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어드》 - 서구의 번영은 서방교회가 집약적 친족 제도를 해체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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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조지프 헨릭
출판:21세기북스
발매:2022.10.19.
위어드(WEIRD). 고대 영어 wyrd(운명)에서 비롯한 단어로 "초자연적인", "기묘한"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묘한" 단어에 맞춰 서구 문화를 정의한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입니다. 서구의(Western), 교육수준이 높은(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한(Rich), 민주적인(Democratic) 이 다섯 단어의 머리글자를 모으니 위어드가 나왔습니다. 글쓴이는 서구 문화가 전 지구적으로 봤을 때 참으로 "기묘한" 문화며, 바로 이 기묘한 문화가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꾸어 놓았다는 흥미로운 통찰을 선보입니다. 이 책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와 같은 빅 히스토리를 다루는 책으로 분류됩니다.
글쓴이 조지프 헨릭은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로, 노트르담대학교에서 인류학 및 항공우주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UCLA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에모리대학교의 인류학과 교수와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의 심리학·경제학 교수를 역임했고 2015년부터 하버드대학교에 부임했습니다. 문화와 유전자 간의 공진화와, 인류가 지구에서 가장 성공적인 종으로 발전한 이유를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머리말
프롤로그_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문화적 진화의 힘
Part 1_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진화론
Chapter 1 WEIRD, 이상할 만큼 개인적이고 분석적인 사람들
WEIRD의 이상하고 독특한 심리 │ 마시멜로 효과와 사회 규범의 상관관계 │ 주차 위반 딱지를 받은 유엔 외교관들 │ 도덕적 판단과 의도에 대한 집착 │ 분석적 사고 vs. 전체론적 사고
Chapter 2 문화적 진화와 새로운 종의 탄생
학습하도록 진화하다 │ 진화하는 사회 │ 인간 심리와 제도의 공진화
Chapter 3 집단적 친족의 해체와 국가의 등장
거대한 공동체, 일리히타의 특별한 의례 │ 더 큰 공동체를 위한 필요조건 │ 전근대 국가를 형성하다 │ 다시 근대 국가를 향해
Chapter 4 종교의 토대 위에 세워진 문화와 심리의 공동체
초자연적 믿음이 발달하다 │ 신과 의례의 진화 │ 자유의지와 도덕적 보편주의가 바꿔놓은 것들 │ ‘신뢰성을 높이는 보여주기’의 의미 │ WEIRD 심리의 토대가 완성되다
Part 2_ WEIRD,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집단의 탄생
Chapter 5 교회, 유럽의 가족 제도를 개조하다
전통적 가족이 해체 │ 카롤루스 왕조와 기묘한 장원제 │ 계속되는 사회적, 심리적 변화
Chapter 6 가족 제도의 변화가 가져온 심리적 변화
친족 집중도가 보여주는 유럽인들의 심리 변화 │ 교회가 가져온 정치, 경제, 심리적 차이 │ 새로운 제도와 조직을 위한 심리가 싹트다
Chapter 7 농사 형태가 바꿔놓은 중국인들의 심리
중세 교회에서 형성된 현대인의 심리 │ 중국인과 인도인의 심리적 차이 │ 경제적 번영을 위한 제도적 토대가 형성되다
Chapter 8 일부일처제의 심리학과 사회학
일부일처제라는 독특한 제도 │ 일부다처제의 수학 문제 │ 결혼 제도가 남성 호르몬에 미치는 영향 │ 남성 호르몬이 가져온 심리적 변화 │ 일부일처제와 평등한 가족의 탄생
Part 3_ WEIRD, 새로운 심리와 제도를 형성하다
Chapter 9 친족에서 해방된 개인들, 상업 혁명을 이끌다
시장 규범과 포지티브섬 세계관 │ 후이족이 없으면 시장도 없다 │ 상업 혁명과 도시 혁명 │ 시장 규범의 발전과 새로운 심리의 형성
Chapter 10 집단 간 경쟁과 자발적 결사체의 성장
전쟁이 야기한 심리적 변화 │ 유럽 내 전쟁이 촉발한 도시의 성장 │ 집단 간 갈등이 문화적 진화의 추동력이 되다 │ 자발적 결사체의 등장 │ 경쟁의 힘을 동력으로 삼다
Chapter 11 시장의 사고방식이 형성되다
노동이 미덕이 된 사회 │ WEIRD 인성의 기원 │ WEIRD 인성의 성립과 진화
Part 4_ WEIRD, 근대 세계의 문을 열다
Chapter 12 WEIRD가 만들어낸 법률, 과학 그리고 종교
개인의 권리와 서구 법 제도의 발전 │ 대의정부와 민주주의 │ 가장 WEIRD한 종교, 프로테스탄티즘 │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역할
Chapter 13 유럽의 집단지능이 폭발하다
집단지능의 확대를 위한 전제조건 │ 더 많은 창의성이 뿌리를 내리다 │ 근대 세계의 심리와 혁신 │ 맬서스의 덫에서 탈출하다
Chapter 14 총, 균, 쇠 그리고 다른 요인들
경제적 불평등의 기원 │ 세계화 그 이후
책은 4부로 되어 있는데, 이 중 1부는 인류의 문화적·사회적 진화를 주로 다루고 2부부터 4부까지는 앞서 설명한 "위어드"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현재까지 이르는 역사를 살펴봅니다.
머리말에서는 문해율과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이라는 한 가지 예를 들어 한 종교가 어떻게 인류 문화를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더 나아가서 높아진 문해율이 얼굴 인식 능력을 낮추고 뇌들보가 굵어지는 등 인류의 뇌까지도 바꿔놓는다는 것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나 위어드라는 아주 기묘한 혁신이 나타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은 원인이 아니고 오히려 혁신의 종국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 머리말에서는 책의 전체에서 반복되는 설명 구조를 보여줍니다. 다른 인류 집단과 구별되는 위어드 문화의 특징, 이 위어드 문화의 씨앗이 나타난 이유, 그리고 이 위어드 문화가 바꿔 나간 뇌와 문화의 공진화.
1부와 2-4부가 크게는 나뉘지만 위어드의 특징이 책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오고, 때로는 중언부언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1부의 문화와 뇌의 공진화를 설명하는 부분은 다른 부분에 비해 더 어렵고 위어드가 아닌 문화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 진입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대부분 서구, 곧 위어드에 익숙하고 위어드가 어떤지 궁금해서 읽을 테니까요.
책을 쉽게 읽기 위해서는 오히려 1부의 1장만 읽어 위어드란 과연 무엇인지 감을 잡고 2부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1부의 나머지 장은 책의 기초를 다져주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고, 4부까지 다 읽은 후에 다시 돌아와서 왜 위어드가 아닌 다른 문화가 인류 문화의 다수를 차지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읽으면 그나마 더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습니다.
1부는 위어드와 비위어드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1장과 문화·사회·뇌의 공진화를 다루는 나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어드는 개인주의적이고, 개인적 관계가 없는 사람, 즉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타적이고(impersonal prosociality, 책의 번역은 "비개인적 친사회성"), 전체론적 사고보다는 분석적 사고를 하는 등으로 비위어드 사회와 구분됩니다. 여러 비위어드 사회에서는 친족이나 친구 같은 개인적인 관계 안에서만 이타적이고, 분석적 사고보다는 전체론적 사고를 합니다.
1부의 나머지 장에서는 이런 차이가 왜 나타나는지를 설명하는데, 결국은 위어드와는 전혀 다른 원리로 돌아가며 결혼과 친족 관계에 기반을 둔 공동체, “집약적 친족 공동체”가 가장 먼저 인류 문화를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복잡한 문화를 빠르게 익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진화적 압력을 받았고, 가장 유력한 대책은 바로 선조의 유산을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전근대 국가, 보편 종교는 집약적 친족 공동체와는 다르고 위어드와 더 유사한 특징이 있었지만, 전통적인 집약적 친족 공동체를 해체하지는 못했습니다.
2부는 위어드 문화의 기원을 가족 제도에서 찾습니다. 서방 교회에서 친족 간 결혼과 일부다처제, 성매매를 금지하고 핵가족을 장려하면서 집약적 친족 공동체가 해체되었고, 대부모 제도나 수도원 등을 통해 친족 외 공동체가 태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글쓴이는 이 제도를 “결혼 가족 강령”이라 이름했습니다.
현대 세계를 통계로 분석해 본 결과, 이 집약적 친족 공동체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친족 집중도 지수와 사촌 간 결혼 비율이 높을수록 위어드에서 나타나는 개인주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타성, 보편적 도덕성, 분석적 사고가 약해집니다. 그리고 이 효과는 서방 교회에 오래 노출될수록 강해집니다.
단 중국은 사촌 간 결혼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위어드하지 않은데, 결혼 가족 강령 중 친족 간 결혼만 금지된 사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은 쌀농사의 대규모 노동력을 집약적 친족 공동체로 충당했기 때문에, 쌀농사 지역일수록 덜 위어드하기도 합니다.
3부는 위어드에서 나온 새로운 제도와 문화를 분석합니다. 위어드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타적인데, 경쟁심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경쟁심이 이런 이타성을 촉진하기 때문에 상업이 활성화되고 도시가 발전합니다. 도시가 발전하면서 모르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공정성, 협동심도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서구 사회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오랜 전란을 겪으면서 기존 사회 조직과 규범, 종교에 더 헌신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다른 문화였다면 집약적 친족 공동체가 강화되었겠지만 집약적 친족 공동체가 해체된 유럽에서는 위어드에 맞는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나고 발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도시, 수도원, 길드, 대학 등 자발적인 결사체입니다.
개인주의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간 엄수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노동이 미덕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직업이 생기면서 이 직업에 맞는 개인의 성향과 일관성이 중시되었습니다. 현대 심리학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성격의 5요인 모형도 위어드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까지 나아갑니다. 이렇게 현재의 위어드의 모습이 점차 갖춰집니다.
4부는 이렇게 만들어진 도시, 자발적 결사체, 개인주의, 분업 등이 기반이 되어 천부 인권, 민주주의, 프로테스탄티즘, 계몽주의가 발생하는 등 근대의 문이 열리고 현대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위어드의 결과이지만, 위어드의 "부스터 샷"으로 작용해 위어드로 변화하는 속도를 끌어올렸습니다. 위어드 문화는 초기에는 집약적 친족 공동체보다 불리했겠지만, 일단 완성된 이후에는 집단지능의 확대에서 우위에 섭니다. 그 결과 산업혁명이 위어드 문화인 영국에서 발생했고, 비위어드 문화를 압도하는 혁신과 경제적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위어드 문화의 진화와 유전적인 진화는 서로 대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위어드 문화의 본거지인 도시는 대규모 전염병에 취약했고, 이를 해결한 현대에도 낮은 출산율 때문에 유전적으로는 "묘지"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미국과 아이슬란드에서 행해진 연구는 자연 선택을 통해 선천적으로 교육에 악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우세해졌음에도 문화적 진화 때문에 교육 기간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이렇게 세계를 지배하게 된 위어드들이 자신들이 세계를 대표하는 듯이 위어드의 제도와 문화를 전 세계에 이식했고, 당연히 집약적 친족 제도를 운용하는 대부분의 세계가 이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위어드가 아닌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하기에 앞서 먼저 그들의 심리와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심리는 유전적·문화적으로 끊임없이 바뀔 것이므로, 훗날에는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고 지각하고 도덕적으로 판단할 후손들이 우리를 이해하고자 애쓸 것이라는 말로 책을 마칩니다.
글쓴이는 이 책을 스스로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확장판이라고 평합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티즘이 근본 원인이 아니라 현대 서구 사회로 가는 종착 단계이자 "부스터 샷"이었다고 분석하고, 결정적인 단계는 집약적 친족 제도를 해체한 “결혼 가족 강령”의 도입이라고 보여주는 것이 차이일 것 같습니다.
책에서 강조하기를, 어떤 제도의 영향력과 결과는 그 제도 안에서 사는 사람이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비록 많은 문화권에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할 뿐이지 장려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기독교만큼 일부일처제를 강력하게 밀어붙인 문화권이 없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서방 교회는 구약성경에서도 허용하는 사촌 간 결혼을 금지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프로테스탄티즘, 개인주의, 민주주의, 산업화라고 누가 감히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글쓴이는 위어드한 사회의 평가 지표와 집약적 친족 제도의 평가 지표를 만들고 이 둘을 연관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집약적 친족 제도가 강한 사회일수록 서구화에 저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책에서 위어드의 특성으로 내놓은 것이 대부분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자살률 증가 빼고), 서구 위주의 편향적인 책이라는 비판도 가능합니다.
중국, 한국, 일본은 강력한 중앙 정부라는 위어드에 가까운 특성 때문에 빠르게 서구화했음에도 집약적 친족 제도 때문에 여전히 위어드하지 않은 사회로 평가받습니다. 책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친구의 죄를 숨겨주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여기는 것을 그 예로 듭니다. 중국도 개인적이지 않은 이타성이 아닌, 개인적 이타성인 "꽌시"로 유명하죠. 그러나 한국의 젊은 세대로 갈수록 위어드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집약적 친족 제도의 기반이 되는 많은 것들이 한국에서는 해체되고 있습니다. 과연 한국 사회는 정말 위어드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철승의 《쌀, 재난, 국가: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충 훑어보았을 뿐이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문화가 바로 쌀농사 문화에서 비롯한다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쌀농사 문화가 민주주의 제도와 맞지 않는 문화 지체를 낳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위어드》의 분석을 참고하면 쌀농사 때문에 집약적 친족 제도가 강해졌고 이는 민주주의의 기반과 충돌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쌀, 재난, 국가》를 읽으면서 《위어드》에서 나온 집약적 친족 제도와 민주주의 등 위어드 특성 사이의 음의 상관관계를 감안하면 흥미로운 분석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쌀, 재난, 국가》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그저 위어드의 관점에서만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흔히 창의력과 창조성을 한 천재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등에서 보여주는 최근의 연구 결과에서는 이는 창의력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창의력과 창조성은 당대의 시대정신에서 비롯한 것이고, 때에 맞는 모방과 약간의 변주에서 비롯하며, 단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오히려 더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 사회에서 다른 문화를 압도하는 혁신과 창조가 일어난 원인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런 오해의 원인, 곧 혁신과 창조를 만들어낸 "개인"이 있어서 그에게 명예와 부귀가 돌아가야 한다는 관념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렇다고 현대의 창의력 연구는 발명을 이룩한 개인의 공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며, 세상에서 인정받는 발명과 발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주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위어드 문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날 수 있게 하도록 위어드 문화를 발전하는 길을 열어 주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또 다른 책이 있는데 《팀 켈러의 용서를 배우다》입니다. 갑자기 웬 개신교, 그러니까 프로테스탄티즘 책이냐고요? 위어드의 특징 중 하나가 잘못하면 수치심 대신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수치심은 명예에 기반을 두고 집약적 친족 관계에 어울리며, 죄책감은 개인주의에 어울리고 개인주의는 존엄성을 강조합니다. 《팀 켈러의 용서를 배우다》에서는 기독교적 용서는 수치와 명예의 문화가 아니라 존엄성 문화에 기반을 두는데 서구 사회가 수치와 명예를 강조하는 옛날 이교 사회의 원칙을 되살리면서 용서가 미덕이 아닌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거든요.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반발을 넘어서서 위어드의 본질적인 특성마저도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에서도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수치심을 법에서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반박하고 있는데, 이는 서구에 수치심을 강조하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증거 같습니다.
글쓴이의 마지막 지적은 세계화로 인한 혼란과 극단주의 창궐을 겪는 현대 서구 사회에 경종을 울립니다. 한동안 서구 사회는 비교적 위어드한 사람들끼리만 교류했고, 덜 위어드한 사람들까지도 위어드하게 바꿔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는 집약적 친족 제도를 보편주의적 교회와 개인주의적 결사체로 바꾼 기독교 문화권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서구 사회가 집약적 친족 제도를 강력하게 보존해 온 무슬림들을 이민자로 받자, 이들은 서구화에 저항했고, 동화되지도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지도 않는 무슬림들을 이웃으로 두게 된 유럽인들은 극단주의에 경도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위어드한 사회와 집약적 친족 제도에 의지하는 사회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사실은 그전에, 위어드한 사회와 집약적 친족 제도에 의지하는 사회가 서로 같은 도덕 기반 위에 있다고 착각한 것에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결혼을 몇 명이랑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해?" "사촌이랑 결혼 못 한다고 나라가 뒤집어지나?" "믿을 건 가족뿐인 건 당연한 거 아냐?"
그것 때문에 산업혁명이 못 일어날 수도 있다면, 민주주의 국가가 못 될 수도 있다면, 너무 극단적으로 책 내용을 줄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