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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중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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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322 회 작성일 24-02-16 07:3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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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으로 한동안 시끌시끌했습니다. 트럭시위도 있었죠.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보며 느낀 점도 많았습니다. 용의 눈물 세대인 저에게 사극에 대해 개인적으로 정리해볼 좋은 기회다 싶어서
1주 정도 스페셜방송으로 비는 시간을 틈타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를 몇 자 써보고자 합니다.
사실 2차 여요전쟁 직후부터 쓰고 싶었습니다만, 미루고 미루다 쓰는 까닭에 분량이 늘어졌습니다.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평가만 보고 싶으시면 스크롤을 내려서 [고려거란전쟁 살펴보기] 부터 보시면 되겠습니다.[나는 사극의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가]

평가를 하기 전에는 평가 기준을 명확히 하는게 좋을 겁니다. 우선 개인적인 평가 기준을 정하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사극은 참 이상한 드라마 장르입니다.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정의상 스토리라인을 이미 알고 있죠. 게다가 아무리 역사가 길다하되, 드라마화 할 수 있는 시대는 한정적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임진왜란, 여말선초, 대한제국 시기가 있겠네요.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한산대첩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승리해야하고,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킬 겁니다. 이 사건은 태산과도 같아서 움직일수도 없고 바뀌어서도 안됩니다. 
그렇다면 사극은 미리 정해진 이야기를 밋밋하게 늘어놓는 장르에 불과한 것일까요? 레시피가 정해져 있어서 똑같은 음식만 나오는 그런 드라마일까요?

아닙니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는 기록에 남겨지지 않는 공백의 부분이 있거든요. 계획을 논의하고 필요한 물건을 준비한다든지, 사소한 계기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좋아지거나 틀어진다든지, 결정을 내리기 전에 고뇌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제가 사극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바로 이 공백 부분으로, 여기를 얼마나 그럴듯하게 설명해내고 표현해내는가가 사극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사실상 절정 부분인 역사적인 이벤트보다 이벤트의 빌드업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것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역사 이벤트는 어지간해서 이미 정석처럼 나와있기 때문에 오히려 표현이 쉽다고 보거든요. 오히려 그 이벤트를 생생하게 만드는 것은 이전의 사전작업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 지점이 사극으로 하여금 소설/애니 원작의 영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기반으로 해서 영상화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지만 소설/애니는 모든 설정과 전후관계가 다 세세히 잡혀져서 영상화는 그걸 얼마나 만족스럽게 구현해내는지가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물론 고려거란전쟁도 원작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있었다가.. 없어졌지요? 그러니 단순한 소설 원작구현의 이상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역사 이벤트가 벌어지지 않는 가상의 과거시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사극이라 부르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건 그냥 시대극이죠.)  

그래서 저는 이 공백 부분의 표현을 위해서라면 가상 인물의 등장도 OK하는 편이고, 가상의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세상의 일이 어떻게 역사 기록에 기록된 사람만 관여해서 돌아가겠습니까. 이름 없는 장삼이사의 오해나 실수에서 큰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게 아닐까요? 역사에 기록도 안된 사소한 부분이 사실은 거대한 일의 시작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그런 관점이 더 재밌습니다. [나는 사극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공백 메우기’가 사극의 미덕이라면 이 미덕을 어떻게 구현해야 좋은 사극이라 평가할 수 있는 걸까요?  뒤집어 얘기하면 망한 사극은 무엇을 망했다고 하는 걸까요?
저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극이 역사에 끌려다니면 안된다.

‘역사적 사실’은 바꿀 수 없습니다. 이 점은 사극에 모든 것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극 중에서 극 전개의 내적 부실함을 가리는 변명으로 쓰여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시1) OO라고 하는 나라가 AA전투에서 크게 승리하는 내용을 사극으로 옮긴다고 합시다. 극중에서 OO나라의 장군들이 전쟁 준비를 합니다. 근데 보기에도 준비가 어설픕니다. 그리고 장군들의 대사에서 나타나는 전략적 식견이나 전투를 마주하는 디테일이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깁니다? 어? 이상하게 상대 병사들이 추풍낙엽으로 쓰러집니다? 그리고 드라마는 끝까지 이유는 안가르쳐주고 승리를 기뻐하면서 끝납니다. 야! 대체 어떻게 이겼어?

예시2) 명재상으로 소문난 XXX 대감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극입니다. 궁중의 암투가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상대는 치밀하게 음모를 꾸몄고, 같은 편 동료들은 이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이 음모가 실행되고 주인공 XXX대감은 역모죄로 몰릴 위기에 처합니다. 어?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사실 XXX 대감은 넘나 쎄고 똑똑하기에 남들과는 다르게 상황 돌아가는 것을 모두 손바닥처럼 알고 계셔서 이미 상대의 음모에 대한 카운터의 카운터를 이미 다 생각해 놓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와 대감님 짱짱맨?

이것은 공백의 지점을 해명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만 지나치게 기대어 아무 말 전개를 하는 것이죠. 저는 이런 상황이 나타날 때 극이 역사에 끌려다닌다 라고 부릅니다. 여러분도 사극을 보다가 전개가 인공적이라든가 작위적이라든가 그런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고려거란전쟁 드라마 내에서도 여러번 나타납니다. 그 부분은 좀 있다가 쓰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써야 할까요? 극중 인물들이 자신의 운명을 모른채 열심히 움직여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약속된 승리 또는 보장된 영광을 향해 게으르게 움직이는게 아니라. 주어진 위치, 상황 그리고 시대적 한계라는 틀 안에서 최대한 몸부림치고 발버둥쳐야 합니다. 그 최대한의 몸부림과 발버둥이 종횡으로 엮여서 제가 머리로만 알고 있던 역사적인 사실로 비로소 구현될 때 ‘빌드업이 주는 쾌감’을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읽을 때는 그냥 사서 한 줄의 표현이었지만 내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있었구나. 하면서요.

- 인간은 시대의 산물이다. 그리고 여전히 인간이다.

사람은 시대의 산물이고 사람의 인식과 생각은 그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아이디어는 대개 설익었거나, 주변의 반대와 배척에 사장되기 일쑤죠. 사극의 등장인물은 어떠해야 할까요? 그 등장인물도 분명히 시대의 한계에 갖혀있어야 합니다. 21세기의 우리에게는 설혹 이상해 보일지라도요.

사극에서 주로 일어나는 실수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과거를 재단하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등장인물이 근대 이후의 개념을 읊어대거나, 그 시절 사람이 모를법한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폭탄주를 말거나, 인권을 운운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그들의 머리속에 있을 수 없는 단어와 행동입니다. 그 시대에 걸맞는 문화 속에서 행동양식과 판단기준 또한 그 시대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야 성리학적 사고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고, 고려 초중반에는 확실히 불교문화권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최소 일제시대 이전의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과 생각과 경험의 틀이 아주 다릅니다. 이 땅에서 살았다는 것만 같을 뿐, 시간대의 차이로 인해 사실상 외국인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심지어 언어도 쉽게 통하지 않을 겁니다) 가능하다면 그 다른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최소 고려시대 무장이 ‘새술을 새부대에 담자’라는 말을 뱉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극을 쓰고 이해하기 위해 그 시대의 문화사와 지성사까지 다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냐. 그렇게까지 깐깐해야만 하는것이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한편의 솔루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개인적인 욕망에 집중하자는 것이죠. 더 강한 권력, 가문의 발전, 보편적인 신념의 충돌 같은 것들이요. 이것들은 시대가 다르고 인물이 다르게 변주되더라도 주제는 같습니다. 그 주제를 치열하게 탐구할 때 비로소 공감이 발생하고 서사에 대한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고려거란전쟁 살펴보기]

- ‘강조’와 ‘현종의 몽진’

저는 고려거란전쟁이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두 가지를 중요하게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강조’와 ‘현종의 몽진’입니다.

강조는 한국역사에서 상당히 이례적이고 복잡한 인물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권신이면서 충신이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죠. 반란 자체도 뭔가 의사소통이 꼬여서 벌어졌다는 의혹이 강합니다. 반란의 성공 후, 그가 권신의 자리에서 10년 정도만 있었더라면 어떤 인물이었는지 훨씬 파악하기 쉬웠겠으나, 제가 알기로 황제를 현종으로 바꾸고 1년만에 거란 진영에서 죽습니다. 1년은 스스로조차도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내리고 표현하기에 부족한 시간이죠. 후대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인물이 드라마에서 어떻게 표현되느냐는 저에게는 꽤 호기심이 동하는 일이었습니다. 결론은..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드라마에서의 등장은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처지의 애매모호함도 살리면서 동시에 본인의 개성을 강렬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종 앞에서 청자를 부숴버리는 모습은 당시에도 지나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겁박하는 장면이 아니라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한탄이 섞인 대사를 같이 하거든요. 또한 어린 황제인 현종의 성장하는 모습? 떡잎이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기에도 적절한 재료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명장면으로 뽑는 부월씬은 사실 KBS사극 올타임에서도 손꼽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씬입니다.

현종의 몽진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저는 몽진 스토리라인을 꽤 기대했거든요. ‘런’이라는 접두사로 시작하는 역대 몽진 군주 중에 현종이 가장 고평가를 받기도 하거니와, 몽진 중 공격받은 기록, 몽진 중 황후를 맞이한 로맨스 기록까지 있지요. 솔직히 이만하면 재료가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방랑하는 젊은시절 주인공’ 컨셉은 그동안 한국사극이 그렇게나 욕먹으면서 노하우를 쌓아온 분야가 아니겠습니까? 이러저러한 역경을 겪고 사랑의 도움과 함께 훌륭한 군주가 되는!! 뭐 그런 왕도형 성장 스토리를 어떻게 꾸밀까 꽤나 기대했습니다.
결과는.. 결과는 좀 애매했습니다. 우선 몽진의 전체과정에 있어서 그렇게 큰 위기감이나 압박감을 느끼질 못했습니다. 거란군도 호족도 유의미한 타격을 주지 못한데다, 항상 깔끔하고 반듯하게 다려져 있는 황제의 의상은 긴장감을 주기에 상당히 부족했죠. 언제 적이 빠르게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미지의 공포가 매순간 감돌아야 하는데, 딱히 그런 표현은 없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등산 장면들이 힘들어보이기는 했는데, 대신 좀 느긋해보였습니다. 드론으로 넓게 찍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구요. 김장훈님의 노래는 뜬금없었습니다.

이는 연기자의 배치로 인한 부분도 있었다고 봅니다. 몽진 이전까지 인물 배치상황을 보면 흥화진의 양규, 귀주의 강조, 개경의 강감찬-현종 체제입니다. 이게 드라마적으로 상당히 밸런스가 좋았던 것이 양규는 사이드킥과 함께 앞에서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고, 강감찬-현종은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느라 동분서주 합니다. 강조는.. 강조는 최종보스의 강력함을 알려주기 위해 몸소 희생되는 역할이구요. 이 배치구도에서 현종역을 맡은 김동준 배우의 부족한 사극 경험을 강조와 강감찬이 번갈아 옆에서 꽤나 잡아주었다고 봅니다. 베스트 커플 상도 탔죠 아마?
그런데 몽진 이후로, 정확히 강감찬과 현종이 나뉘는 시점부터 밸런스가 상당히 깨집니다. 거란이라고 하는 큰 재앙에 맞서 각자가 자신의 일을 하는게 아니라 모래알처럼 따로 개인기를 부리는 모습이 강했어요. 사실 개인기도 아니죠. 강감찬 혹은 최수종 배우의 원맨쇼라고 해야 더 맞을 겁니다. 솔직히 강감찬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 자체로 기능했죠. 그동안 다른 두 명의 메인 배역, 양규와 현종은 빛을 바래갔습니다. 양규는 딱히 급에 맞는 적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현종은? 도망 말고는 할게 없죠. 사실 작가들도 이 부분 고민을 한 모양인지 박진이라는 가상 캐릭터도 만들어서 이재용 배우에게 맡겨놓았습니다만..  뭔가 엇박자만 났습니다. 이 캐릭터 이야기는 뒤에 하지요.
그 때는 왜 몽진을 이렇게만 풀었지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몽진 에피소드를 그저 이후 호족 에피소드(그렇게 욕을 먹는)의 밑재료로만 생각했구나 싶습니다. 사실 몽진 에피소드는 현종을 위한 게 아닙니다. 김은부를 위한 서사였죠. 제 기대와는 다른 부분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제가 기대한 부분에서는  1 만족 1 실망 정도의 점수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전쟁사극과 제작비

고려거란전쟁 갤러리 등 여러 사이트를 보면 뭔가 화려하면서 거대한 전투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투가 자꾸 소형화되거나 스킵되는데에 대한 불만도 있는 것 같구요.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데 왜 이모양이냐는 글이 많습니다. 근데 제가 보기에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전투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야외 촬영의 시간 확보부터가 안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빠르게 후다닥 넘어가는 모습이 몽진 씬을 비롯, 소소한 야외씬에서도 종종 보입니다. 그런거야 다 넘어간다 치는데.. 저는 특히 양규 장군의 최후 에피소드를 좀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양규 장군이 왜 마지막에 돌격하는지 이해하셨습니까? 갑자기 본군이 도착하고 충분히 도망칠 수도 있어보였는데 그냥 들이박습니다. 딱히 의견을 주고 받는 장면조차 없어요. 왜? 이유는 없습니다. 양규와 김숙흥이 거기서 죽어야 하는게 역사여서겠지요. 앞서 말씀드린 ‘극이 역사에 끌려다니는’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안끌려다닐 수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연출동선을 잘 짜서 그들이 시간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을 시청자에게 납득시키면 되죠. 사실은 조금만 시간을 끌려고 하는게 본심이었는데, 너무 신내다가 포위당해버린 탓에 ‘이렇게 된 이상 거란황제에게 돌격한다’ 정도로 가거나, 거란황제가 성가신 놈을 잡기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되서 잡자는 계책을 성공시킨거라거나, 아예 판타지로 거란으로 끌려가는 강감찬을 구해내기 위해 무리했다든가, 아니 뭐든 상황을 주어야 할 것인데 전혀 그런게 없어요. 심지어 바로 직전 상황이 거란의 포위작전을 손쉽게 회피했다는 내용이니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겁니다.   
돌격 이후 전투씬도 일견 화면 때깔은 좋았습니다만, 내용은 별게 없었습니다. 왜 김숙흥과 양규를 떨어뜨려놓았을까요? 아니 왜 떨어뜨린 채로 끝냈을까요? 마지막에 서로 등을 맡기면서 싸우는 거 한번 넣어도 좋았잖습니까. 각자 주먹이나 치다가 서로 이름만 외치면서 죽는 것보다는 좀더 낫지 않았을까요? 연출이 작위적이라구요? 아니 그럼 거란황제는 왜 그 상황에 몸을 드러낸 채로 싸우는거 구경이나 하고 있게 배치했답니까? 뽕이 차야 하는 구간에 김이 샌거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그리고 김숙흥은 언제 화살을 맞은걸까요? 저는 김숙흥의 캐릭터가 중간부터 붕괴되었다고 봅니다. 뭔가 사연있는 복수귀인것 같았는데 조금씩 진지함이 줄고 명랑함이 늘더니 명랑한 살육머신 정도의 위치가 되어버렸죠. 김숙흥 첫 등장씬과 비교하면 마지막 등장에서의 분위기는 좀 다릅니다. 저는 김숙흥의 과거 회상이 유치하더라도 한 번 정도는 나올줄 알았습니다. 그래야 캐릭터에 몰입을 하지요. 마지막 전투의 먹먹함을 주려면 더 그래야 했습니다.

이쯤되면 처음의 흥화진 전투가 대체 뭔가 싶죠. 그 전투는 구석구석 디테일이 참 가득했었는데요. 아무래도 거기까지만 사전 제작이 아니었는가하는 의심이 강하게 듭니다. 아니면 그 전투에만 제작비의 20% 정도 쏟았다던가. 왜냐면 이후의 에피소드들에서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고민한 흔적이 잘 안보여요. 역사에 끌려 빠르게 달려가기만 급급합니다. 대사의 품질도 급격하게 하락하고, 캐릭터들도 본인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크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차피 벌어져야 하는 일인데 뭐하러 고민할 시간을 주냐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매우 별로입니다. 왜 이럴까 싶은 와중에, 스튜디오 촬영이 많은 호족 에피소드에서부터 인물들의 행동이 그나마 디테일하게 잘게 쪼개지는 것을 보고, 아무래도 야외 촬영 자체를 충분하게 소화할 시간이 없었나 보다고 결론 내리기로 했습니다. 씬을 다양하고 많이 찍어서 편집할 만한 시간적인 한계가 있는 것 같아보였거든요. 돈보다는 시간의 문제 같아보였습니다.

- 기타 등등

현쪽이 논란이 있었죠? 서두에 말한 트럭시위도 아마 그것때문인 것으로 아는데요. 저는 그 호족 에피소드의 전체의 존재 가치를 낮게 평가하지만, 해당 전개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현종이 그 시점에 불같이 화를 낸 것도 이해하고 답답해서 말달리다가 낙마한것까지도 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이해할 수 없는건 현종이 하필 그 기가막힌 타이밍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바로 그 부분입니다. 작가가 너무 수가 얕아요. 너무 속보여요. 작위적인 갈등을 작위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기능적인 장치로서 일부러 낙마까지 시키는 무리수를 쓴게 너무 뻔히 보이고, 그걸 뭘 어떻게 연출이나 연기로 숨기려고 한 것 같지도 않아보여서 더 짜증납니다. 1인자의 혼수상태 후 회복 스토리.. 이건 태조왕건 종간 때부터 써온 전개 수법이에요. 이렇게 짜친 느낌으로밖에 못하느냐는 것이 제 불만입니다. 심지어 빌드업 시간도 그렇게 충분히 배분했으면서 말입니다.

원정황후의 캐리건화 논란도 있던데, 저는 이것도 좋게 봅니다. 왕손으로만 몇십년 보낸 황실에서 외간여자가 들어왔는데 충돌과 갈등이 없는게 오히려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구요. 나아가 원정황후가 본인 스스로에게 부여하고자 한 이상적인 셀프 이미지와 실제로 가슴에 느껴지는 자신의 인간적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도 저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간으로 연기하는 배우도 오랫만이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시아 배우는 또방원 드라마가 나오게 되면 원경왕후 후보군으로 유력히 고려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진 아저씨...는 아직 훈앤질 반란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도대체 어떻게 최후가 그려질까 궁금한 가상인물인데요. 이렇게까지 오래 쓸 거였으면 적절히 유능한 육체파 사이드킥도 드라마 초반에 같이 줬어야 했다고 봅니다. 너무 혼자서 다하잖아요! 이것도 제작 중간에 방향성이 바뀐게 아닌가 싶구요. 근데 역시나 훈앤질 반란의 배후인물로까지 쓰는건 솔직히 좀 억지스럽습니다. 누가 옆에서 거세게 충동질하지 않아도 상당히 납득이 가는 사유의 반란이거든요. 나라를 지켰는데 돌아오느게 밥그릇 뺐어가는 거라면 누가 안 빡치겠습니까.
이번주에 곧 반란이 일어나고 또 (급격히) 정리될 텐데, 어떻게 전개될지 보고 판단하려합니다. 여전히 저는 박진을 호족 에피소드까지의 최종 빌런 정도로 쓰고 이후 퇴장시키는 것이 최선이고, 3차 여요전쟁까지 살아남아서 조정을 뒤흔드는 흑막으로 행동하는 것은 최악이라고 봅니다.

호족 에피소드는 통째로 들어내도 솔직히 드라마 전개에 아무 영향없다고 봅니다. 특별출연 두 분도 죄송하지만 등장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몽진 끝나고 ‘황후를 맞이했다’ ‘전쟁을 다시 준비해나갔다’ 나레이션 하나 넣으면서 거란 사신 압록강 넘어오는 씬 집어넣어도 진짜 아무 상관 없었다고 봅니다. 호족과 중앙조정과의 충돌을 그리고 싶을 수도 있긴 한데, 시작부터 전쟁 후 ‘모두를 용서한다’며 사면령을 내리면서 ‘하지만 호족은 족칠거임 크크’ 하는 식이라면 전개에 무엇을 봐야 하나 싶습니다. 저는 여기서 현종 캐릭터가 돌이킬수 없이 많이 상했다고 봅니다.

곧 드라마의 마지막을 장식할 3차 여요전쟁인데요, 역사적으로는 전장 발발 전 꽤 많은 등장 인물이 죽습니다. 일단 원정황후 / 장연우 / 김은부가 죽습니다. 용의 눈물이나 태조 왕건 같으면 한 명씩 10분 정도 충분한 유언의 시간을 가지면서 보내드리겠지만, 이 드라마는 그럴 여유는 없어보입니다. 
살린 채로 전개하려나요?  어느 날 갑자기 뿅하고 등장하지 않게 하려나요? 이렇게 된 이상 각성한 최질이 다 죽이려나요? 어?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빌드업을 줬던 이현운 - 대도수를 단 한 회 안에 싹둑 잘라내는 것도 봤는데, 이거는 못할게 또 있나 싶네요. 이현운 그렇게 보내긷엔 좀 아까웠습니다. 드라마 초반부의 긴장감은 솔직히 이현운이 다 만들었다고 봅니다.

[결론]

저는 고려거란전쟁이 극단의 양면성을 가진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잘 준비하면 한국 사극이 어디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제시한 작품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그런 사극도 준비나 지원이 어설퍼지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느냐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작품 전체를 갓/망 한 글자로 정리하거나 5점 만점의 평점을 주기는 참 곤란합니다. 아직 다 끝난 것도 아니구요. 귀주대첩이라는 비장의 카드도 아직 있지 않겠습니까? 잘만 표현한다면 그동안의 불평을 뒤집기는 충분할 겁니다.

근데 딱히 뭔가 기대가 잘 안됩니다. 이기기야 하겠죠. 강감찬이 잘하고 기병이 후방을 치고 뭐 그렇게 해서. 멋있기도 할 겁니다. CG도 무척 때려부을겁니다. 근데 대사로 혹은 연출적으로 긴장감을 올리거나 하는 것은 이제 기대를 못하겠습니다. 그냥 밋밋하고 평이할 것만 같습니다. 
끝나지도 않은 드라마 리뷰를 지금 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이제 이 드라마에 기대치가 크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피겨 프로그램에서 이미 점프 실수를 몇 번 했는데 뒷 단계를 아무리 잘한들 무슨 소용일까요.  그나마 약속된 뽕이나 제대로 한 사발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람 정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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