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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중국의 역사적 평행관계와 분기(divergence)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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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587 회 작성일 24-09-28 18: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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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적인 유럽과 통일적인 중국에 대한 비교사적 분석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동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온 주제라고 할 만합니다. 물론 『총, 균, 쇠』 이후로는 [ "지리적 격절" ] 이라는 요소가 이 논의에서 가장 지배적인 설명으로 자리매김한 듯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포괄적이면서도 획기적인 통찰을 원하는 심리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어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대체로 "지중해"와 "중국"의 기이한 역사적 평행관계에서 연유합니다. 이 두 권역은 모두 양대 세력의 경쟁 이후 제3의 강자가 통일제국을 건립하고, 그 통일제국이 한 차례의 부침 이후 재탄생하며, 셋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통합되고, 이민족의 침입으로 절반을 상실하는 궤적을 따라가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절반이 각각 카롤루스 대제와 북위 태무제에 의해 일단 합쳐진다는 데까지는 어느 정도 평행관계가 성립합니다. 다만 유럽은 프랑크 왕국의 분할상속 이후 분열로 고착되고, 중국은 수문제의 남북조 통합 이후 통일로 고착된다는 점에서 분기가 생긴다고 할 수 있지요. 이 흐름을 지도로 다시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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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페니키아 경쟁과 晋-楚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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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의 대이동과 5호의 화북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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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재정복과 동진 유유의 북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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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대제의 서유럽 제패와 북위의 화북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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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제국의 분할 상속과 隋의 중국 통일)
이러한 두 권역의 역사적 흐름은, 물론 상당한 도식화가 섞인 것이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입니다. 특히나 자주 비교되는 로마와 漢의 경우에는 양자의 패권을 성립시킨 자마 전투와 해하 전투가 모두 [ 기원전 202년 ] 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주목받기도 하지요. 그리고 이후 지중해는 서로마가 붕괴하는 476년까지, 중국은 서진이 붕괴하는 316년까지 [ 통일-회복성 ] 을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혹은 로마의 통일은 漢보다 점진적이어서 기원전 31년의 악티움 해전에 이르러서야 지중해 세계를 실제로 통일했고, 중국 역시 漢의 통일 이전에 이미 기원전 221년 秦의 통일이 있었으므로, 지중해가 약 507년간 통일-회복적이었고 중국은 약 537년간 통일-회복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오랫동안 지중해가 통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800년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재건된 "서로마 제국"은 43년 만에 영구적으로 분열되어 버리고 맙니다. 비슷한 기간 동안 통합적이었던 중국의 경우에는 439년 통일된 화북이 다시 분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남북조시대를 거쳐 隋의 중국 전체 통일이 전개되었으므로, 이러한 차이는 어쩐지 매우 대비되어 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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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일찍이 지중해와 중국을 가른 차이에 대해 여러 견해들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중국은 바다/고원/사막 등으로 사방이 막혀 있어 "천하"의 범위가 가시적이었고, 실제로 진시황제가 그 권역을 한 번 통일했으므로, 이후의 중국 군주들은 [ 통일을 지향점으로 삼게 되었다 ] 고 이야기됩니다. 또 중국은 황하를 품은 화북의 생산력이 압도적이며, 화북은 평야지대이므로 단일 세력이 겸병하기에 용이하고, 이곳만 차지하면 나머지 중국을 모두 제압할 수 있어 [ 통일이 실제로도 쉬웠다 ] 고 여겨집니다. 게다가 지역별 언어 차이를 무마할 수 있는 표의문자 체계 덕분에 [ 문화적 통일성 ] 도 담보되었다고 하지요.

그런 반면 지중해는 히스파니아/갈리아/이탈리아/그리스/소아시아/이집트/북아프리카 등 생산력 측면에서는 대등한 지역들이 산맥과 바다로 인해 문화적으로는 격절되어 있던 권역이었고, 로마가 이들을 지배하며 개발한 덕분에 그 생산력이 실제로 발아하였으며, 그래서 일단 통일이 깨진 뒤에는 어느 하나만 가지고 나머지를 제압할 수 없어 [ 통일이 어려웠다 ] 고 여겨집니다. 또한 왕국과 왕조를 분리해 이해하는 전통으로 인해 기껏 몇몇 지역을 통일하더라도 [ 후대에 분할상속되는 일이 잦았다 ] 고 이야기되지요. 게다가 기독교문화권인 탓에 교황이 세속 권력에 개입하며 절대적 강자의 출현을 견제했으므로 [ 명분적으로도 통일국가의 출현이 까다로웠다 ] 고들 합니다.

따라서 중국은 지리적으로 통일이 쉬웠던 반면 지중해는 어려웠고, 중국은 문화적으로 일극 체제였던 반면 지중해는 다극 체제였고, 중국은 관료제 전통 탓에 왕조가 망하면 왕국도 자동소멸했던 반면 지중해는 봉건제 전통 탓에 왕조가 망해도 왕국은 국체를 유지했으며, 중국은 대의명분상 천하통일을 추구하기 용이했던 반면 지중해는 까다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기실 "지리적 격절"이라는 근본 원인에서 차례대로 파생되어 나오는 이유들이며,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이 논의는 『총, 균, 쇠』의 은하계 안에서 공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여기까지의 설명이 최선인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한 권역의 분열과 통일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당연히 지중해와 중국이라는 두 가지 사례만 보고는 제대로 추출할 수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 유라시아의 4대 권역을 모두 고려하여 ] 과연 지리적 요인이 일관된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 맞는지를 상고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지요.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주마간산식으로나마 해 보고 나면, 우리는 인도-지중해-페르시아-중국으로 갈수록 통합성이 우세했으나, 인도는 지리적 격절이 약했고 페르시아는 오히려 강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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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중국과 페르시아는 통일국가가 계속 들어섰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통일의 응집력은 중국이 더 강했고, 지중해와 인도는 통일국가가 좀처럼 들어서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개별 국가의 지속성은 지중해가 더 강했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만성적인 분열에는 과연 데칸고원의 영향이 있지만, 데칸고원의 평균 높이는 600m 정도이므로 이것이 정말 극도의 지리적 격절을 유발하는 장애물이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반면에 페르시아는 권역의 중앙에 이란고원이 있으며 이란고원의 평균 높이는 900m 가량으로 데칸 고원보다도 더 험준하지만, 그럼에도 페르시아 권역을 통일한 국가들은 꾸준히 등장했던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각을 인정할 수 있다면, 지중해와 중국이 자주 비교되는 것은 단지 서구의 중국사 연구자들이 지중해를 예로 들고 동아시아의 유럽사 연구자들이 중국을 예로 들기 때문이지, 그 둘의 대비가 유독 전형적이기 때문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물론 위의 시각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해도 제가 인도나 페르시아 권역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으므로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 분열과 통일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란 4대 권역에서 한결같이 두드러져야 한다 ] 는 점 자체는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유목세력이라는 요인을 보면, 중앙아시아의 유목제국들은 늘 페르시아의 적수였고 막북의 유목제국들은 늘 중국의 적수였던 반면에, 인도는 에프탈 이후 유목제국들의 영향이 적었으며 지중해에서는 훈족 이후 아바르-불가르-마자르가 차례로 정주민으로 전환되면서 유목지역 자체가 동쪽으로 밀려났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유목세력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은 통합성도 강했고, 약한 지역은 분열성이 강했다고도 말할 수 있지요. 이것이 단합의 요청 때문인지 아니면 정주민으로는 광범위한 정복전쟁이 어렵기 때문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흥미로운 차이임은 분명합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유목세력 때문이라는 것도 아니고 지리격절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지만 시야의 폭을 넓혀서 보자면 대략 이러한데, 당연히 저도 여기서 포괄적이고 획기적인 통찰을 길어낼 능력까지는 없으나 새로운 구도에서의 통섭이 필요하다는 느낌만은 전달해 보고자 이렇게 써 봅니다. 물론 본문도 주마간산식의 지식에 기반한 글이고, 지중해사나 중국사에 비해 페르시아사나 인도사를 잘 아는 사람은 별로 없으므로 언제쯤 그것이 가능할지는 거의 알기가 어렵겠지만 말이지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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