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장벽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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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재선되었습니다. 트럼프의 구호는 Make America Great Again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 입니다. 트럼프의 정책의 심볼은 장벽입니다. 트럼피즘은 자민족우선주의, 자국이익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반세계화, 반이민, 반난민, 몬로주의, 한 마디로 "우리민족(Nation)끼리"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피즘은 전세계적인 변화의 경향을 대표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렉시트부터 시작해서 유럽의 우경화-프랑스의 르펜, 이탈리아의 멜라니, 독일의 대안당 등-에 이르는 변화. 푸틴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 중국의 시황제 체제 등.
이 모든 변화의 공통 요인은 "세계화가 초래한 피로에 대한 극단적 반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세계화에 피곤해 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가속화하고 세계화의 수혜를 누리면서 그것을 나누지는 않는 "글로벌 엘리트"들을 염증냅니다. 난민 또는 이민은 세계화의 한 측면입니다. 세계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전지구적 이동에서 "장벽"이 없어지는 과정인데, 이는 다시 말해 서비스, 용역, 노동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력, 인간의 전지구적 이동에 "장벽이" 없어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난민 또는 이민은 세계화의 결과이며 증상이며 본질입니다.
사람들은 전세계가 국제공용어를 사용하여 디지털 미디어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일처리하는 광경을 보면서 그것을 세계화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글로벌 대표 메트로폴리스들의 대형마트마다 세계의 온갖 상품이 진열된 것을 보며 그것을 세계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그 근처에서 위협을 조성하는 실업자들의 민족적 인종적 구성이 다양해지는 것은 세계화라고 부르기보다는 이민자들 문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둘은 항상 동전의 양면이었습니다.
장벽이란 바로 이 세계화를 저지하거나 번복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트럼프가 제시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방법도 바로 이 장벽입니다.
그리고 이 장벽은 세계화로부터 손해를 입었거나 입을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대안입니다.
세계화는 상품과 노동력의 장벽없는 유통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같은 상품을 더 싸게 사고 같은 노동력을 더 싸게 부립니다. 이민자들이 들어와 내 일자리를 뺏어갑니다. 외국의 상품들이 들어와 내가 팔던 상품이 밀려납니다. 외국의 공장들에서 지어진 싱품들이 들어와 내가 몸담은 공장을 없애 버립니다. 이것은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편익이 증가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같은 물건을 더 싸게 사거나 같은 값에 더 좋은 외제를 사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실제로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뺏긴 누군가가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장벽이 있던 시절이 좋았습니다. 난민들이나 이민자들이 쉽게 쉽게 들어와 내 일자리를 빼앗지 못하던 시절이 좋았습니다. 외국에서 만든 물건에는 비용이 붙어 쉽게 쉽게 사지 못하고 내 시장을 뺏어가지 않던 시절이 좋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비자로서 나는 장벽이 없을 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노동을 공급하는 공급자, 노동자로서의 내게는 장벽이 있을 수록 좋습니다. 장벽이 나의 경쟁력입니다. 국적이라는 장벽 언어라는 장벽 민족과 인종이라는 장벽이 있을수록 좋습니다.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나를, 영어를 할 줄 아는 나를, 와스프이자 백인 출신인 나를 채용하고, 멕시코에서 담넘어온 히스패닉을 채용하지 않는 장벽, 그 장벽이 아예 사라진다면 나는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고 대체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이너리티들조차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다. 내가 흑인이나 히스패닉이어도 내가 국적을 갖게 되면 내가 언어에 능숙해지면 그 장벽이 내게 유리합니다. 유럽의 반이민 정당들을 지지하는 세력 중 많은 이들은 이미 그 사회에 먼저 정착해 기존 일원에 준하게 된 이민자들입니다. 미국에서도 흑인 남성들과 히스패닉들 중 상당수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어제의 마이너리티는 오늘의 메이저리티입니다. 소수자는 삶의 모든 국면에서 소수자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소수자성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다수자성도 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올 때는 장벽이 원망스럽지만 내가 사다리를 거의 다 타고 올라와 사다리를 걷어찰 때는 장벽이 아쉽습니다.
경제난을 원인으로 진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제는 언제나 어려웠습니다. 문제는 그 어려움의 양상입니다. 경제는 늘 어려운데 세계화는 그 어려움의 배분을 다르게 만듭니다. 과거에는 나라가 다같이 어렵거나 어렵지 않아 보였는데 이제는 나라가 어려워져도 글로벌 엘리트들은 더욱 잘 나가고 내 일자리를 뺏는 이민자들만 살만해지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다같이 어렵다면 이제는 나만 어렵습니다. 세계화는 고통분담의 양상을 바꿔놓습니다.
세계화에 대한 피로감이 정치적 극단화의 여전히 강력한 동인입니다. 낙태권 논쟁이라는 문화전쟁은 그에 비하면 미국에 특수한 이슈였고 상대적으로 사소한 이슈였습니다.
정체성 정치라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동일합니다. 정체성 정치도 결국은 세계화의 문제이고 장벽의 문제입니다. 정체성의 존중을 요구하는 정치가 지행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는 규범이란 결국 세계화 시대를 같이 잘 살아가기 위해 요구되는 규범이면서 동시에 장벽을 허물고 사람들과 물자들의 유통을 더욱 원활하게 만드는 세계화의 윤활유이기도 합니다. 정체성 정치는 국제적 보편적 규범을 각국에 무차별적으로 관철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며 이를 관철하는 제도들은 주로 쿼터제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결국에는 사람들의 밥그릇과 일자리를 건드리기도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글로벌 엘리트들이 유엔 인권선언 같은 외국의 규범들을 들먹이면서 다양한 정체성들을 긍정하는데 심지어 자원과 일자리를 나눠주면서까지 긍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회사의 이사회 구성부터 시작해서 마트 청소부 자리에 이르기까지 갑자기 내가 몰랐던 온갖 정체성들이 튀어나오면서 자신의 몫을 주장하며 한 목소리로 "차별의 철폐"와 "장벽의 타파"를 외칩니다. 이런 일이 반세기쯤 일어나다 보니 "다수"는 불현듯 장벽이 공고했던 옛날이 좋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트럼피즘은 전세계적인 변화의 경향을 대표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렉시트부터 시작해서 유럽의 우경화-프랑스의 르펜, 이탈리아의 멜라니, 독일의 대안당 등-에 이르는 변화. 푸틴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 중국의 시황제 체제 등.
이 모든 변화의 공통 요인은 "세계화가 초래한 피로에 대한 극단적 반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세계화에 피곤해 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가속화하고 세계화의 수혜를 누리면서 그것을 나누지는 않는 "글로벌 엘리트"들을 염증냅니다. 난민 또는 이민은 세계화의 한 측면입니다. 세계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전지구적 이동에서 "장벽"이 없어지는 과정인데, 이는 다시 말해 서비스, 용역, 노동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력, 인간의 전지구적 이동에 "장벽이" 없어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난민 또는 이민은 세계화의 결과이며 증상이며 본질입니다.
사람들은 전세계가 국제공용어를 사용하여 디지털 미디어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일처리하는 광경을 보면서 그것을 세계화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글로벌 대표 메트로폴리스들의 대형마트마다 세계의 온갖 상품이 진열된 것을 보며 그것을 세계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그 근처에서 위협을 조성하는 실업자들의 민족적 인종적 구성이 다양해지는 것은 세계화라고 부르기보다는 이민자들 문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둘은 항상 동전의 양면이었습니다.
장벽이란 바로 이 세계화를 저지하거나 번복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트럼프가 제시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방법도 바로 이 장벽입니다.
그리고 이 장벽은 세계화로부터 손해를 입었거나 입을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대안입니다.
세계화는 상품과 노동력의 장벽없는 유통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같은 상품을 더 싸게 사고 같은 노동력을 더 싸게 부립니다. 이민자들이 들어와 내 일자리를 뺏어갑니다. 외국의 상품들이 들어와 내가 팔던 상품이 밀려납니다. 외국의 공장들에서 지어진 싱품들이 들어와 내가 몸담은 공장을 없애 버립니다. 이것은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편익이 증가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같은 물건을 더 싸게 사거나 같은 값에 더 좋은 외제를 사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실제로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뺏긴 누군가가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장벽이 있던 시절이 좋았습니다. 난민들이나 이민자들이 쉽게 쉽게 들어와 내 일자리를 빼앗지 못하던 시절이 좋았습니다. 외국에서 만든 물건에는 비용이 붙어 쉽게 쉽게 사지 못하고 내 시장을 뺏어가지 않던 시절이 좋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비자로서 나는 장벽이 없을 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노동을 공급하는 공급자, 노동자로서의 내게는 장벽이 있을 수록 좋습니다. 장벽이 나의 경쟁력입니다. 국적이라는 장벽 언어라는 장벽 민족과 인종이라는 장벽이 있을수록 좋습니다.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나를, 영어를 할 줄 아는 나를, 와스프이자 백인 출신인 나를 채용하고, 멕시코에서 담넘어온 히스패닉을 채용하지 않는 장벽, 그 장벽이 아예 사라진다면 나는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고 대체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이너리티들조차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다. 내가 흑인이나 히스패닉이어도 내가 국적을 갖게 되면 내가 언어에 능숙해지면 그 장벽이 내게 유리합니다. 유럽의 반이민 정당들을 지지하는 세력 중 많은 이들은 이미 그 사회에 먼저 정착해 기존 일원에 준하게 된 이민자들입니다. 미국에서도 흑인 남성들과 히스패닉들 중 상당수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어제의 마이너리티는 오늘의 메이저리티입니다. 소수자는 삶의 모든 국면에서 소수자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소수자성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다수자성도 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올 때는 장벽이 원망스럽지만 내가 사다리를 거의 다 타고 올라와 사다리를 걷어찰 때는 장벽이 아쉽습니다.
경제난을 원인으로 진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제는 언제나 어려웠습니다. 문제는 그 어려움의 양상입니다. 경제는 늘 어려운데 세계화는 그 어려움의 배분을 다르게 만듭니다. 과거에는 나라가 다같이 어렵거나 어렵지 않아 보였는데 이제는 나라가 어려워져도 글로벌 엘리트들은 더욱 잘 나가고 내 일자리를 뺏는 이민자들만 살만해지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다같이 어렵다면 이제는 나만 어렵습니다. 세계화는 고통분담의 양상을 바꿔놓습니다.
세계화에 대한 피로감이 정치적 극단화의 여전히 강력한 동인입니다. 낙태권 논쟁이라는 문화전쟁은 그에 비하면 미국에 특수한 이슈였고 상대적으로 사소한 이슈였습니다.
정체성 정치라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동일합니다. 정체성 정치도 결국은 세계화의 문제이고 장벽의 문제입니다. 정체성의 존중을 요구하는 정치가 지행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는 규범이란 결국 세계화 시대를 같이 잘 살아가기 위해 요구되는 규범이면서 동시에 장벽을 허물고 사람들과 물자들의 유통을 더욱 원활하게 만드는 세계화의 윤활유이기도 합니다. 정체성 정치는 국제적 보편적 규범을 각국에 무차별적으로 관철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며 이를 관철하는 제도들은 주로 쿼터제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결국에는 사람들의 밥그릇과 일자리를 건드리기도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글로벌 엘리트들이 유엔 인권선언 같은 외국의 규범들을 들먹이면서 다양한 정체성들을 긍정하는데 심지어 자원과 일자리를 나눠주면서까지 긍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회사의 이사회 구성부터 시작해서 마트 청소부 자리에 이르기까지 갑자기 내가 몰랐던 온갖 정체성들이 튀어나오면서 자신의 몫을 주장하며 한 목소리로 "차별의 철폐"와 "장벽의 타파"를 외칩니다. 이런 일이 반세기쯤 일어나다 보니 "다수"는 불현듯 장벽이 공고했던 옛날이 좋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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