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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47. 범 호(虎)에서 파생된 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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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01 회 작성일 24-11-05 12: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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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다룬 일할 로(勞), 횃불 료(尞)=성/법칙 려(呂)+나무 목(木)+불 화(火), 나그네 려(旅), 높이날 료(翏) 등은 음이 서로 비슷해서 파생된 한자들도 다들 관련이 있다. 이와 또 연관되는 한자가 성 로(盧)다.

盧는 지금은 일반적인 단어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노(盧)씨 성을 나타내는 데에만 쓰이지만, 검다, 밥그릇 등 다양한 뜻이 있다. 旅에서 파생된 검을 로(玈)를 쓰는 단어인 검은 활, 노궁을 玈弓 말고 盧弓으로 쓰기도 한다.  전국시대 한(韓)나라에는 검은 개가 유명해서 이 개를 노견(盧犬), 한로(韓盧)라고 불렀다고 하며, 이 한로는 어부지리 고사에 등장하기도 한다.


盧는 호피무늬 호(虍), 밭 전(田), 그릇 명(皿)이 합한 글자로 보이는데, 《설문해자》에서는 그 뜻을 "술그릇"이라고 하고, 위쪽의 虍와 田을 따로 떼어 밥그릇 로(⿸虍田, ⿸虍甾)로 분석하고 皿의 뜻과 ⿸虍甾의 소리를 가져온 한자로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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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盧의 갑골문 1, 2, 금문, 주문, 소전. 출처: 小學堂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형태임을 볼 수 있다. 갑골문 1과 2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을 대개는 화로의 모습으로 보고, 爐나 鑪의 초기 형태로 해석한다. 윗부분이 화로의 몸통이고 아랫부분은 화로의 다리가 된다. 갑골문 2에서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 범 호(虎)가 들어가면서 지금과 같은 형성자의 짜임이 되고, 화로 모양은 금문과 소전을 거쳐 지금의 田과 皿으로 바뀌었다. 주문에서는 가운데에 짠땅 로(鹵)를 넣어 표음 기능을 더 강화했다.

盧는 갑골문에서는 방국 이름, 땅 이름, 정인(점치는 사람) 이름, 제사 이름 등 다양한 고유명사로 쓰였고, 또 나중에 이 한자에서 파생되는 살갗 부(膚)를 가차해서 쓰이기도 했다. 금문에서는 화로, 나중에 이 한자에서 파생되는 농막집 려(廬)의 가차, 줄 려(鑢=鋁)의 가차 등으로 쓰였다.


盧를 파생시킨 범 호(虎)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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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虎의 갑골문 1, 2, 금문, 진(晉)계 문자, 초(楚)계 문자, 고문 1, 2, 소전. 출처: 小學堂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범, 곧 호랑이의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다. 갑골문 1은 범의 모습을 공교하게 새겼지만, 갑골문 2부터는 특별히 머리 부분을 강조해서 단순화했고 그 모양이 그대로 후세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다만 범의 몸통과 꼬리 부분을 어떻게 묘사하는지에 따라 글자 모양에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후세에까지 전해지는 논쟁은 虎의 사람 인(儿, 어진사람인발)의 기능인데, 일부는 그래서 虎를 회의자로 보기도 하지만 다수설은 그저 범의 다리와 꼬리 부분이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본다. 이 설에 따르면 《설문해자》에서 虎와 구분해 놓은 호피무늬 호(虍)는 단순히 虎의 생략형이 된다.


虎(범 호, 호시탐탐(虎視眈眈), 맹호(猛虎) 등. 어문회 준3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虎+玉(구슬 옥)=琥(호박 호): 호박(琥珀), 아미노호박산(amino琥珀酸: 아스파트산) 등. 어문회 1급

虎+皿(그릇 명)=盧(성 로): 노궁(盧弓/玈弓), 사로(斯盧) 등. 어문회 2급

虎+人(사람 인)+几(안석 궤)=處(곳 처): 처리(處理), 근처(近處) 등. 어문회 준4급

虎+丘(언덕 구)=虛(빌 허): 허점(虛點), 겸허(謙許) 등. 어문회 준4급

虎+毌(꿸 관)+力(힘 력)=虜(사로잡을 로): 노획(虜獲: 적을 생포하거나 참살함), 포로(捕虜) 등. 어문회 1급

虎+擧(들 거)=虡(쇠북걸이틀 거): 종거(鐘簴/鐘虡: 종을 매다는 틀) 등. 어문회 특급

虎+豕(돼지 시)=豦(큰돼지 거): 급수 외 한자

虎+隹(새 추)=雐(새이름 호): 급수 외 한자

盧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盧+口(입 구)=嚧(웃을 로): 폐로(吠嚧: 비로자나불, 《역주 오대진언》), 호로(呼嚧: 웃음소리, 《운양집》 주) 등. 인명용 한자

盧+土(흙 토)=壚(검은흙 로): 노토(壚土: 검은 비옥한 흙), 목로(木壚) 등. 어문회 특급

盧+广(집 엄)=廬(농막집 려): 여묘(廬墓: 상제가 초막에서 무덤을 지킴), 삼고초려(三顧草廬) 등. 어문회 2급

盧+木(나무 목)=櫨(두공 로): 노목궤(櫨木櫃: 융통성이 없는 사람), 소로(小櫨: 두공을 받치는 나무) 등. 인명용 한자

盧+日(날 일)=曥(햇빛 려): 김여(金曥:  조선 광해군 대의 인물. 《응천일록》), 이여(李曥: 조선 영조 대의 인물. 《조선왕조실록》), 인명용 한자

盧+水(물 수)=瀘(물이름 로): 노강(瀘江: 윈난성에 있는 강) 등. 어문회 준특급

盧+火(불 화)=爐(화로 로): 노심(爐心), 난로(煖爐/暖爐) 등. 어문회 준3급

盧+玉(구슬 옥)=瓐(비취옥 로): 벽로(碧瓐: 옥의 이름. 《다산시문집》), 조희로(趙希瓐: 남송 이종의 생부. 《오주연문장전산고》) 등. 인명용 한자

盧+目(눈 목)=矑(볼 로): 노자(矑子/盧子: 눈동자) 등. 인명용 한자

盧+糸(가는실 멱)=纑(베올 로): 방로(紡纑: 삼실을 만듦) 등. 어문회 특급

盧+肉(고기 육)=膚(살갗 부): 부육(膚肉: 살갗과 고기), 피부(皮膚) 등. 어문회 2급

盧+肉(고기 육)=臚(살갗 려): 여창(臚唱: 급제자가 호명되어 알현함), 홍려(鴻臚: 조선 시대의 관아 중 하나) 등. 인명용 한자

盧+舟(배 주)=艫(뱃머리 로): 선로(船艫: 고물), 축로(舳艫: 배의 이물과 고물) 등. 인명용 한자

盧+艸(풀 초)=蘆(갈대 로): 노령산맥(蘆嶺山脈), 호로(葫蘆/壺蘆: 호리병박) 등. 어문회 2급

盧+車(수레 거/차)=轤(도르래 로): 녹로(轆轤: 도르래, 또는 도자기를 만들 때 쓰는 돌림판), 녹로법(轆轤法: 녹로로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 등. 인명용 한자

盧+金(쇠 금)=鑪(화로 로): 노반박사(鑪盤博士: 백제의 장인), 제로(蹄鑪: 편자를 신길 때 쓰는 줄칼) 등. 

盧+頁(머리 혈)=顱(머리뼈 로): 노골(顱骨: 머리뼈), 원로(圓顱: 둥근 머리) 등. 인명용 한자

盧+馬(말 마)=驢(나귀 려): 여한(驢漢: 어리석은 사람), 나려(騾驢: 노새와 나귀) 등. 어문회 준특급

盧+骨(뼈 골)=髗(머리뼈 로): 인명용 한자(顱와 동자)

盧+魚(고기/물고기 어)=鱸(농어 로): 노어(鱸魚: 농어), 순갱노회(蓴羹鱸膾: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 등. 인명용 한자

盧+鳥(새 조)=鸕(가마우지 로): 노자(鸕鷀: 가마우지), 노자작(鸕鷀杓: 가마우지 모양 구기) 등. 인명용 한자

虛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虛+口(입 구)=噓(불 허): 허풍선(噓風扇: 손풀무), 취허(吹噓: 과장되게 천거함) 등. 어문회 1급

虛+土(흙 토)=墟(터 허): 허묘(墟墓), 폐허(廢墟) 등. 어문회 1급

虛+欠(하품 흠)=歔(흐느낄 허): 허허탄식(歔歔嘆息: 몹시 탄식함), 허희(歔欷: 한숨짓고 욺) 등. 인명용 한자

虜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虜+手(손 수)=擄(노략질할 로): 노략(擄略), 침노(侵擄▽) 등. 어문회 1급

虡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虡+竹(대 죽)=簴(북틀 거): 거(簴: 편종이나 편경을 거는 틀의 기둥 나무), 종거(鐘簴/鐘虡: 종을 매다는 틀) 등. 급수 외 한자

豦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豦+刀(칼 도)=劇(심할 극): 극성(劇性), 연극(演劇) 등. 어문회 4급

豦+手(손 수)=據(근거 거): 거점(據點), 근거(根據) 등. 어문회 4급

豦+肉(고기 육)=臄(순대 갹): 갹(臄: 윗입술고기, 또는 순대.《시경·항위》),  비갹(肥臄: 살진 고기. 《향산집》) 등. 어문회 특급

豦+辵(쉬엄쉬엄갈 착)=遽(급할 거): 거색(遽色: 당황한 기색), 급거(急遽) 등. 어문회 준특급

豦+酉(닭 유)=醵(추렴할 거/갹): 갹출(醵出), 거출(醵出) 등. 어문회 1급

雐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雐+于(어조사 우)=虧(이지러질 휴): 휴월(虧月: 이지러진 달), 월만즉휴(月滿則虧: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 등. 어문회 준특급

膚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膚+心(마음 심)=慮(생각할 려): 사려(思慮), 염려(念慮) 등. 어문회 4급

遽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遽+竹(대 죽)=籧(대자리 거): 거저(籧篨: 대자리) 등. 어문회 특급

遽+艸(풀 초)=蘧(패랭이꽃 거): 거려(蘧廬: 여인숙, 《가정집》), 거백옥(蘧伯玉: 춘추 시대 위나라의 현인, 《조선왕조실록》) 등. 어문회 특급

慮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慮+人(사람 인)=儢(힘쓰지않을 려): 여려(儢儢: 힘쓰지 않는 모양, 《순자》) 등. 인명용 한자

慮+力(힘 력)=勴(도울 려): 여태(勴兌: 혈자리 중 하나) 등. 인명용 한자

慮+手(손 수)=攄(펼 터): 터득(攄得), 터포(攄抱: 생각을 털어놓고 이야기함) 등. 어문회 1급

慮+水(물 수)=濾(거를 려): 여과(濾過), 압려기(壓濾器: 필터 프레스) 등. 어문회 1급

慮+艸(풀 초)=藘(꼭두서니 려): 여려(茹藘: 꼭두서니, 나아가 붉은 수건. 《시경·출기동문》) 등. 어문회 특급

慮+金(쇠 금)=鑢(줄 려): 여지(鑢紙: 줄로 쓰는 종이), 안기려(雁歧鑢: 줄처럼 쓰는 연장, 곧 환) 등. 인명용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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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에서 파생된 한자들.


얼핏 보면 생각 려(慮)가 虎, 盧, 膚 3단계를 거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덕분에 慮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이 시리즈에서 최초로 나오는 4차 파생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慮의 옛 형태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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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慮의 금문, 제계 문자, 연계 문자,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慮는 가장 이른 형태에서 마음 심(心)과 膚가 결합한 것으로 나온다. 전국시대에 들어서면 다양하게 바뀌는데, 제·연계 문자에서는 膚의 虎만 남겨서 心과 결합했고, 진(晉)계 문자에서는 아예 성부를 膚에서 성/법칙 려(呂)로 교체했다. 초계 문자에서는 그나마 膚의 형태를 조금 남겼는데, 《설문해자》에서는 이 膚의 생략형과 心이 결합한 것을 虍와 생각할 사(思)가 결합한 것으로 오해했다. 이 형태가 지금의 慮로 굳어졌다.


慮의 금문에 쓰인 살갗 부(膚)는 그대로 금문에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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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膚·臚의 금문, 제계 문자,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주문, 소전. 출처: 小學堂

지금은 膚와 臚가 훈은 같아도 음이 달라서 다른 문자로 취급되지만, 구성이 같은 것이 암시하듯 원래는 같은 문자였다. 금문에서 盧와 고기 육(肉)이 결합한 모습을 하고 있고, 전국시대 각 계통의 문자에서 다양하게 변형되긴 해도 盧와 肉의 형태는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膚가 더 옛 형태인 주문, 臚가 비교적 후세에 나온 소전으로 나오는데, 정작 지금 더 많이 쓰이는 글자는 주문인 膚라는 게 특이하다.


옛 동양화 중에 갈대를 물고 있는 게를 화제로 삼는 그림이 있는데, 이런 그림을 전려도(傳臚圖)라 하며 특히 게가 두 마리인 경우 이갑전려(二甲傳臚)라 한다. 한국에서도 단원 김홍도가 남긴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가 유명하다. 672683ba26ead.jpg?imgSeq=37872

김홍도, 해탐노화도.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  ⓒ공유마당(CC BY) 2022.11.04

왜 게와 갈대를 그렸는가? 게는 딱딱한 갑옷을 입고 있는 생물인데, 이것은 과거 시험에서 갑(甲), 즉 첫째로 급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갈대를 뜻하는 한자는 위에서도 나온 蘆인데, 이 한자는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내는 절차인 전려(傳臚)의 臚와 성부가 盧로 같다. 즉 게와 갈대는 과거에 첫째로 급제해 이름을 불리기를 바라는 것을 상징한다. 특히 이갑전려는 소과와 대과, 두 과거에서 모두 장원급제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옛 선조들은 蘆와 臚처럼 성부가 같은 한자들을 이용한 언어유희를 즐긴 것 같다.


많은 국내의 해설에서 臚를 형부인 肉에 이끌려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는 고기나 음식으로 해석하는데, 臚에 고기나 음식과 관련된 의미는 없으므로 이는 잘못으로 보인다. 대신에 臚에 살갗 말고도 傳처럼 "전하다"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전려라는 단어 자체로 급제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해탐노화도는 그림뿐만 아니라 그림 위에 적은 화제, “바다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옆으로 걷는다”를 통해 급제 후에도 절개 있는 선비로 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盧에서 파생된 한자들 중에는 갑골문에 나오는 글자가 거의 없고, 오히려 갑골문에 나오는 파생자는 지금은 쓰이지 않는 글자인데, 사실 지금 쓰인다면 꿈에 나올까 두려울 만큼 복잡한 글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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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盧에서 파생된 ⿰橐盧와 ⿱家盧의 갑골문 1, 2와 해서로 바꾼 꼴. 출처: 字統网

위쪽의 글자는 전대 탁(橐)과 盧가 합쳐진 글자로, 갑골문 1은 盧 쪽에 虎가 없고 橐도 초기의 간단한 형태로 나와 있으나 갑골문 2는 橐에 화살 시(矢) 모양이 들어가 있고 盧에도 虎가 올라타 있어 현대의 橐과 盧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대로 예변하면 橐도 16획이고 盧도 16획이라 32획이나 되는 복잡한 글자가 된다.

아래쪽의 글자는 집 가(家)와 盧가 합쳐진 글자로, ⿰橐盧와는 달리 盧 쪽에 虎가 없다. 그러나 이 글자 역시 예변하면 家가 10획이라 26획이나 될뿐더러, 보통은 다른 글자와 세로로 같이 쓰지 않는 家가 盧의 머리 위에 있어 뭔가 답답하게 생긴 글자다.


쇠북걸이틀 거(虡)는 빌 허(虛) 밑에 여덟 팔(八)을 받쳐 쓴 것 같이 생겼지만 그렇게 하면 해석이 되지 않는다. 《설문해자》에서는 虍의 뜻을 따르고 밑에는 틀 모양을 나타내는 다를 이(異)가 있으며, 전문에서 異가 共으로 생략되었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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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虡의 금문 1, 2, 3, 소전, 전문, 혹체. 출처: 小學堂

그러나 금문을 보면 《설문해자》의 풀이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문 1과 2에서는 글자의 아랫부분이 마치 두 손을 나타내는 깍지낄 국(절구 구臼를 좌우로 끊어 놓은 문자)와 두 발을 나타내는 어그러질 천(舛)이 결합한 것처럼 나온다. 이것을 두 발로 서서 두 손으로 무엇을 들어 올리는 모양으로 들 거(擧)의 고문으로 보는 설이 있다. 본문의 虡의 분석은 이를 따른 것이다. 한편 《설문해자》의 혹체는 쇠 금(金)이 뜻을 나타내고 큰돼지 거(豦)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의 짜임이다.


뱃머리 로(艫)는 분명히 훈이 "뱃머리"인데, 정작 艫가 들어가는 단어에서 이 한자는 배의 후미인 고물을 가리킨다. 이미 《설문해자》에서 “艫란 추로다. 일설에는 뱃머리라 한다.”라고 해 후한 때에도 艫의 의미에 혼동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큰돼지 거(豦)는 《설문해자》에서는 “싸우며 서로 붙잡고 풀어주지 않음이다. 虎와 돼지 시(豕)의 뜻을 따른다. 사마상여의 말은 이렇다. 豦란 봉시(封豕)의 일종이다.”라고 해설했는데, 돼지가 아무리 세다 한들 호랑이 밥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마상여의 말대로 큰 돼지의 일종이라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그래서 豕가 뜻을 나타내고 虎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의 짜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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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豦의 금문, 진(晉)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금문부터 이미 호랑이가 돼지 머리 위에 있는 글자라는 게 확인이 되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한자는 본디 어떤 종류의 돼지를 뜻하는 한자였으나, 행동이 재빠른 원숭이를 닮은 또 다른 동물의 뜻으로도 가차되었다.

이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이 거라는 동물의 습성에서 따온 뜻을 지닐 것으로 생각되나, 이 동물은 재빠르다는 습성이 기록되어 있을 뿐 정확한 종류는 알 수가 없다.


순대 갹(臄)은 《시경·항위》편의 다음 싯구에 나온다. “좋은 안주와 지라고기와 이 있으며, 노래하거나 북을 친다(嘉餚脾, 或歌或咢).” 《설문해자》에서는 이를 윗입술 갹(⿱仌口)의 혹체로 풀이하고 있어서 전통적으로는 이 구절에 나오는 갹을 윗입천장 고기로 풀이하는데, 《집운》에서는 “갹은 자른 고기다. 지라나 콩팥 고기로 창자를 채워서 구운 것을 갹이라 한다. 《시경》에 "좋은 안주와 지라고기와 갹이 있으며"라 한다.”라고 해 갹을 순대로 풀이했다. 《시경》의 성립 시기는 기원전 9세기 - 기원전 7세기 경으로 추정하므로, 갹이 순대가 맞는다면 순대의 역사는 그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순대의 역사를 다루는 책에서는 이 《집운》의 기록을 중시하지만, 시경 해석에서 다수설은 순대가 아니라 윗입천장 고기라는 점에는 주의해야 한다.


盧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盧의 원래 의미인 화로, 또는 화로의 안이 검댕으로 인해 검으므로 검다는 뜻을 지닌다.

壚(검은흙 로)는 土(흙 토)가 뜻을 나타내고 盧가 소리를 나타내며, 盧의 뜻인 화로처럼 검은 흙을 뜻한다.

爐(화로 로)는 火(불 화)가 뜻을 나타내고 盧가 소리를 나타내며, 盧의 뜻인 화로를 뜻한다.

矑(볼 로)는 目(눈 목)이 뜻을 나타내고 盧가 소리를 나타내며, 盧의 뜻을 가져와 눈에서 검은 부위인 눈동자를 뜻한다.

鑪(화로 로)는 金(쇠 금)이 뜻을 나타내고 盧가 소리를 나타내며, 盧의 뜻을 가져와 쇠를 녹이는 화로를 뜻한다.

鱸(농어 로)는 魚(고기/물고기 어)가 뜻을 나타내고 盧가 소리를 나타내며, 盧의 뜻을 가져와 화로처럼 검은 물고기를 뜻한다.


또 화로는 둥글기 때문에, 盧에서 파생된 한자들에는 둥글다는 뜻도 있다.

轤(도르래 로)는 車(수레 차/거)가 뜻을 나타내고 盧가 소리를 나타내며, 爐의 뜻을 가져와 화로처럼 둥근 도르래나 돌림판을 뜻한다.

顱(머리뼈 로)는 頁(머리 혈)이 뜻을 나타내고 盧가 소리를 나타내며, 爐의 뜻을 가져와 화로처럼 둥근 머리뼈를 뜻한다.

髗(머리뼈 로)는 骨(뼈 골)이 뜻을 나타내고 盧가 소리를 나타내며, 爐의 뜻을 가져와 화로처럼 둥근 머리뼈를 뜻한다.


虛(빌 허)는 본디 《설문해자》에서는 丘(언덕 구)가 뜻을 나타내고 虍가 소리를 나타내 큰 언덕을 뜻한다고 풀이했으며, 이에서 비다, 터 등의 뜻이 나왔고, 다시 비다의 뜻에서 거짓이라는 뜻이 나왔다.

噓(불 허)는 口(입 구)가 뜻을 나타내고 虛가 소리를 나타내며, 虛의 뜻을 가져와 빈 곳에 입으로 공기를 부는 것을 뜻한다.

墟(터 허)는 土(흙 토)가 뜻을 나타내고 虛가 소리를 나타내며, 虛의 뜻을 가져와 건물이 없어지고 흙만 남은 터를 뜻한다.

歔(흐느낄 허)는 欠(하품 흠)이 뜻을 나타내고 虛가 소리를 나타내며, 虛의 뜻을 가져와 마음이 비어 흐느끼고 탄식하는 것을 뜻한다.


豦(큰돼지 거)는 큰 돼지나, 원숭이를 닮은 재빠른 동물을 뜻하므로, 이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이 동물의 습성에서 뜻을 따왔을 것이다.

遽(급할 거)는 辵(쉬엄쉬엄갈 착)이 뜻을 나타내고 豦가 소리를 나타내며, 豦의 뜻을 따 급한 모습을 뜻한다.

據(근거 거)는 手(손 수)가 뜻을 나타내고 豦가 소리를 나타내며, 豦의 뜻을 따 돼지가 숲 속에 웅크리고 있듯이 한 곳에 의지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鐻(쇠북걸이틀 거, 虡의 이체자)는 金(쇠 금)이 뜻을 나타내고 豦가 소리를 나타내며, 豦의 뜻을 따 돼지가 숲 속에 웅크리고 있듯이 쇠북의 받침대가 되는 틀을 뜻한다.


慮(생각할 려)는 心(마음 심)이 뜻을 나타내고 膚(살갗 부)가 소리를 나타내 숙고하는 마음을 뜻하며, 따라서 慮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정성을 들이다, 나아가 정련한다는 뜻을 지닌다.

勵(도울 려)는 力(힘 력)이 뜻을 나타내고 慮가 소리를 나타내며, 慮의 뜻을 가져와 남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힘을 들여 돕는 것을 뜻한다.

攄(펼 터)는 手(손 수)가 뜻을 나타내고 慮가 소리를 나타내며, 慮의 뜻을 가져와 마음으로 숙고하는 것처럼 손으로 정성을 들여 펼쳐 놓는 것을 뜻한다.

濾(거를 려)는 水(물 수)가 뜻을 나타내고 慮가 소리를 나타내며, 慮의 뜻을 가져와 물을 정성을 다해서 깨끗하게 하고자 거르는 것을 뜻한다.

鑢(줄 려)는 金(쇠 금)이 뜻을 나타내고 慮가 소리를 나타내며, 慮의 뜻을 가져와 정성을 다해서 쇠를 가는 도구인 줄을 뜻한다.


이상의 관계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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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盧는 화로의 모습을 본뜬 문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虎(범 호)가 결합한 형성자며, 虎는 범의 모습을 본뜬 상형자다.

虎에서 琥(호박 호)·盧(성 로)·處(곳 처)·虛(빌 허)·虜(사로잡을 로)·虡(쇠북걸이틀 거)·豦(큰돼지 거)·雐(새이름 호)가 파생되었고, 盧에서 嚧(웃을 로)·壚(검은흙 로)·廬(농막집 려)·櫨(두공 로)·曥(햇빛 려)·瀘(물이름 로)·爐(화로 로)·瓐(비취옥 로)·矑(볼 로)·纑(베올 로)·膚(살갗 부)·臚(살갗 려)·艫(뱃머리 로)·蘆(갈대 로)·轤(도르래 로)·鑪(화로 로)·顱(머리뼈 로)·驢(나귀 려)·髗(머리뼈 로)·鱸(농어 로)·鸕(가마우지 로)가, 虛에서 噓(불 허)·墟(터 허)·歔(흐느낄 허)가, 虜에서 擄(노략질할 로)가, 虡에서 簴(북틀 거)가, 豦에서 劇(심할 극)·據(근거 거)·臄(순대 갹)·遽(급할 거)·醵(추렴할 거/갹)가, 雐에서 虧(이지러질 휴)가 파생되었고, 膚에서 慮(생각할 려)가, 遽에서 籧(대자리 거)·蘧(패랭이꽃 거)가 파생되었고, 慮에서 儢(힘쓰지않을 려)·勴(도울 려)·攄(펼 터)·濾(거를 려)·藘(꼭두서니 려)·鑢(줄 려)가 파생되었다.

盧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화로, 검다, 둥글다는 뜻을 지니고, 虛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비다나 터의 뜻을 지니고, 豦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큰 돼지나 원숭이의 습성에서 따온 뜻을 지니고, 慮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생각하는 것처럼 정성을 들인다는 뜻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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