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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개척시대의 사생활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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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537 회 작성일 24-11-06 14: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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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landian.jpg 서부개척시대의 사생활을 알아보자


 인도 오른편 지상낙원 지척에 캘리포니아라는 한 섬이 있음을 알라. 그 곳의 사람들은 남자란 없고 오로지 검은 빛의 여성들로만 이루어져 있느니라. 그들은 아름답고도 건장한 체구를 가졌으며, 용맹하고도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섬은 천혜의 요새라. 험준한 절벽과 바위 해안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들의 무기는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맹수들의 갑옷 또한 금으로 되어 있는 바, 그 섬에는 금 이외에 다른 금속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 

- 에스플란디안의 모험(1510)



# 서부의 가정생활



1024px-Johnson_1920_HighPlains.jpg 서부개척시대의 사생활을 알아보자


 서부개척시대라 하면 우리는 으레 고독한 남성 몇몇이 뿔뿔이 흩어져 삶을 꾸려나가는 것을 상상하곤 하지만, 북미 대평원(Great Plains)에서 남자 혼자서 농장이나 목장을 운영하기란 불가능했다. 




Homesteader_NE_1866.png 서부개척시대의 사생활을 알아보자


모든 것이 가족 단위로 이루어져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들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개척민들 사이의 상식이었다. 




1280px-Waiting_Woman_in_pioneer_costume_posed_in_tranquil_country_scene_(HS85-10-11544).jpg 서부개척시대의 사생활을 알아보자

 초기 개척지에서 농부의 아내들은 뙤약볕에 나가 일함으로서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특히 줄곧 동부의 따사로운 기후에서 살던 여성들 같은 경우엔, 나무 한 그루 안보이고, 거센 돌풍이 윙윙거리며, 끝없이 펼쳐져있는 태양에 그슬린듯한 대지를 보며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서부의 여성들은 따사로운 동부의 추억을 서부로 이식하곤 했다. 정원을 가꿨고, 나무를 심었으며, 보기 흉한 풍경을 조금씩 아기자기하게 바꾸어놓았다. 개척이 진척되고, 점차 정착생활이 안정을 찾자, 서부 개척지 뿐 아니라 모든 농경사회에서 그러한 현상이 벌어졌듯, 아내들은 집안으로 들어가고, 남편들은 밭일에 나갔다. 



Barn_Raising_DeKalb_County_IN.jpg 서부개척시대의 사생활을 알아보자

 서부 정착지의 생활은 공동체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헛간 세우기(barn raising)라고 하는 공동체 의식이 특히 핵심적인 집단 행동이었다. 헛간은 곡물이나 건초를 비축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건축물이었고, 가족 하나가 스스로 조립하는 데에는 매우 큰 힘이 들었다. 그리고 겨울이 오기전에 서둘러 건설하지 않으면, 기껏 얻은 한 해 소출이 전부 망실될 수도 있었다. 



1024px-Barn_raising_in_Lansing.jpg 서부개척시대의 사생활을 알아보자


 전문 목수나 다른 용역들을 고용하는 것도 불가능한 오지의 서부에서, 일가족의 개인 헛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고 돌아가며 일손을 돕는 공동체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남성들은 이웃에게 노동력을 비롯하여 각종 연장이나 들짐승들을 제공했고, 여성들은 노동자들이 먹을 새참을 준비했다. 헛간이 완성되면 새벽까지 이어지는 축하 잔치가 벌어졌다. 


 공동체가 충분히 거대하다면, 더 큰 건물도 힘을 모아 짓곤 했다. 당장 급한 일은 아니었지만, 목재뿐 아니라 석재도 필요했던 교회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서부의 어린이들은 강하게 자랐다. 서부의 어떤 어린이들은 동부의 빡빡한 도시생활에 비해서 훨씬 더 자율적인 삶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 자유로운 생활의 이면에는 동부의 도시생활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과 고통이 도사리고 있었다. 많은 서부의 아이들이 낮은 인구밀도로 인한 고독, 굶주림, 강제 노동, 그리고 가정 폭력과 학대에 노출되었으리라 추정된다.




# 도박, 훌륭한 사람들의 일자리




 도박은 할 게 별로 없는 서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오락이었다. 서부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한번쯤은 도박에 손을 대 본다. 카우보이, 광부, 벌목인, 사업가, 그리고 판사와 보안관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도박에 참여했다. 


 정착지가 세워지면 가장 먼저 세워지는 건물은 교회가 아니라 도박장이었다. 정착지가 성장함에 따라 도박장의 규모도 커졌고, 도박의 종류도 더 다양해졌다. 도박장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었고, 술집과 공연무대, 객실이 딸려있기도 했다. 


 말하자면 도박장은, 일종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간, 오늘날의 백화점이나 컨벤션센터 같은 공간이었다. 도박장을 중심으로 지역경제가 굴러갔고, 한 마을에 얼마나 많은 전문 타짜들이 있느냐에 따라 그 마을의 번영도가 판가름났다. 


 도박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전문 도박꾼들은 매우 존경받는 사람들이었다. 도박 사업은 당시에 가장 많은 돈을 끌어들이는 분야였고, 오늘날로 따지자면 전문 도박꾼들은 전략 컨설턴트나 애널리스트 같은 느낌이었다. 종종 도덕적인 비난이나 약간의 질시를 받는 것마저 비슷했다.


 매우 존경받는 프로 도박꾼들은 술도 마시지 않았고, 공사를 치지도 않았으며, 욕설도 하지 않는 아주 점잖은 사람들이었다. 



250px-California_Gold_Rush_handbill.jpg 서부개척시대의 사생활을 알아보자


 1849년, 서부에서 금맥이 발견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는 도박장이 우후죽순 들어섰으며, 캘리포니아 전역의 여러 광산마을에서도 소규모 도박장들이 생겨났다.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온 사람들의 원정길을 따라서 도박장이 바글거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서부에 닿지도 못한 채 가는 길에 있던 어느 영세한 도박장에서 끝장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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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여성 도박꾼들도 있었다. 키티 리로이(Kitty LeRoy)라고 불리는 젊은 여성 도박꾼은 아주 아름다웠고, 남성편력으로도 유명했다. 그녀는 여러 전설을 남겼는데, 뛰어난 칼던지기와 사격 솜씨를 지녔으며, 집시같은 옷을 입었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키티는 도박을 잘했다. 그녀는 남자를 두고도 일생토록 도박을 했고, 파트너가 질리면 곧장 떠나버리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키티 리로이는 28세의 나이로 전남편에게 가슴팍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Fan-Tan_in_New_York_City_1887.jpg 서부개척시대의 사생활을 알아보자


 서부에는 여러 인종의 도박꾼들이 있었고, 중국인들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도박꾼들이었다. 그들은 무려 남북조 시대에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판탄(番攤)이라는 도박을 북미 서부땅에 들여오기도 했다.




Faro_card_game.jpg 서부개척시대의 사생활을 알아보자


 서부에서 가장 흔했던 도박은 모든 도박의 왕이라고도 불렸던, 프랑스에서 유래한 "파로"라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룰렛, 포커, 척 어 럭과 같은 게임도 매우 인기있었으며, 경마, 권투, 그리고 닭싸움과 개싸움, 심지어는 팬더와 곰이 서로 맞붙는 것에도 판돈이 걸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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