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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예, 대를 이어 아내를 죽인 황제(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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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72 회 작성일 24-09-24 14: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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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로서의 조예는, 적어도 제위 초기의 몇 년 동안은 분명 명군(名君)의 자질을 보였습니다. 죄를 지어 죽임당한 황후의 자식이라는 정치적 약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량으로 극복해 냈습니다. 새로운 국가 초기의 정권 교체기에 으레 있을 법한 혼란을 최소화했고, 뛰어난 군사적 식견으로 촉과 오의 외침을 연달아 막아냈습니다. 방계 황족을 요직에 등용하고 제후왕들의 권위를 높여주는 등 자신의 황권을 강화하면서도 그 정도가 지나치지는 않았습니다. 또 가혹한 형벌을 가볍게 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중요한 재판은 직접 방청했습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는 뒤에 숨어있는 대신 오히려 자주 전방으로 나아가 군사들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개인으로서의 조예는 무척이나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제위에 오를 당시에 이미 부모를 잃었고, 계모로 모시던 곽태후가 사실은 자신의 어머니가 죽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은 어린 나이에 줄줄이 사망했지요.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한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촉과 오는 거의 매년마다 크고 작은 공격을 거듭해 왔습니다. 이민족인 흉노와 선비는 항복과 배반을 거듭하며 변방을 소란스럽게 했고, 동북쪽 요동에 도사린 공손씨 일가도 골칫거리였습니다. 비록 위나라는 강성했지만 동서남북 어느 한 쪽도 평온하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조예는 제위에 오른 그 순간부터 황제로서든 개인으로서든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추측일 뿐이지만, 저는 조예의 정신이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조예의 행적은 앞서 서술한 대로였습니다. 제위 초기의 뛰어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남은 건 그저 개인의 쾌락에 탐닉하면서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흔해빠진 범상한 군주에 불과했습니다. 크고 장대한 건물을 짓는 데 열중했고 후궁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도교에 심취하여 구리로 신선 동상을 만들기도 했지요. 그리고 끝내 아내의 빈정거림을 트집 잡아 죽음을 내렸습니다.

조예는 마치 거울을 마주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아버지의 행적을 고스란히 되풀이하였습니다. 조비는  장남이면서도 후계자로 정해지지 못해 지위가 불안정했습니다. 조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조비는 황제가 된 후에 아내 견씨를 황후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조예는 황제가 된 후에 본처였던 우씨를 황후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후궁 모씨를 황후로 세웠습니다. 두 사람은 즉위 후 점점 더 여색을 밝히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아내가 원망하는 모습을 보이자 오히려 분노했습니다. 급기야 조비는 견씨를, 조예는 모씨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에 이르렀지요. 그러고 나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본인이 총애한 다른 후궁을 황후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핏줄의 무서움일까요. 아마도 결코 아버지를 닯고 싶어하지 않았을 아들은, 장성해서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비극을 보는 것처럼 예정되어 있는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섬뜩한 기분마저 듭니다.

물론 비합리적인 이야기지요. 그러나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조예가 태어났을 때 이미 할아버지 조조는 천하에서 제일 가는 권세를 떨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다 해서 조예가 부잣집 도련님처럼 곱게 자랐을 거란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죠.

조예가 자라면서 보았을 광경은 매년 전장에 나아가 죽고 죽이는 사투를 벌이는 남자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이었을 겁니다. 얼마 후에는 미처 성인이 되기도 전에 전장에 따라다니면서 전쟁을 실제로 겪어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당대의 권력자인 할아버지가 정적들을 잔인하게 숙청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겠지요. 바로 그 할아버지가 큰아들이 아닌 다른 자식을 대 놓고 편애하는 모습도 목격했을 겁니다. 또 예술가 기질이 농후했던 아버지가 음주가무와 여색에 탐닉하는 모습 또한 보았을 겁니다. 그와 동시에 친동생과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이는 광경과, 결국 할아버지의 뒤를 이은 후 끝내 황위를 찬탈하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도요. 그리고 아버지가 황제가 된 후 어머니의 죄를 물어 죽이고 그 장례마저도 모욕하는 광경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이렇듯 조예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내내 음울한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황제가 된 이후의 상황은 앞서 설명한 그대로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조예는 학문을 즐겼다고 합니다. 물론 당대 학문의 중심은 유가였습니다. 그리고 유가에서 가장 강조하는 이념이 바로 충(忠)과 효(孝)지요. 조예의 가치관은 자연스레 충효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조예의 아버지는 황위 찬탈이라는, 충(忠)의 반대쪽 극한에 다다른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죽임으로써 조예에게서 효(孝)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박탈해 버렸습니다. 조예가 책을 읽어서 배운 도리와 실제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불충한 자에게서 태어난 불효한 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에게 남은 유일한 효(孝)의 대상인 태후 곽씨는, 알고 보니 자신의 친어머니를 참소해서 죽인 원수였습니다.

조예의 정신적인 파멸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조예의 성장 환경과 그가 느꼈을 상황을 짐작해보려는 건 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삼국시대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뛰어난 군주가 될 자질이 있었던 그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급격하게 몰락했는지, 그 이유를 유추해 보기 위함일 따름입니다.

조비는 자신의 아들을 비정상적인 환경에 내던져둔 채 방치하다시피했습니다. 물론 그 전부가 조비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아내이자 자식의 어머니를 죽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황위에까지 올랐던 조예는, 결국 아버지가 자신에게 저지른 잘못을 그대로 답습하고 말았습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가정폭력의 대물림이라고 표현했는데 십분 동감합니다.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예가 좀 더 제대로 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그랬더라면 아내를 죽이지 않았을까요? 일국의 황제로서, 좀 더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을까요?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자식들에게 보다 행복한 미래를 전해줄 수 있었을까요? 한 개인으로서, 좀 더 평온한 삶을 보낼 수 있었을까요?

위말전에 기록된 일화가 있습니다. 조비가 아들 조예와 함께 사냥을 나갔을 때, 사슴 모자를 만나자 자신이 먼저 어미 사슴을 쏴죽인 후 아들에게 새끼를 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조예는 따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폐하께서 이미 그 어미를 죽이셨으니, 신은 차마 다시 새끼까지 죽이지 못하겠습니다.(陛下已殺其母, 臣不忍復殺其子.)" 아마도 이 기록을 남긴 사람은 조예의 자애로움을 강조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기록의 행간에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읽습니다. 조예가 마치 이렇게 울부짖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미 제 어머니를 죽이셨으니, 저는 언제 죽이시렵니까?"

물론 추측일 뿐입니다만.

결과적으로 조예의 죽음 이후 위나라는 급속히 멸망길로 접어듭니다. 뒤를 이은 황제는 불과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조방이었습니다. 국가를 다스리기에는 지나치게 어렸고, 출신성분을 알 수 없었기에 정치적 배경 또한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랏일은 대부분 권신들의 손에서 결정되었습니다. 비록 조방의 재위 기간은 15년에 달했지만 실상 그는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처지였습니다. 마치 조비에게 황위를 빼앗긴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처럼 말입니다.

조방은 끝내 권력을 장악한 사마씨에 의해 폐위됩니다. 뒤를 이은 어린 황제 조모는 조예의 조카뻘이었는데 열네 살에 즉위했고 육 년 후 피살되었습니다. 다시 뒤를 이은 조환은 열다섯 살에 황제가 되었으나 간신히 스무 살을 채운 후 사마염에게 제위를 찬탈당했습니다. 이로써 위나라는 멸망합니다. 결국 위나라의 다섯 황제 중 쫓겨나거나 살해당하지 않은 황제는 조예가 마지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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