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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문을 열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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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629 회 작성일 24-04-30 00: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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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밖에 나갔다 왔니?]

저는 원래 집에 들어오는 순간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일이 없으면 방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히키코모리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친구들과 만나기 위한 외출은 종종 했으며 디스코드로 친구와 대화하며 게임을 하고, 회사를 나가서 일하는 등의 사회적인 활동도 충분히 했습니다. 한동안 집에 돌아왔을 때 제 방문은 항상 단단하게 걸어잠궈져 있었습니다.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한국 사람은 집에서 혼자서 쉬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다’ 는 사람의 전형 중 하나가 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 바로 어머니께 ‘어제 나갔다 왔어? 나갔는지 몰랐네’라는 이야기를 외박하고 집에 돌아온 다음날 오후에 집에 들어오면서 들은 일이었습니다. 전날 점심때 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잠을 자고 돌아올 때까지 집에 있는 그 누구도 제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이 사실은, 저에게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그로톡 무관심하지는 않은데 왜 집에 있는지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사실 조차 모를 정도로 소통이 불가능한 단절을 가운데에 두고 지내고 있게 됐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아파트, 방, 문, 단절]

최근 셜록 현준님의 영상을 많이 보면서 현재 제 주거 공간이 어떻게 제 삶을 영향을 주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굉장히 인상 깊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아파트 방들에는 거실을 향하는 창문이 필요하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해당 글에서 셜록 현준님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축에서 벽은 공간을 나누고 단절하는 장치이며, 문은 벽을 뚫고 두 공간을 적극적으로 연결해주는 장치이고, 창문은 시각적으로만 소통하게 해주는 소극적 연결 장치이다. 사람 간에 가장 좋은 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관계가 너무 가까우면 사생활이 없어지고, 관계가 끊어지면 외롭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주는 건축 장치는 창문이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항상 굳게 걸어잠겨 있는 제 방의 문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가족이 단절돼있던 것이 세대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 같은 것에서도 기인하는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소통 자체의 총량이 모자란 것이 주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치 제 블로그의 디자인이 변화하면 기존에 제가 작성해 뒀던 글이 주는 경험이 여태까지 주던 것과는 다르게 변하는 것과 동시에 이후에 작성한 글들이 변화했던 것처럼, 제 방의 디자인을 바꾸는 것을 통해 가족과 단절된 시간을 줄이고 연결되어 소통하는 시간을 늘리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방 문을 열어 프라이버시를 잃고, 가족을 얻었습니다]

유현준 교수님께서 가장 이상적인 소통 방식으로 방에 창문을 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전세집인 이 아파트에 창문을 뚫는 시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차선책으로 제 방 문이 기본적으로는 열려있는 상태가 되도록 변화를 줬습니다. 이전에 방에 들어오면 문부터 닫았다면, 지금은 제가 방에서 혼자 조용하게 해야 집중해야 하는 시험을 보는 등의 일이나, 전화 통화 같이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하는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이제 동생이 공부하다가 간식을 먹으려고 주방에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같이 먹자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됐습니다. 어머니께서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에 어떤 사람이 나오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식사 준비를 위해 칼질하는 소리를 듣고 옆에서 이를 도와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방 문을 열어 프라이버시는 잃었지만 대신 가족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치며]

물론 집에 돌아와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갖는 것은 재충전을 하는 데에 있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 역시도 이런 글을 쓰는 게 가장 잘 되는 시간은 가족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에 혼자 음악을 틀어놓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하지만 저는 집에서 모든 순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추구하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내 삶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삶도 이루어 가족의 일원으로써 함께하고 외롭지 않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렵지만 제 방 문을 가능한 열어두는 것을 선택했고 그 결정에 만족합니다.

응답하라 1988과 같은 가족 드라마에서 나오는 가족들은 풍족하지도 못하고 갈등이 계속해서 발생하지만 그들이 끈끈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같은 공간과 시간을 요즘의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공유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요즈음 그 시절 가족들은 다툼이 있었지만 더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하고 친했으며, 외롭지 않고 행복했다 느꼈던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아파트에는 벽이 있고 그 방문이 굳게 걸어닫혀있는 것이 기본 상태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

- [집에선 쉬고 싶은 한국인…"혼자 있을때 가장 즐겁다" 40%](https://www.sedaily.com/NewsView/2D43FCI7Z5)
- [창문으로 세상을 바꾸는 방법](https://m.blog.naver.com/hyunjoonyoo/22170179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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