였기에 영어로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라고 말해줬다. 찰나였지만 아저씨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을 읽었다. 내가 현지 친화적 비쥬얼을 보유하고 있나보다. 무튼, 내 대답을 들은 아저씨는 영어로 자신을 ‘하신’이라 소개하며 편하게 ‘엉클 하(하 숙부. 이하 하 숙 혹은 하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리곤 이 집의 양고기 훠궈가 마카오에서 가장 맛있다면서 종업원을 불러 훠궈 4인분과 맥주 4병을 주문했다. 별 이상한 아저씨 다 본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재밌는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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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이름은 뭔가?”
“저는 G에요.”
“그래 G. 누가 지어주셨는지 몰라도 좋은 이름이구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훠궈를 먹는동안 내 얘기를 들려주겠네. 만약 내 얘기가 재미없으면 오늘 주문한 훠궈와 맥주는 전부 내가 계산하지. 재밌게 들었다면 자네가 계산해.”
“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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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토당토않은 그의 제안을 얼떨결에 수락했고 그렇게 ‘하 아저씨’의 개인사를 듣게 됐다. 본관이 홍콩인 하 아저씨는 12살 때 까지 나름 유복하게 자랐다고 했다. 마당에서 키우던 귤나무의 귤이 익어갈 무렵, 막대한 빚 때문에 가세가 기울었고, 어머니와 함께 동네에서 도망쳐 어머니의 남동생이 살던 동네로 도망쳤다고 한다. 그는 종종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해 어머니의 남동생, 그러니까 하 아저씨의 삼촌이 원장으로 있던 치과에 갔는데 단 한 번도 돈을 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숙모는 돈도 내지 않고 검진을 받으러 오던 하 아저씨가 미웠는지, 남편에게 조카의 앞니를 다 뽑아버리자고 제안했고 하 아저씨는 그날 앞니를 모조리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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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앞니가 그렇게 텅 비어있던 게 그 때문이에요?”
“그래. 그래서 그날 이후 입 벌리고 안 웃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게 싫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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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공부만이 가세를 일으킬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에 성당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학교에 들어가서 학업을 이어갔다. 장학생으로 뽑힐 정도로 공부에 열중했고, 틈틈히 ‘정락아’ 라는 친구(아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왕조현을 닮았다)와 꽁냥꽁냥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다만 학교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는 ‘부가준’이라는 친구가 ‘정락아’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말을 빌리자면, 당시 홍콩과 마카오 일대의 사업들은 ‘부씨’가 꽉 잡고 있었다고 한다. ‘부가준’의 구애에도 ‘정락아’는 그를 외면, 항상 아저씨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영화도 같이 보러가자고 했으나 하 아저씨는 늘 그녀의 데이트 제안을 거절했다. ‘정락아’는 자신이 데이트 비용을 낼 테니 걱정말라고 해도, 하 아저씨는 여자친구가 내는 것 역시 ‘빚’이라는 생각에, 자신은 빚을 지는 게 병적으로 싫어, 수입이 생길 때까지 데이트를 할 수 없다고 대답하며 거절했다. 동시에 ‘부가준’이 가진 부유한 환경에 부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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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학교로의 진학을 앞둘 무렵, 일본군이 홍콩에 들어와서 온 도시가 아수라장이 됐다고 했다. 아저씨의 어머니는 그에게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던 마카오에 있는 삼촌을 찾아가라 말했고, 아저씨는 죽마고우인 ‘곽영남(이하 남)’과 마카오로 건너갔다. 그러나 삼촌을 찾지 못했고, ‘남’은 하 아저씨에게 부둣가에서 일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마카오 항구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우연히 출세길이 열렸다. 부둣가를 포함해 마카오를 꽉 잡고 있던 큰 회장님 밑에서 운수회사를 운영하던 ‘아방소’의 딸 ‘아매’가 부둣가의 깡패들에게 희롱당하던 것을 구해준 것이 계기였다. 동시에 하 아저씨 일생에 걸친 악연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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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고 왕창의 악연도 그 때부터였지.”
“왕창이 누군데요?”
“내가 아매를 구해줬다 했지? 아매를 희롱했던 부둣가 깡패들이 왕창의 부하들이었어. 큰 회장님은 여러 사업체를 갖고 있었는데, 운수업은 물론이고 대부업, 용역 등 각종 사업을 믿을만한 부하들에게 나눠줘서 경영하게 했거든. 아방소 박사, 나도 이유는 모르지만 다들 박사라 부르더군. 아마 큰 회장님 아랫 사람 중 대학까지 나온 유일한 사람이라 그랬을 거야. 아방소 박사는 운수회사를, 왕창은 용역을… 쉽게 말해서 깡패들을 관리하고 있었지. 왕창은 능력과 야심 그리고 인내심까지 갖춘 놈이었지만 그 땐 몰랐어. 여하튼 나는 아매를 구한 덕에 ‘사 숙(사 숙부)’을 만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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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숙은 누구죠?”
“방금 말했던 큰 회장님. 카지노를 포함해 다양한 사업체를 갖고 계셨지. 아방소 박사와 왕창 모두 ‘사 숙’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어. ‘부노사’가 본명인데 위로 형이 셋이 있어서 ‘사四’ 라는 이름이었던 거고, 우리 모두 그를 ‘사 숙’이라 불렀던거야.”
“그렇군요.”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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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매를 구한 덕에 사 숙을 만났다고 했어요.”
“그래, 아매를 구한 뒤 며칠이 지났을까? 내 친구 ‘남’이 도박장에서 재미를 봤다고 하며, 우리가 무조건 이길 거라며 나를 카지노로 데려갔어. 나는 도박장에서 너도나도 무조건 이기면 이미 카지노는 문을 닫았을 거라고 말했지만 ‘남’은 막무가내로 날 끌고갔어. 이미 눈이 돌아있었지. 그도 그럴게 주사위 게임으로 1,000달러나 땄다더군. ‘남’이 돈을 딴 비결은 다른 데 있던게 아니었어. 대륙에서 온 4명의 도박사가 둥근 부항기 모양의 나무병, 그 나무병 속 반구형의 유리병 안에 있는 3개의 주사위 소리를 듣고 배팅을 하면, ‘남’은 그들이 거는 곳에 걸어서 돈을 딴 거지. 주사위 3개의 합이 낮으면 스몰에, 합이 높으면 빅에 배팅하는 아주 간단한 게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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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을 나무병으로 덮었는데도 소리만으로 빅and스몰을 오차 없이 판단할 수 있나요?”
“그러니 도박사지. 당시 4명의 도박사들이 며칠간 딴 수천 달러 때문에 ‘사 숙’의 기분이 말이 아니었을 거야.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남’의 손에 이끌려 도박사들 뒤에 섰는데 그들의 대화를 들었어. 게임 테이블 맞은 편 계단에서 이곳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자가 ‘귀신의 왕’이라고 불리는 ‘섭오천’이라는 걸 말야. ‘남’이 얘기하길 그 역시 ‘사 숙’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도박의 귀신이란 칭호가 붙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더군. 그때 왕창이 ‘사 숙’을 에스코트 하며 도박장으로 들어왔고 4명의 도박사들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어.”
“뭐라고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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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지. 어찌됐건 왕창과 ‘사 숙’이 오고나서 ‘귀신의 왕 섭오천’이 직접 딜러로 나섰다는 거야. 그리고 그도 보기 좋게 실패했어. 4명의 도박사는 진정으로 통달한 자들이었다는 것. 그것만 확인했을 뿐이야. 섭오천이 게임에서 졌음에도 ‘사 숙’과 달리 왕창은 기분이 좋은지 이죽거리더군. ‘사 숙’은 무표정으로 자리를 벗어났고 왕창도 뒤따라 올라갔어. 나는 이유는 몰라도 4명의 도박사가 소리로 돈을 따고 있다는 걸 짐작했고, ‘사 숙’의 눈에 들 기회라 판단, 섭오천이 다시 주사위를 굴렸을 때 ‘남’과 함께 도박사들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지. 시덥잖은 소리도 덧붙이면서. 당신들 덕분에 우리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어서 고맙다는 그런 시시한 말들. 어서 배팅을 해서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달란 그런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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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대단하시네요.”
“그래. 대단한 기지였다. 4명의 도박사는 나와 ‘남’ 때문에 주사위 소리를 듣지 못하자 게임을 멈추고 자리를 떴어. 섭오천은 우리를 회장이 있던 간부 회의실로 데리고 올라갔지. 그곳에는 ‘사 숙’, 왕창 그리고 아방소 박사도 있었는데, 아방소 박사와 섭오천이 우리를 좋게 얘기해준 덕에 회의에 참여할 수 있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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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말을 멈추고 맥주로 목을 축인 하 아저씨는 내 접시에 익은 고기를 올려줬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기를 입에 넣었다가 바로 뱉었다. 양고기 식감이 아니었다.
“이건 양고기가 아닌데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팔아라. 인생을 사는 방법이지.”
“주문했던 고기가 개고기에요?”
“글쎄? 그냥 먹을 줄도 알아야 해. 인생을 살려면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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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아저씨는 양고기인지 개고기인지 모를 그 고기를 씹으며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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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사 숙’에게 각기 다른 의견을 냈다. 섭오천은 그들이 주사위 소리를 듣고 아는 것이니 시스템을 새로 만들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어. 왕창은 그동안 장사는 접을 거냐며 사람을 시켜 그들을 죽여서 바다에 던져버리자고 했고. 아방소 박사는 합법적 사업을 하는 중인데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수사를 시작할 것이라며 왕창의 의견에 반대했다. ‘사 숙’은 ‘그들이 스스로 들어왔으니 제 발로 나가게 하는 것이 옳다’면서 ‘돈을 딴다고 사람을 죽이면 도박장에 누가 오겠냐’고 했지. 나는 섭오천에게 대체 어떤 방법으로 구분하는 건지 물었어. 섭오천이 설명해준 구분법은 아주 간단해서 웃음이 나더라고.”
“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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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면 주사위를 머릿 속으로 떠올려봐. 둥근 홈이 한 개면 1, 여섯 개면 6이지.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주사위는 마지막에 유리병 바닥에 부딪히며 소리를 낼 거야. 1은 가장 낮은 소리가 나고, 6은 가장 높은 소리가 난다. 자, 그럼 어떻게 게임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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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는 마주보는 두 면의 합이 7이죠. 1이 아래로 갔다는 건 6이 위에 있다는 얘기고, 6이 아래로 갔다면 1이 위에 있다는 거에요. 바닥에 닿을 때 음의 높낮이로 구분했다는 건가요?”
“그렇지. 그 도박사들은 유리병 바닥에 주사위 3개가 부딪힐 때 낮은 소리가 나면 상대적으로 높은 숫자들이 떴다고 판단해서 빅에 배팅했고, 그 반대였다면 스몰에 배팅해온 거야. 그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서 게임을 해온 거지. 정말 대단한 자들이야. 섭오천 그 양반이 해결할 때 까지 시간을 달라고 했던 것도, 주사위가 유리병 바닥에 부딪힐 때 발생하는 소리를 막을 방법을 고민해야 했기 때문인거고. 그러나 내가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사 숙’과 섭오천의 눈에 들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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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바닥에 천을 깔자고 했겠군요.”
“G, 때론 답을 알아도 인내할 줄 알아야해. 그래, 벨벳을 깔아서 소리를 막자고 했어. 우리는 평화롭게 4명의 도박사들을 이김과 동시에 그들 스스로 도박장 밖으로 나가게 했고, 카지노 사업은 더욱 번창했어. 나도 ‘사 숙’ 밑에서 다양한 일을 해결해내며 세력을 늘려갔지. 아방소 박사의 딸인 ‘아매’와 결혼을 준비하던 때도 그 때야. 좋은 일도 있었지만 나쁜 일도 있었지. 왕창하고는 사사건건 부딪혔어. 서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사건은 바다 위에서 대만 조직과 물건 거래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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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서요?”
“원래는 왕창이 자신이 간다고 했는데 말을 바꿨지. 그는 후배들을 키워야 한다며 나와 ‘남’을 적극 추천했어. ‘사 숙’ 역시 젊은 인재들을 키워야 한다는 왕창의 명분에 동의 했기에 우리를 보내기로 했지. 나와 ‘남’은 미심쩍었지만 출발했고, 그렇게 몇날 며칠을 바다 위에서 거래 대상을 기다렸어. 반대편에서 한 척의 배가 다가왔는데 거래 대상이 아닌 해적들이었지. 용맹하게 맞서 싸운 ‘남’ 덕분에 간신히 해적들을 전부 죽여버리긴 했다. 문제는 전부 죽었기 때문에 왕창이 정보를 흘렸다는 심증만 있었다는 거야. 어찌됐건 살아남은 소수의 우리 조직원들과 함께 마카오로 귀환했어. 응접실로 들어가 ‘사 숙’에게 진상을 밝히려던 찰나 왕창이 떠들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
“뭐라고 했는데요?”
“내 얼굴은 이마가 넓고 광대가 두드러져서 단명할 관상이 아닌데 참 아깝게 됐다고 지껄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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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볼 줄 아는 자였군요.”
“결과적으로 그런 셈이야. 응접실로 들어가자마자 ‘남’은 왕창이 배신했다고 울분에 차 얘기했지만 ‘사 숙’은 신중했어. 왕창은 그의 오른팔이었으니까. 나는 왕창의 입에서 자백을 받아내야 했어. 그러나 증인은 없었지. 어떻게 했을까?”
“몰라요.”
“진짜 몰라서 모른다고 한거야? 네 생각을 말해봐.”
“음, 저라면 일부러 거짓말을 했을겁니다. 왕창이 도발에 걸릴만한 거짓말을 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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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좋아. 나도 그렇게 했어. 우리가 해적 두목의 부인과 아이들을 붙잡았고, 그들을 인질로 삼아서 배후가 누구였는지 자백을 받아냈다고 말야. 가족의 목숨과 자신의 명예를 걸고 스스로 숨을 끊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못 왔지만 진실된 증언을 했다고. 왕창이 걸렸으면 좋았겠지만 그놈의 부하가 걸렸어. 왕창의 부하 중 한 놈이 애꾸눈 조는 미혼인데 어찌 부인과 아이들이 있겠냐고 큰소리로 대꾸했지. 왕창의 얼굴에 아주 잠깐 당황스러움이 스쳐지나갔지만 그의 행동이 더 빨랐어. 허리춤에서 칼을 뽑음과 동시에 배신자를 처단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입을 열었던 부하를 걸레짝으로 만들더군. 그리고는 ‘사 숙’에게 부하를 보는 안목이 없었음을 사죄하며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순식간에 잘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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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군요.”
“그래 맞아. 대단히 지독한 자야. ‘사 숙’은 변절한 부하를 두었지만 새끼손가락을 스스로 자르며 사죄를 요청한 왕창을 용서하기로 했고, 나도 그즈음 결혼을 했어. ‘아매’와. 근심 걱정 없던 결혼식을 하나 싶었는데 놀랄 수 밖에 없었어. ‘부가준’ 그리고 그의 아내가 나타난거야.”
“‘부가준’이 누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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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홍콩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가장 잘 살았던 놈. ‘사 숙’의 이름을 기억해봐라.”
“아, 부노사. 부씨 집안의 넷째여서 부노사를 ‘사 숙’이라 불렀다고 했죠.”
“맞아. ‘사 숙’의 외동아들이 ‘부가준’이었던 거야. 그리고 그의 배필은 ‘정락아’. 내 첫사랑이었지.”
“참 얄궂네요. 운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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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그래, 맞아. 그래도 무탈하게 결혼식은 끝났어. 결혼식 끝나고 며칠이 지났을까? 섭오천이 내게 단 둘이 훠궈집에서 식사를 하자고 했지. 섭오천은 내게 스승님 같은 사람이야. 그는 도박의 귀신이면서 사람도 꿰뚫어보는 자였지. 나하고 섭오천이 밥먹은 훠궈집 그게 여기야. 그리고 우리가 앉은 자리지.”
“아까 빈자리 많았는데도 내 앞에 앉은 이유가 그래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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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았을 뿐이네. 젊은이. 다만 마카오 제일의 양고기 식당에서 다른 고기를 시킨 건,,, 맞아. 이 자리에서 섭 선배에게 배운걸 자네에게 써먹은 거야. 양고기를 걸어두고 개고기를 파는 게 인생이라고 했거든. 섭오천은 나를 볼때면 자신의 젊은 날을 보는 것 같다고 했어. 야망있고 능력있고 마음이 넓다면서. 동시에 우리 같은 부류는 상관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했지. 자신은 ‘사 숙’에게 견제를 받아서 마카오를 떠나 상하이로 간다고 했어. 그리고 차기 후계자인 ‘부가준’과 조직의 기둥인 ‘왕창’에게 미움을 받는 내가 걱정된다면서 인내심을 기르라고 조언해주더군. 비가 쏟아질 땐 우산을 쓰고 목적지까지 걸어갈 게 아니라, 비가 그칠 때까지 처마 밑에서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야. 말을 마친 섭오천은 덕담을 들었으니 나보고 계산 하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상하이로 떠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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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비가 멈추길 기다렸나요?”
“글쎄… 여하튼 섭오천이 상하이로 떠난 뒤, 나는 본격적으로 조직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해나가며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사 숙’이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말야. 납치범들은 ‘사 숙’의 한쪽 귀를 잘라서 회사로 보내며 100만 홍콩 달러를 요구했어. ‘부가준’은 절대로 돈을 줄 수 없다고 했지. 마카오 달러는 준비돼 있어도 홍콩달러는 준비되지 않았기에 기한 내로 돈을 못 구한다고. 대신 인력을 총 동원해서 납치범들의 잡아 목을 따겠다고 했어. 일단은 염 숙부가 홍콩으로 넘어가서 돈을 구해오겠다고 했어.”
“저는 부가준이 의심스러운데요? 근데 염 숙부는 누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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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숙부는 하염. 어릴 때 어머니가 나를 마카오로 보내며 찾아가라고 했던 삼촌이야. 거물이 되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부가준, 그래. 나도 의심했지. 왕창의 부하가 배신하기 전까지 말야.”
“또 왕창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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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왕창이지. 왕창의 부하 ‘두턱’이 나와 ‘남’을 찾아왔어. 왕창 보다는 ‘사 숙’을 따르던 녀석이었거든. 우리 셋은 납치범들의 소굴을 습격해서 ‘사 숙’을 구출했지만 뒤에 들어온 경찰들과 부가준, 왕창에 의해 체포됐어. 경찰이 오기 전에 먼저 ‘사 숙’을 구했던 정황으로 볼 때, 납치를 계획한 범인으로 보이고 일이 틀어지자 구출하는 쇼를 했다. 그게 우리의 죄목이었지. 감옥에 갇혀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고 온갖 협박을 당했지. ‘두턱’은 거짓 증언을 강요받았지만 버티다 죽었어. 왕창은 날 찾아와서 어차피 나는 사형장에 들어갈거라 했지. 나는 죽어도 ‘남’과 ‘아매’를 살리고 싶다면 무릎을 꿇고 진심 어린 사과를 담아 세 번 머리를 박으라 했고 나는 했네. 왕창은 내 모습을 보더니 한참을 비웃더군. 사람이 이렇게 순진해서 어디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염 숙부가 마카오 총독부터 시작해서 사방팔방에 돈을 찔러줘서 나와 ‘남’, ‘아매’ 셋이 마카오 밖으로 10년간 추방당하는 걸로 판결이 바뀌었다고 했어. 왕창의 비릿한 웃음에 난 참지못하고 그의 목을 물어 뜯었지만 죽이진 못했다. 내 앞니가 없는 걸 열두살 이후 그때만큼 후회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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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아저씨의 마지막 말은 나를 서늘케 했다. 창문은 열려있었고 밖으로 비가 오고 있었으나 그 때문이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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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아매, ‘남’과 함께 마카오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었지.”
“근데 지금 저랑 이렇게 마카오에 있는 훠궈집에서 대화하고 계시잖아요.”
“그래, 그렇지. 10년이 걸렸지만 마카오에 돌아왔지. 결국엔 말야. 왜 돌아왔는지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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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죠. 그리고 왕창, 부노사 회장, 부가준, 하염, 섭오천, 하 아저씨와 같이 홍콩으로 쫓겨난 남 아저씨, 그리고 아매 아주머니, 마지막으로 부가준의 아내가 된 왕조현을 닮았다던 아저씨의 첫사랑 그녀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요.”
“그건 내일 얘기해줄게. 밥 값은 네가 내라.”
“저는 카지노에서 100달러나 잃은 가난한 외국인인걸요?”
“내 얘기 재밌게 들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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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아저씨는 말을 마치자마자 식탁 위에 젓가락을 내려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식당을 나갔다. 그가 마카오에 어떻게 돌아왔고 다른 사람들은 지금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등의 남은 이야기를 내일 얘기 듣기로 했는데, 언제 어디서 만날지 약속을 정하지 않았단 게 떠올랐다. 그러나 이미 하 아저씨가 차를 타고 떠난 뒤였다. 4인 분의 훠궈와 4병의 맥주를 이야기 하나로 퉁치다니.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싸게 먹혔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오늘은 돈 나가는 날인가보다 싶어 속이 쓰렸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다시 하 아저씨를 만날 수 있을까? 밥 먹는 동안 비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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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는 넷플릭스에서 확인하세요. 영화 제목은 유덕화 주연의 [도성대형-신가전기] 입니다. 하 아저씨, 그러니까 ‘하신’ 역할을 유덕화씨가 맡았습니다. 첫사랑 그녀는 왕조현, 아매는 구숙정 배우가 열연했고요. 이상 마카오는 살면서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방구석 영화광이었습니다. 여행가서 우연히 만난 아저씨의 입을 통해 들은 재미난 이야기 처럼 영화 줄거리를 풀어가고 싶어서 이렇게 써봤습니다. 스포일러에 분노가 치미신 분들껜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저는 영화 재밌게 봤어요.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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