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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일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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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688 회 작성일 24-11-02 00: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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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당 일기장에 있어야 마땅한... 혼자 넋두리처럼 쓴 지난 민폐성 게시물에 과분한 응원 댓글들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감정 부담을 일으켰을까봐 송구합니다. 스포일러?같지만 저희는 전혀 전혀 슬프거나 괴롭거나 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 아이 때문에 기쁘고 즐겁고 더 많이 웃습니다.

3. 첫 진료와 검사
첫 검사일이 왔다. 작은 해치백 차량에 다섯 식구가 꽉꽉 눌러 담겼다. 나도 심장 속에 뭔가를 가득 우겨넣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전문가라는 사람에게 우리 막내를 처음 선보이는 때다.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도 하고 걱정도 됐다. 막 오돌오돌 떨리는 건 아니었지만, 미지의 영역으로 입장하고 있다는 긴장감과, 이번 출발과 함께 모두가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해야 한다는 아련함, 그걸 아비된 자가 전혀 막아줄 수 없다는 애석함이 깊은 밤 괘종시계처럼 가볍지 않은 여운을 남기며 마음을 때렸다. 운전석에서 돌아보니 누나와 형의 직위를 이제 막 받은 아이들은 여전히 애기였다. 막내는 카시트에 누워 여전히 얌전했다. 몸집들이 작아서 다행이다. 앞으로 이렇게 패키지로 다닐 일이 많을 텐데. 부디, 아이들이 이 차가 불편해지기 전까지 이 일정이 끝나길.

큰 숨을 내뱉고는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엔진 소리에서 음성이 섞여 들리는 듯했다. “We’re in this together.” 우리 여정의 시작점에서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해 줄 말이 이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그 전에 그것은 과거의 삶을 지켜줄 수 없다는 아빠의 쓸데없는 연민에 대한 일침이기도 했다. 아내는 앞으로 나아갈 길에 골몰하느라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인 모드에 진입해 있었고, 아이들은 빽빽한 뒷자리에 막내 동생과 함께 앉아 여행을 다닌다는 것 자체에 들떠있었다. 나만 문제였다. 되지도 못할 슈퍼맨이 되고자 헛된 시도를 하면서 매번 실패하는 아빠가. 괜히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하고 “이제 출발한다”고 평소 하지도 않던 말을 혼잣말인 듯 아닌 듯 하면서 사이드브레이크를 내렸다.

서울에서 귀촌을 하고서 5년이 지난 시점이라는 게 꽤나 큰 힘이 되는 듯했다. 귀촌을 하긴 했지만 친지들이나 회사나 아직 서울에 남겨진 것들이 많아 우리 가족은 서울을 꽤나 자주 오가야만 했다. 그래서 차 안에 앉아 두세 시간 버티는 것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우리끼리 재미있는 법도 알고 있었고, 각자에게 편안한 좌석과 자세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자리와 자세를 위해 달리는 차 안에서 조심조심 자리를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휴게소를 놀이동산처럼 기뻐할 줄도 알았다. 그렇게 평소의 우리인 채로 달렸더니 처음 보는 병원이 나왔다.

선생님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의사가 환자에게 감정을 드러낸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고, 심지어 공감력 과도한 의사 선생님들을 평소 신뢰하지도 않는데, 그 때 나는 뭘 찾고 있었던 건지 그 무미건조함이 서운했다. 그래도 아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아내와 힘을 합해 설명했다. 선생님은 부모 편에서 관찰된 내용을 듣더니 아이를 침대에 눕혀보라고 했다. 생후 7개월째 될 때였다. 한창 두리번 거리며 번잡스럽게 버둥거리고 옹알이까지 하면서 시끄러워야 정상이라는 듯, 선생님은 아무런 저항 없이 아빠가 눕히는 대로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며 “조용하네요”라고 말했다. ‘순하네요’와 동치되는 게 보통인 그 표현은, 진료실이라는 맥락에서 ‘이상하긴 하네요’라는 뜻이었다. 첫 소견이 그거였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내와 나는 한 발 물러났다. 선생님은 제일 먼저 왼쪽 팔과 왼쪽 다리만 붙잡고 아이를 들어올렸다. 세 아이를 안아 키우면서 한 번도 상상 못한 그림이 나왔다. 건조한 표정의 선생님은 기중기였고 아이는 아이가 아니라 하나의 물체가 된 듯했다. 나도 모르게 헉 하는 소리를 속으로 삼켰다. 진료의 과정인 걸 알면서도 뒤통수에서 털이 서는 듯한 느낌이 순간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이상한 광경을 더 이상하게 만드는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아기들을 물고 빨며 뒹굴거렸던 그 숱한 날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감지였다. 우리 막내는 분명히 살아 숨쉬는 생명체였지만 축 늘어진 채 선생님의 손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그 불편한 ‘들림’에 조금도 저항하지 못했다. 칭얼거리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진짜 기중기처럼 아이를 그 자세로 한창 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위 아래로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지도 않았다. 정말 잠깐, 침대 위에서 단 몇 센치 정도 들어본 게 다였다. 다만 누군가 내 아이를 그런 식으로 들어올렸다는 것과, 아이가 온 몸으로 고요했다는 게 충격이었다. 그 이상한 광경은 아직도 나를 숨막히게 한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난 선생님의 다음 설명을 듣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애를 썼지만 결과는 없었다. 방에서 나가기 전, 추가 검사를 위해 다시 예약을 잡아야 한다는 행정적인 절차만 들렸다. 우리 아이가 정말 아프구나, 드디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찌 저찌 집에 왔다. 병원에 갈 때보다 차안이 조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혹시나 해서 강조하자면 그 선생님에 대한 원망이나 그런 게 날 괴롭힌 건 전혀 아니다. 그 잠깐의 진단 행위로 우리 아이의 남다름이 비전문가의 눈에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 대번에 드러났으니, 납득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게다가 이후에 이어지는 병원 순방에서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아이를 그런 식으로 살피기도 했고, 그 광경에 점점 무디어져 가기도 했다. 다만 그 첫 병원의 첫 충격이 생생한 건, 말 그대로 첫 경험이어서 그런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 날 나는 아이가 아프다는 걸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날 처음 집에 돌아와 서재에서 문을 닫고 엉엉 울었다. 아내도 방에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고 있었던 걸로 보아 첫 진료실의 잔상에 충격을 받은 건 나만이 아닌 것 같았다.

우리 부부가 운 건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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