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폴리 아 되> 후기(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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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커 2편을 보고 왔습니다.
감상평을 먼저 말하자면, 1편보다는 확실히 못했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일단 뮤지컬의 형식을 일부 활용한 측면은 호보다는 불호 쪽이 훨씬 클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구요.
무엇보다도 이동진씨의 평처럼 전작에서 피닉스가 보여준, "영화적 중력으로 공간이 휘는 듯한" 연기의 무게감이 이번작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환상과 현실을 왔다갔다 하는데서 오는 혼란과 피로감이 좀 더 크게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있어서는 여운이 꽤 남는 영화였고, 그래서 나름대로 글로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전작인 <조커>는 <킬링 조크>가 그랬듯이 "조커 오리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조커>는 선과 악, 질서와 혼돈의 경계가 흔들리는 상황을 그리면서도 결국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던 <킬링 조크>, 그리고 <다크 나이트>에서 한발짜국 더 나아갔다고 봅니다. 적어도 <조커>를 본 사람들이라면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된 과정을 단순히 타락이라고 말하지는 않을거라고 봅니다. 그도 그럴것이 애초에 "아서 플렉"은 평생 아서를 학대하고 고립시켰던 사람의 허구와 망상으로 이루어진 거짓된 인격, 영화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맞지 않는 신발에 불과했죠. 우발적인 살인은 생전 처음으로 타인에게 인식되고 받아들여진 정체성인 "조커"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애초 계획했던 자살 대신 머레이를 생방송에서 살해하면서 아서는 "조커"를 완전히 긍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커: 폴리 아 되>는 <조커>에서 그 다음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대신 이 영화는 1편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그것을 변주합니다. 1편 마지막에 완전하게 "조커"가 된 것처럼 보였던 아서는 어쨰서인지 다시금 "아서 플렉"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어머니의 살인을 포함해서 7명을 죽였다는 사실은 그대로지만, 그 의미는 단순한 쾌락 살인 내지는 정신병의 결과로 규정되고, 그는 여전히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비참한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전작에서 나온 살인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배경으로, 영화는 "아서는 누구인가?", "아서 플렉/조커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관한 세 가지 대답을 반영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아서를 기소한 검사 하비 덴트는 "아서 플렉"과 "조커"를 동일시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아서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이자 정당한 심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중인격자라는 거짓된 연기로 사람들을 기만하는 악인에 불과합니다.
다음으로 아서의 변호사는 "아서 플렉"과 "조커"는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학대 받아 왔으며, 정상적인 삶을 살아오지 못한 아서가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로 "조커"라는 제2의 인격을 형성하였으며, 모든 살인은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의 짓이라는 변호 전략을 세웁니다.
그런데 여기서 변호사와 검사가 아서를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아서 플렉"이든 "조커"든 그들에게 있어서 아서는 비정상적으로 자라나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암세포와 유사한 존재입니다. 검사가 아서를 사형을 통해 죽이려고 한다면, 변호사는 아서의 인격을 거세하고 사회에서 격리시키고자 합니다. 떄문에 그녀는 지속적으로 아서에게 (성적인 측면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서) 무능하고, 나약하며, 상처받은 사람으로 보일 것을 요구하죠.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할리퀸, 즉 "리"는 "조커"의 광적인 숭배자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오로지 아서를 만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감옥에 들어와 그를 구속하는 모든것(감옥, 약, 법과 질서 등)을 불태우려 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야말로 아서의 진정한 본질임을, 그리고 자신이 그런 "조커"의 진정한 이해자이자 동반자임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리와 아서, 둘 사이에는 어떠한 실제적인 소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래와 춤을 통해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함께 이루어나갈 미래를 그리지만, 그 중 어느것도 현실에서 실현되지는 않죠. 결국 그들의 관계는 리의 노래가사에서 나오듯이 엔터테인먼트에 머무릅니다.
그렇다면 결국, 아서는 누구일까요? 1편에서 "코미디는 주관적이다"라고 말하며 더이상 사회의 기준과 잣대에 스스로를 맞추려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아서는, 2편에 와서는 "조커"로서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데에도 실패합니다. 이미 "조커"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 상징화되어버렸고, "아서 플렉"은 진작에 본인 스스로 파괴했습니다. 결국 아서는 자신에 대한 무엇도 긍정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퇴장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결말이 만족스럽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납득이 안되는 결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래서 영화에 대한 최종적인 감상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굳이 따지면 애초에 <조커>는 후속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영화였고, 그렇기에 어떤 식으로든 나온 후속작이 사족이 되지 않기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저는 이 영화보다 더 나은 스토리와 결말의 후속작이 되려면 어때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그냥 조커와 할리퀸이 고담시를 신나게 뒤집는 영화였다면 어쩌면 더 유쾌하게 봤을지도 모르지만 글쎄요.....전작인 <조커>에서부터 코믹스적인 요소를 거의 배제한 시점에서 그런 후속작이 나오는건 말이 안됐죠.
감상평을 먼저 말하자면, 1편보다는 확실히 못했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일단 뮤지컬의 형식을 일부 활용한 측면은 호보다는 불호 쪽이 훨씬 클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구요.
무엇보다도 이동진씨의 평처럼 전작에서 피닉스가 보여준, "영화적 중력으로 공간이 휘는 듯한" 연기의 무게감이 이번작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환상과 현실을 왔다갔다 하는데서 오는 혼란과 피로감이 좀 더 크게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있어서는 여운이 꽤 남는 영화였고, 그래서 나름대로 글로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전작인 <조커>는 <킬링 조크>가 그랬듯이 "조커 오리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조커>는 선과 악, 질서와 혼돈의 경계가 흔들리는 상황을 그리면서도 결국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던 <킬링 조크>, 그리고 <다크 나이트>에서 한발짜국 더 나아갔다고 봅니다. 적어도 <조커>를 본 사람들이라면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된 과정을 단순히 타락이라고 말하지는 않을거라고 봅니다. 그도 그럴것이 애초에 "아서 플렉"은 평생 아서를 학대하고 고립시켰던 사람의 허구와 망상으로 이루어진 거짓된 인격, 영화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맞지 않는 신발에 불과했죠. 우발적인 살인은 생전 처음으로 타인에게 인식되고 받아들여진 정체성인 "조커"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애초 계획했던 자살 대신 머레이를 생방송에서 살해하면서 아서는 "조커"를 완전히 긍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커: 폴리 아 되>는 <조커>에서 그 다음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대신 이 영화는 1편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그것을 변주합니다. 1편 마지막에 완전하게 "조커"가 된 것처럼 보였던 아서는 어쨰서인지 다시금 "아서 플렉"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어머니의 살인을 포함해서 7명을 죽였다는 사실은 그대로지만, 그 의미는 단순한 쾌락 살인 내지는 정신병의 결과로 규정되고, 그는 여전히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비참한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전작에서 나온 살인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배경으로, 영화는 "아서는 누구인가?", "아서 플렉/조커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관한 세 가지 대답을 반영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아서를 기소한 검사 하비 덴트는 "아서 플렉"과 "조커"를 동일시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아서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이자 정당한 심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중인격자라는 거짓된 연기로 사람들을 기만하는 악인에 불과합니다.
다음으로 아서의 변호사는 "아서 플렉"과 "조커"는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학대 받아 왔으며, 정상적인 삶을 살아오지 못한 아서가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로 "조커"라는 제2의 인격을 형성하였으며, 모든 살인은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의 짓이라는 변호 전략을 세웁니다.
그런데 여기서 변호사와 검사가 아서를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아서 플렉"이든 "조커"든 그들에게 있어서 아서는 비정상적으로 자라나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암세포와 유사한 존재입니다. 검사가 아서를 사형을 통해 죽이려고 한다면, 변호사는 아서의 인격을 거세하고 사회에서 격리시키고자 합니다. 떄문에 그녀는 지속적으로 아서에게 (성적인 측면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서) 무능하고, 나약하며, 상처받은 사람으로 보일 것을 요구하죠.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할리퀸, 즉 "리"는 "조커"의 광적인 숭배자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오로지 아서를 만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감옥에 들어와 그를 구속하는 모든것(감옥, 약, 법과 질서 등)을 불태우려 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야말로 아서의 진정한 본질임을, 그리고 자신이 그런 "조커"의 진정한 이해자이자 동반자임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리와 아서, 둘 사이에는 어떠한 실제적인 소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래와 춤을 통해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함께 이루어나갈 미래를 그리지만, 그 중 어느것도 현실에서 실현되지는 않죠. 결국 그들의 관계는 리의 노래가사에서 나오듯이 엔터테인먼트에 머무릅니다.
그렇다면 결국, 아서는 누구일까요? 1편에서 "코미디는 주관적이다"라고 말하며 더이상 사회의 기준과 잣대에 스스로를 맞추려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아서는, 2편에 와서는 "조커"로서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데에도 실패합니다. 이미 "조커"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 상징화되어버렸고, "아서 플렉"은 진작에 본인 스스로 파괴했습니다. 결국 아서는 자신에 대한 무엇도 긍정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퇴장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결말이 만족스럽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납득이 안되는 결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래서 영화에 대한 최종적인 감상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굳이 따지면 애초에 <조커>는 후속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영화였고, 그렇기에 어떤 식으로든 나온 후속작이 사족이 되지 않기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저는 이 영화보다 더 나은 스토리와 결말의 후속작이 되려면 어때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그냥 조커와 할리퀸이 고담시를 신나게 뒤집는 영화였다면 어쩌면 더 유쾌하게 봤을지도 모르지만 글쎄요.....전작인 <조커>에서부터 코믹스적인 요소를 거의 배제한 시점에서 그런 후속작이 나오는건 말이 안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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